생생후기

나바리에서 찾은 청춘의 의미, 환경 봉사

작성자 성빛나
일본 NICE-13-32 · ENVI/ART 2013. 03 일본 미에현 나바리시

Nabari 2 (Mi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워크캠프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가볼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지난 연말에 문득 '이대로 허무하게 청춘을 보내도 좋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해외로 가되 여행만이 아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오자는 마음에 워크캠프를 가기로 결정하였다.
캠프지를 쭉 둘러보다가 일본의 나바리에 가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일본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소통하기 편할 것이기도 했고, 평소 간사이 지방을 가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또한 환경봉사라는 점도 환경 공학도로써 마음에 들기도 했다. 마음에 든 캠프지이니만큼 신청서도 술술 작성할 수 있었고, 며칠 후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나바리에 있는 아카메노모리는 간사이공항에서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이번 워크캠프에서 함께 하게 된 멤버들은 나를 포함하여 7명이었는데 일본인인 아츠코, 유스케, 사토시, 대만인인 지에루, 멕시코인인 사이르, 그리고 캠프리더인 고상이었다. 그리고 아카메노모리의 이이노상, 미나미노상, 쿠마상, 아야짱, 러시아에서 온 다샤도 매일 함께 했다.
우리의 숙소는 멋진 2층짜리 로그하우스였다. 남자들의 침실이자 공동생활구역으로 1층을 사용했고, 여자들의 침실로 2층을 사용하였다. 화장실과 세면실이 따로 있어서 아침에도 기다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다. 부엌은 로그하우스 옆에 독립적으로 위치하고 있었는데, 3월이지만 아직 겨울날씨여서 매일 부엌에서 요리한 후 로그하우스로 가져와서 따뜻한 코타츠에서 먹었다. 첫째 날에 요리당번을 서로 돌아가면서 하기로 정했는데, 점심때는 정해진 멤버 빼고는 계속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대로 했다. 하지만 아침과 저녁에는 당번 아닌 멤버들도 항상 스스로 나서서 도왔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우리의 로그하우스 옆에 있는, 아카메노모리의 중심인 에코리조트에서 매일 샤워와 목욕을 즐길 수 있었다.
우리의 주된 일은 쿠마상이 산에서 잘라놓은 통나무들을 에코리조트 근처의 넓은 주차장으로 운반하는 것이었다. 무거운 통나무들을 하루에 몇 백 개씩 옮겨야 해서 체력적으로 무진장 힘들었다. 웰컴파티 때 이이노상께서 “세상에서 가장 하드워크를 하는 워크캠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하셨던 이유를 2주내내 절실히 체감했다. 특히 경사가 심한 곳에서 통나무를 옮길 때에는 한 15m정도 옮기고, 그걸 다시 15m정도 옮기는 일의 반복이었기 때문에 몇 백 개나 되는 통나무를 몇십번 반복해서 옮겨야 했다. 초반의 3일간은 팔에 근력도 부족하고 체력도 바닥나서 힘들었지만, 점점 일이 익숙해질수록 근력도 생기고 체력도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 일은 그렇게 매일 모은 통나무들을 12톤 트럭에 실어 후쿠시마로 보내는 것이었다. 보내진 통나무들은 구멍을 뚫고 버섯을 심어 키운다고 한다. 총 2200개를 트럭에 가득 실어 보냈는데 그것은 우리가 모은 나무의 1/3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나무를 한 번에 후쿠시마로 보내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신문기자들이 취재하러 와서 우리의 일하는 모습을 찍어갔다.
우리의 또 다른 일은 에코리조트 옆에 간이 통나무 보관소를 만드는 일이었다. 고상의 다양한 경험과 건축가인 사이르 덕분에 이틀 만에 뚝딱뚝딱 완성했다. 이 든든한 두 사람이 없었다면 어떻게 보관소를 만들었을지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매일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로 맞이한 주말에는 1박2일로 Excursion을 갔다. 아카메노모리 식구들과 우리 워크캠퍼들, 그리고 아카메노모리에서 워크캠프를 했었던 수많은 선배님들과 함께 관광버스를 빌려 나라의 아스카, 고베, 교토를 여행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NPO의원(?)이신 이이노상의 취지에 따라 숲을 보존하는 방법, 나무의 자생능력, 펠렛의 이용가치 등을 배울 수 있는 견학과 같은 여행이었다. 나는 일본어를 웬만큼 다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유익한 시간이었지만, 사이르와 지에루는 일본어가 서툴기에 고상이 틈틈이 해주는 영어설명을 듣긴 했지만 완전히 이해는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고 했다.
Excursion이 끝나고 이틀 후 맞이한 Free day!! 어디로 갈지 워크캠프 첫날부터 고민하다가 결정한 곳은 이세진구(이세신궁)였다. 이세진구에서는 20년마다 정확히 같은 모양으로 새 신궁을 지어서 이사를 하는데, 올해가 그 이사하는 해라서 큰 의미가 있고, 내국인, 외국인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몰려든다고 한다. 우리는 화요일에 갔는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신궁에는 몇 백 년쯤 되어 보이는 신비스러운 나무들과, 깨끗한 강과, 맑은 공기로 둘러싸여있어 몸과 마음을 Refresh 하기에 정말 좋은 장소였다. 마음이 잘 맞는 워크캠프 친구들과 함께 했기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 옆에 있는 오카게요코쵸에서 맛있는 것도 잔뜩 먹고, 쇼핑도 하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리고나서 아츠코의 집도 방문하고, 카타오카 온천도 즐겼다.
Free day후에는 매일 하드워크의 연속이었는데, 하루는 오전동안 어린이와 부모님이 아카메노모리를 방문하여 여러 체험을 해보는 날이 있었다. 미니스토브를 만들어 밥을 짓고, 직접 구운 바움쿠헨을 먹어보는 등의 활동을 했었다. 우리는 바움쿠헨을 굽고, 카레를 만들고, 미니스토브 만드는 일을 도와주는 등 간단한 일만 했기 때문에 지친 몸을 달랠 수 있었다. 그리고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뛰고 놀며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워크캠프 막바지쯤, 우연찮게 나바리시의 모니터링 투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일을 아예 안할 수는 없기에 7명중 나를 포함한 4명만 모니터링 투어를 참여했다. 모니터링을 하실 지역주민들과 우리 멤버들, 아카메노모리 멤버들, 문화부에서 오신 일일 가이드 분들과 함께 나바리의 신사들,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장소들을 걸어서 여행했다. 매일 하드워크만 하느라 아카메노모리 주변의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는데, 투어를 하면서 보니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캠프가 끝나기 전 나바리를 여행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힘든 일을 할수록 팀워크는 더 강해진다는 말이 있던데 우리도 정말 그랬다. 몸은 곧 쓰러질 듯이 힘들고 피곤했지만 서로 금방 친해져서 웃고 떠들며 즐겁게 지냈다. 그러나 단 한명, 사토시는 말하는 것마다 불만투성이고 부정적이어서 모두를 힘 빠지게 만들었고, 모두가 힘을 합쳐 힘든 일을 할 때 혼자 뒤에 빠져서 빈둥거린다던가, 요리나 설거지 등은 전혀 하지 않아서 같이 생활하기 불편했다. 워크캠퍼라면 그런 자세는 버려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다들 여리고 마음 착해서 마지막 날까지 사토시 앞에서는 한 번도 찡그리지 않고 잘해주었다. 나도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에 이런 사람도 존재하는구나. 그럴 땐 이런 식으로 대하면 되겠구나.’라는 것을 배웠다. 그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멤버들과는 10년지기 친구들인 것처럼 마음이 잘 맞아 꼭 다음에 각자의 나라에 방문해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의 첫 워크캠프. 환경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매일이 즐거웠던 2주가 너무 짧게 느껴져서 마지막 날에는 모두와 헤어져야함에 너무 속상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젊고,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기에 웃으며 헤어질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워크캠프를 통해 재충전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힘차게 일상생활로 복귀하였고, 워크캠프 친구들과 소셜네트워크로 교류하며 지내고 있다. 어디서든 나를 응원해줄 친구들을 얻었기에, 최근 새로 도전한 일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과 추억을 안겨준 국제워크캠프기구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보내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