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겁쟁이, 프랑스에서 용기를 얻다
LA MOTTE-SERVOLEX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어떤 일을 할 때 겁 많고 항상 망설임에 뒤쳐져 제대로 해본 적 없었던 나를 어디론가 내몰고 싶었고 나에게는 그 시작점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내가 더 빨랐다. 새로운 경험에 목말라 하던 나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워크캠프에, 그 중 한달도 안남았던 프랑스로의 워크캠프에 참가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두달 전의 그 선택은 나에게 앞으로 계속해서 그리워할 기억과 나답지 않음을 남겨주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파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chambery 까지 TGV를 타고 오며 난 여전히 모든 것이 신기했지만 한편으로 생소했고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만나기 바로 전까지도 혼자서 이미 벽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에서 처음 만난 두명의 프랑스인 리더 Serge와 David,터키소녀 Burcu와 Tukmann은 스스럼없는 미소는 더 이상의 내 쓸모없는 노동에서 벗어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후의 모든 시간들이 그랬고 나머지 모든 일원들이 그랬다. 그들의 노력에도 나는 특히 언어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로 내 스스로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나이로 31살, 나와는 9살차이의 스페인의 큰 형님인 Luis miguel의 천진난만함과 익살스러운 행동에 나에게 있던 차이라는 이름의 두려움이 호기심으로 바뀌게 되었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우리의 팀은 마을의 체육시설을 지원받아 그곳에서 생활을 했다. 사방이 거울인 댄스룸이 남녀구분없이 우리의 침실이었고 샤워실과 화장실, 부엌이 딸린 건물에서 3주를 보냈다. 아침이 되면 마을 빵집에서 갓 만든 따끈따끈한 바게뜨와 시리얼,우유 등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크게, 우리가 머물던 마을 La Motte-Servolex의 시설을 보수하고 마을 체육관의 페인트 칠을 하고 주변교회 입구를 따라 벽돌 까는 일, 이 세가지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은 수월했고 오전중으로 끝이 났다. 날마다 바뀌는 요리팀이 점심과 저녁을 준비했는데 워크캠프를 마쳐갈 즈음에는 파리에서 요리를 공부하는 멋진 청년인 Cyril 에게 요리를 많이 의존하기도 했다.
우리의 팀은 마을의 체육시설을 지원받아 그곳에서 생활을 했다. 사방이 거울인 댄스룸이 남녀구분없이 우리의 침실이었고 샤워실과 화장실, 부엌이 딸린 건물에서 3주를 보냈다. 아침이 되면 마을 빵집에서 갓 만든 따끈따끈한 바게뜨와 시리얼,우유 등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크게, 우리가 머물던 마을 La Motte-Servolex의 시설을 보수하고 마을 체육관의 페인트 칠을 하고 주변교회 입구를 따라 벽돌 까는 일, 이 세가지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은 수월했고 오전중으로 끝이 났다. 날마다 바뀌는 요리팀이 점심과 저녁을 준비했는데 워크캠프를 마쳐갈 즈음에는 파리에서 요리를 공부하는 멋진 청년인 Cyril 에게 요리를 많이 의존하기도 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프랑스에서는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을 기념하는데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에피소드는 이 날보다 이틀 앞선 금요일 밤의 일이다. 벌써 이 캠프의 반이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우리의 숙소 앞 잔디 밭과 벤치에 별빛 아래 앉아 맥주와 농담을 섞고 있었다. 그런데 저쪽 하늘에서 폭죽놀이가 시작되었고 프랑스인 리더 Serge와 David은 우리에게 프랑스혁명이 주말이라 그것을 앞당겨 기념하는 폭죽놀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장난끼 많던, 약간의 알코올로 신났던 그들은 프랑스 국가 La Marseillaise를 큰 소리로 부르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또 한명의 신난 사람, 나는 큰소리로 애국가를 불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장난스런 분위기였지만 나의 행동은 자칫 무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나의 장난을 여유로운 존중의 웃음으로 받아주었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와 또 다른 한국인 캠퍼 혜은이의 애국가가 끝나고 우리는 터키의 국가를 청했고 터키인 2명은 스페인국가를 청했다. 그렇게 프랑스, 캐나다의 국가가 흘러나왔고 수줍음많던 대만인 Lucy까지 모든 이들의 격려로 자신의 국가를 마쳤다. 서로에 대한 열정적인 박수와 허울없던 웃음의 폭죽은 밤새도록 터져나왔다. 이후 2주동안 더 좋은 기억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다. 위와 같은 특별한 에피소드보다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3주동안 같은 삶을 공유했다는 사실이다. 특별하지 않은, 같은 시간 잠에서 깨고 같은 밥을 먹는 소소한 일상을 함께하고 나누었고 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던 존중과 배려는 무엇보다도 값진 경험이었다.
그리고 내가 깨달은 것. 앞서 얘기했다시피 나와 다른사람을 가로막던 것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겁많은 나였다. 그들의 용기와 따뜻함은 나에게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었고 무너뜨려 주었다. 그리고 난 그들의 용기를 배웠다. 워크캠프 이후 잠깐의 여행에서 나는 호스텔에 묵으며 다른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스스럼없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워크캠프를 통한 배움 덕이었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데 망설임으로 가득 차 있던 과거의 나를 비난할 수 있는 것은 내 자신이 그것을 하는데 있어서 망설임보다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준 소중한 사람들이 내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깨달은 것. 앞서 얘기했다시피 나와 다른사람을 가로막던 것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겁많은 나였다. 그들의 용기와 따뜻함은 나에게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었고 무너뜨려 주었다. 그리고 난 그들의 용기를 배웠다. 워크캠프 이후 잠깐의 여행에서 나는 호스텔에 묵으며 다른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스스럼없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워크캠프를 통한 배움 덕이었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데 망설임으로 가득 차 있던 과거의 나를 비난할 수 있는 것은 내 자신이 그것을 하는데 있어서 망설임보다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준 소중한 사람들이 내게 생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