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에서 만난 8명의 소중한 인연
Abbaye de Clausonne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프랑스 어학연수 중에 바캉스기간을 이용하여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친구들이 여러명 참가한 워크캠프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워크캠프 프로그램에 대하여 알아보고 신청하게 되었다. 처음에 페스티발에 관심이 많아서 피레네에서 진행되는 캠프를 신청하고 기다렸는데, 프랑스 주최측에서 캠프취소를 결정하여 다른 캠프를 찾아봐야했다. 그러던중 그르노블 주변 작은 도시에서 진행되는 캠프를 신청하게 되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봉사활동에는 solidarite jeunesse라는 지역단체 장기봉사자들과 우리 워크캠퍼들이 함께 생활하였다. 장기봉사자들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고있었으며, 내가 지내던 Le fai 외에도 차를 타고 30분쯤 가면 있는 마을에 다른 봉사자들이 모여서 지내는 집이 있었으며 밥을 해주러 아침마다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인턴쉽으로 학교로 기간이 끝나서 돌아가는 분들도 있었고 장기봉사자들 중에서 학생들의 경우 나보다 어린 학생들도 많았다. 우리는 매일 7시 경에 일어나서 8시까지 각자 아침을 먹고 준비를 마치고 미팅을 항상 가졌다. (월~금) 그리고 미팅 후에 20분 정도를 산으로 올라가면 Abbaye라는 우리 워크캠프지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집을 짓는 일을 진행했다. 보통은 8시 30분 혹은 9시 부터 5시까지 일을 했다. 일을 많이 한 주는 페스티발 같은 행사때문에 금요일에 일을 할 수 없기에 월~목요일에 일을 많이 하곤 했다. 캠프리더가 2명 있었는데 그 중에서 남자리더가 실제적으로 우리 캠프의 리더라고 생각한다. 다른 여자 리더와 내가 몇몇 장기봉사자들에게 느낀 점은, 그들은 장기봉사자이자 인턴쉽의 개념으로 온 것이라, 우리와 같이 주어진 일을 처리한다는 느낌이 강했고 나도 어떤 부탁을 하거나 하라는 지시를 받은 기억은 잘 없었던 것 같다.
인턴쉽으로 학교로 기간이 끝나서 돌아가는 분들도 있었고 장기봉사자들 중에서 학생들의 경우 나보다 어린 학생들도 많았다. 우리는 매일 7시 경에 일어나서 8시까지 각자 아침을 먹고 준비를 마치고 미팅을 항상 가졌다. (월~금) 그리고 미팅 후에 20분 정도를 산으로 올라가면 Abbaye라는 우리 워크캠프지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집을 짓는 일을 진행했다. 보통은 8시 30분 혹은 9시 부터 5시까지 일을 했다. 일을 많이 한 주는 페스티발 같은 행사때문에 금요일에 일을 할 수 없기에 월~목요일에 일을 많이 하곤 했다. 캠프리더가 2명 있었는데 그 중에서 남자리더가 실제적으로 우리 캠프의 리더라고 생각한다. 다른 여자 리더와 내가 몇몇 장기봉사자들에게 느낀 점은, 그들은 장기봉사자이자 인턴쉽의 개념으로 온 것이라, 우리와 같이 주어진 일을 처리한다는 느낌이 강했고 나도 어떤 부탁을 하거나 하라는 지시를 받은 기억은 잘 없었던 것 같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우리 워크캠퍼는 총 8명이었는데, 모두 국가가 달랐지만 처음에 괴리감 같은 것은 없었다. 처음에는 일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고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즐겁기만한 캠프의 모습이 아니라서 실망하기도 했는데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이 들고 잊지 못할 친구들로 내게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르노블 뮤직 페스티벌에 주말에 놀러간 것이 크게 기억에 남는데, 그때가 캠퍼 아이들과 만난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을 땐데 그때서야 아이들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서 이미 지나버린 일주일이 너무 아쉬웠다. 인연을 소중히 해야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고 다시 만나기 힘든 것을 생각하니 허무한 마음까지 들었다. 나와 일본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러피안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서로 왕래가 가능했지만 나는 그들과 만나기위해서 10시간을 넘게 비행기를 타고와야만 했다. 물론 지금은 내가 프랑스에서 공부 중이라 그들과 만나는 것이 쉬울 수 있지만 결국엔 나는 한국에 돌아가니까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서 혼자 씁쓸했다. 그리고 서로의 나라를 여행하는 얘기를 할 때에 아시아는 너무 멀어, 아시아에 가기엔 경비가 너무 많이 들잖아. 라는 얘기를 들을 때 너무 씁쓸했다. 심지어 그때는 나도 유러피안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 뻔 했다. 워크캠프가 끝나고 한 달 정도가 지나니까, 처음에 느꼈던 허무하고 씁쓸하고 아쉬운 감정은 훨씬 나아졌지만 지금 다시 사진들을 보고 생각하니까 꿈같고 어떻게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한 번에 만났을까 라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캠프를 참가하기 전에 캠프지의 위치, 하는 일 등 그 것들만을 체크하지 말고 이 캠프를 운영하는 단체의 성격까지 다 인지하고 가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물론 이 단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인지하고 더 잘 이해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고, 장기 봉사자들이 가끔 자신들과 같은 봉사자로서 우리를 대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우리가 그들을 위해, 그들의 일을 돕기위해 온 사람처럼 느낀적이 있었는데 그땐 내가 누굴위해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르노블 뮤직 페스티벌에 주말에 놀러간 것이 크게 기억에 남는데, 그때가 캠퍼 아이들과 만난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을 땐데 그때서야 아이들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서 이미 지나버린 일주일이 너무 아쉬웠다. 인연을 소중히 해야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고 다시 만나기 힘든 것을 생각하니 허무한 마음까지 들었다. 나와 일본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러피안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서로 왕래가 가능했지만 나는 그들과 만나기위해서 10시간을 넘게 비행기를 타고와야만 했다. 물론 지금은 내가 프랑스에서 공부 중이라 그들과 만나는 것이 쉬울 수 있지만 결국엔 나는 한국에 돌아가니까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서 혼자 씁쓸했다. 그리고 서로의 나라를 여행하는 얘기를 할 때에 아시아는 너무 멀어, 아시아에 가기엔 경비가 너무 많이 들잖아. 라는 얘기를 들을 때 너무 씁쓸했다. 심지어 그때는 나도 유러피안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 뻔 했다. 워크캠프가 끝나고 한 달 정도가 지나니까, 처음에 느꼈던 허무하고 씁쓸하고 아쉬운 감정은 훨씬 나아졌지만 지금 다시 사진들을 보고 생각하니까 꿈같고 어떻게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한 번에 만났을까 라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캠프를 참가하기 전에 캠프지의 위치, 하는 일 등 그 것들만을 체크하지 말고 이 캠프를 운영하는 단체의 성격까지 다 인지하고 가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물론 이 단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인지하고 더 잘 이해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고, 장기 봉사자들이 가끔 자신들과 같은 봉사자로서 우리를 대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우리가 그들을 위해, 그들의 일을 돕기위해 온 사람처럼 느낀적이 있었는데 그땐 내가 누굴위해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