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 낯선 곳에서 찾은 연결고리

작성자 임현미
인도 FSL-SPL-206 · soci/envi 2013. 07 MANALI IN INDIA

Manal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과제와 생활에 치여 무료하게 일상을 보냈다. 나는 대학 입학이 일년 유예되어 동기 중 동갑내기가 별로 없었고, 친하게 지내는 무리 중에는 동갑내기 딱 한명뿐이어서 더 특별했다. 그런데 대학생활이 지나면서 우리는 각자의 생활에 바빠 관계에 소원해져 있었고 한참 알 수 없는 공허함으로 힘들어했다. 그것이 진정한 관계형성의 부재에서 오는 공허함이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둘이 할 수 있는 어떤 프로그램을 찾게 된다.
매 방학마다 나는 다양한 활동들을 했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국토대장정이었다. 25일 간, 동고동락을 함께한 사람들과는 굳이 애쓰지않아도 시간이 흐르는 것에 비례하여 애틋해진다는 것을 배웠다. 또 지난 겨울방학, 서울시 동행프로젝트를 통해 캄보디아로 2주간 해외봉사를 다녀왔었다. 짧지 않은 기간 준비하고 그곳에 가서도 아쉬움의 잔재가 남지 않도록 모두가 최선을 다했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캄보디아에 남기고 왔다는 것을 가슴으로 절실하게 느끼고 왔었다. 국토대장정과 해외봉사의 절충안을 찾으면, 우리 둘 사이에도 무언가를 가져올 수 있었고 머물렀던 곳에도 우리의 무언가를 남겨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바로 워크캠프였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캠프까지 장차 열일곱시간에 걸쳐 도착하게 된다. 이미 지칠 때로 지쳐있었는데, 캠퍼들을 보는 순간 온몸의 세포들이 긴장하기 시작한다. 에스파냐인 여섯명, 카탈루니아인 한명, 프랑스인 둘, 그리스인 둘,캐나다인, 미국인,홍콩인 그리고 캠퍼는 인도인.. 모두가 다른 문화와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사실 첫만남에서는 대부분이 서양인인 캠퍼들이 동양인인 우리 둘을 무시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더 신경썼던 것 같다. 물론 일부 캠퍼들이 가끔씩 실수로 은연중에 편견을 갖고 행동했지만, 그들 대부분이 우리의 문화를 존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대부분의 캠퍼들이 한국도 대등한 한 국가라고 생각하고 역사와 문화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해왔고 우리 또한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었던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었다.
서양인과 동양인 모두 똑같지만 서로 잘하는 것과 성향이 다르다는 것은 인정해야할 것 같다. 서양인 캠퍼들은 대부분, 굉장히 잘 신나하고 과감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줄 알며 춤과 노래를 사랑한다. 동양인이었던 우리와 홍콩인은 상대의 의견을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을 때면 조심스럽고 말을 아끼며, 그림과 같이 정적인 활동을 더 잘 해낸다. 사실 이런 부분들이 함께 생활할때는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캠프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서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들의 그 다름이 그리워진다.
우리의 봉사활동은 거의 인근의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졌다. 아이들에게 영어와 기본생활수칙을 교육하고 학교 벽에 그림을 그려주었다. 나의 생각보다 그곳의 교육환경은 열악했고, 각각의 교실에는 책상과 의자가 없었던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지정석이 없어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웠고 그런 상황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었는데, 다행히 다른 캠퍼가 가져온 유아용 티칭도구들이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또 우리는 저녁마다 티칭에 도움이 되는 게임들을 공유하고 만들어내면서, 다음 수업이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또 아이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일, 청결을 지키는 일, 줄서는 일등 기본적인 생활수칙에 대한 개념이 없어 이걸 알려주었다. 줄을 세워 사탕을 나눠주고 사탕껍질을 쓰레기통에 버리게 함으로써 질서를 알려주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야함을 가르치고 직접 행동하게끔 유도하였다. 우리가 떠날 때도 그 곳 선생님들께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이런 생활을 할 수 있게끔 지도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한편 우리가 가장 큰 활약을 했던 것은 바로 벽화그리기였다. 운동장 벽이 우중충한 회색벽이었는데, 그곳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나는 지금은 전과를 해서 관광을 전공하지만 이전에는 의류학을 전공했고 친구 역시 의류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익숙했다. 대부분의 그림을 우리가 스케치하고 색깔을 만들면서 벽화그리기를 리드했다. 인도의 앰블러과 지도등을 그려넣었는데 무채색의 초등학교를 극채색으로 바꾸어준 것 같아 기뻤다.
우리 캠프의 대략적인 생활은 오전에 2시간, 오후에 2시간 봉사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cultre activity, coutry presentation등을 했다. 인도마날리에 관한 cultre activity를 했다. 현지에서 유명한 사찰과 관광지를 다녀온다던가 인도 요가, 헤나클레스, 요리교실, 영화보기를 통해 인도에 대한 배우거나 coutry presentation을 통해 캠퍼들의 나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을 갖었다.또 매일 밤 daily meeting을 통해 우리의 하루를 돌이켜보고 의견을 내는 시간을 가졌다. 숙소는 게스트하우스로 내 생각보다 훨씬 깨끗하고 좋은 시설이었다고 생각한다. 3명씩 한 조가 되어 방을 썼으며 층별로 남녀가 구별도 되어있었다. 식사는 제일 꼭대기층에서 다같이 모여 불교식으로 식사를 했으며 인도음식이 나왔다. 주말에는 keylong으로 미니버스를 렌트하여 캠퍼 다같이 1박 2일 트래킹을 떠났고 클럽에도 다녀옸다. 특히 캠프리더가 유일한 동양 여자인 우리둘을 많이 배려해주고 도와주려고 노력했으며 캠퍼들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잘 들어주면서도, 캠프 안에서의 수칙들은 엄격하게 강조하였다. 불편함이 전혀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캠프리더의 배려와 좋은 시설, 캠퍼들의 이해심으로 14일간의 생활을 잘 조율하여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서양애들은 우리에게 말을 너무 많이 않한다고 했지만, 우리 생각에 서양애들이 말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발표를 하는 country presentation을 굉장히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안동찜닭과 비빔밥, 호떡등 음식을 함께 준비하여 음식, 복식, 역사, 문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전에 캠퍼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해갔기 때문에 더 반응도 좋았고 우리의 프레젠테이션이 최고였다고 말해주는 캠퍼들이 많았다. 또 데일리미팅때마다 영어가 취약한 나는 me too만 무한 반복했는데, 캠프 종료를 삼일 남겨두고 두 문장 정도로 얘기를 했더니 다들 박수를 치며 난리가 났다. 그 다음 날 더 길게 얘기했더니, 여기 한달 있었으면 아마 책을 냈을거라고 했다.
한편 같이 간 친구와도 대판 싸워서 새벽 세시까지 울다가 잠이든 날도 있었다. 워크캠프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많이 되었던 건 당연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였다. 영어의 장벽은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겉돌게 만들고 그것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 조그만한 말 실수에도 크게 반응한다. 한국에서였으면 쿨하게 넘기다 못해 신경도 안썼을 문제에 대해, 유치하다는 걸 알면서도 크게 싸웠다. 평소 성격이 불같은 나는 다음 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캠프리더에게 말했고, 당황한 친구가 나를 데리고 내려가 새벽 세시까지 싸우다 풀다 싸우다 풀다를 반복했다. 나의 룸메이트들이 우리를 배려해 다른 방에 가서 잠을 자고 괜찮느냐고 몇 번을 되물어주었다. 다음 날 나는 눈이 너무 심하게 부어 아침부터 선글라스를 끼고 밥을 먹었다.
14일 간, 정말 크고 작은 일이 있었다. 사실 나는 영어가 너무 취약해 캠퍼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을 중요시 여기는 나는, 그들에 대해 애정이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느데 헤어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꽉 안아주어서라도 그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고 이 기억을 계속 붙잡아 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거리상의 문제, 문화의 차이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함께했던 기억들은, 분명 친구와 내가 이번 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지치고 힘들 때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