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고아, 인도에서 만난 세계, 그리고 나

작성자 서준혁
인도 RC-25/12 · ENVI/ KIDS 2013. 02 goa, india

Go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유경험자인 친형과 나의 친구의 추천으로 가게 되었다.
그들은 또 다른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것이라고 하였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어린이들을 교육하고 서로의 문화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인도 남부의 고아주에서 실시되었는데, 숙소가 조금 열악하였다.
하지만 한달동안 인도여행을 한 뒤이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는 캠프리더 무케쉬와 한방을 썼다.
영국에서 온 아누시카와 칼, 프랑스에서 온 우리나라 나이로 60살 디디에
독일에서 온 호아, 체코에서 온 라댜 , 러시아에서 온 안나 그리고
나 홀로,,,동양인.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워크캠프에 참가하기전, 나는 한달동안 인도를 여행했다. 처음 일주일은 같이 간
친구와 동행했고, 그 다음부터는 나 혼자 다니면서 동행을 구하기도 하고
카우치 서핑등을 통해 숙소를 얻기도 했다. 나는 정말 국어를 사랑하는 한국인이기에
영어라고는 정말 밥먹고 잠잘 수 있는 수준밖에는 안되었다. 게다가 내 루트는 한국인들이많이 없는 루트라서, 밤에 혼자 잘때면 쓸쓸해지곤 했다.

네이버 워크캠프 카페에서 확인해보니 내가 참가하는 날 한국인 두명도 같이 온단다.
올커니 하고 드디어 한국인이다 ! 한국말 할 수 있다! 라고 생각했지만,
그곳엔 한국인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올 유럽사람에 모두 영어가 유창하고
나는 그저 허허 웃고 키작고 쎄까만 동양남자였다...
어째됐건 우리들의 첫 임무는 chidren's home 의 페인트 칠을 하는 것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영국에서 온 칼은 아티스트여서 능숙하게 이일을 해냈다. 나도 나름 건축학도이기에 열심히 하였다. 칼은 연신 조크를 쏟아냈고, 나는 정말 부러웠다. 나도 웃기고싶었지만, 영어를 못알아듣고 못했기에 샤이가이가 되고 말았다. 오전엔 페인트칠을 하고
오후엔 아이들을 가르친다. 아니 누가 누구를 가르친단 말인가? 인도아이들은 정말 똑똑하다. 힌디, 영어, 지역 방언까지 2~3개의 언어는 기본이었다. 나는 강남스타일로 아이들의 주의를 끈 다음 내 특기인 그림그리기로 아이들을 사로잡았다. 인도식 영어는 내가 더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래서 온화한 미소를 던져주며 이해하는척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하기도 몇일째, 나도 말을 할때가 왔다. 한국 남자들의 대표적 에피소드인 군대 이야기를 과장 섞어가며 손짓 발짓 표현해주었다. 역시 모두가 관심을 가진다. 군대에서 딴 태권도 1단을 보여주며 발차기 시험까지 보이니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하지만 그들의 세부적인 물음에 나는 또 역시 온화한 미소만 던질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넘어가니, 이제 대충 그들이 나의 말을 알아듣는다. 위로해주면서...
마이클이라는 childen's home 의 맏이는 연신 It's ok brother you can learn english slowly slowly 라 해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곳엔 7살짜리 부터 17살까지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정말이지 모두 너무 귀여워서 한국 얘기를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다같이 축구를 할 일이 생겼다. 말보다 발이라고 했던가?
갈고 닦았던 나의 축구 실력을 뽐냈다. 축구종가 영국의 칼도, 아트사커 프랑스의 60세 디디에도 붉은 악마인 나를 막지 못했다. 나는 닌자라는 칭호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누볐고, 그뒤로 아이들은 나에게 더욱 호기심을 가졌으나 역시 온화한 미소만을 날릴 뿐이었다.
캠프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나는 말보다 역시 마음이 통한다는걸(아주 어렵지만 가끔... ) 알게 되었다. 태극기의 의미가 뭐냐는 라댜의 질문에 나는 내가 아는 모든 단어를 총 동원해서 설명해주었고, 그녀는 격한 리엑션으로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아누시카는 동갑이었지만 마치 나를 아기 대하듯이 또박또박한 천천히 말해주었고(기분나쁘지 않았다) 디디에는 많은 해외출장 경험으로 우리들을 재미있게 해주었다. 캠프리더인 무케쉬는 2주동안 나와 함께 방을 썼는데, 짧은 영어이지만 서로 속깊은 이야기도 하고 농담도 주고 받으면서 정말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칼은 장난끼가 많아서 서로 욕도 가르쳐주면서 친해졌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다음날 아침인사로 욕을 해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나빳다. 나도 항상 했으니 손해본것은 아니다. 호아는 베트남계 독일인이라 내가 친근하게 생각했다. 20살인데도 3개국어를 해서 놀랐다. 러시아에서 온 안나는 정말 인형같이 생겼는데 나보다 큰 인형이었다. 그녀는 시크했다. 괜스래 주눅들어 친해지지 못했다.
캠프가 끝날때, 아이들은 우리를 위해 춤과 노래를 준비했다. 만나긴 우연히 만났지만 정말 인연이 되어서 헤어지기 힘들었다. 나중에 한국에 오면 재워준다고 했다. 그들은 부산이라는 도시를 모르지만,,, 캠프가 끝나고 나는 나홀로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하루 일찍 출발했다. 디디에는 나를 버스역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뭔가 아빠같기도 하고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별말 안했지만 괜히 뭉클해져서 데려다주고 난 다음에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렇게 따듯한 마음들을 가지고 나홀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워크캠프와 인도 여행을 통해서, 나는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나를 도와주고 아껴주었다. 잘 모르는데도 말이다.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는 논리적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직감적으로 무언가 얻은것은
확실하게 느꼈다. 한국과 다른 자연과 건축을 보고도 느꼈겠지만 제일 중요한건
사람이었다. 말은 안통해도 눈빛이나 행동으로 진심은 통하게 되어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다시 바쁜 현실에 치여살고있지만(바쁘다고 얼마나 바쁘겠냐만은...) 캠프중에 했던 메모나 다짐들을 보면 그때의 나로 다시 돌아가는것 같다!
그리고 영어공부도 자연스레 하게되고... 마음이 통하지만 말이 통하면 더욱 좋겠으니까

캠프에 가기전에 나는 막연히 두려웠다. 아마 대부분의 무경험자들이 그럴것인데
말못하고 눈만 꿈뻑꿈뻑하고 지냈던 나도 나중에는 친해져서 재밌게(나만?) 놀았다.
언어를 갖추고 가는것도 좋겠지만, 갔다와서 필요성을 느끼고 공부할수도 있는거니까...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가길 바란다. 말을 뛰어넘는 뭔가를 느낄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