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잊지 못할 나의 오로라
Christmas Photo Marathon in Reykjavík (1: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가 아니었다면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을 나라, 아이슬란드. 제대로 들어본 적도,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워크캠프에 참가할 마음을 먹자마자 신청해버리고 그제서야 아이슬란드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했다. 오로라와 빙산을 볼 수 있는,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아이슬란드는 내게 새로운 경험이자 많은 친구를 만나게 해준 곳으로 살면서 잊을 수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가족들과 함께 가는 여행을 제외하곤 외국에 오래 체류해본 경험이 전무한 나로써는 혼자서 유럽으로, 그것도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떠나는 것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다른 한국인 참가자들이 근처 아일랜드나 영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다가 아이슬란드로 오는 것과는 다르게 나는 한국에서부터 아이슬란드로 가야 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그 여정의 길이나 무게가 그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진짜 사회’로 뛰어들기 전,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자 했고 많은 기대를 가지고 아이슬란드로 떠나게 되었다.
아이슬란드는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수도라는 레이카빅도 서울에 비하면 정말 작은 도시였다. 이국적인 풍경이었지만 이내 곧 나를 설레게 만드는 곳은 아니게 되었다.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대신, 날마다 하는 새로운 프로그램들, 크리스마스 포토 마라톤 행사를 위해 진행됐던 사진 수업들, 적십자를 도와 현지인들에게 기부를 받으러 다녔던 일들, 즉, 매일 벌어지는 새로운 일들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들을 함께 하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로 인해 아이슬란드 캠프 생활이 더욱더 즐거워 졌다. 우리는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 온 몸을 쓰며 의사소통 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했다. 그 결과, 만난 지 하루 만에 같이 음식을 만들고, 만난 지 3일 만에 같이 술을 마셨으며,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같이 여행을 떠났다. 처음엔 단순히 안부를 묻고 각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만 하다가 그 2주 사이에 우린 서로의 사랑, 우정, 삶 그리고 느끼고 있는 여러 감정들에 대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2주는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내고 보니 2주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우리는 한정된 2주를 보다 값지게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봉사하고, 놀고, 즐기고 먹었다. 우리의 캠프활동을 보다 농도 짙게 할 수 있었던 건 참가한 모든 멤버들의 열려있는 마음과 적극적인 활동 덕분이었으리라.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적십자를 도와 핫초코를 현지인들에게 나눠주던 일이다. 길거리에 가판대를 만들고 서서 무료로 핫초코를 나눠주고 원하는 만큼의 기부금을 모으는 일이었다. 내가 자리를 잡고 서 있었던 곳은 마침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던 광장 안이었다. 화려한 일루미네이션이 장식된 트리와 산타 복장의 할아버지가 만들어 내는 크리스마스 분위기 속에서 삼삼오오 나들이를 나온 모든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호의적인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다가와 이야기를 하고 기부를 했고 우리는 바쁘게 핫초코를 나눠주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즐겁게 봉사할 수 있었다. 아마 레이카빅에 있으면서 현지인과 가장 많이 접촉한 시기를 묻는다면 바로 이 봉사활동 시기였을 것이다.
2주가 거의 끝나가고 인터내셔널 데이와 사진 전시회를 앞둔 21일 나는 레이카빅을 떠나야만 했다. 비행기 예약을 실수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남들보다 하루 먼저 다른 곳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워크캠프의 묘미라며 모두가 추천했던 인터내셔널 데이를 경험하지 못한 것도 슬프지만 나는 지난 2주 간 공부해 완성해 낸 사진 전시회를 보지 못하고 떠난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까웠다. 가장 추웠던 12월 21일, 나는 모두의 배웅 속에서 레이카빅을 떠났고 비행기를 타고 멀어지는 아이슬란드를 내려다 보며 내가 친구들에게 몰래 쓰고 나온 편지를 생각했다. 비록 평생을 살면서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친구들이지만, 그들과의 2주는 나에게로 하여금 보다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분명한 것은 워크캠프를 통해 아이슬란드에 간 것, 새로운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 2주 동안 정신 없이 무엇인가를 이룩해 낸 것, 어느 것 하나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는 사실이다.
가족들과 함께 가는 여행을 제외하곤 외국에 오래 체류해본 경험이 전무한 나로써는 혼자서 유럽으로, 그것도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떠나는 것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다른 한국인 참가자들이 근처 아일랜드나 영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다가 아이슬란드로 오는 것과는 다르게 나는 한국에서부터 아이슬란드로 가야 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그 여정의 길이나 무게가 그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진짜 사회’로 뛰어들기 전,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자 했고 많은 기대를 가지고 아이슬란드로 떠나게 되었다.
아이슬란드는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수도라는 레이카빅도 서울에 비하면 정말 작은 도시였다. 이국적인 풍경이었지만 이내 곧 나를 설레게 만드는 곳은 아니게 되었다.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대신, 날마다 하는 새로운 프로그램들, 크리스마스 포토 마라톤 행사를 위해 진행됐던 사진 수업들, 적십자를 도와 현지인들에게 기부를 받으러 다녔던 일들, 즉, 매일 벌어지는 새로운 일들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들을 함께 하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로 인해 아이슬란드 캠프 생활이 더욱더 즐거워 졌다. 우리는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 온 몸을 쓰며 의사소통 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했다. 그 결과, 만난 지 하루 만에 같이 음식을 만들고, 만난 지 3일 만에 같이 술을 마셨으며,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같이 여행을 떠났다. 처음엔 단순히 안부를 묻고 각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만 하다가 그 2주 사이에 우린 서로의 사랑, 우정, 삶 그리고 느끼고 있는 여러 감정들에 대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2주는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내고 보니 2주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우리는 한정된 2주를 보다 값지게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봉사하고, 놀고, 즐기고 먹었다. 우리의 캠프활동을 보다 농도 짙게 할 수 있었던 건 참가한 모든 멤버들의 열려있는 마음과 적극적인 활동 덕분이었으리라.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적십자를 도와 핫초코를 현지인들에게 나눠주던 일이다. 길거리에 가판대를 만들고 서서 무료로 핫초코를 나눠주고 원하는 만큼의 기부금을 모으는 일이었다. 내가 자리를 잡고 서 있었던 곳은 마침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던 광장 안이었다. 화려한 일루미네이션이 장식된 트리와 산타 복장의 할아버지가 만들어 내는 크리스마스 분위기 속에서 삼삼오오 나들이를 나온 모든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호의적인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다가와 이야기를 하고 기부를 했고 우리는 바쁘게 핫초코를 나눠주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즐겁게 봉사할 수 있었다. 아마 레이카빅에 있으면서 현지인과 가장 많이 접촉한 시기를 묻는다면 바로 이 봉사활동 시기였을 것이다.
2주가 거의 끝나가고 인터내셔널 데이와 사진 전시회를 앞둔 21일 나는 레이카빅을 떠나야만 했다. 비행기 예약을 실수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남들보다 하루 먼저 다른 곳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워크캠프의 묘미라며 모두가 추천했던 인터내셔널 데이를 경험하지 못한 것도 슬프지만 나는 지난 2주 간 공부해 완성해 낸 사진 전시회를 보지 못하고 떠난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까웠다. 가장 추웠던 12월 21일, 나는 모두의 배웅 속에서 레이카빅을 떠났고 비행기를 타고 멀어지는 아이슬란드를 내려다 보며 내가 친구들에게 몰래 쓰고 나온 편지를 생각했다. 비록 평생을 살면서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친구들이지만, 그들과의 2주는 나에게로 하여금 보다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분명한 것은 워크캠프를 통해 아이슬란드에 간 것, 새로운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 2주 동안 정신 없이 무엇인가를 이룩해 낸 것, 어느 것 하나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