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판교에서 시작된 특별한 만남, 12일간의 우정
WITH YOUTH POWER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2년 8월 31일 무척이나 뜨겁고 습했던 그날, 나의 워크캠프는 시작되었다. 경기도 판교, 경기도 산본에 사는 나로서는 그다지 낮설지도 않은, 먼 거리도 아니였지만 평소에 다가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외국인들과 11박12일이라는 짧고도 긴 여정을 보낸다는 생각과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봉사활동을 임한다는 부푼 각오에 두려움없이 그저 설렙고 즐거운 출발이 되었다. 판교청소년수련관과 가장 근접하게 있는 이매역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 캠퍼들은 2시에 미팅포인트를 잡았다. 일찍 간다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던 나였지만 ‘길치’라는 고질병 때문에 거의 정각에 맞춰서 갈 수 있었다. 이미 캠프리더2명과 한국캠퍼들을 포함한 낯선 외국인들이 몇 명 보였다. 낯가림이 심하고 내성적인 나로서는 용기를 내서 먼저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내밀었던 멏쩍은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모로코와 프랑스에서 각각 1명이 더 와야했지만 사정이 있었는지 한국땅을 밟지 않은 그 2명을 제외한 우리들은 인도네시아, 스페인, 홍콩, 캐나다, 그리고 한국, 이렇게 5개국 총원 14명의 캠퍼들이 한자리에 집결해 있었다. 드디어 봉사활동, 숙식, 모든 교류를 해야하는 판교청소년수련관을 이동하여 운명적인 첫날이 시작되었다. 첫날은 각자의 자기소개, 판교수련관의 관리자분들의 환영인사, 몇가지의 게임으로 서로의 어색함을 지우고 친밀함을 도모했다. 하루 이틀이 이렇게 후딱 지나가고 드디어 몸으로 직접 뛰는 봉사활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서로간에 너무나 친해져버린 우리들은 서로 뭉치고 화합하여 봉사활동을 할 준비는 끝났다. 봉사활동의 내용은 어린학생들에게 생태학습을 위하여 데크를 작업 및 설치, 그리고 페인트까지 칠해야 임무가 종료되는 미션이었다. 선생님 두분과 같이 작업을 시작하였지만 설명으로서는 쉬웠던 것이 막상 뚜껑을 까보니 무척이나 정교하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나와 항상 같이 다녔던 스페인의 파블로와 캐나다의 앤드류는 언제나 얼렁뚱땅하고 조금은 기이한 작업태도로 인해 선생님들께 호통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 광경을 보자니 안쓰럽기도 하였지만 한국말을 이해못하는 그들이 언제나 나에게 걱정반 농담반으로 ‘저 분이 무슨 말을 했냐’라고 물어보는 때는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였다. 나에게 있어 오전7시30분에 작업을 시작하여 오후 7시 종료될때까지 버틸수 있었던 원동력은 야참을 빼뜨릴 수 없었다. 파전과 막걸리가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 맛은 평소 호프집이나 주막에서 먹던 맛이 아닌, 형용할수 없는 달콤한 이슬과도 같은 맛이였다. 인도네시아 친구2명은 이슬람이라는 종교관으로 일절 술과 돼지고기에 손에 대지 않아서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미안하고 안되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의 문화적, 종교적관점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마음조차 생기게 되었다. 드디어 4일차만에 우리의 데크작업과정 끝을 향해가고 있었고 페인트까지 이뿌게 형용색색으로 꾸민 후 코팅까지 하니 어느새 작업은 완료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니 정말 뿌듯하였고 이것을 정말 내가 한 것이라 생각하니 믿기지 않았고 선생님들 또한 우리들의 실력이 전문가못지 않다고 칭찬이 잦으셨다. 특히나 우리의 흔적과 우정을 남기기 위해서 데크에 서로의 이름과 기간을 붓으로 고이 써 놨는데 언젠가 그곳에 다시 올때쯤 나의 이름이 아직도 간직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마치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거룩한 흔적내지 징표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우리의 메인활동인 데크작업이 끝이 나고 선생님들이 사주시는 감자탕 뒷풀이 파티가 있었다. 모두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식과 소주를 한잔씩 기울이며 건배제의를 외치는데 취기가 올라왔는지 곧잘 그들도 우리들을 흉내내더니 서툰 한국말로 “건배”, “한잔 합시다”라고 하면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그들에게 소주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쓰고 독한 술이였으나 한국음식에는 너무 잘 어울린다며 자기 고국으로 몇병 사갖고 들어간다고 하였다. 일주가 금새 지나고 우리는 주말을 맞이하였다. 주말엔 우리들만의 자유시간이였으므로 우리들만의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투표를 한결과 ‘놀이공원’. ‘가평의 계곡’, ‘한강의 난지캠핑장’등 많은 여행지가 후보지로 선정되었지만 한국의 문화를 보고싶어하고 탐방하고 싶은 외국인 친구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우리는 ‘1박2일의 서울여행’이라는 모티브로 무작정 서울의 인사동부터 먼저 가게 되었다. 날씨가 무척이나 무더웠기 때문에 길거리 한복판에서 그들을 이끌고 소개해주고 설명해주는 것이 힘들긴 하였지만 내가 직접 가이드가 되어 짧은 지식이나마 아르켜줄수 있다는 생각에 나름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정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인사동에서 몇시간의 관광후에 유명한 일식집에서 한식을 먹고 다음으로 간곳은 청계천, 종로 중심가의 노래방, 종각 광장시장의 먹거리 촌 등등 쉴새없이 서울 한복판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하룻밤은 외국인들이 꼭 가보고 싶다는 찜질방…. 용산에 위치한 ‘드래곤 찜질방’을 갔었는데 한국에서 제일 크다고만 들었지, 실제로 가보니 10층이라는 찜질방 규모는 한국인인 나조차 입을 다물지 못했고 꼭 한번 여자친구손을 잡고 다시 올 것이라며 다짐하였다. 다음날은 남대문, 명동등을 갔다가 우리의 휴가는 끝이 나게 되었다. 좀 더 체계적으로 계획을 잡고 갔더라면 더 재밌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였다. 다시 우리의 보금터이자 봉사활동의 메인무대인 판교청소년수련관으로 돌아와 피로감에 쌓에 내일 있을 초등학교친구들과 더불어하는 ‘4개국의 요리경연’이라는 봉사활동을 앞두고 수면을 취하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너무 분주하였다. 모두가 자기나라의 정통음식을 만들기위해서 갖가지 식재품을 사러 부랴부랴 나갔고 식기구와 필요한 조미료등을 챙기기위해서 정신없이 뛰어 다녔다. 나는 최고 말썽꾸러기인 스페인의 파블로와 아이노아, 그리고 캐나다의 앤드류와 짝을 이루어 통역을 해주고 도움을 주는 서포터 역할을 하였는데, 첫날은 그들의 음식이 제대로 완성도 안되고 초등학교친구들이 말을 너무 듣지 않아 약간은 짜증도 나고 힘들었지만 4일차까지 계속되는 과정속에서 요리실력과 결과물들은 빛을 보게 되었고 아이들과도 약간의 인내심을 갖고 친화력을 쌓는데에도 성공아닌 성공을 하게 되었다. 어느새 우리의 11박이라는 여정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서로가 서로의 추억과 좋은경험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핸드프린팅 롤링페이퍼등으로, 물론 좋지만 뒤로 미루고 싶은 작업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만남을 처음이자 끝이아닌 현재진행형으로 벌써부터 서로간의, 서로간의가 아닌 모두의 약속으로 위로하고 있었다….마지막날의 밤은 그야말로 광날의 밤이였다. 맥주며 소주 양주, 그리고 막걸리까지 잔뜩 사와서 우리만의 침실인 대강당에서 끊임없이 수다를 벌이며 음악을 틀어놓고 춤까지 추었다. 정말 다음날 아침은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아침은 다시 찾아오게 되는 법,,,,,마지막아침 마지막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각자가 서로 이별의 인사를 건네었다… 그 시간은 1시간도 넘었던 것 같다…..물론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에 조금 더 체류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다 같이 한 번 더 모이자는 약속을 하였지만 단지 그날의 헤어짐이 너무나도 야속하고 싫게 느껴졌다.
워크캠프란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몇 번의 봉사활동을 실천한 나로서도 이만큼 서로간에 정이 들고 뜻 깊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와 함께한 그들이 고국에 돌아가서라도 언제나 신의 자비와 함께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나에게 이러한 기회가 또 한 번 찾아온다면 백번천번이고 다시 참여하고 싶다.
다음날 아침부터 너무 분주하였다. 모두가 자기나라의 정통음식을 만들기위해서 갖가지 식재품을 사러 부랴부랴 나갔고 식기구와 필요한 조미료등을 챙기기위해서 정신없이 뛰어 다녔다. 나는 최고 말썽꾸러기인 스페인의 파블로와 아이노아, 그리고 캐나다의 앤드류와 짝을 이루어 통역을 해주고 도움을 주는 서포터 역할을 하였는데, 첫날은 그들의 음식이 제대로 완성도 안되고 초등학교친구들이 말을 너무 듣지 않아 약간은 짜증도 나고 힘들었지만 4일차까지 계속되는 과정속에서 요리실력과 결과물들은 빛을 보게 되었고 아이들과도 약간의 인내심을 갖고 친화력을 쌓는데에도 성공아닌 성공을 하게 되었다. 어느새 우리의 11박이라는 여정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서로가 서로의 추억과 좋은경험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핸드프린팅 롤링페이퍼등으로, 물론 좋지만 뒤로 미루고 싶은 작업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만남을 처음이자 끝이아닌 현재진행형으로 벌써부터 서로간의, 서로간의가 아닌 모두의 약속으로 위로하고 있었다….마지막날의 밤은 그야말로 광날의 밤이였다. 맥주며 소주 양주, 그리고 막걸리까지 잔뜩 사와서 우리만의 침실인 대강당에서 끊임없이 수다를 벌이며 음악을 틀어놓고 춤까지 추었다. 정말 다음날 아침은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아침은 다시 찾아오게 되는 법,,,,,마지막아침 마지막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각자가 서로 이별의 인사를 건네었다… 그 시간은 1시간도 넘었던 것 같다…..물론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에 조금 더 체류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다 같이 한 번 더 모이자는 약속을 하였지만 단지 그날의 헤어짐이 너무나도 야속하고 싫게 느껴졌다.
워크캠프란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몇 번의 봉사활동을 실천한 나로서도 이만큼 서로간에 정이 들고 뜻 깊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와 함께한 그들이 고국에 돌아가서라도 언제나 신의 자비와 함께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나에게 이러한 기회가 또 한 번 찾아온다면 백번천번이고 다시 참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