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태국 오지에서 만난 따뜻한 마음들
Kuan Mai Bong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말만 번드르르한 인턴생활을 하면서 많은 회의감이 들었다. 이게 내가 원하는건가, 정말 이대로 가도 괜찮은건가 걱정도 되고 두려움도 커지는 상황 속에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다. 워크캠프가 나에게는 일종의 탈출구였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라는 자기만족을 줄 수 있는 매개체로 여겨졌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내가 워크캠프를 가기 전에 풍월로 들었던 바에 의하면, '주5일 정도 그것도 오전중이나 오후중에 네다섯시간 일하고 토일요일에는 함께 참가한 친구들과 함께 주변 지역 여행도 다니면서 우정을 쌓는'이었다. 풍월에 들었던 바에 의하면 나의 첫 워크캠프는 정말 빡세고 독했다.
내가 갔던 곳은 태국인 부부와 DARRA(아마 이 단체명이 맞을 듯..)라고 하는 비정부기구가 연합해 태국 남부도시 나컨시탐마랏에서도 오지(..정말 오지였다)에서 일종의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곳이었으며 자급자족적인 삶을 추구하는 곳이었다. 2년 전부터 맨땅에 맨 땅에 학교 하나, 숙소 하나, 단계적으로 규모를 확장해 가고 있는 곳으로 그만큼 봉사자들도 많은 편이었다. 2주 단기로 간 봉사자들은 우선 나를 포함해 한국인 한 명과, 태국인 한 명이 있었고 최소 3달에서 6개월 이상 장기적으로 봉사를 하고 있는 이들도 유럽인, 태국인을 포함해 여럿이었으며, 현지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품앗이를 하는 편이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평일(월~금)에는 학교 주변을 중심으로 화장실 만들기, 화단 만들기 등의 시설 정비와 자급자족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바나나 나무 심기, 모닝글로리 심기, 밭 정리 등의 노동력을 굉장히 많이 필요로 하는 활동들이 주를 이루었다. 반면 주말(토,일)에는 현지 아이들과 함께하는 대안학교를 진행했다. 9:00시부터 15:00시까지 봉사자들은 조를 나누어 영어교육, 문화교류(우리 한국인 두 명은 태극기 그리는 법과 한글로 이름 쓰기 등을 알려주었다^^;), 자연과 교감하는 체험활동 등을 진행했다. 프로그램이 미리 짜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주 동안 회의를 통해 어떤 식으로 진행하면 좋을지 각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각 봉사자들은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안을 내놓는 식이었다.
내가 갔던 곳은 태국인 부부와 DARRA(아마 이 단체명이 맞을 듯..)라고 하는 비정부기구가 연합해 태국 남부도시 나컨시탐마랏에서도 오지(..정말 오지였다)에서 일종의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곳이었으며 자급자족적인 삶을 추구하는 곳이었다. 2년 전부터 맨땅에 맨 땅에 학교 하나, 숙소 하나, 단계적으로 규모를 확장해 가고 있는 곳으로 그만큼 봉사자들도 많은 편이었다. 2주 단기로 간 봉사자들은 우선 나를 포함해 한국인 한 명과, 태국인 한 명이 있었고 최소 3달에서 6개월 이상 장기적으로 봉사를 하고 있는 이들도 유럽인, 태국인을 포함해 여럿이었으며, 현지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품앗이를 하는 편이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평일(월~금)에는 학교 주변을 중심으로 화장실 만들기, 화단 만들기 등의 시설 정비와 자급자족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바나나 나무 심기, 모닝글로리 심기, 밭 정리 등의 노동력을 굉장히 많이 필요로 하는 활동들이 주를 이루었다. 반면 주말(토,일)에는 현지 아이들과 함께하는 대안학교를 진행했다. 9:00시부터 15:00시까지 봉사자들은 조를 나누어 영어교육, 문화교류(우리 한국인 두 명은 태극기 그리는 법과 한글로 이름 쓰기 등을 알려주었다^^;), 자연과 교감하는 체험활동 등을 진행했다. 프로그램이 미리 짜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주 동안 회의를 통해 어떤 식으로 진행하면 좋을지 각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각 봉사자들은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안을 내놓는 식이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현지 주민들은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영어단어로도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를 보면 항상 웃어주었고,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더 나누고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말이 통해도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던 곳에서 지내던 나에게는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하는 사람들과 지내는 일은 좋았다. 또 나의 체력적 한계를 경험하고 무너지는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도 아마 한국에서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이 주간의 짧은 워크캠프가 나의 가치관이나 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짓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막상 2주 동안 지내는 동안은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반 농담, 반 진담처럼 읊조리고 다녔다. 그렇지만 돌아온 지금은 그리운 마음도 아쉬움도 크다. 나는 그 곳에서 한국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새로운 경험들을 했다. 나에게 워크캠프의 의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당장 이 주간의 짧은 워크캠프가 나의 가치관이나 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짓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막상 2주 동안 지내는 동안은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반 농담, 반 진담처럼 읊조리고 다녔다. 그렇지만 돌아온 지금은 그리운 마음도 아쉬움도 크다. 나는 그 곳에서 한국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새로운 경험들을 했다. 나에게 워크캠프의 의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