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우물 안 개구리, 세상을 만나다
CHILD'S GAMES AND ADVENTURE CAMP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교 1학년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워크캠프 후기가 담긴 책을 읽게 되었다. 평소 봉사활동과 해외여행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워크캠프는 딱 나를 위한 프로그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생활은 과제, 학점, 아르바이트, 자격증 등 챙겨야할 것이 너무 많아 워크캠프로 떠날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오게 되었고 이때다 싶어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봉사활동 중에서도 아동복지활동을 한국에서부터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다양한 분류중에서 KIDS 분야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만나게된 것이 이번 워크캠프 친구들과 비스마르의 순수함 그 자체인 아이들이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우리 팀은 리더를 포함해서 총 15명, 11개국에서 모였다. 정말 다양함 그 자체였다. 같은 나라에서 왔다고 같은 성향을 가진 것도 아니니 그냥 15개국에서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런 사람들이 처음 만나자마자 3주간을 함께 먹고 자고 활동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우린 참 잘 지냈다. 첫 번째 주엔 우리끼리 친해지는 시간과 다음 2주 간의 활동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거의 매일 자유시간이나 다름 없었다. 덕분에 워터 파크도 다녀오고 뭐 이런저런 부가 활동을 통해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캠프 단체에서 근교를 무료로 이동할 수 있는 카드도 지급받아 주말에는 친구들과 같이 근교여행을 하곤했다. 둘째 주엔 캠프지 바로 뒤에서 아이들과 활동을 진행했다. 우리들이 각자 한 부스 씩 맡아 진행하는 구성이었다. 독일어라고는 눈꼽만큼도 모르던 나는 어떻게 아이들에게 이걸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런데 첫 날 바로 느꼈다. 아이들과는 언어가 필요없다. 어차피 영어로 해도 못알아듣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가끔 한국어를 쓰기도 했다. 아이는 내게 독일어를 쓰고. 지금 생각하니 참 어이없고 난감한 상황이지만 그때 우리는 정말 의사소통이라는 걸 했고 진짜 즐거웠다. 그렇게 말이 안통하는데도 하루하루 지나고 한번한번씩 더 만나면서 우리는 정말 마음으로 가까워졌다.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잠시 잊고 지냈던 순수한 인간관계를 다시금 경험할 수 있었다. 머리가 커가면서, 생각이 많아지면서 사람 사귀는 것도 눈치봐가면서, 이해관계 봐가면서 싫어도 좋은 척, 좋아도 싫은 척, 가끔은 스트레스에 모든 것이 싫증나기도 했던 22살 지금 나의 인간관계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렇게 더 가까워 질 수록 아이들도 어떻게든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집에서 편지를 써오거나 그날 활동에서 만든 것을 우리게에 주거나 하기도 했다. 사실 내가 만들면 더 잘만들 수 있지만 그래도 정말 버릴 수 없는 아이들의 사랑. 두번째주 비스마르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날, 아이들과 눈물로 인사를 했다. 우리가 정리해야되서 몇번이고 가라고해도 안가고 의자랑 책상이랑 치우는걸 다 도와주고 어렵게 몇번씩 뒤돌아보며 발걸음을 옮기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아쉬운 인사를 하고 세번째주엔 비스마르 근처인 그레브스뮬른에서 활동을 했다. 처음엔 정말 아무 체계도 잡히지 않아서 매번 가서 센터에만 앉아있다가 아이들은 한 3명 만나고 오곤 해서 왜 이런가 했는데 이번이 캠프 진행이 처음이란다. 아이들이 너무 없는 바람에 있었던 활동도 취소되기도하면서 우리 역할을 많이 하지 못했는데도 이런 활동을 처음 접해본 아이들이라 그런지 더 우리에게 정을 많이 주고 마지막날엔 맨발로 기차역까지 따라나와 또 눈물로 배웅해 주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이고 어떤 기억일까. 더 잘해 줄 수 있는게 많았다면 좋았을텐데, 우리가 그 순수한 아이들의 눈물을 받을만큼의 자격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보면 어쩌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아이들. 독일의 그 시골 마을까지 가기란 쉽지 않고 다음에 간다해도 커버린 파스칼, 쟈스민, 세바스챤 등 우리 아이들을 찾기란 더욱 쉽제 않을 것이다. 그걸 알아서 더 아쉬웠던 헤어짐. 그걸 알아서 더 기억에 남는 정말 나의 아이들이다.
생활은 2인 1조로 한 웨건에서 지냈고 대신 같은 국적끼리는 못지내게 했다. 첫날 밤, 어찌할 바를 몰라 잠이 안오는데도 그냥 굿나잇 인사를 하고 자버렸던데 비해 나중에는 우리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한 웨건에서 여섯명씩 누워있곤 했다. 음식은 보통 각 국가의 음식을 하곤 했다. 사실 유럽같은 경우엔 서로서로 크게 다른 점이 없었지만 한국과 대만의 음식은 생소해서인지 특히 더 인기 만점이었다. 시간이 날때마다 발리볼이나 축구 등등 다양한 운동과 게임을 함께했고 밤에는 술도 좀 마시면서 노래틀어놓고 각국의 노래랑 춤을 배우기도 했다.
생활은 2인 1조로 한 웨건에서 지냈고 대신 같은 국적끼리는 못지내게 했다. 첫날 밤, 어찌할 바를 몰라 잠이 안오는데도 그냥 굿나잇 인사를 하고 자버렸던데 비해 나중에는 우리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한 웨건에서 여섯명씩 누워있곤 했다. 음식은 보통 각 국가의 음식을 하곤 했다. 사실 유럽같은 경우엔 서로서로 크게 다른 점이 없었지만 한국과 대만의 음식은 생소해서인지 특히 더 인기 만점이었다. 시간이 날때마다 발리볼이나 축구 등등 다양한 운동과 게임을 함께했고 밤에는 술도 좀 마시면서 노래틀어놓고 각국의 노래랑 춤을 배우기도 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지금 생각해보면 한명한명 다들 정말 특이하다. 그 친구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겠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정말 신선한 충격을 준 친구들이 많다. 고작 19살인데 이번 워크캠프가 7번째 참가인데다 지난 번엔 리더 까지 했었던 스테파노, 모든 하늘이 자신의 이불이라며 자유롭게 여행다니면서 워크캠프를 참가하는 야닉, 대학에서 책을 보며 공부하는 대신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원하는 언어를 직접 몸으로 공부하러다니는 여러 외국 친구들..내가 정말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과 조금만 다른 길을 가면 항상 마음이 조급해져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채 뒤쫓아가며 열등감만 느끼던 나였는데, 그럴 필요가 없구나, 인생은 내꺼구나 하는 걸 이제서야 제대로 깨달았다. 20년 후 티도 안날 6개월, 1년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며 끙끙 앓을 필요 없이 이제 남들보다 조금 늦어진다해도, 조금 뒤쳐진다해도 내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을 하며 살기로 했다. 처음에 이 활동을 신청한 이유는 정말 순전히 해외여행과 아이들이 좋아서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정말 큰 것을 얻은 것 같아 기쁘다.
그렇다고 우리 캠프가 처음부터 끝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난 이번 워크캠프가 처음이어서 원래 리더란 어떤 역할을 가지고 있는지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런 내눈에서 봐도 우리 리더들은 한 팀이라고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함께하지 않는 것 같았고 미리 캠프에 참여해봤던 친구들은 그전 리더들과 비교해 봤을때도 이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게 리더에 대한 안좋은 감정들이 조금씩 쌓여가던 중에 하루는 인터네셔널 데이라고 해서 아이들과 각 국가의 게임을 진행하는 날이 있었다. 이날은 독일인인 리더의 도움이 정말 절실히 필요했다. 그 전에는 짜여진 프로그램에 우리가 투입되는 식이었지만 이건 그 국가 친구들이 아니면 모두에게 새로운 게임이라 독일어로 아이들을 이해시켜줄 사람이 꼭 있어야했다. 특히 나랑 한국언니는 윷놀이를 준비했는데 한칸, 두칸 가는 건 설명할 수 있어도 잡고 업고 중간에 가로질러갈 수 있는 규칙등을 설명하기엔 너무 벅찼다. 그런데 정작 그날 우리는 리더들과 그리고 한명더 있었던 독일친구마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독일어를 공부하는 친구들이 시간날 때마다 짬짬히 와서 유창하겐 아니라도 몸까지 다 써가며 설명해주고서야 게임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때의 충격이 너무 크기도 했고 그 이후로도 우리가 활동을하고 돌아오면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리더의 모습도 많이 보여서 결국 우리는 날을 잡고 미팅을 했다. 너무 중구난방으로 비난하게 될 것을 방지하여 한명씩 돌아가면서 이 캠프를 신청했던 이유와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 우리가 개선해야할 것을 이야기했다. 모두들 이것이 비난하고자 하는 자리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활동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의지가 있었기에 미팅은 서로를 이해하며 앞으로를 다짐하며 잘끝났다. 여기서 느낀건 이런 갈등이 내가 한국사람이아닌 외국사람과 있어서 생긴게 아니라는 것이다. 항상 사람을 한국사람과 외국사람으로 분류짓던 나였는데 이제 그런 잣대 없이 한 사람, 사람으로 다가가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생각이 다른건 나라가 달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 사람과 내가 다를 뿐인 것이다. 한국사람도 서로 다들 다르듯이.
고작 3주였다. 한달도 채안되는 시간 동안 난 내 눈을 한꺼풀 벗겨낸 기분, 내 머릿 속에 올곧게 서있던 기둥들을 무너뜨린 기분이다. 친구들과 함께 마음을 맞추며 웃고 울고 했던 그 짧은 시간을 난 잊지 못할 것같다. 그리고 여기서 배운것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캠프가 처음부터 끝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난 이번 워크캠프가 처음이어서 원래 리더란 어떤 역할을 가지고 있는지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런 내눈에서 봐도 우리 리더들은 한 팀이라고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함께하지 않는 것 같았고 미리 캠프에 참여해봤던 친구들은 그전 리더들과 비교해 봤을때도 이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게 리더에 대한 안좋은 감정들이 조금씩 쌓여가던 중에 하루는 인터네셔널 데이라고 해서 아이들과 각 국가의 게임을 진행하는 날이 있었다. 이날은 독일인인 리더의 도움이 정말 절실히 필요했다. 그 전에는 짜여진 프로그램에 우리가 투입되는 식이었지만 이건 그 국가 친구들이 아니면 모두에게 새로운 게임이라 독일어로 아이들을 이해시켜줄 사람이 꼭 있어야했다. 특히 나랑 한국언니는 윷놀이를 준비했는데 한칸, 두칸 가는 건 설명할 수 있어도 잡고 업고 중간에 가로질러갈 수 있는 규칙등을 설명하기엔 너무 벅찼다. 그런데 정작 그날 우리는 리더들과 그리고 한명더 있었던 독일친구마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독일어를 공부하는 친구들이 시간날 때마다 짬짬히 와서 유창하겐 아니라도 몸까지 다 써가며 설명해주고서야 게임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때의 충격이 너무 크기도 했고 그 이후로도 우리가 활동을하고 돌아오면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리더의 모습도 많이 보여서 결국 우리는 날을 잡고 미팅을 했다. 너무 중구난방으로 비난하게 될 것을 방지하여 한명씩 돌아가면서 이 캠프를 신청했던 이유와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 우리가 개선해야할 것을 이야기했다. 모두들 이것이 비난하고자 하는 자리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활동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의지가 있었기에 미팅은 서로를 이해하며 앞으로를 다짐하며 잘끝났다. 여기서 느낀건 이런 갈등이 내가 한국사람이아닌 외국사람과 있어서 생긴게 아니라는 것이다. 항상 사람을 한국사람과 외국사람으로 분류짓던 나였는데 이제 그런 잣대 없이 한 사람, 사람으로 다가가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생각이 다른건 나라가 달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 사람과 내가 다를 뿐인 것이다. 한국사람도 서로 다들 다르듯이.
고작 3주였다. 한달도 채안되는 시간 동안 난 내 눈을 한꺼풀 벗겨낸 기분, 내 머릿 속에 올곧게 서있던 기둥들을 무너뜨린 기분이다. 친구들과 함께 마음을 맞추며 웃고 울고 했던 그 짧은 시간을 난 잊지 못할 것같다. 그리고 여기서 배운것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