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두려움을 넘어선, 잊지 못할 듀라벨

작성자 홍양의
프랑스 CONC 003 · RENO 2013. 07 DURAVEL

DURAVE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국제 워크캠프' 라는 단어는 텔레비전이나 책에서만 보던 것이였는데, 지금 내가 이렇게 참여를 하고 후기를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약 3달 전, 학교 공지를 확인하려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우연히 '2013학년도 하계 국제 자원봉사 워크캠프 장학생 공고' 라는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다.
그 때는 단순히 유럽여행을 가서 봉사까지 하고 오면 좋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지원을 한 것 같다.
내가 그 당시 지원할 수 있었던 국가는 유럽13개국 이였고, 나의 전공이 패션디자인이기 때문에 이로 유명한 파리, 즉 프랑스를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지원한 사실을 잊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혼자서 여행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던 나는 첫 여행이 유럽이라는 사실과 '영어를 쓰지 않는 국가에서 말이 통할 수 있을까, 아시아인이 나 혼자이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으로 불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나는 12시간이라는 긴 비행끝에, 프랑스 샤를 드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처음 샤를 드 공항에 도착했을 때, 경찰들이 총을 가지고 다니는 것만 봐도 무서웠고, 모든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 내가 여행까지 포함해 한 달간의 여정을 마치고 보고서를 쓰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평소 나는, 낯을 가리는 편이고 특히나 외국인과의 대화는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혼자서 다녀올 수 있었던 이유는 3주간의 워크캠프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캠프 첫 날에는,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도착했을 땐, 터키, 스페인, 프랑스 등의 국적 아이들이 각각 2명 이상 도착해 있었고 자신의 언어로만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에,나는 벙어리가 된 기분에 그 당일에는 정말 많이 울었다. 또한 와이파이도 쓸 수 없었고, 거의 유럽 아이들이였기 때문에, 문화가 너무 달랐다.
하지만 그렇게 3일, 나는 이대로 워크캠프를 재미없게 보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농구, 수영 같은 스포츠를 정말 싫어하는 나였지만,‘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친구들이 스포츠를 좋아하니 나도 좋아하려고 노력했다.
저녁에 농구를 하자고 하면 정말 열심히 했고, 수영을 하자고 하면 수영복은 못 입더라도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수영했다.
그렇게 내가 노력하니, 모두들 나에게 맘을 열어주었고 6일정도 되었을 때, 나는 친구들의 웃음을 담당하는 역할이 되어 있었다!
소통의 문제를 잘 해결하고 나니, 봉사활동에서 모두들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일은 매일 아침 8시에 기상하여 밥을 먹고, 10분 거리의 산에 올라가 성벽을 쌓는 일이였다.
먼저 기존의 성벽을 제거하고, 흙과 물을 섞어 만든 진흙을 평평하게 바른다.
그리고 나서 알맞고 무거운 평평한 돌을 찾아 쌓는 일이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돌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힘들었고, 그늘이 없다는 점과 처음에 리더와 우리와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힘들었다.
우리는 결국 식사 시간이 끝나고 불만을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고, 열심히 하지 않는 친구들과 싸우는 일도 발생했었다.
하지만 리더와의 회의를 통해 갈등을 풀고, 친구들과도 서운한 점을 사실대로 말하고 고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우리의 팀워크는 정말 나날이 늘어갔다. 나는 우리 워크캠프가 제일 팀워크가 좋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우리의 일과는 학교에서 아침을 먹고, 봉사활동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4시 정도 부터는 자유시간이였다.
아무 일정이 없는 날에는 근처 오피스에 가서 와이파이를 썼지만. 대부분은 강에 가서 카야크를 타거나, 파티에 초대받거나, 마을 행사를 갔다.
가끔 친구들과 행사를 구경 다녀오고 나면 술을 마시기도 했는데, 한번은 아주 취해서 다음날 봉사활동에서 우리 모두 안색이 창백해진 적이 있다! 아주 우스꽝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항상 밥을 숙소 근처 학교에서 먹었는데, 매일 다른 식사 당번 팀이 마트에서 장을 봐서 각 자신의 나라 전통음식을 만들어서 먹었다.
내가 주로 했던 요리는 불고기였는데, 무슬림 친구 2명이 돼지고기를 못 먹었기 때문에 나는 항상 소고기로 요리했다.
모든 음식을 고루 잘 먹는 나지만, 내가 좀 힘들었던 것은 주식인 쌀 대신 매일 바게트 빵을 먹는 것 이였다!
처음엔 치즈도 퀴퀴하고 빵도 딱딱하고 밥이 그리웠지만, 오히려 지금은 그때 먹었던 그 동그란 모양의 치즈와 씨리얼, 누텔라와 빵이 너무나 그립다.
듀라벨의 마을 사람들은 인정이 참 많았다. 매일 쉬는 시간마다 간식과 주스를 직접 만들어서 주셨고, 파티에 자주 초대해 주셨다.
함께 생활한 모든 사람들이 다 기억에 남지만, 석 자의 이름을 쓰는 나에겐 그들의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도미니크와 장 바티스, 로 커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한 할머니가 자주 아기를 데리고 오셨는데, 너무 귀여워서 사진도 많이 찍었었는데, 가끔씩 그 아기가 너무 보고싶다.
마지막 날, 우리는 바비큐 파티를 열었는데, 나는 미리 한국에서 준비해온 전통 복주머니를 모두에게 선물해주었다.
나는 울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결국엔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모두가 울기 시작했고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엔, 내 다른 워크캠프 친구들은 한국인이 또 있다고 하는데, 왜 나만 이렇게 혼자인걸까? 라는 불만으로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친해지고, 이 모든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던 건 오히려 나 혼자 한국인이였기 때문에 가능했었던 것 같다.
만약 또 다른 한국인이 있었다면, 편한 한국친구와 더 많이 말했을 것이기 때문에 더 친해질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나 또한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워크캠프에 참여하면서 알러지나 여러 상황들 때문에 불만을 토로한 적이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잊지 못할 추억들이였다. 듀라벨에서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캠프에서의 친구들과 너무 친해져서 지금도 페이스북과 스카이프로 통화와 메일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1년 뒤, 파리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고, 듀라벨에도 놀러가기로 약속했다.
나는 아시아와는 다른 친구들의 문화에 자주 충격을 받곤 했다. 일상이 모두 에피소드였고, 내 놀란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매일 웃었다.
우리는 ‘마니또’ 라는 게임을 2주 동안 했는데, 자신의 짝이 된 친구에게 몰래 선물이나 좋은 일들을 해주는 일이였다. 가끔 일을 마치고 오면, 매트리스에 사랑의 시와 꽃가지들이 침대에 가득 놓여있었고, 나중엔 무섭다며 누구의 행동일지 맞추며 폭소했던 기억이 있다.
나도 일하다가 배가 아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몰래 음식을 사서 훌리앙의 이불 속에 넣어놓곤 했는데, 훌리앙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몰래 웃음을 참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아직도 그 때의 편지들이 집에 있는데, 가끔씩 친구들이 그리워 질 때면 읽어보곤 한다. 영어도 잘 하지 못하는 내가 3주간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며 문화를 공유 했다는게 아직 믿기지 않는다.
헤어지는 날, 나는 기차가 새벽에 있어서 도미니크의 집에서 잤는데, 알 리가 배웅해주겠다며 잠을 자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했겠거니 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했는데, 알 리가 집 앞에 서있었다. 아직도 그때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정말 잠을 자지 않고 내 배웅을 위해 기다려준 것이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고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함께한 추억들이 통하지 않았나 싶다.
걱정 많고 낯을 가리던 성격이 워크캠프 후엔 아주 활발하게 변했고, 가끔씩은 길을 헤매는 외국인에게 직접 다가가 도움을 주기도 한다.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서로의 문화에 대해 공유할 수 있었고,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나중에 다시 워크캠프에 또 참여하고 싶고, 모두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