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용기 내 떠난 특별한 일주일
Polar festival – skill sharing in East Iceland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는 외국인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함께 생활할 기회를 꿈꿔왔다. 그러던 중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에 참가했던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워크캠프라면 내 욕구를 충족시키에 완벽한 조건이었다. 장소 선정에 있어서도 친구의 영향이 컸다. 친구가 보여준 사진 속 아이슬란드의 대자연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아이슬란드에 갔다 온 이후 몇 년이 흘러도 아이슬란드를 그리워하는 친구의 모습에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그렇게 워크캠프를 가기로 마음을 먹은 지는 꽤 오래 전이었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주일 이상 집을 떠나 본 적도, 혼자서 해외여행을 간 적도 없었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이 컸다. 그러던 중 하반기 취업을 앞두고 다시는 워크캠프를 갈 시간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고 워크캠프 시작 3주 전, 지원서를 제출하게 됐다.
그렇게 워크캠프를 가기로 마음을 먹은 지는 꽤 오래 전이었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주일 이상 집을 떠나 본 적도, 혼자서 해외여행을 간 적도 없었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이 컸다. 그러던 중 하반기 취업을 앞두고 다시는 워크캠프를 갈 시간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고 워크캠프 시작 3주 전, 지원서를 제출하게 됐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 함께한 사람들
독일, 러시아, 슬로바키아, 스위스, 스페인, 프랑스, 한국. 이렇게 7개 나라에서 모인 21명의 사람들이 아이슬란드 동쪽, 에스키피요르(Eskifjorður)에서 워크캠프 생활을 시작했다. 세 캠프가 각자 다른 지역에서 일주일 동안의 워크캠프를 진행했던 것을 제외하면, 함께 모여 레이캬비크(Reykjavik)에서 에스키피요르(Eskifjorður)까지 이동하고, 밥을 만들어 먹고, 수영장을 가는 등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 생활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을마다 수영장이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하루 일과로 수영장에 간다는 점이었다. 화산으로 인한 온천의 나라답게 온천수를 이용한 수영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매일 봉사활동을 끝내고 나면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수영장에 들러서 수영도 하고 샤워도 해결하곤 했다.
가장 중요한 식사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다. 스페인 친구들이 8명이나 있었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저녁을 아주 늦게 먹는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저녁을 9시 30분쯤에야 먹는다. 아침, 점심, 저녁을 제 시간에 챙겨먹는 나로서는 처음에 그 생활에 맞추기가 힘들었다. 매일 저녁은 다같이 모여서 먹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기 때문에 나는 배가 고파 미리 저녁을 챙겨먹고, 이 시간에 또 저녁을 한 번 더 같이 먹었다. 그렇게 하루에 4끼씩 밥을 먹게 되면서 타지에서의 생활로 살이 빠질 거라는 처음의 걱정은 저 멀리 사라졌다.
첨부한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잠자리는 매트리스와 침낭이 전부였다. 여름에는 해가 지지않는 백야현상이 계속되는 탓에 새벽에도 밖을 환하게 볼 수 있어서 안대를 착용하고 자는 것이 습관이 됐다.
#. 봉사활동
아직 백야에 익숙하지 않아 잠을 설친지 3일 째 되는 7월 8일 월요일, 드디어 내 캠프장소인 Stoðvarfjorður로 이동했다. 내가 맡은 활동은 12~14일 동안 개최되는 ‘Polar Festival’의 준비와 진행, 마무리를 돕는 것이었다. ‘Polar Festival’의 취지는 Stoðvarfjorður의 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을의 주된 산업은 어업이었고 큰 생선공장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10년 전에 문을 닫으면서 연쇄적으로 학교, 유치원, 교회, 마켓 등 마을의 기반시설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연히 젊은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고 마을은 활력을 잃었다. 그러던 중 수도인 레이캬빅에서 젊은이 몇 명이 마을을 살려보겠다는 생각으로 이주해왔고, 그 시작을 알리는 축제인 Polar Festival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봉사자들이 해야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우선, Festival의 5군데 랜드마크에 milestone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바닷가에서 크고 작은 돌을 모으고, 탑을 쌓은 뒤 페인트로 각 랜드마크를 나타내는 색을 칠했다.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각 session이 열리는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남자 봉사활동가가 없어서 돌을 나를 때 몸이 많이 힘들었지만 그 점만 빼면 카트카와 둘이 하루종일 일하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Milestone을 만든 뒤, 축제에 필요한 도구와 재료, 안내 표지판 등을 제작하고 운반하는 일이 이어졌다. 12일 금요일, 축제가 시작되자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넓은 잔디밭은 캠핑장으로 쓰여 30개 이상의 텐트로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했다. 요리, 낚시, 공연 등 다양한 session으로 이루어진 3일동안의 Polar Festival은 처음 이 마을에 오면서 느꼈던 모든 걱정과 외로움을 한순간에 날려주었다.
독일, 러시아, 슬로바키아, 스위스, 스페인, 프랑스, 한국. 이렇게 7개 나라에서 모인 21명의 사람들이 아이슬란드 동쪽, 에스키피요르(Eskifjorður)에서 워크캠프 생활을 시작했다. 세 캠프가 각자 다른 지역에서 일주일 동안의 워크캠프를 진행했던 것을 제외하면, 함께 모여 레이캬비크(Reykjavik)에서 에스키피요르(Eskifjorður)까지 이동하고, 밥을 만들어 먹고, 수영장을 가는 등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 생활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을마다 수영장이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하루 일과로 수영장에 간다는 점이었다. 화산으로 인한 온천의 나라답게 온천수를 이용한 수영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매일 봉사활동을 끝내고 나면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수영장에 들러서 수영도 하고 샤워도 해결하곤 했다.
가장 중요한 식사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다. 스페인 친구들이 8명이나 있었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저녁을 아주 늦게 먹는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저녁을 9시 30분쯤에야 먹는다. 아침, 점심, 저녁을 제 시간에 챙겨먹는 나로서는 처음에 그 생활에 맞추기가 힘들었다. 매일 저녁은 다같이 모여서 먹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기 때문에 나는 배가 고파 미리 저녁을 챙겨먹고, 이 시간에 또 저녁을 한 번 더 같이 먹었다. 그렇게 하루에 4끼씩 밥을 먹게 되면서 타지에서의 생활로 살이 빠질 거라는 처음의 걱정은 저 멀리 사라졌다.
첨부한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잠자리는 매트리스와 침낭이 전부였다. 여름에는 해가 지지않는 백야현상이 계속되는 탓에 새벽에도 밖을 환하게 볼 수 있어서 안대를 착용하고 자는 것이 습관이 됐다.
#. 봉사활동
아직 백야에 익숙하지 않아 잠을 설친지 3일 째 되는 7월 8일 월요일, 드디어 내 캠프장소인 Stoðvarfjorður로 이동했다. 내가 맡은 활동은 12~14일 동안 개최되는 ‘Polar Festival’의 준비와 진행, 마무리를 돕는 것이었다. ‘Polar Festival’의 취지는 Stoðvarfjorður의 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을의 주된 산업은 어업이었고 큰 생선공장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10년 전에 문을 닫으면서 연쇄적으로 학교, 유치원, 교회, 마켓 등 마을의 기반시설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연히 젊은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고 마을은 활력을 잃었다. 그러던 중 수도인 레이캬빅에서 젊은이 몇 명이 마을을 살려보겠다는 생각으로 이주해왔고, 그 시작을 알리는 축제인 Polar Festival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봉사자들이 해야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우선, Festival의 5군데 랜드마크에 milestone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바닷가에서 크고 작은 돌을 모으고, 탑을 쌓은 뒤 페인트로 각 랜드마크를 나타내는 색을 칠했다.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각 session이 열리는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남자 봉사활동가가 없어서 돌을 나를 때 몸이 많이 힘들었지만 그 점만 빼면 카트카와 둘이 하루종일 일하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Milestone을 만든 뒤, 축제에 필요한 도구와 재료, 안내 표지판 등을 제작하고 운반하는 일이 이어졌다. 12일 금요일, 축제가 시작되자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넓은 잔디밭은 캠핑장으로 쓰여 30개 이상의 텐트로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했다. 요리, 낚시, 공연 등 다양한 session으로 이루어진 3일동안의 Polar Festival은 처음 이 마을에 오면서 느꼈던 모든 걱정과 외로움을 한순간에 날려주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 특별한 에피소드
7월 5일, 특별한 에피소드는 레이캬비크의 월드와이드프렌즈 화이트하우스에서부터 시작됐다. 현지 참가비를 납부하러 간 곳에서 내 캠프의 팀원이 나와 팀 리더, 이렇게 단 둘뿐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Just you!” 이 한마디가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Just you!”로 시작된 워크캠프는 캠프 장소였던 Stoðvarfjorður에서의 모든 시간이 특별한 에피소드 그 자체였다. 아이슬란드의 동쪽에서도 아주 작은 마을인 Stoðvarfjorður에서 일주일 동안 동양인은 나 혼자였고, 슬로바키아에서 온 팀 리더 카트카를 제외하면 모두 아이슬란드인이었다. 축제 준비 회의에 참여해 온통 아이슬란드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틈에서 멍하니 있어보기도 하고, 홀로 동양인이었던 나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경험해보기도 했다. 물론 나와 카트카를 배려해 영어로 대화해주는 경우가 많았고 먼저 말을 건네주는 친절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생활에 어려움은 없었다.
아이슬란드에서의 봉사활동과 함께 다른 나라 친구들과의 생활을 기대했던 나에게, 리더와 단 둘뿐인 캠프, 작은 마을에서의 고립, 봉사활동이 끝난 후 숙소로 돌아왔을 때의 공허함은 예상치 못한 외로움이자 특별함이었다.
Stoðvarfjorður에서 열린 Polar Festival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한 가지를 더 소개하고 싶다. 축제 이틀째인 토요일 저녁, 마을의 커뮤니티센터 앞 잔디밭에서 아이슬란드 밴드 3팀의 공연이 있었다. 그 공연을 배경으로 아이슬란드 여기저기서 모여 처음 만난 사람들이 저녁을 함께 하며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었다. 풀잎은 접시고, 손은 도구였다. 연잎같이 큰 잎을 그릇삼아 음식을 담았다. 생오렌지를 손으로 직접 짜서 주스로 마시고, 그 오렌지껍질은 다시 무언가의 접시가 됐다. 감자와 각종 야채, 그리고 사람들이 직접 바다에 나가 잡아온 생선은 그릴에 함께 맛있게 구워져 풍미를 더한다. 한 손에는 풀잎접시를, 다른 한 손으로는 음식을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아마 다시는 해보지 못할 경험일 것이다.
#. 참가 후 변화
Stoðvarfjorður와 에스키피요르(Eskifjorður)에서 보낸 2주를 통해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첫걸음, 차이를 인정하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하는 세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Stoðvarfjorður에서의 일주일은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체감 시간은 굉장히 길었다. 홀로 동양인이고, 캠프 팀원은 리더와 나 둘 뿐이고, 작은 마을에서 그야말로 아이슬란드 속으로 내던져진 느낌이었기 때문일 거다. 잘 모르는 장소에 가거나 이미 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이방인처럼 홀로 있는 경우에 그 순간이 멈춰있는 시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버텨내고, 극복해나갈 수 있는지를 배웠다. 그럴수록 먼저 말을 건내거나 아니면 평소대로의 내 모습을 그냥 그대로 유지하면 된다.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더 이방인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해.” “나는 그들의 생활방식을 인정해.” 둘 중 어떤 문장을 쓰는 것이 좋을까. 워크캠프 내내 같음보다 차이를 더 많이 느끼면서 내가 지금까지 ‘이해’한다고 한 것이 사실은 ‘인정’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완벽히 상대방이 되지 않는 한 완벽한 이해란 없다. 스페인 친구들이 저녁을 10시에 먹고, 새벽 1시가 넘어갈 때까지 시끄럽게 떠들고 노는 것을 보며 ‘도대체 왜?’라는 물음을 속으로 쉴 세없이 던졌다. 실내에서든 실외에서든 아무렇지 않게 신발을 벗고 다니며 어느 자리든 털썩 주저앉는 것을 보며 나는 그것을 절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가며 다만 인정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진 생각의 폭을 더 넓히는 계기가 됐다. Stoðvarfjorður에서 Polar Festival을 기획한 젊은이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수도인 레이캬비크에 살고 있던 그들은 이 작은 마을을 살리기 위해 한 순간에 삶의 터전을 이 곳으로 옮겼다. 인터넷도 텔레비전도, 심지어 집 안에 샤워시설조차 갖춰놓지 않고 생활하는 그들의 모습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축제를 함께 기획하고 준비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나누다보니 내가 가진 생각이 굉장히 좁고 닫혀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대체적으로 모두가 비슷한 인생의 사이클을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이로서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 하고 싶은 말
워크캠프 신청을 고민하거나 혹은 이미 신청을 마친 뒤 후기를 읽는 분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지금 당장 신청서를 작성하고, 기본적인 영어회화능력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기본적인 영어회화능력은 필수다. 여기서 ‘기본적인’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이 안 온다면, 말그대로 정말 ‘기본’을 생각하면 된다. 물론 만국공용어인 우리의 신체언어를 사용해도 되지만, 이걸 이용한 대화는 길게 이어지기가 힘들다. ‘나는 ~을 ~했다’ 정도의 기본 문장과 이걸 의문문으로 만들 수 있는 정도라도 준비해가자. 그래야 상대방의 질문에 단답형으로 답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뒤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그리고 output이 부족하면 input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좋다. 적어도 상대방이 하는게 무슨 말인지는 알아야 하니까. 실제로 이번 캠프에서 정말 기본적인 input과 output조차 되지 않아 캠프 시작부터 해산하는 그 순간까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사람도 있었다. 어느정도는 대화를 진행해나갈 수 있는 영어실력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워크캠프를 갈까 말까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신청서부터 작성하고 참가비를 입금하자. 나는 몇 년을 돈과 시간을 재느라 고민하는 사이 취업을 앞두고서야 워크캠프에 참여하게 됐고, 진작 다녀왔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
7월 5일, 특별한 에피소드는 레이캬비크의 월드와이드프렌즈 화이트하우스에서부터 시작됐다. 현지 참가비를 납부하러 간 곳에서 내 캠프의 팀원이 나와 팀 리더, 이렇게 단 둘뿐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Just you!” 이 한마디가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Just you!”로 시작된 워크캠프는 캠프 장소였던 Stoðvarfjorður에서의 모든 시간이 특별한 에피소드 그 자체였다. 아이슬란드의 동쪽에서도 아주 작은 마을인 Stoðvarfjorður에서 일주일 동안 동양인은 나 혼자였고, 슬로바키아에서 온 팀 리더 카트카를 제외하면 모두 아이슬란드인이었다. 축제 준비 회의에 참여해 온통 아이슬란드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틈에서 멍하니 있어보기도 하고, 홀로 동양인이었던 나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경험해보기도 했다. 물론 나와 카트카를 배려해 영어로 대화해주는 경우가 많았고 먼저 말을 건네주는 친절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생활에 어려움은 없었다.
아이슬란드에서의 봉사활동과 함께 다른 나라 친구들과의 생활을 기대했던 나에게, 리더와 단 둘뿐인 캠프, 작은 마을에서의 고립, 봉사활동이 끝난 후 숙소로 돌아왔을 때의 공허함은 예상치 못한 외로움이자 특별함이었다.
Stoðvarfjorður에서 열린 Polar Festival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한 가지를 더 소개하고 싶다. 축제 이틀째인 토요일 저녁, 마을의 커뮤니티센터 앞 잔디밭에서 아이슬란드 밴드 3팀의 공연이 있었다. 그 공연을 배경으로 아이슬란드 여기저기서 모여 처음 만난 사람들이 저녁을 함께 하며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었다. 풀잎은 접시고, 손은 도구였다. 연잎같이 큰 잎을 그릇삼아 음식을 담았다. 생오렌지를 손으로 직접 짜서 주스로 마시고, 그 오렌지껍질은 다시 무언가의 접시가 됐다. 감자와 각종 야채, 그리고 사람들이 직접 바다에 나가 잡아온 생선은 그릴에 함께 맛있게 구워져 풍미를 더한다. 한 손에는 풀잎접시를, 다른 한 손으로는 음식을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아마 다시는 해보지 못할 경험일 것이다.
#. 참가 후 변화
Stoðvarfjorður와 에스키피요르(Eskifjorður)에서 보낸 2주를 통해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첫걸음, 차이를 인정하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하는 세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Stoðvarfjorður에서의 일주일은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체감 시간은 굉장히 길었다. 홀로 동양인이고, 캠프 팀원은 리더와 나 둘 뿐이고, 작은 마을에서 그야말로 아이슬란드 속으로 내던져진 느낌이었기 때문일 거다. 잘 모르는 장소에 가거나 이미 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이방인처럼 홀로 있는 경우에 그 순간이 멈춰있는 시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버텨내고, 극복해나갈 수 있는지를 배웠다. 그럴수록 먼저 말을 건내거나 아니면 평소대로의 내 모습을 그냥 그대로 유지하면 된다.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더 이방인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해.” “나는 그들의 생활방식을 인정해.” 둘 중 어떤 문장을 쓰는 것이 좋을까. 워크캠프 내내 같음보다 차이를 더 많이 느끼면서 내가 지금까지 ‘이해’한다고 한 것이 사실은 ‘인정’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완벽히 상대방이 되지 않는 한 완벽한 이해란 없다. 스페인 친구들이 저녁을 10시에 먹고, 새벽 1시가 넘어갈 때까지 시끄럽게 떠들고 노는 것을 보며 ‘도대체 왜?’라는 물음을 속으로 쉴 세없이 던졌다. 실내에서든 실외에서든 아무렇지 않게 신발을 벗고 다니며 어느 자리든 털썩 주저앉는 것을 보며 나는 그것을 절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가며 다만 인정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진 생각의 폭을 더 넓히는 계기가 됐다. Stoðvarfjorður에서 Polar Festival을 기획한 젊은이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수도인 레이캬비크에 살고 있던 그들은 이 작은 마을을 살리기 위해 한 순간에 삶의 터전을 이 곳으로 옮겼다. 인터넷도 텔레비전도, 심지어 집 안에 샤워시설조차 갖춰놓지 않고 생활하는 그들의 모습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축제를 함께 기획하고 준비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나누다보니 내가 가진 생각이 굉장히 좁고 닫혀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대체적으로 모두가 비슷한 인생의 사이클을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이로서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 하고 싶은 말
워크캠프 신청을 고민하거나 혹은 이미 신청을 마친 뒤 후기를 읽는 분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지금 당장 신청서를 작성하고, 기본적인 영어회화능력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기본적인 영어회화능력은 필수다. 여기서 ‘기본적인’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이 안 온다면, 말그대로 정말 ‘기본’을 생각하면 된다. 물론 만국공용어인 우리의 신체언어를 사용해도 되지만, 이걸 이용한 대화는 길게 이어지기가 힘들다. ‘나는 ~을 ~했다’ 정도의 기본 문장과 이걸 의문문으로 만들 수 있는 정도라도 준비해가자. 그래야 상대방의 질문에 단답형으로 답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뒤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그리고 output이 부족하면 input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좋다. 적어도 상대방이 하는게 무슨 말인지는 알아야 하니까. 실제로 이번 캠프에서 정말 기본적인 input과 output조차 되지 않아 캠프 시작부터 해산하는 그 순간까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사람도 있었다. 어느정도는 대화를 진행해나갈 수 있는 영어실력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워크캠프를 갈까 말까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신청서부터 작성하고 참가비를 입금하자. 나는 몇 년을 돈과 시간을 재느라 고민하는 사이 취업을 앞두고서야 워크캠프에 참여하게 됐고, 진작 다녀왔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