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우크라이나 스카우트 캠프, 야생에서 찾은 의미
Scoutville II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제가 참여한 위크캠프는 우크라이나에서 열리는 스카우트 캠프였습니다. 친구가 1학년 여름방학 때 남미에 워크캠프를 다녀와서는 정말 좋았다고 추천을 해주어서 워크캠프에 참여할 결심을 했었습니다. 이 주간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 주요 활동이라고 공고문에 적혀있었습니다. 아이를 좋아하고, 또 교환학생 시기에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우크라이나 사람이어서 친구를 만나러 갈 겸, 옛 USSR의 흔적이 남아있을 우크라이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워크캠프를 신청했었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처음에 도착했을 때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었습니다. 분명히 공고문에는 공용어가 영어이므로 영어에 능통한 사람을 뽑는다고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 Administration쪽에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사람이었고, 아이들의 98%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달랑 물탱크 하나만 설치되어있는 샤워시설, 구덩이를 파 놓은것이 전부인 칸막이 없는 화장실. 얇은 메트리스 하나 위에 침낭을 깔고 지내야했던 텐트생활. Volunteer는 저까지 합해서 2명인 상황. 이 곳에서 2주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했었습니다.
이곳의 생활은 아침 8시에 아침운동으로 시작해서 아침->단체활동->점심->Siesta->단체활동->저녁->단체활동->캠프파이어->취침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영어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아이들과 함께 야외에서 하는 활동을 주도했었고, 때때로 부엌에가서 일손을 돕거나 화장실 청소를 도왔습니다.
저는 2주간의 캠프동안 항상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2주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Administration과는 전혀 의사소통이 안되었기에, 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이들이었습니다. 비록, 말은 제대로 통하지 않았지만, 항상 호기심에 가득찬 얼굴로 저에게 다가와서 수줍게 hi하고 사탕을 쥐어주고 가던 아이들. 저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쳐 주던 아이들. 아이들이 없었다면, 프라이데이가 나타나기 전의 외롭던 로빈손 크루소의 심정과 같았을 것입니다.
이곳의 생활은 아침 8시에 아침운동으로 시작해서 아침->단체활동->점심->Siesta->단체활동->저녁->단체활동->캠프파이어->취침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영어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아이들과 함께 야외에서 하는 활동을 주도했었고, 때때로 부엌에가서 일손을 돕거나 화장실 청소를 도왔습니다.
저는 2주간의 캠프동안 항상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2주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Administration과는 전혀 의사소통이 안되었기에, 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이들이었습니다. 비록, 말은 제대로 통하지 않았지만, 항상 호기심에 가득찬 얼굴로 저에게 다가와서 수줍게 hi하고 사탕을 쥐어주고 가던 아이들. 저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쳐 주던 아이들. 아이들이 없었다면, 프라이데이가 나타나기 전의 외롭던 로빈손 크루소의 심정과 같았을 것입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2주간 스카우트 캠프에서 정말 많은 새로운 경험을 했었습니다. 어릴 적, 학교 운동장에서 텐트치고 하루밤 자는 것이 다였던 걸스카우트 캠프만 경험했던 제가, 2주간 야생에서 진정한 스카우트 생활을 했었고, 처음으로 카누도 타는 등등 많은 경험을 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Korean Day'를 개최한 것입니다. 그 곳에 있던 천과 바느질 도구로 직접 한복(형태를 갖춘)을 만들고, 직접 나뭇가지를 잘라서 윷을 만들고, 태극기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한국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같이 체험을 하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만드려고 참기름,김,깨소금 등 주먹밥 재료도 준비해갔었지만, 캠프 측에 냉장고가 없는 관계로 계란을 지급하지 못하겠다고 당일 아침에 말해주어서 결국 주먹밥 만들기는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생소한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같이 간단한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어로 대화를 나눠보고, 윷놀이도 하면서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었습니다. Korean Day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코너는 예상외로 예쁜 색지에 아이들 각자 이름을 한국어로 써주는 코너였습니다. 색지에 한국어로 적힌 자신들의 이름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통하는 이곳에서 2주를 어떻게 지낼까 막막했었습니다. 하지만 빠르게든,느리게든, 시간은 지나갔고, 스카우트 캠프에서의 2주는 제게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어디서든 적응하고 지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 말도 안통하고, 생활 시설도 정말 열악했던 그 곳에서도 적응해서 지낼 방도는 있었으니, 이제는 어디서든 잘 지낼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솔직히 저는 한국 국제워크캠프에서 왜 이곳을 프로그램에 넣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남미로 워크캠프를 다녀온 친구의 강력한 추천으로 워크캠프를 신청하였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현실에 많은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우크라이나의 다른 곳으로 워크캠프를 했었던 친구는 정말 좋았다고 평을 하는 것을 보아서는 워크캠프 자체의 문제는 아닌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2주동안 캠프에서 아이들의 절반정도가 중도 하차하였고, 같이 Volunteer로 왔던 스페인 친구는 이런 곳인 줄 알았더라면 비행값을 들여서 오지 않았을 거라는 말도 했었습니다. 저는 유럽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바로 참여한 것이어서 버스를 타고 가느라 교통비가 별로 안들었고, 2주간 처음에는 오기로 버티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소소한 정이 들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비행기 값을 치루고 이 워크캠프를 참여하기 위해서 오는 것은 막고싶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통하는 이곳에서 2주를 어떻게 지낼까 막막했었습니다. 하지만 빠르게든,느리게든, 시간은 지나갔고, 스카우트 캠프에서의 2주는 제게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어디서든 적응하고 지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 말도 안통하고, 생활 시설도 정말 열악했던 그 곳에서도 적응해서 지낼 방도는 있었으니, 이제는 어디서든 잘 지낼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솔직히 저는 한국 국제워크캠프에서 왜 이곳을 프로그램에 넣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남미로 워크캠프를 다녀온 친구의 강력한 추천으로 워크캠프를 신청하였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현실에 많은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우크라이나의 다른 곳으로 워크캠프를 했었던 친구는 정말 좋았다고 평을 하는 것을 보아서는 워크캠프 자체의 문제는 아닌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2주동안 캠프에서 아이들의 절반정도가 중도 하차하였고, 같이 Volunteer로 왔던 스페인 친구는 이런 곳인 줄 알았더라면 비행값을 들여서 오지 않았을 거라는 말도 했었습니다. 저는 유럽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바로 참여한 것이어서 버스를 타고 가느라 교통비가 별로 안들었고, 2주간 처음에는 오기로 버티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소소한 정이 들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비행기 값을 치루고 이 워크캠프를 참여하기 위해서 오는 것은 막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