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낯선 곳에서 찾은 힐링
BRAMEVAQU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에 워크캠프 포스터를 보았을 때에는 워크캠프? 말 그대로 봉사를 하면서 함께 어울리는 캠프생활을 뜻한다. 무척 나에겐 흥미로운 단어였다. 평소에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부모님과 봉사활동에 참가 했었지만 고등학교때에는 수능이라는 핑계로 봉사활동을 하지 못하였었다. 하지만 학교 생활과 알바의 병행으로 지친 나는 봉사를 통한 힐링이 필요하였고 대학교 입학 때 부터 해외 봉사를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무작정 특별한 계획도 생각도 없이 지원하였고 나는 프랑스 BRAMEVAQUE라는 곳에서 워크캠프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프랑스는 기온차가 굉장히 심한 나라로 유명하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에 무거운 짐을 이끌고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베이스캠프를 찾아갔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가파른 산 속에 위치한 베이스캠프는 마땅한 화장실 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모두 재래식 이었으며 가끔 쥐가 나온다는 진심아닌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베이스캠프를 보고 내가 이곳에서 잘 견뎌낼 수 있을까라는 살짝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한번도 생활해 본 적 없는 낯선 사람들과의 생활이 무섭기도 하였다. 그렇게 걱정되는 마음으로 첫날이 지나갔다. 두번째 날 부터는 서로에 대해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채 일을 시작했다. 내가 봉사했던 일은 잡초를 제거하고 돌로 성벽을 쌓고 지붕을 개조하며 시멘트 칠을 하는 일을 주로 했다. 처음에는 잡초를 제거해 본 적이 없어서 멋모르고 나시에 짧은 바지를 입고 봉사를 하다가 풀독에 걸린 적도 있었다. 그러다 점점 노하우가 생겼고 점점 많은 일을 하게 되면서 마지막 주에는 지붕 개조하는 일을 하면서 기계를 다룰 줄도 알게 되었다. 캠프 리더가 차별없이 내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여도 끝까지 알려주며 여러가지 일을 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일은 성벽을 쌓는 일이였다. 하루종일 땡볕에서 성벽을 쌓는 것이 힘이들기도 하였지만 크고 무거운 돌로 주춧돌을 세우고 그위로 돌을 쌓아가는 것이 하루하루 담벽이 완성되는 모습에 매우 뿌듯하였다. 돌을 쌓고 그 위에 시멘트로 덧칠하는 작업도 무척 재미있었다. 오랜시간동안 작업을 해야 완벽하게 마무리는 되는 작업이기에 더욱더 그 작업에 애착이 갔고 흥미로웠다.
작업을 제외한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 각 국의 나라별로 대표음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만든 음식은 불고기, 삼계탕, 호떡이었다. 그리고 디저트로 한국 소주를 가져갔다. 각국의 사람들끼리 대표음식을 요리하는 모습도 재미있었고 함께 서로 맛을 봐주며 조언도 해주는 것이 재미있었다. 또 마을 사람들이 와서 한국 음식을 먹어보고 무척 맛있다며 칭찬을 해주실 때에는 기쁨이 배가 되었다. 외국 사람들은 매운음식을 잘 못먹기 때문에 달콤한 불고기와 호떡은 단연 베스트 음식이었다. 서로의 레시피도 알려주며 한국 국기도 설명해 주었을 때에는 무척 한국인으로써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또한 월드스타 싸이 덕분에 강남스타일 춤도 추며 한껏 분위기를 돋구어 보기도 하였다.
덴마크, 독일, 영국, 스위스, 러시아, 체코..각국의 다른 나라사람들이 모여 서로 다른 음식, 생활습관, 언어 등을 맞추기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이해를 못한 부분이 있어도 끝까지 설명해 주고 힘든 작업이 있으면 자기작업을 멈추고 도와주고 다른 문화를 외면하기 보다는 이해하고 받아주는 모습이 같은 봉사자지만 봉사 이외의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각국의 사람들의 문화를 알려주고 배우면서 가보지 않아도 그 나라를 느낄 수 있었다. 봉사가 힘들었지만 함께한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더 봉사기간이 길었으면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서로 봉사도 열심히 하고 자기가 맡은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따뜻한 BRAMEVAQUE의 추억이다.
작업을 제외한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 각 국의 나라별로 대표음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만든 음식은 불고기, 삼계탕, 호떡이었다. 그리고 디저트로 한국 소주를 가져갔다. 각국의 사람들끼리 대표음식을 요리하는 모습도 재미있었고 함께 서로 맛을 봐주며 조언도 해주는 것이 재미있었다. 또 마을 사람들이 와서 한국 음식을 먹어보고 무척 맛있다며 칭찬을 해주실 때에는 기쁨이 배가 되었다. 외국 사람들은 매운음식을 잘 못먹기 때문에 달콤한 불고기와 호떡은 단연 베스트 음식이었다. 서로의 레시피도 알려주며 한국 국기도 설명해 주었을 때에는 무척 한국인으로써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또한 월드스타 싸이 덕분에 강남스타일 춤도 추며 한껏 분위기를 돋구어 보기도 하였다.
덴마크, 독일, 영국, 스위스, 러시아, 체코..각국의 다른 나라사람들이 모여 서로 다른 음식, 생활습관, 언어 등을 맞추기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이해를 못한 부분이 있어도 끝까지 설명해 주고 힘든 작업이 있으면 자기작업을 멈추고 도와주고 다른 문화를 외면하기 보다는 이해하고 받아주는 모습이 같은 봉사자지만 봉사 이외의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각국의 사람들의 문화를 알려주고 배우면서 가보지 않아도 그 나라를 느낄 수 있었다. 봉사가 힘들었지만 함께한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더 봉사기간이 길었으면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서로 봉사도 열심히 하고 자기가 맡은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따뜻한 BRAMEVAQUE의 추억이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참가자 중에 ELENA라는 친구가 있었다. 가장 나이가 어린 참가자이기도 했던 이 친구의 생일을 캠프 생활 도중에 맞게 되었다. 어느 정도 친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 다같이 깜짝 생일파티를 해주기로 하였다. 생일 하루전 저녁을 먹은 후 모두들 샹그리아를 마시며 각자의 생각, 신념 등을 얘기하며 우리는 자정의 12시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즐기는 사이 캠프 리더의 몇몇 참가자들은 성의 옥상에서 촛불을 켜고 생일 케잌을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11시 50분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ELENA에게 야경을 보자며 성의 옥상으로 가자고 그녀를 꼬드겼다. 함께 올라간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감동스러워하였다. 그녀의 눈물 속에서 비록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함께 힘든일을 도와가며 봉사했던 그 시간들과 함께 생활했던 시간들이 가슴속으로 느껴지고 말하지 않아도 여러가지 그녀의 마음이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날 하루 만큼은 서로 다같이 음악을 틀고 즐기며 각자 준비한 선물도 주고 함께 준비한 선물도 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너무나 뜻깊고 아직도 잊지 못한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봉사를 하면서 가장 큰 느낀점은 내가 지금까지 "참 이기적으로 살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캠프의 각국의 봉사자들은 아무리 힘든일이여도 서로 앞다투어 먼저 하겠다고 나서며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땡볕에서 하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고 가끔 투정아닌 투정을 부리고 했다. 어느날 한 가장 나이 많은 참가자와 얘기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참가자와 대화를 하다가 일이 힘들지 않냐고 내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의 대답은 "물론 일이 힘들지만 나의 일이 후에 누군가에겐 큰 도움이 될 상상을 하면 힘들어도 꿋꿋히 하게 된다." 라는 대답을 들은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정말 봉사하는 마인드로 이곳에 왔는데 내가 느낀 그대로 표현하고 투정부렸던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항상 남보단 나를 생각했고 팀원보단 나를 생각했던 나였기에 그 대답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캠프 생활, 캠프 후에도 나의 이기적이었던 생각들을 바꾸고 실천하려 많이 노력하고 있다.
나에겐 더없이 좋은 기회였던 워크캠프, 처음엔 "어? 프랑스? 우와 너무 가보고싶다. 봉사도 할 수 있고 너무나 좋은 기회야!" 이런 생각으로 워크캠프를 지원하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만으로 지원하기에는 BRAMEVAQUE의 생활환경은 너무나 좋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 또한 우리에게 큰 지원과 기대를 하였다. 그 곳 사람들 또한 깊은 봉사의 마인드로 이 캠프의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어느누구하나 일에서 대충빠지지 않으려 하며 힘든일은 먼저 나서서 하는 사람들이었다. 단순히 유럽이라서 여행할 수 도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오는 것은 안일한 생각일 수 있다. 워크캠프는 봉사에 대한 생각과 나보단 남을 배려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신청이 간절하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나에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배운 점 또한 많다. 좋은 경험이고 대학생활의 잊지 못할 추억이므로 봉사 마인드만 있다면 누구나 추억의 한장면을 그려나가 보길 바란다.
봉사를 하면서 가장 큰 느낀점은 내가 지금까지 "참 이기적으로 살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캠프의 각국의 봉사자들은 아무리 힘든일이여도 서로 앞다투어 먼저 하겠다고 나서며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땡볕에서 하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고 가끔 투정아닌 투정을 부리고 했다. 어느날 한 가장 나이 많은 참가자와 얘기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참가자와 대화를 하다가 일이 힘들지 않냐고 내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의 대답은 "물론 일이 힘들지만 나의 일이 후에 누군가에겐 큰 도움이 될 상상을 하면 힘들어도 꿋꿋히 하게 된다." 라는 대답을 들은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정말 봉사하는 마인드로 이곳에 왔는데 내가 느낀 그대로 표현하고 투정부렸던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항상 남보단 나를 생각했고 팀원보단 나를 생각했던 나였기에 그 대답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캠프 생활, 캠프 후에도 나의 이기적이었던 생각들을 바꾸고 실천하려 많이 노력하고 있다.
나에겐 더없이 좋은 기회였던 워크캠프, 처음엔 "어? 프랑스? 우와 너무 가보고싶다. 봉사도 할 수 있고 너무나 좋은 기회야!" 이런 생각으로 워크캠프를 지원하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만으로 지원하기에는 BRAMEVAQUE의 생활환경은 너무나 좋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 또한 우리에게 큰 지원과 기대를 하였다. 그 곳 사람들 또한 깊은 봉사의 마인드로 이 캠프의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어느누구하나 일에서 대충빠지지 않으려 하며 힘든일은 먼저 나서서 하는 사람들이었다. 단순히 유럽이라서 여행할 수 도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오는 것은 안일한 생각일 수 있다. 워크캠프는 봉사에 대한 생각과 나보단 남을 배려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신청이 간절하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나에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배운 점 또한 많다. 좋은 경험이고 대학생활의 잊지 못할 추억이므로 봉사 마인드만 있다면 누구나 추억의 한장면을 그려나가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