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중국에서, 영어 선생님 되다

작성자 홍조은
중국 CSETC01 · LANG/CULT 2013. 07 중국,허난,자오쭤시

Hena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년전 떠난 그리스에서의 워크캠프를 다녀 온 후, 유럽에 대한 열병을 앓았지만, 작년 런던올림픽의 여파로 여행경비가 상상초월에 이르자 유럽여행은 깔끔하게 포기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번 여름에도 또 다시 워크캠프의 매력에 휩싸였다. 부모님 몰래 또 다시 워크캠프 지원서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유럽은 무리고, 이번엔 좀 더 가까운 중국으로 가서 외국인 선생님으로 중국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다. 난 영어교육을 전공하고 있으니, 아주 멀기만 한 뜬 구름잡은 일은 아니라고 합리화를 했다. 큰돈주고 멀리 떠나서 실컷 고생만 하고 왔으면서 왜 또? 이제 3학년이고 내년이면 4학년인데 이제 맘잡고 공부할 때도 됐지 않았니? 어차피 임용쳐서 선생할거면서 쓸데 없이 스펙이라고 쌓는 것 같은데 좀 아깝지 않니? 이런 저런 주변의 말들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 동안 용돈이라도 벌어 보려고 학원일이며 과외며 한다고 해봤지만, 전혀 보람도 없었고 만족은 커녕 난 왜이럴까라는 생각만 커졌다. 어영부영 한다고 공부는 했는데 별 생각도 마음도 없이 하다보니 3학년 1학기 성적은 트리플 시플이라는 아름다운 결과가 나왔다. 성적이 하나 둘 뜰 때 마다 여름방학을 맞아서 더욱 게을러지고 '이 전공과 나는 맞지 않는구나,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죽도 밥도 안되겠다' 이런 생각만 더욱 더 커졌다. 끝내 내린 결론은 때 마침 중국으로 도망가자. 부모님의 잔소리가 대륙까지 올리는 없겠지. 얼른 짐을 싸고 설레는 마음으로 베이징으로 떠났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6월 28일 베이징 도착. 두 명의 중국인 TA(Teacher Assistant)가 나를 마중나왔다. 영어캠프로 떠나기 전에 3일정도의 트레이닝기간을 가졌다. 트레이닝 캠프는 북경의 도심의 중심에 위치한 북경사범대부속고등학교였다. 대륙이라 모든 스케일이 커서 놀라워서, 중국인 친구에게 대륙이라 그런지 학교 진짜 크다고 하자, 이 학교는 도심 중에 도심이라 정말 작다고 놀라지 말라고 했다. 트레이닝기간에는 캠프의 규칙, 일정, 수업내용 등을 같이 회의하고, 직접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나 혼자 다른 외국인 선생님과 캠프리더들 앞에서 수업시연을 하는 데 왜 이렇게 떨리 던지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 졌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난 학생들 수준이 높을 거라 생각하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도 다 정해 왔는데 직접 시연을 해보고 캠프리더와 의견이 부딪혀 보니, 완전 딴 길이라 새로 갈아 엎어야 할 위기를 맞았다. 그렇게 나는 난 정말 쥐뿔도 모르고 까부는 갓난 아기였구나생각했다. 캠프리더 타니아는 나에게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조금만 천천히 내가 얼어있으면 학생들은 더 겁을 먹고 소통은 더 힘들어 진다고 그냥 자신감을 가지고 바디랭귀지를 많이 쓰라고 조언해주었다. 트레이닝이 끝나고 베이징에서 허난성 자오쭤시로 8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갔다. 대륙의 수도인 베이징과 대륙의 시골인 허난성 자오쭤시는 그저 할말을 잊게 만들었다. 화장실엔 문이 없고, 샤워실엔 커튼도 없었다. 잠을 자야할 이층침대는 먼지와 거미줄 그리고 닦고 닦아도 닦아지지 않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 그래도 베트남친구 루시는 화장실 청소를 하며 모기와 온 갖 벌레들에게 여기는 10일 동안은 내 집이니 썩꺼지라고 말하며 파이팅 넘치게 청소를 했고, 함께 클럽 노래를 틀어 놓고 미국친구 브리트니는 대걸레질을 하고 나는 바가지로 물을 부었고 영국인 친구 베카는 화장실청소용 세제대신 퐁퐁으로 거품을 내며 즐겁게 화장실 청소를 했다. 힘들 때면 외국인 친구들은 이럴 때는 절대 긍정을 하는 게 최선이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했다. 이란친구 알민은 정말 노홍철같은 캐릭터이다. 내가 알민을 죽일 뻔 한적이있어서 정말 미안하고 아직도 그 순간이 슬로우 비디오로 생생하게 기억난다. 물풍선을 던지고 노는 날, 물풍선이 다 떨어지자 바가지에 물을 받아서 서로 뿌리고 외국인 친구들과 놀았다. 미끄러운 복도에서 내가 알민에게 물을 뿌려서 거의 뇌진탕으로 죽을 뻔했지만 알민은 다행히 건강하게 살아 남았고 지금도 잘 살고 있다. 알민이 너무 시끄러워서 한국말로 마 좀 시끄럽다라고 했는데, 외국인 친구들이 다 배워서 알민이 말만하면 마 좀 시끄럽다라고 한마디씩 했는데 너무 웃겼다. 영어캠프에서 내가 가르친건 한국에 관한 것이다. 한국은 어디에 있고 국기는 무엇이고, 수도가 어디이며 이런 것들 말이다. 한국 음식에 관한 수업도 했고, 간단한 한국어 인삿말 정도를 가르쳐 주었다. 기대이상으로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고, 트레이닝 때와는 다르게 자신감 넘치고 천천히 바디랭귀지를 크게 사용하며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고 있었다. 베트남 친구 루시는 정말 아량이 깊고 열정적인 친구이다. 물론, 그 캠프에서 외국인 선생님 중에는 내가 제일 어렸다. 다들 나보다 나이도 많았고 대학교를 졸업한 상태였다. 난 그저 갓난 애송이에 불과했다. 캠프리더들 중에서 중국인 고등학생 존이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과하고 생물학 지식이 방대하고, 캠프를 멋지게 이끄는 모습이 놀라웠지만, 때로는 아이 처럼 자신이 하고 싶어하고 좋아하는 일을 즐기고 사랑하는 모습에 감탄을 했다. 대부분의 캠프 참가자들은 책임감도 있고 열정적이였지만, 몇몇의 중국인 TA들이 조금은 게으르고 이기적이고 무례하 모습때문에 마찰이 있었다. 그저 어려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도 되지만, 중국 사회가 한 가정에 한 아이만 낳는 정책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외동 아들, 딸이라 애지중지 커서 그런지 소통이나 이해하는 면에서 차이가 커서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게 많았다. TA중에 최고 애지중지하게 큰 니키가 나의 TA이였는데, 나를 버리고 홀로 사라지기는 숨쉬기 처럼 했다. 10일을 못 견디고 캠프가 끝나기전에 배탈이 났다는 이유로 짐을 싸서 홀로 떠나 버렸다. 그 당시엔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났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라는 생각이들어 작별인사를 못해서 아쉽다고 내가 먼저 이메일을 보냈다. 좋은 사람들도 많았고 특이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지금의 기억으론 다들 열정적이고 멋진 사람들이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매일 아침 샤워를 하거나 매일 저녁 샤워를 할 때면 영어캠프학생들이 샤워커튼을 열고 조니? 굿모닝? 이러거나 조니? 하이? 이러는 게 일상이 되었다. 가고 없을 줄 알았는데 뒤돌아 보면 신기한 것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말똥말똥 굴리며 내 몸을 관찰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노노노노라고 말했다. 이것이 일상이 되었고, 나에게 사인을 해달라며 공책을 들고 오더니 하나 둘 씩 자신의 티셔츠를 들고 와서 내 한글이름, 영어이름, 중국이름 까지 다 써달라고 줄을 지어 왔다. 심할 때는 기숙사 방문 앞까지 따라 와서 문을 두드리자 룸메이트 베카가 대신 소리를 쳤다. 또 몰래 내사진을 찍어서 자신의 아이패드며 아이폰이며 배경으로 한다고 중국인 TA가 나에게 말해줬다. 내반 학생들은 나에게 또박또박 예쁜 글씨로 영어편지도 써서 줬고 점심시간 때는 음료수도 사주었다. 정말 마음이 예쁜 고마운 아이들이다. 대륙에서의 인기가 정말 이 곳이 나의 나라인가 하는 착각이들 정도였다. 그 날이 조금은 그립지만, 온갖 촉각을 곤두세우며 졸졸졸 흐르는 물과 모기들과 함께하는 샤워는 10일이면 충분하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영어로 한마디라도 더 해보려는 아이들을 보면서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또 나에게 사진을 같이 찍을 수 있냐고 묻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 정말 지금 사랑받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 동안 한국에서 학원에서 또는 과외를 하며 영어를 가르쳐봤지만, 정작 학생과 소통을 해본적은 없었다. 웃으면서 아이들에게 밥은 먹었니 잠을 잘 잤니 오늘 기분은 어떻냐고 물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저 잘해주면 학생들이 만만하게 볼거라고 생각하고 진도를 얼른 빼야한다고 잡담은 그만하라고 학생들에게 화만 내고 신경질만 부렸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베이징에서 자금성, 천안문, 허난에서 운대산 등등 여행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여행보다 학생들과 수업하고 이야기했던 것이 더욱 가슴이 깊게 남아있다. 이제 누가 나에게 너 정말 선생님하고 싶냐고 묻는 다면 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또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할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