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꿈결처럼 스쳐간, 화성에서의 열흘
FINDING HOPE WITH LOCA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어느덧 캠프가 끝난지도 두달이 다 되어간다. 캠프의 마지막날 밤, 촛불을 앞에두고 눈물을 흘리며 이 열흘이 점점 잊혀져 갈 것이 두렵다고 고백했던게 기억난다. 아니나 다를까 매순간이 기억나지도 않고 하룻밤의 꿈처럼 내게 남아 버렸지만 그날의 추억은 내 삶에 가장 신선한 경험이었고, 아직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첫날, 지현언니랑 용운오빠랑 전에 만들어두었던 웰컴보드를 들고 외국인 친구들을 한명한명 맞이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친해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외국인친구들끼리 능통한 영어로 더 잘 대화나누고, 외국인 친구들 이름 외우기도 힘들었는데 마을회관 도착하고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이 지난 뒤로 다같이 잘 어울려 놀았다. 아마 열흘중에서 둘째날이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날이었던 것 같다. 낯선 잠자리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요리팀이라서 오전에 풀뽑다가 장보러 갔다가 부랴부랴 점심을 준비하고, 마을회관 청소하고나서 일터로 다시 나가 냄새가 고약했던 냉장고를 닦고, 돌아와서 저녁준비하고. 이날은 마치 내가 여기서 일주일은 이미 보낸 것 같은 기분을 느꼈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매일매일이 LTE처럼 빨리 지나갔다. 아침마다 먹던 씨리얼, 낮에 일하고 돌아와서 다양한 나라 음식 맛보고, 또 일하고 저녁시간에 카드놀이하고 장기 가르쳐주고 서로 각 나라의 문화 공유하고, 미팅타임 갖고, 차가운 물에 샤워하던 것과 해가 뜨는지도 모르고 서로 대화 나누던 나날들. 셋째날 밤은 새벽 세시반에 한일 축구전이 있던 날이었다. 한국인들이랑 일본을 응원하는 멕시코친구랑 야식만들어놓고, 휴대폰 DMB켜두고 옹기종이 모여서 응원했다. 한국이 이겨서 다른 친구들 다 자는데, 주변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도 주무실텐데 소리지르고 즐겁게 응원하고 잠들었었다. 처음 사흘간은 할머니댁들 다니면서 짐옮겨드리고 대화나누고 앞에서 노래부르고 춤추면서 재롱떨어드렸다. 셋째날 갔던 할머니댁에서 처음 울었던 것 같다. 할머니께서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계속 눈물을 흘리셨는데, 할머니의 굽은 등과 쪼글쪼글해진 피부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마을 임원 할아버지들께서 점심도 사주시고 한 일은 힘들지 않고, 큰 일이 아니었는데 그 이상으로 좋은 대접해주셔서 감사했다. 주말동안은 다음주에 있을 어린이캠프를 준비했다. 러시아어 전공인지라 러시아 친구와 파트너가 되고 싶었는데 정말 행운이게도 같은 팀이 되어서 함께 러시아 소개를 준비하며 잘 맞지 않는 부분들 때문에 힘도 들었지만 더 가까워 질 수 있어서 좋았다. 친구는 나에게 러시아에 대해서 많이 전해 주었고, 러시아 물건들을 선물로 많이 주었다. 어린이 캠프 때는 반쪽 부모님과 생활하거나 맞벌이 부모님을 두었거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생활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부모님이 이혼얘기를 하셨다고 아무렇지 않게 대화나누거나 지나치게 스킨십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이유없이 펑펑 울던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 중에서 유독 작던 여자아이 은영이가 있었는데, 많은 아이들 중에서도 은영이를 가장 많이 챙겨주었었는데 아직도 은영이가 많이 생각났다. 길을 지나다가도 은영이 또래 아이들을 보면 은영이가 생각나서 눈시울이 붉어지고는 한다. 마지막날에는 두리반이라는 사회적기업에 가서 빵을 만들었다. 이전에 워크샵에서 사회적기업에대해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설명해 줄줄 알아야 한다고 하셔서 미리 공부해갔었던 것이 큰 도움이되었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설명해 주고 더 즐겁게 보람 있게 빵을 만들고 집집마다 배달갔다.
봉사 일이 많이 힘들지 않았고, 굳이 지원이 필요없을 것 같은데도 도움을 드렸던 집을 보면서 더 열악한 분들을 도와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리더오빠가 이런 문제도 사실 조금 있다고 얘기해주었는데, 이런 부분의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또한 외국인친구들과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 정말 많이 교류하고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열흘을 보냈고, 다 함께 정말 가족으로서 많은 사건들 속에서 재밌게 보냈다. 캠프가 끝난 뒤에서 사흘간 캐나다 친구와 러시아 친구랑 우리집에서도 지내고 서울 구경 시켜주면서 한국에대해서 내가 더 많이 알아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 8월 말, 프랑스 친구가 한국을 떠난 것을 마지막으로 내 8월은 워크캠프 친구들로 가득했던 나날들이었다.
봉사 일이 많이 힘들지 않았고, 굳이 지원이 필요없을 것 같은데도 도움을 드렸던 집을 보면서 더 열악한 분들을 도와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리더오빠가 이런 문제도 사실 조금 있다고 얘기해주었는데, 이런 부분의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또한 외국인친구들과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 정말 많이 교류하고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열흘을 보냈고, 다 함께 정말 가족으로서 많은 사건들 속에서 재밌게 보냈다. 캠프가 끝난 뒤에서 사흘간 캐나다 친구와 러시아 친구랑 우리집에서도 지내고 서울 구경 시켜주면서 한국에대해서 내가 더 많이 알아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 8월 말, 프랑스 친구가 한국을 떠난 것을 마지막으로 내 8월은 워크캠프 친구들로 가득했던 나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