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에서 거북이와 함께 성장하다

작성자 조현철
인도 FSL-SPL-130 · ENVI 2011. 01 인도 쿤다프르

Kundapur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0년도 태국 워크캠프를 바탕으로 나는 남은 대학생활을 어떻게하면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당연 해외 봉사활동을 한번 더 다녀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대학생활의 끝은 곧 입대와 같기 때문에(ROTC로 2011년도 3월에 임관을 함), 뭔가 뜻깊게 보내자는 나의 절박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럼 어디로 갈 것인가를 정하기에 앞서, 나의 머리 속에는 유럽의 멋진 풍경과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의 "인도"가 머리속에 자리잡았다. 거기서 드는 현실적인 나의 생각은 유럽은 복지가 잘 되어있고 교통 시설도 편리할 것이니 나이가 들어서 가도 별 문제가 없지 않을까?!
그래!! 당연하지, 그럼 인도로 가자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 않는가? 좀 더 젊었을때 이런 저런 고생을 해본 사람만이 더 많이 느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공감해 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하지 않고 인도로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맞는 날짜와 장소르 따지다 보니 인도 쿤다프르의 바다 거북이 지키미 프로젝트가 내 눈에 들어왔고 신청하게 되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 Sea Turtle's egg Protection project
바다 거북을 지키는 프로젝트라 이름은 거창한데 그에 반해 떠오르는 생각은 우리가 동물에 왕국에서 자주보는 어린 거북이들의 끝없는 행렬 하지만 그 속에는 갈매기와 꽃게 그 이외의 포식자들이 넘쳐나는 그래서 정작 거북이 중 1~2마리만 물가에 닿아서 무사히 빠져가나는 모습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다보니 내가 생각했던 거 이상으로 그런 자연적인 포식자 보다는 인간에 의해서 많은 양의 거북이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그에 따라서 SFL에서 하는 일은 어부들에게 찾아가서 홍보하기, 어부 자녀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담장에 이쁜 그림을 수 놓아주고 인형극 보여주기, 바다 거북 알이 있는 곳에 sea turtle information center 건설 등이 있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아니더라도 현지인도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긴하다. 하지만! 혹시 유명한 연예인이 나와서 이거 내가 언제 썼던 물건인데 사가실분 이렇게 한다면 그 효과는 일반인이 흥정을 하는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효과를 가지고 온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선 인도인들은 외국인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과 궁금함을 내포한 듯하다. 그래서 우리팀이 어디를 가든지 인도인의 시선속에 항상 잡혀서 있다. 그냥 길거리를 다니거나 다른 일을 할때는 엄청 불편하게 느껴지던 점이, 실제 우리가 홍보를 하고 인형극을 하는 동안은 그들의 관심을 200%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 이건 현지인이 하긴란 쉽지 않다. 연예인이 아닌 경우엔 더더욱이 말이다. 학교에서 하는 인형극은 대략 이런 내용의 연극이다.

아샤라는 어미 거북이 살고 있었어요. 아샤는 6마리의 새끼 거북을 보름달이 뜨던 날 낳고 바다로 돌아갔어요. 초등달이 되자 새끼 거북이들은 부화해서 바다로 나가요. 그 중 한 마리는 동네에 풀려있던 강아지에게 잡혀서 먹히고, 몇 마리는 부화도 채 되기 전에 어부의 손에 잡혀서 먹히게 되요. 그리고 그나마 살아서 바다에 들어온 거북이는 비닐 봉지를 해파리로 착각해서 먹고 죽게 되요. 이런 사실을 안 어미 거북이 아샤는 슬퍼서 엉엉엉 울게 되요. (이제부터 교육이 시작된다.)
다시 아샤는 보름달이 뜨던 어느날 밤 해변으로 나와서 알을 낳아요. 그 때 어부가 알을 가지러 왔을 때 SFL 직원이 그를 막으며 돌려보내요. 길 가에 풀려져 있는 강아지 역시도 SFL 직원에 의해서 제 집으로 찾아가요. 마지막으로 바다에 비닐 봉지는 절대 버리면 안되요!! 5마리의 새끼 거북이 무사히 도착하자 아샤는 너무 행복해 하고 새끼 거북이들과 함께 행복한 날을 보내요~

요약을 하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전부의 내용을 다 쓰게 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under the sea 노래로 마무리를 지면 우리의 연극 쑈는 끝나게 된다. 이렇듯 현 시점에서 어떤 일을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앞으로의 바다거북을 살리는 일은 자라날 어부들을 교육 시킴으로써 사전에 예방하게 되는 것이다. 바다 거북이 불로장생의 동물이라는 건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인도에서도 역시 통하는 가 보다. 어부들이 바다 거북의 알을 잡아 먹는 이유라고 하니 말이다. 이러한 점 역시도 교육을 통해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고쳐준다. 우리가 했던 일들은 당장은 빛을 발할 순 없지만 그 어린 친구들의 생각 속에 작은 씨앗으로 자리 잡아 더 커서 어부가 되었을 때 우리의 인형극이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임을 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절!대!로!

□ 우리 쿤다프르 형제들
나와 처음 조우하게 된 팀 멤버는 독일에서 온 마누엘라, 우리의 미팅 포인트는 쿤타푸르 호텔 앞이었다. 난 하루 전에 미리 도착해서 쿤다푸르 호텔에서 하루 숙박을 하고 아주 개운한 상태로 우리의 미팅 멤버들을 기다렸다. 처음 그 자리에 온 이는 하얀 피부의 작은 키를 지닌 마누엘라 였다. 다들 아시겠지만 그 인도 시골 마을에 자기 키만한 짐을 메고 이리 저리 헤매이는 사람은 분명 워크캠프 멤버다. 이는 워크캠프 도움 책자에도 나와있는 난 자연스레 are you work-camp camper? 이라고 물어봤고 너무나 환한 얼굴로 맞다고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를 나눴다. 오게된 여정을 들어보니 밤새 버스를 타고 이 곳에 도착했다고 하니 너무나 안쓰러워서 내 방에서 씻고 잠시 누워서 그간의 피로를 풀게 했다. 나도 그 전까지 그렇게 왔으니 그 피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누엘라는 나의 캠프 중에 나의 영어 선생님으로 나에게 많은 지도를 해줬다. 내가 모르는 단어를 물어보면 대답해주고, 작은 체구와는 다르게 워크캠프도 벌써 3번째라는 그 친구는 그 어떤 럭셔리한 여행보다는 큰 배낭을 메고 체크 난방과 카고 바지를 입고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여행 배낭족 이다.
세바스찬, 나의 워크캠프 여정 뒤에도 함피 투어까지 함께 동행한 나의 프랑스 친구. 나보다 2살 형이지만 너무나 잘 통했고 서로 짧은 영어임에도 불구하고 먹고 자고 같이 놀러가는데 전혀 부족할 것이 없던 나의 여행 소울 메이트. 수영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자기의 평생 소원이 있다면 자신의 폐를 물고기의 허파로 바꾸는 거란다. 만약 그런 프로젝트가 실제로 벌어진다면 그 곳의 첫 번째 지원자는 자신이 될거라고 이야기 하는 친구.
나오키 야마다, 일본에서 출발해 이미 8개월간 수 많은 나라를 거치고 마지막 여행지로 인도로 오게 된 끓는 피 21살의 일본인 친구. 주말간 고아를 여행하며 기차에서 수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자신이 여행을 출발 하기 전까지는 영어를 전혀 못 썼다는 것! 나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산전 수전을 다 겪은 너무나도 유창한 그의 영어 실력에 어느 외국인을 만나고 주눅듬이 없는 그의 모습에 난 감탄 또 감탄을. 그의 노트북을 통해서 그가 8개월간 진행한 각 나라 워크캠프를 둘러 보았다. 아프리카, 포루투갈, 유럽의 어느 국가에서의 그의 그런 다양한 경험들, 당연 그 경험들을 통해서 그가 가지고 있을 수 많은 생각들이 난 너무나도 부러웠고, 나의 전역후 계획에 많은 영향을 끼친 친구다.
리사, 내가 생각하는 독일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한, 키가 큰 독일 아이였는데 나이는 19살로 단지 키만 컸지 너무나도 순수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그런 친구 였다. 우리와는 달리 이미 리사는 SFL에서 단기 인턴으로 일을 하는 중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태권도라는 가방을 메고 있어서 이야기 트기가 매우 쉬웠는데, 내가 생각했던 뭔가 서양 깍쟁이 느낌이 아니라 말을 한마디 해도 상대방의 기분과 상대방이 들었을 때의 감정까지 고려해서 말을 하는 그런 친구다. 또한 우리가 마지막에 헤어지게 되는 순간, 다른 그룹과는 달리 이 그룹은 너무나 행복한 경험이었고, 좋은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보내기가 싫다고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한 사람 한사람을 배웅 해준 친구. 여전히 그 친구의 따뜻한 미소와 배려가 생각난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 어미 거북과의 짧지만 의미있는 동행
당연히 특별한 이벤트라면 정말로 거북이를 만났다는 사실이다. 막상 sea turtle's agg protect 라고 하는데 ㅜㅜ 우리가 하는건 인형극과 항구에 가서 홍보하는게 다였으니;;
아침에 일어나서 일터로 나가려고 준비하는 도중에 우리 리더인 다이아 에게 전화가 왔다.내용인 즉슨 어부 왈 "우리가 거북이를 잡았는데 보호하고 있으니 데리고 가 달라" 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우리는 다른일 다 제쳐 두고 어서 거북이를 구하러 달려갔다. 바다 인근에 있는 대나무로 만든 집 마당에 거북이가 배를 위로 한채 바둥 바둥 거리고 있는 모습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이나 컸고, 처음 접하는 순간,, 내가 무슨 일을 해야하는 거지 라는 생각뿐, 우리 캠프리더인 다이야는 어부에게 사례금으로 돈을 주고 우리는 거북이를 인근 바다에 놓아주기 위해 차에 태웠다. 이 순간이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바다 거북의 나이는 대략 70~80세 정도 된 어미 거북이었고 또한 몸 무게는 못해도 100kg 이상은 나갈 정도로 장정 4명이 들었는데도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힘은 무척이나 쌔서 조그마한 앞 다리로 날 자꾸 때리는데 ㅜㅜㅜㅜㅜㅜ 인도 학교에서 뛰놀다 생긴 무릎 상처를 ㅜ 자꾸 때려서 피가 줄줄줄 났다. 여자저차 해서 거북이를 바다 한 가운데 놨는데 너무 장기간 야외로 나와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우리의 노력에 감동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더니 파도에 휩쓸려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난 뒤라도 한번 돌아볼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럭셔리 버스
마이소르 스나바라벨라골라 까지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갑자기 한국에서 듣던 원모어찬스의 노래 럭셔리 버스가 생각났다. 잠시 이 자리를 들어 가사를 설명하자면

♬ 찌는 듯한 어느 여름 남인도에서
내가 애써 예약해 놓은 멋진 럭셔리 버스
하지만 그곳에 갔을 때 내가 만난건
사람 염소 닭이 같이타는 낡아빠지 시내버스
나의 황당한 표정 화가난 모습 뒤로
어느 인도 할머니는 돈이 없어 내려야 했어
누군가에게 실망스런 일이
누군가에겐 럭셔리함
그래 내가 탄 버스 럭셔리 버스 맞았어 .....
럭셔리 버스~~~ ♬

정말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쓰지 않을 그런 고물 버스에 의자는 왜이리도 딱딱한지 패스트 푸드 점에선 손님이 계속 계속 앉아있으면 장사가 안되니까 딱딱한 의자를 쓴다고 하는데 이 버스도 동일한 개념의 영업방식을 적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그리고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나의 경험중에 8할은 날 당황스럽게 하고 날 황당하게 했던 경험들이다. 좋았던 기억들은 어느새 나의 안좋은 기억력 속 블랙홀로 다 빨려들어가 있고, 나의 황당했던 기억들만 남아 무용담으로 나의 친구들에게 이야기 해주는 꼴이 된다. 어쩌면 지금은 몹시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힘든 일이 있더라도 꾸욱 참으며 한발 한발 더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래 내가 탄 버스는 럭셔리 버스 맞았어~ 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