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해외봉사, 스펙 아닌 성장을 택하다
Dharamshala – McLeodganj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 해외봉사활동, 나는 반댈세 >
해외봉사,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도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해외봉사는 수십, 또는 수백 명의 한국인이 우리보다 조금 덜 가진 이들이 열심히 사는 마을에 들어가 그들의 생활 방식이며 사고방식을 휘저어 놓고 때로는 그들을 상대적 박탈감에 빠뜨린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단기간의 이벤트성 봉사활동은 눈앞의 성과를 위해 퍼주기 식의 활동이 대부분이고 현지인들은 스스로 빵을 생산하기보다는 원조 물자에 의존하게 되어 결국은 자립할 수 없게 된다. 나는 해외봉사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기 위해서 해외봉사에 관심을 두었다.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에서 해외봉사활동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봉사여행>이란 책을 읽었다. 여러 워크캠프를 비롯해 다양한 해외봉사활동에 참가하면서 자신을 계발하는 저자의 모습에 나도 워크캠프에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참가비는 의외로 비쌌고 미팅 포인트까지 혼자 가야 해서 참가를 망설이기도 했지만,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활동한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정원이 많지 않아서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생활하고 국가별 발표나 요리를 통해 여러 나라의 이색적인 문화를 경험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봉사활동이지만 수혜자보다는 나의 성장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해외봉사,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도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해외봉사는 수십, 또는 수백 명의 한국인이 우리보다 조금 덜 가진 이들이 열심히 사는 마을에 들어가 그들의 생활 방식이며 사고방식을 휘저어 놓고 때로는 그들을 상대적 박탈감에 빠뜨린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단기간의 이벤트성 봉사활동은 눈앞의 성과를 위해 퍼주기 식의 활동이 대부분이고 현지인들은 스스로 빵을 생산하기보다는 원조 물자에 의존하게 되어 결국은 자립할 수 없게 된다. 나는 해외봉사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기 위해서 해외봉사에 관심을 두었다.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에서 해외봉사활동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봉사여행>이란 책을 읽었다. 여러 워크캠프를 비롯해 다양한 해외봉사활동에 참가하면서 자신을 계발하는 저자의 모습에 나도 워크캠프에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참가비는 의외로 비쌌고 미팅 포인트까지 혼자 가야 해서 참가를 망설이기도 했지만,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활동한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정원이 많지 않아서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생활하고 국가별 발표나 요리를 통해 여러 나라의 이색적인 문화를 경험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봉사활동이지만 수혜자보다는 나의 성장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기로 한 것이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 마날리에 도착한 지 여덟 시간 만에 마날리를 뜨다 >
설렜던, 나의 첫 번째 워크캠프는 황당하게 시작했다. 3월 10일 밤 버스를 타고 마날리Manali로 향했다. 미팅 포인트에서 만날 외국인 친구들이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미팅 포인트에는 인도인 리더와 한국인 참가자 한 명밖에 없었다. 유럽 참가자들이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서 참가할 수 없다고 했다. 나와 다른 참가자는 화가 나서 방에 짐을 풀자마자 IWO에 보낼 탄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사실 봉사활동이야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외국인 친구와 일하고 싶어 큰돈 들여서 워크캠프에 지원했는데 한국인끼리 봉사활동을 하라니…
잠시 후 리더가 오더니 세 명이서 봉사활동을 할지 근처 다람살라Dharamshala 캠프로 옮길지 물어왔다. 우리는 다람살라 캠프에 중도 합류하기로 했다. 마날리에 도착한 지 8시간 만에 마날리를 떠나게 되었다. 오프로드 같은 산길을 넘어 자정이 넘어서야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대충 짐을 풀고 내일 만날 친구들을 기대하면서 잠을 청했다.
다람살라 숙소는 유채와 매화가 만발한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어 아침 해가 비치는 경치가 장관이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낯선 얼굴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파라타Paratha와 짜이Chai로 아침을 먹고 간단하게 소개를 했다. 이미 일주일 함께 일한 기존 참가자들은 무척 친해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우리가 마치 불청객 같았다.
9시, 숙소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로 올라가 벽돌을 날랐다. 벌써 일을 많이 해둔 덕에 새로 온 우리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따뜻한 짜이를 마시고 교실 환경 미화 작업을 했다. 페인트가 벗겨진 벽에 새로 옷을 입히고 인도 전도 등 여러 그림에 덧칠했다. 같이 벽돌을 나르고 그림을 그리는 사이 어색했던 외국인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다들 꿈도 크고 생각도 깊은 친구들이었다.
점심은 숙소로 돌아와서 해결했다. 음식은 숙소에 딸린 식당에 기거하는 요리사들이 만들어 주는데 짜파티Chapati, 달Dahl, 커리Curry 등 다양한 인도 전통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오후에는 독일인 친구가 알려준 풍선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7시 30분 저녁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맥간McLeod Ganj으로 장을 보러 갔다. 마침 한국 팀이 발표할 날이어서 저녁으로 닭볶음탕을 내놓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리 팀과 발표 팀을 나누어 발표를 준비했다. 발표는 전형적인 한국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누군가 한국에서 가져온 열쇠고리와 술잔을 상품으로 걸고 한글 퀴즈를 내기도 했다. 저녁 식사와 Daily Meeting까지 마치면 자유 시간인데 같이 영화를 보거나 사진을 구경하다 보면 금세 잘 시간이 됐다.
다람살라 캠프는 주제가 kids/culture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일하는 것 외에 달라이라마 사원이나 도서관 Library of Tibetan Works and Archives, 박물관 Tibet Museum 등을 견학할 기회도 많아서 티베트Tibet 문화를 배우고 그 정치적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Tibet Burning이라는 연쇄적인 분신자살이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조국의 독립을 부르짖는 것이다. 캠프 기간 중에도 티베트의 수도 라사Lasa에서 또 한 번의 Tibet Burning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마치 일제 강점기 한국의 상황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더군다나 티베트 사람들은 한국인과 굉장히 비슷하게 생겼고 먹는 음식도 비슷해서 더욱 동질감이 들었다.
주말에는 택시를 빌려 근처 관광지를 여행하거나 패러글라이딩을 갔다. 참가비에 포함되지 않은 거라서 개인이 부담해야 하지만 같이 가는 사람이 많으면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셋째 주에는 3박 4일 일정으로 트리운드 트래킹을 떠났다. 3박 4일 동안 세수만 겨우 하고 화장실OPEN Toilet을 찾느라 고생스러웠지만 매일 밤 이어지는 캠프파이어와 외국인 친구들과 쌓은 정 덕분에 트래킹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그런데 이게 뭐야, 내려오는 길에 보니 트리운드 트래킹은 당일치기 코스였던 것!
캠프가 끝나고 각자의 일정대로 길을 떠났다. 나는 캠프 전 2주간 인도 북부를 여행했고 캠프가 끝나면 곧 귀국할 일정이었는데, 대부분은 캠프 후에 여행 일정을 잡고 델리, 아그라, 바라나시를 같이 여행했다. 같이 갈 수 없어서 아쉬웠다. 뒤늦게 합류했지만 따뜻하게 우리를 챙겨주었던 친구들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다음에 또 워크캠프에 참가한다면 캠프가 끝나고 여행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설렜던, 나의 첫 번째 워크캠프는 황당하게 시작했다. 3월 10일 밤 버스를 타고 마날리Manali로 향했다. 미팅 포인트에서 만날 외국인 친구들이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미팅 포인트에는 인도인 리더와 한국인 참가자 한 명밖에 없었다. 유럽 참가자들이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서 참가할 수 없다고 했다. 나와 다른 참가자는 화가 나서 방에 짐을 풀자마자 IWO에 보낼 탄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사실 봉사활동이야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외국인 친구와 일하고 싶어 큰돈 들여서 워크캠프에 지원했는데 한국인끼리 봉사활동을 하라니…
잠시 후 리더가 오더니 세 명이서 봉사활동을 할지 근처 다람살라Dharamshala 캠프로 옮길지 물어왔다. 우리는 다람살라 캠프에 중도 합류하기로 했다. 마날리에 도착한 지 8시간 만에 마날리를 떠나게 되었다. 오프로드 같은 산길을 넘어 자정이 넘어서야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대충 짐을 풀고 내일 만날 친구들을 기대하면서 잠을 청했다.
다람살라 숙소는 유채와 매화가 만발한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어 아침 해가 비치는 경치가 장관이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낯선 얼굴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파라타Paratha와 짜이Chai로 아침을 먹고 간단하게 소개를 했다. 이미 일주일 함께 일한 기존 참가자들은 무척 친해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우리가 마치 불청객 같았다.
9시, 숙소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로 올라가 벽돌을 날랐다. 벌써 일을 많이 해둔 덕에 새로 온 우리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따뜻한 짜이를 마시고 교실 환경 미화 작업을 했다. 페인트가 벗겨진 벽에 새로 옷을 입히고 인도 전도 등 여러 그림에 덧칠했다. 같이 벽돌을 나르고 그림을 그리는 사이 어색했던 외국인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다들 꿈도 크고 생각도 깊은 친구들이었다.
점심은 숙소로 돌아와서 해결했다. 음식은 숙소에 딸린 식당에 기거하는 요리사들이 만들어 주는데 짜파티Chapati, 달Dahl, 커리Curry 등 다양한 인도 전통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오후에는 독일인 친구가 알려준 풍선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7시 30분 저녁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맥간McLeod Ganj으로 장을 보러 갔다. 마침 한국 팀이 발표할 날이어서 저녁으로 닭볶음탕을 내놓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리 팀과 발표 팀을 나누어 발표를 준비했다. 발표는 전형적인 한국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누군가 한국에서 가져온 열쇠고리와 술잔을 상품으로 걸고 한글 퀴즈를 내기도 했다. 저녁 식사와 Daily Meeting까지 마치면 자유 시간인데 같이 영화를 보거나 사진을 구경하다 보면 금세 잘 시간이 됐다.
다람살라 캠프는 주제가 kids/culture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일하는 것 외에 달라이라마 사원이나 도서관 Library of Tibetan Works and Archives, 박물관 Tibet Museum 등을 견학할 기회도 많아서 티베트Tibet 문화를 배우고 그 정치적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Tibet Burning이라는 연쇄적인 분신자살이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조국의 독립을 부르짖는 것이다. 캠프 기간 중에도 티베트의 수도 라사Lasa에서 또 한 번의 Tibet Burning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마치 일제 강점기 한국의 상황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더군다나 티베트 사람들은 한국인과 굉장히 비슷하게 생겼고 먹는 음식도 비슷해서 더욱 동질감이 들었다.
주말에는 택시를 빌려 근처 관광지를 여행하거나 패러글라이딩을 갔다. 참가비에 포함되지 않은 거라서 개인이 부담해야 하지만 같이 가는 사람이 많으면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셋째 주에는 3박 4일 일정으로 트리운드 트래킹을 떠났다. 3박 4일 동안 세수만 겨우 하고 화장실OPEN Toilet을 찾느라 고생스러웠지만 매일 밤 이어지는 캠프파이어와 외국인 친구들과 쌓은 정 덕분에 트래킹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그런데 이게 뭐야, 내려오는 길에 보니 트리운드 트래킹은 당일치기 코스였던 것!
캠프가 끝나고 각자의 일정대로 길을 떠났다. 나는 캠프 전 2주간 인도 북부를 여행했고 캠프가 끝나면 곧 귀국할 일정이었는데, 대부분은 캠프 후에 여행 일정을 잡고 델리, 아그라, 바라나시를 같이 여행했다. 같이 갈 수 없어서 아쉬웠다. 뒤늦게 합류했지만 따뜻하게 우리를 챙겨주었던 친구들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다음에 또 워크캠프에 참가한다면 캠프가 끝나고 여행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 한국식으로 한국을 설명하다 >
다양한 국가에서 여러 참가자가 모인 만큼 자기 나라에 대한 소개는 워크캠프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 한국 팀은 닭볶음탕을 요리하고 남북관계, 한글에 대해 설명하기로 했다. 색지에 태극기를 그리고 큼지막한 글자를 빼곡히 적었다. 색지를 짚어가면서 강의하듯 발표했다. 상품을 건 퀴즈가 나오기 전까지 외국인 친구들이 지루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틀 뒤 프랑스 팀의 발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색지로 베레모와 바게트, 카망베르 치즈를 만들었다. 콧수염을 그리고 소젖을 짜는 시늉을 하며 연극을 했다. 대화 속에 프랑스 혁명, 에펠 탑, 루이비통Luis vuitton 같은 프랑스에 관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매우 흥미롭고 유익했던 발표였다. 발표, 하면 PPT와 빔프로젝터부터 떠올리게 하는 한국의 교육 방식을 안타까워하면서 창의성 제로였던 우리 팀의 발표를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 주에 있었던 독일 팀의 발표는 토크 쇼 방식이었다고 했다. 두 명의 독일인 친구가 대화하면서 인도인 리더를 게스트로 초대해서 독일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보지 못해 아쉽지만 그들의 창의력이 부럽기는 매한가지였다.
< 워크캠프, 나 자신을 위해서 >
캠프 중에도 느꼈지만, 단기 봉사활동은 수혜자들에게 궁극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참가자에게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신했다. 워크캠프의 경우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참가자들이 모이는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참가자가 더 큰 꿈을 꾸도록 이끈다. 평범하지 않은 그 친구들 덕분에 나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르완다에 가겠다는 내 꿈도 물론 그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리라. 각색의 인격체와 생활하고 일하면서 협동심도 길러졌다.
워크캠프의 또 다른 장점은 현지인과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도인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매일 먹고, 인도인 리더와 함께 생활했다. 그 덕분에 좀더 가까운 곳에서 인도인을 살펴보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봉사활동 단체를 통해 인도에 왔다면 주로 한식을 먹고 가장 한국적인 분위기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관광지 한번 둘러보고 돌아갔을 텐데..
더불어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안전부절 못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 인도에 다시 가게 된다면 여권만 들고 가겠다 >
인도 여행하면 가장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음식, 비위생적인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일 것이다. 솔직히 더럽다. 파리는 물론 씻었는지 알 수 없는 손으로 음식을 만든다. 더운 날씨지만 절대 냉장 보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단 한 번도 탈이 나지 않았다. 내가 특이할 만치 건강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위생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인도서 얻은 가장 큰 깨우침이 바로 ‘이렇게 더럽게 먹어도 괜찮구나’였다. 챙겨갔던 약은 애물단지가 되었다.
여행 중에는 주로 길거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종류도 다양하고 엄청 싸다. 식당에서 인도 정식, 탈리Thali를 먹어도 2,000~3,000원이면 충분하다. 가끔 짜거나 매운 음식이 있기도 하니까 주문 전에 어떤 음식인지 물어보자. 마살라 향이 거북한 사람은 인도 음식을 거의 못 먹는 경우가 있는데 다행히 내 감각기관은 마살라 향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과일은 저울에 달아서 판다. 청포도가 1kg에 1,500원 정도, 미친 듯이 먹었다. 외국에서 한국 음식을 찾는 꼴볼견은 되기 싫었지만 칠리의 매운맛과 고추장의 매운맛을 다르기 때문에 종종 한국 음식이 먹고 싶었다. 그럴 땐 튜브 고추장이 유용하다. 없다면 한국인 식당을 찾거나 슈퍼에서 신辛라면을 사먹으면 된다. 숟가락은 식당에서 준다. 하지만 손으로 먹어볼 것을 추천한다. 조물조물 손으로 비벼 먹는 카레는 또 새로운 맛이다.
나는 입고 빨기 편하게 등산복을 많이 챙겨갔다. 덕분에 바가지를 많이 썼다. 인도에 도착하면 2,000원짜리 티셔츠와 펑퍼짐한 바지부터 사입어라. 쓰레기와 분뇨를 잘 피해 다닐 자신이 있다면 쪼리도 추천한다. 인도 물가에 빠삭한 장기 여행자처럼 보여야 바가지를 덜 쓴다. 순면에 장인이 한땀 한땀 수놓은 옷은 저렴하고 편하고 의외로 예쁘다.
샴푸, 휴지, 수건 등 생필품도 싼값에 살 수 있다. 샴푸는 일회용 포장되어 7.5ml에 60원에 판다. 다국적기업의 유명한 제품이니까 믿고 써도 된다. 휴지 질이 안 좋다고 한국에서 두루마리 챙겨가는 분 있던데 그건 여행자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도 휴지도 쓸 만하다. 가격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수건 등 기타 생필품도 가게에서 다 살 수 있다. 한국에서 너무 많이 챙겨가면 무거울 뿐 아니라 인도에서만 파는 물건을 못 살 수가 있다. 짐은 최대한 가볍게 꾸리자. 나는 다시 인도에 가게 되면 여권만 들고 가겠다. 그만큼 간소하게 갈 것이다. 인도인과 가장 비슷한 모습으로 인도를 누비고 싶다.
아! 한국의 기념품은 꼭 챙겨가자.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을 알리기에 선물만 한 것이 없다.
다양한 국가에서 여러 참가자가 모인 만큼 자기 나라에 대한 소개는 워크캠프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 한국 팀은 닭볶음탕을 요리하고 남북관계, 한글에 대해 설명하기로 했다. 색지에 태극기를 그리고 큼지막한 글자를 빼곡히 적었다. 색지를 짚어가면서 강의하듯 발표했다. 상품을 건 퀴즈가 나오기 전까지 외국인 친구들이 지루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틀 뒤 프랑스 팀의 발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색지로 베레모와 바게트, 카망베르 치즈를 만들었다. 콧수염을 그리고 소젖을 짜는 시늉을 하며 연극을 했다. 대화 속에 프랑스 혁명, 에펠 탑, 루이비통Luis vuitton 같은 프랑스에 관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매우 흥미롭고 유익했던 발표였다. 발표, 하면 PPT와 빔프로젝터부터 떠올리게 하는 한국의 교육 방식을 안타까워하면서 창의성 제로였던 우리 팀의 발표를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 주에 있었던 독일 팀의 발표는 토크 쇼 방식이었다고 했다. 두 명의 독일인 친구가 대화하면서 인도인 리더를 게스트로 초대해서 독일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보지 못해 아쉽지만 그들의 창의력이 부럽기는 매한가지였다.
< 워크캠프, 나 자신을 위해서 >
캠프 중에도 느꼈지만, 단기 봉사활동은 수혜자들에게 궁극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참가자에게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신했다. 워크캠프의 경우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참가자들이 모이는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참가자가 더 큰 꿈을 꾸도록 이끈다. 평범하지 않은 그 친구들 덕분에 나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르완다에 가겠다는 내 꿈도 물론 그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리라. 각색의 인격체와 생활하고 일하면서 협동심도 길러졌다.
워크캠프의 또 다른 장점은 현지인과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도인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매일 먹고, 인도인 리더와 함께 생활했다. 그 덕분에 좀더 가까운 곳에서 인도인을 살펴보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봉사활동 단체를 통해 인도에 왔다면 주로 한식을 먹고 가장 한국적인 분위기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관광지 한번 둘러보고 돌아갔을 텐데..
더불어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안전부절 못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 인도에 다시 가게 된다면 여권만 들고 가겠다 >
인도 여행하면 가장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음식, 비위생적인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일 것이다. 솔직히 더럽다. 파리는 물론 씻었는지 알 수 없는 손으로 음식을 만든다. 더운 날씨지만 절대 냉장 보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단 한 번도 탈이 나지 않았다. 내가 특이할 만치 건강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위생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인도서 얻은 가장 큰 깨우침이 바로 ‘이렇게 더럽게 먹어도 괜찮구나’였다. 챙겨갔던 약은 애물단지가 되었다.
여행 중에는 주로 길거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종류도 다양하고 엄청 싸다. 식당에서 인도 정식, 탈리Thali를 먹어도 2,000~3,000원이면 충분하다. 가끔 짜거나 매운 음식이 있기도 하니까 주문 전에 어떤 음식인지 물어보자. 마살라 향이 거북한 사람은 인도 음식을 거의 못 먹는 경우가 있는데 다행히 내 감각기관은 마살라 향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과일은 저울에 달아서 판다. 청포도가 1kg에 1,500원 정도, 미친 듯이 먹었다. 외국에서 한국 음식을 찾는 꼴볼견은 되기 싫었지만 칠리의 매운맛과 고추장의 매운맛을 다르기 때문에 종종 한국 음식이 먹고 싶었다. 그럴 땐 튜브 고추장이 유용하다. 없다면 한국인 식당을 찾거나 슈퍼에서 신辛라면을 사먹으면 된다. 숟가락은 식당에서 준다. 하지만 손으로 먹어볼 것을 추천한다. 조물조물 손으로 비벼 먹는 카레는 또 새로운 맛이다.
나는 입고 빨기 편하게 등산복을 많이 챙겨갔다. 덕분에 바가지를 많이 썼다. 인도에 도착하면 2,000원짜리 티셔츠와 펑퍼짐한 바지부터 사입어라. 쓰레기와 분뇨를 잘 피해 다닐 자신이 있다면 쪼리도 추천한다. 인도 물가에 빠삭한 장기 여행자처럼 보여야 바가지를 덜 쓴다. 순면에 장인이 한땀 한땀 수놓은 옷은 저렴하고 편하고 의외로 예쁘다.
샴푸, 휴지, 수건 등 생필품도 싼값에 살 수 있다. 샴푸는 일회용 포장되어 7.5ml에 60원에 판다. 다국적기업의 유명한 제품이니까 믿고 써도 된다. 휴지 질이 안 좋다고 한국에서 두루마리 챙겨가는 분 있던데 그건 여행자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도 휴지도 쓸 만하다. 가격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수건 등 기타 생필품도 가게에서 다 살 수 있다. 한국에서 너무 많이 챙겨가면 무거울 뿐 아니라 인도에서만 파는 물건을 못 살 수가 있다. 짐은 최대한 가볍게 꾸리자. 나는 다시 인도에 가게 되면 여권만 들고 가겠다. 그만큼 간소하게 갈 것이다. 인도인과 가장 비슷한 모습으로 인도를 누비고 싶다.
아! 한국의 기념품은 꼭 챙겨가자.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을 알리기에 선물만 한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