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에서 만난 사람들, 잊지 못할 여름

작성자 권순미
프랑스 JR13/201 · DISA 2013. 06 Clelles, Rhone-Alpes

AVT ERMITAGE JEAN REBOUL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작년 여름, 나는 벨기에에서 워크캠프에 참여했다. 적십자사가 운영하는 망명자 임시보호센터에서 아이들과 뛰어놀고 비디오를 촬영하며 3주를 보냈다.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행복하기도 했고,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생활하며 새롭게 깨달은 것들도 많았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소중한 경험도 많이 한 작년 워크캠프의 경험 덕분에, 기회가 된다면 워크캠프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 나는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오게 되었고, 방학동안 워크캠프를 다시 하고싶어서 이번 워크캠프를 신청하게 되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봉사활동에 참여한 멤버는 모두 4명이었다. 나를 비롯해 한국인 한 명, 홍콩인 두 명, 이탈리아인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이 워크캠프 특성상 외국인 봉사활동 멤버들은 구성원이 적다.

바캉스를 조직하는 스태프들을 비롯해 바캉스를 온 장애인분들은 모두 프랑스인이었다. 스태프들은 약 30여명, 장애인분들은 약 20여명이다.(스태프들은 animatuer라고 부르고 장애인분들은 바캉스를 온 사람이라는 뜻에서 vacancier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너무 많은 덕에 한정된 시간동안 모든 사람들과 교류하고 친해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은 친절했다. 몇몇 봉사활동자들은 항상 우리에게 와서 괜찮냐, 이해했냐 물어봐주기도 했고, 영어를 잘 하지 못해도 우리를 위해서 영어로 설명해주려고 애쓰기도 했다.
밤에 순찰을 도는 nightwatcher들이 방을 돌며 기상 시간을 알리는 것으로 봉사활동자들의 하루가 시작된다. nightwatcher는 봉사활동자들이 돌아가면서 다 한 번씩 하는 순찰로, 밤을 새면서 바캉스를 온 장애인들이 자는데 지장은 없는지 방을 정기적으로 살펴본다. 대신 그 다음 날은 하루 종일 쉴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모두 모여 하루 일과에 대한 개요를 설명하거나 전 날의 일과에 대한 피드백을 하면서 general meeting을 한다. 이후 자기가 배정받은 장애인 바캉스인들을 깨운 뒤, 샤워 및 옷 입는 것을 도와주고 같이 식당으로 내려와 아침 상을 차려준다. 오후 일정에 정해진 액티비티가 있으면 이를 하고, 딱히 일정이 없는 경우에는 같이 햇빛을 쬐며 이야기를 나누고 한가히 하루를 보낸다. 4시 즈음에는 간식시간으로, 바캉스를 온 사람들이 간식을 먹는 것을 도와야 한다. 그 후 7시 반 즈음에 저녁을 먹고 저녁 후 액티비티를 한 뒤 장애인들이 잠자리에 드는 것을 돕는 것으로 하루가 마무리된다.
식사는 스태프들이 직접 하는 것일 아니라 요리를 하는 요리사들이 따로 있다. 식사 또한 프랑스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entrée(전식), plat(본식), fromage(치즈), dessert(후식)로 코스식으로 먹는다.
이 곳은 산중에 위치한 프랑스의 시골 마을인데다가 캠프 구성원도 대다수가 프랑스 인들이기 때문에 완전히 프랑스의 문화에 녹아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이 캠프에서 봉급을 받는 사람은 단 3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급여를 받더라도 그들은 거의 최소 임금에 해당하는 돈만 받는다. 아무리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봉사활동이더라도 눈 뜨고 나서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계속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일을 하고 14일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도 사람들은 짜증내는 기색이나 예민한 기색하나 보이지 않았다. 바캉스를 온 장애인들의 건강을 모두 살피고 약을 매 끼니마다 챙겨야하는 간호사 bene는 피곤함 때문에 항상 눈이 새빨갛게 충열되어 있었지만 항상 밝은 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했고, 피곤함 한 번 제대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 또한 항상 밝은 모습으로 일했고, 힘든 내색이나 불평 한 번 없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존경의 마음이 들기도 했고, 가끔 피곤하다고 불평하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정상 캠프 종료 당일 새벽에 기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캠프가 종료하기 하루 전에 바캉스를 온 사람들에게 미리 작별인사를 했다. 나와 유난히 친했던 Michele 이라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자신의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을 때 통화해보라며 나의 손에 전화기를 쥐여주시기도 했다. 할머니에게도 다음 날 새벽 일찍 간다는 말을 했고,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고서는 “내년에도 올거니?” 하고 물었는데 나는 아쉬운 마음에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 못 올 거라는 대답에 할머니는 아쉬워하시며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나의 프랑스어는 그리 유창한 수준이 아닌데다가, 바캉스를 온 장애인의 반절은 말을 잘 하지 못하고 말을 하더라도 제대로 말을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어서 프랑스 현지인들도 한 번에 잘 이해하지 못하고 여러 번 되묻곤 했다. 따라서 이별하는 그 순간에 아쉬운 마음을 다 전달하고 싶어도 나는 프랑스어를 잘 말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제대로 다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