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이탈리아, 낯선 곳에서 찾은 나
Under the castl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학교에서 참가비를 지원해준다고 하여 막연하게 "스페인에 가고싶다."라는 생각과 함께 지원하게 됐다. 그리고 참가신청을 받을 당시에 여러 가지 일로 굉장히 힘이 들었었는데 국제워크캠프가 왠지 나에게 어떤 휴식과 재미를 되찾아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원하게 됐다. 이렇게 단순한 이유로 지원하게 됐지만 지원서를 작성하고 면접과정을 거치면서 워크캠프를 하고 난 후에는 나의 영어실력이 향상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오로지 나 혼자만 있을 때 내가 어떤 식으로 단체에 기여할 수 있는지, 내 새로운 면은 또 뭐가 있을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워크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내가 가고싶었던 나라는 스페인이었지만 지원이 완료된 상태였고, 1지망으로 벨기에를 지원했지만 그 또한 어렵게 되어 2지망인 이탈리아로 배정받게 되었다. 유럽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상태여서 유럽의 어떤 나라이든지 간에 기본적인 배경지식 이외에는 특별한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 배정 받고나서도 어안이 벙벙했던 것 같다.
나의 캠프에서 진행되었던 활동은 이탈리아 작은 마을에 있는 중세시대의 성을 사람들에게 개방하기 위해 보수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인포싯을 봤을 때는 장애인 아이들과 함께하는 활동이어서 아동학과인 나로서 많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마지막 인포싯에서는 성 보수활동이라고 적혀있어서 조금 당황했었다. 하지만 어찌됐건 내가 하기 나름이니까라는 생각에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었다.
처음 미팅포인트에서 캠프리더와 함께 이탈리아 현지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워크캠프를 참가한 다른 나라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영어도 서툰데 다른 학생들은 너무 유창하게 영어를 잘해서 처음부터 주눅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지냈던 캠프에는 나 혼자만이 한국인이어서 따로 의지할 곳도 없었다. 온전히 내가 헤쳐나가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처음 부터 캠프생활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11명의 외국학생들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먼저 봉사활동과 관련해서는 성 안에 쌓여있는 돌들과 여러가지 쓰지 못할 물건들, 판자들을 빼내고, 돌을 빼내고, 보기좋게 작은 자갈들을 바닥에 까는 그런 활동을 지속적으로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워낙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이기에 우리에게 설명해주시는 책임자 할아버지 분도, 같이 일하시는 분들도 우리에게 일해라 일해라 강요하진 않으셨다. 날이 더우면 쉬었다가 해라, 전갈이 나왔으니 조금 있다가 하자 등의 여유넘치는 봉사활동을 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그 마을의 기관에 여러 기관에 가서 점심식사도 같이 했었는데 이탈리아 음식을 맛보기에 그리고 어떤 기관이 있고, 어떤 것들을 즐기는지 등의 생활을 엿보는데 아주 좋은 기회였다.
두번째로 캠프생활-친구들과의 관계 관련해서는 첫째 주에는 정말 힘들었다. 친구들은 모두 유럽인이 었는데 세르비야 남자 2명, 스페인 남자 2명, 우크라이나 여자 2명, 러시아 여자 2명, 독일인 여자 1명 그리고 나와 이탈리아 캠프리더 1명 이렇게 였다. 일단 내가 영어가 많이 서툴렀기 때문에 같이 생활하는 친구들이 말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걸 내 말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래서 첫째 주에는 거의 감탄사와 간단한 한문장정도의 영어만 하고 우울하게 지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져서 말이다. 하지만 두번 째 주에 멕시코 친구 한 명이 캠프에 오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많은 캠프의 경험이 있어서 이미 한국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영어를 잘 못한 다는 것을 알아주고, 무시하는 것이 아닌 "너가 만약 틀리게 말하는게 있다면 내가 고쳐주겠다"이런식으로 친근감 있게 다가와줬다. 그래서 두번 째 주 부터는 그 친구와 함께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다.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많았고, 워낙 성격이 독특해서 마냥 즐거웠다. 그렇게 그 친구를 기점으로 내가 마음이 편해지자 다른 친구들도 점차 내가 영어를 잘 하지못한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맞춰서 이야기 해주거나 장난으로 놀리기도 하고 친근감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리고 프리데이가 있었는데 그 전날마다 같이 술마시고 놀고 하면서 더 친해질 수 있었고, 프리데이 날에는 근교마을에 같이 놀러가면서 특별한 경험과 관광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세번째 캠프생활-이탈리아의 문화 관련해서는 정말 많이 느끼고, 몸소 체험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주식이 밥이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이나 서양애들은 주식이 밀이기 때문에 항상 빵과 면 등을 주로 먹는데 정말 원없이 파스타, 피자, 빵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저녁은 팀을 이뤄 돌아가면서 준비했었는데 이를 통해 여러 나라의 음식들을 맛볼 수 있었다. 그래서 먹기 좋아하는 나는 여러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외국 문화에 대해 습득할 수 있었다. 보면 친구들은 항상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언제나 "자신"을 위해 생활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이는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거나 남을 많이 신경쓰는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런 다른 점들을 발견하면서 달라서 너는 틀려가 아닌 우린 그냥 다를뿐이야 라고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을 키울 수 있었다.
나의 캠프에서 진행되었던 활동은 이탈리아 작은 마을에 있는 중세시대의 성을 사람들에게 개방하기 위해 보수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인포싯을 봤을 때는 장애인 아이들과 함께하는 활동이어서 아동학과인 나로서 많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마지막 인포싯에서는 성 보수활동이라고 적혀있어서 조금 당황했었다. 하지만 어찌됐건 내가 하기 나름이니까라는 생각에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었다.
처음 미팅포인트에서 캠프리더와 함께 이탈리아 현지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워크캠프를 참가한 다른 나라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영어도 서툰데 다른 학생들은 너무 유창하게 영어를 잘해서 처음부터 주눅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지냈던 캠프에는 나 혼자만이 한국인이어서 따로 의지할 곳도 없었다. 온전히 내가 헤쳐나가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처음 부터 캠프생활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11명의 외국학생들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먼저 봉사활동과 관련해서는 성 안에 쌓여있는 돌들과 여러가지 쓰지 못할 물건들, 판자들을 빼내고, 돌을 빼내고, 보기좋게 작은 자갈들을 바닥에 까는 그런 활동을 지속적으로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워낙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이기에 우리에게 설명해주시는 책임자 할아버지 분도, 같이 일하시는 분들도 우리에게 일해라 일해라 강요하진 않으셨다. 날이 더우면 쉬었다가 해라, 전갈이 나왔으니 조금 있다가 하자 등의 여유넘치는 봉사활동을 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그 마을의 기관에 여러 기관에 가서 점심식사도 같이 했었는데 이탈리아 음식을 맛보기에 그리고 어떤 기관이 있고, 어떤 것들을 즐기는지 등의 생활을 엿보는데 아주 좋은 기회였다.
두번째로 캠프생활-친구들과의 관계 관련해서는 첫째 주에는 정말 힘들었다. 친구들은 모두 유럽인이 었는데 세르비야 남자 2명, 스페인 남자 2명, 우크라이나 여자 2명, 러시아 여자 2명, 독일인 여자 1명 그리고 나와 이탈리아 캠프리더 1명 이렇게 였다. 일단 내가 영어가 많이 서툴렀기 때문에 같이 생활하는 친구들이 말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걸 내 말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래서 첫째 주에는 거의 감탄사와 간단한 한문장정도의 영어만 하고 우울하게 지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져서 말이다. 하지만 두번 째 주에 멕시코 친구 한 명이 캠프에 오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많은 캠프의 경험이 있어서 이미 한국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영어를 잘 못한 다는 것을 알아주고, 무시하는 것이 아닌 "너가 만약 틀리게 말하는게 있다면 내가 고쳐주겠다"이런식으로 친근감 있게 다가와줬다. 그래서 두번 째 주 부터는 그 친구와 함께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다.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많았고, 워낙 성격이 독특해서 마냥 즐거웠다. 그렇게 그 친구를 기점으로 내가 마음이 편해지자 다른 친구들도 점차 내가 영어를 잘 하지못한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맞춰서 이야기 해주거나 장난으로 놀리기도 하고 친근감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리고 프리데이가 있었는데 그 전날마다 같이 술마시고 놀고 하면서 더 친해질 수 있었고, 프리데이 날에는 근교마을에 같이 놀러가면서 특별한 경험과 관광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세번째 캠프생활-이탈리아의 문화 관련해서는 정말 많이 느끼고, 몸소 체험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주식이 밥이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이나 서양애들은 주식이 밀이기 때문에 항상 빵과 면 등을 주로 먹는데 정말 원없이 파스타, 피자, 빵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저녁은 팀을 이뤄 돌아가면서 준비했었는데 이를 통해 여러 나라의 음식들을 맛볼 수 있었다. 그래서 먹기 좋아하는 나는 여러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외국 문화에 대해 습득할 수 있었다. 보면 친구들은 항상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언제나 "자신"을 위해 생활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이는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거나 남을 많이 신경쓰는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런 다른 점들을 발견하면서 달라서 너는 틀려가 아닌 우린 그냥 다를뿐이야 라고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을 키울 수 있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특별한 에피소드로는 먼저 기분 나빴던 것이 있는데 첫째 주에 다같이 있는자리에서 우크라이나 친구 한명이 나를 부르더니 "한국에서 정말 개를 먹어?"라고 물어봤다. 그래서 솔직하게 "예전에는 먹었지만 지금은 먹지 않아."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여자 친구 한명이 아니라 다같이 호기심을 가지면서 "먹으면 저런 pet을 먹어? 어떤 종류를 먹는거야?"라고 물어보길래 "난 먹어본적이 없어서 몰라."라고 대답했고, "먹으면 south가 먹어 north가 먹어?" 부터 시작해서 "너네 지역에서 어느 지역이 먹는 거야?" 등의 이제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약간 놀리는 투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때 당시 내가 정말 영어와 익숙하지 않은 상태여서 말도 잘 못하겠고, 설명도 잘 못해서 흐지부지 끝나버렸는데 그 이후로 어딜 놀러가서 개가 보이면 "kim!! hot dog~" 하면서 놀리기 시작했다. 그 때는 웃어넘겼지만 이게 계속 되자 기분이 나빠져서 한번은 정말 날잡고 자꾸 놀리는 세르비야 남자 친구에게 "우리가 정말 먹을 것이 없거나, 정말 살기 위해서 먹었던 거지 지금은 거의 먹지 않아. 이건 정말 진지한 거니까 놀리지마"라고 이야기했더니 그제서야 알겠다고 하면서 자기나라도 사실 말고기를 먹는 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때 나도 똑같이 "뭐!??? 너네 말고기를 먹어????? 정말이야? 말도안돼" 식의 반응을 해서 똑같이 놀려줬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는 잘 놀리지 않았다.
그리고 주마다 하루씩은 날을 잡아서 마을을 구경시켜주시곤 했는데 오래된 오페라 극장이 있었다. 거기에 설명해주시면서 피아노가 있었는데 누구 피아노 칠 수 있는 사람 없냐고 물어보셨는데 그 때 멕시코 친구가 나를 가리키며 얘 피아노 칠줄 안다고 하자마자 모든 시선이 나한테 쏠리면서 피아노 쳐보라고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잘 치지도 못하는데 그 오페라 극장에서 피아노를 쳤던 적이 있었다. 그 때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이탈리아 남자 친구가 나보고 이루마보다 너가 낫다고 말해줘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우리 캠프활동이 지역신문과 지역방송에 나오게 돼서 취재 하고, 사진도 엄청 많이 찍었던 것 같다. 그리고 캠프 끝나고 나서는 활동을 주최했던 eko camp 라는 곳에서 멤버쉽과 함께 뱃지, 패 등을 주셔서 우리가 한 활동보다 정말 많은 것을 받았다.
참가 후에 많은 것을 느낀 것 같다. 주마다 변화가 있었는데 첫째 주에 소극적이었던 내모습을 돌아봤을 때는 영어를 못하면 절대 여기에 오지 말라고 하고싶을 정도로 극단적이었다. 재미라곤 찾을 수 없었고 그저 힘들기만했다. 더군다나 러시아, 우크라이나 여자애들 즉 여자 친구들의 반 이상이 러시아 어를 쓰기 때문에 그들과 가깝게 지내기가 뭔가 벽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독일 친구하고만 다녔었는데 이런 융화되지 못함에 있어서 주눅들고, 자존감이 낮아지고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등의 부정적인 생각들만 하게 됐었다.
하지만 둘째 주부터 그 성격 활발한 멕시코 친구도 가깝게 지내게 됐고, 어느정도 서로를 알게되고 익숙해진다음부터는 내가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는 관계없이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첫째 주에는 잘해야겠다. 내가 여기서 무언가를 해야한다. 얻어야 한다. 라는 부담감이있었는데 둘째 주부터는 이게 점수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즐기면서 할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던 것 같다. 그래서 누가 하면 하고 누가 안하면 안하고 약간 의존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그 생각이후로는 "나로서" 생활할 수 있었다.
하고싶은 말은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주저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할 것! 이다.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고, 생긴 것이 다를뿐이기 때문에 그들도 내가 다가가지 않는 이상 다가오지 않는 간단한 사실을 난 잊고있었던 것 같다. 또한 언어가 잘 되지 않더라도 너와 이야기하고싶어, 너희와 소통하고 싶어 등의 뉘앙스와 조금의 말이라도 더 하게 된다면 진심은 통하는 것 같다. 그러니 주저하지말고 주눅들지말고 자신감 있게 생활했으면 좋겠다. 정말 짧은 2주였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다음에 지원하게되는 참가자들도 많은 것을 느끼고, 주저하지말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마다 하루씩은 날을 잡아서 마을을 구경시켜주시곤 했는데 오래된 오페라 극장이 있었다. 거기에 설명해주시면서 피아노가 있었는데 누구 피아노 칠 수 있는 사람 없냐고 물어보셨는데 그 때 멕시코 친구가 나를 가리키며 얘 피아노 칠줄 안다고 하자마자 모든 시선이 나한테 쏠리면서 피아노 쳐보라고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잘 치지도 못하는데 그 오페라 극장에서 피아노를 쳤던 적이 있었다. 그 때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이탈리아 남자 친구가 나보고 이루마보다 너가 낫다고 말해줘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우리 캠프활동이 지역신문과 지역방송에 나오게 돼서 취재 하고, 사진도 엄청 많이 찍었던 것 같다. 그리고 캠프 끝나고 나서는 활동을 주최했던 eko camp 라는 곳에서 멤버쉽과 함께 뱃지, 패 등을 주셔서 우리가 한 활동보다 정말 많은 것을 받았다.
참가 후에 많은 것을 느낀 것 같다. 주마다 변화가 있었는데 첫째 주에 소극적이었던 내모습을 돌아봤을 때는 영어를 못하면 절대 여기에 오지 말라고 하고싶을 정도로 극단적이었다. 재미라곤 찾을 수 없었고 그저 힘들기만했다. 더군다나 러시아, 우크라이나 여자애들 즉 여자 친구들의 반 이상이 러시아 어를 쓰기 때문에 그들과 가깝게 지내기가 뭔가 벽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독일 친구하고만 다녔었는데 이런 융화되지 못함에 있어서 주눅들고, 자존감이 낮아지고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등의 부정적인 생각들만 하게 됐었다.
하지만 둘째 주부터 그 성격 활발한 멕시코 친구도 가깝게 지내게 됐고, 어느정도 서로를 알게되고 익숙해진다음부터는 내가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는 관계없이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첫째 주에는 잘해야겠다. 내가 여기서 무언가를 해야한다. 얻어야 한다. 라는 부담감이있었는데 둘째 주부터는 이게 점수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즐기면서 할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던 것 같다. 그래서 누가 하면 하고 누가 안하면 안하고 약간 의존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그 생각이후로는 "나로서" 생활할 수 있었다.
하고싶은 말은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주저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할 것! 이다.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고, 생긴 것이 다를뿐이기 때문에 그들도 내가 다가가지 않는 이상 다가오지 않는 간단한 사실을 난 잊고있었던 것 같다. 또한 언어가 잘 되지 않더라도 너와 이야기하고싶어, 너희와 소통하고 싶어 등의 뉘앙스와 조금의 말이라도 더 하게 된다면 진심은 통하는 것 같다. 그러니 주저하지말고 주눅들지말고 자신감 있게 생활했으면 좋겠다. 정말 짧은 2주였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다음에 지원하게되는 참가자들도 많은 것을 느끼고, 주저하지말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