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산골, 고된 노동 속 피어난 우정
SAINT ALBAN LEYSS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사실 이건 나의 두번째 워크캠프다.
첫 워크캠프는 내가 20살무렵이었는데, 사실 이번 워크캠프와는 조금 간격이 있었다.
당시 재미도 있었고, 다른 문화를 가진 친구들과의 교류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이... 당시에도 지역주민들과의 교류가 꽤 있었지만, 프랑스어만 사용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더불어 첫 캠프의 구성원 대부분이 프랑코폰이라는 슬픈현실은 즐거워야 할 교류시간을 고난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바쁘기도 했지만, 그런 망설임이 두번째 캠프의 참가를 늦춘 것 같다.
하지만, 외국인으로써 여행만으로 한 나라에 또 한 지역에 정을 붙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워크캠프만큼 프랑스인을 비롯한 현지인이 외국인 방문객에게 쉽게 자신들의 공동체를 개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다시 참가를 결정했다.
여러 국가들과 지역들을 고려해보고. 막연히 산을 끼고 있는 지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이유로 고르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이 워크캠프는 나의 3지망이었다. 공동체내에서 문화교류는 이미 나의 첫 워크캠프와 겹치는 부분이다. 물론 난 내 첫 워크캠프가 무척 좋았지만... 문화재 복원이나 사회사업분야에도 흥미가 있었기때문에 아쉬움도 남았다. 하지만 이왕이렇게 된 거 자연속에서 쉬다 와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짐을 꾸렸다. 그리고 이건 착각이었다...
첫 워크캠프는 내가 20살무렵이었는데, 사실 이번 워크캠프와는 조금 간격이 있었다.
당시 재미도 있었고, 다른 문화를 가진 친구들과의 교류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이... 당시에도 지역주민들과의 교류가 꽤 있었지만, 프랑스어만 사용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더불어 첫 캠프의 구성원 대부분이 프랑코폰이라는 슬픈현실은 즐거워야 할 교류시간을 고난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바쁘기도 했지만, 그런 망설임이 두번째 캠프의 참가를 늦춘 것 같다.
하지만, 외국인으로써 여행만으로 한 나라에 또 한 지역에 정을 붙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워크캠프만큼 프랑스인을 비롯한 현지인이 외국인 방문객에게 쉽게 자신들의 공동체를 개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다시 참가를 결정했다.
여러 국가들과 지역들을 고려해보고. 막연히 산을 끼고 있는 지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이유로 고르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이 워크캠프는 나의 3지망이었다. 공동체내에서 문화교류는 이미 나의 첫 워크캠프와 겹치는 부분이다. 물론 난 내 첫 워크캠프가 무척 좋았지만... 문화재 복원이나 사회사업분야에도 흥미가 있었기때문에 아쉬움도 남았다. 하지만 이왕이렇게 된 거 자연속에서 쉬다 와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짐을 꾸렸다. 그리고 이건 착각이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원래 어떤식으로 일이 주어지는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캠프리더는 우리가 보다 다양한 활동을 하길 원했다.
애초에 우리가 이 마을에서 맡은 역할은 온갖일에 다 데려다 써도 되는 잡역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체험 삶의 현장'쯤이랄까? 일은 힘들었지만, 실제로 우리가 큰 도움이 되었을진 모르겠다.
우리의 일은 늘 마을 주민들과 함께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매번 바꼈지만, 작은 도시인 만큼 종종 마주치고 인사하고 익숙해져갔다.
우선 우리는 산 중턱에 있는 오래된 오븐주위를 청소하고, 주변 터를 닦는 일을 했다.(그 전 몇일간은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르며, 물에 실려내려온 나무와 돌을 정리하고, 잡초를 제거하는 일도 했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고아원 보수일을 도왔다.(아이들과 잠깐 놀아주는 시간도 가졌다)
또 도로변 잡목제거도 하고, 도로변에 있는 팬스를 새로 페인트 칠하는 일도 했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많은 일을 한 것 같지만... 고아원일을 제외한 나머지일. 특히 오븐 주변터를 닦는 공사는 정말 요령이 필요한 공사였기때문에 우리가 한 일은 돌을 나르고, 땅을 파고, 흙을 메꾸고... 적어보니, 꽤 도움이 된 것같다.
이곳은 이미 대략 6번정도의 봉사자들을 이미 받아왔던 곳이라, 어느정도의 틀이 잡혀있어 많은 배려를 받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이킹 슈즈와 안전모, 장갑등을 제공받았는데,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봐서 신나면서도 '대체 무슨 일을 시킬려고!!'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도착 두째날 시청에서 공식적으로 마을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이곳 쌩알방레쎄와 셩베리에서 제공해주는 관광자료, 교통권, 개인 자전거등을 제공 받았는데... 사실 너무 큰 환대라서 어리둥절 했다.
우린 교회소유의 시설에서 머물렀는데, 커다란 방안에서 매트를 깔고 다같이 자는 거라 코고는 친구덕에 조금은 잠을 설쳤지만 매일매일 정말 캠프 온 기분이었다. 샤워실은 건물 맞은편 축구장에 있는 락커룸을 이용했는데... 주거를 위한 곳이 아니기에 처음엔 당연히 불편했지만, 1주가 지나고 시간이 감에 따라 정말 집같이 느껴졌다. 시설이기에 커다란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뒤엔 잔디밭도 있었는데... 일이 끝난 오후엔 잔디밭에 앉아 기타도 치고, 책도 읽으면서 뒹글거렸다.
물론... 대부분의 오후에는 일정이 있었다.
우린 일말고도, 해야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이 지역 탐험!
밑에 보이는 특별한 에피소드에 적어야 하지만... 사실 나는 도착하고 2틀 뒤 자전거에서 넘어져서 크게 다쳤다. 실제론 크게 다친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시작한 육체노동과 급격히 오른 온도탓에(첫주엔 거의 40도 가까이 올랐었다) 몸도 지치고, 상처도 진물이 심해서... 이러면 안되지만, 리더에게 대놓고 짜증을 많이냈다. 그 덕에 나는 독일어로 '하이킹이 싫어요'라는 말을 배웠다.(물론 리더는 프랑스인이었지만, 대놓고 영어와 프랑스어론 말할 수 없었다...) 아무튼 우리는 산은 정말 질리도록 만났다. 일도 산에서 하고, 여가도 산을 오르면서 보내고. 산위에 빙하녹은 호수에서 수영하고, 산에 둘러쌓인 숙소에서 살고!
그리고 마을 주민들은 우리들에게 산들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했다. 물론... 프랑스어로...-_-;;;ㅎㅎㅎ
할아버지 같던 호베, 프랑스어 농담을 가르켜준 졍흐네, 나는 프랑스어로 말하고 있지 않다던 갸스통, 매일 샴페인을 가져오던 피호, 아들이 우리동네 산다던 쟝피에흐, 내 팔을 치료해준 마르고할머니등등 캠프구성원들도 모두 좋았지만, 마을 주민들과도 추억이 쌓이고 기억을 주고받았던 점이 참 신기했다.
그러나, 우리 캠프리더는 우리가 보다 다양한 활동을 하길 원했다.
애초에 우리가 이 마을에서 맡은 역할은 온갖일에 다 데려다 써도 되는 잡역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체험 삶의 현장'쯤이랄까? 일은 힘들었지만, 실제로 우리가 큰 도움이 되었을진 모르겠다.
우리의 일은 늘 마을 주민들과 함께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매번 바꼈지만, 작은 도시인 만큼 종종 마주치고 인사하고 익숙해져갔다.
우선 우리는 산 중턱에 있는 오래된 오븐주위를 청소하고, 주변 터를 닦는 일을 했다.(그 전 몇일간은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르며, 물에 실려내려온 나무와 돌을 정리하고, 잡초를 제거하는 일도 했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고아원 보수일을 도왔다.(아이들과 잠깐 놀아주는 시간도 가졌다)
또 도로변 잡목제거도 하고, 도로변에 있는 팬스를 새로 페인트 칠하는 일도 했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많은 일을 한 것 같지만... 고아원일을 제외한 나머지일. 특히 오븐 주변터를 닦는 공사는 정말 요령이 필요한 공사였기때문에 우리가 한 일은 돌을 나르고, 땅을 파고, 흙을 메꾸고... 적어보니, 꽤 도움이 된 것같다.
이곳은 이미 대략 6번정도의 봉사자들을 이미 받아왔던 곳이라, 어느정도의 틀이 잡혀있어 많은 배려를 받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이킹 슈즈와 안전모, 장갑등을 제공받았는데,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봐서 신나면서도 '대체 무슨 일을 시킬려고!!'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도착 두째날 시청에서 공식적으로 마을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이곳 쌩알방레쎄와 셩베리에서 제공해주는 관광자료, 교통권, 개인 자전거등을 제공 받았는데... 사실 너무 큰 환대라서 어리둥절 했다.
우린 교회소유의 시설에서 머물렀는데, 커다란 방안에서 매트를 깔고 다같이 자는 거라 코고는 친구덕에 조금은 잠을 설쳤지만 매일매일 정말 캠프 온 기분이었다. 샤워실은 건물 맞은편 축구장에 있는 락커룸을 이용했는데... 주거를 위한 곳이 아니기에 처음엔 당연히 불편했지만, 1주가 지나고 시간이 감에 따라 정말 집같이 느껴졌다. 시설이기에 커다란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뒤엔 잔디밭도 있었는데... 일이 끝난 오후엔 잔디밭에 앉아 기타도 치고, 책도 읽으면서 뒹글거렸다.
물론... 대부분의 오후에는 일정이 있었다.
우린 일말고도, 해야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이 지역 탐험!
밑에 보이는 특별한 에피소드에 적어야 하지만... 사실 나는 도착하고 2틀 뒤 자전거에서 넘어져서 크게 다쳤다. 실제론 크게 다친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시작한 육체노동과 급격히 오른 온도탓에(첫주엔 거의 40도 가까이 올랐었다) 몸도 지치고, 상처도 진물이 심해서... 이러면 안되지만, 리더에게 대놓고 짜증을 많이냈다. 그 덕에 나는 독일어로 '하이킹이 싫어요'라는 말을 배웠다.(물론 리더는 프랑스인이었지만, 대놓고 영어와 프랑스어론 말할 수 없었다...) 아무튼 우리는 산은 정말 질리도록 만났다. 일도 산에서 하고, 여가도 산을 오르면서 보내고. 산위에 빙하녹은 호수에서 수영하고, 산에 둘러쌓인 숙소에서 살고!
그리고 마을 주민들은 우리들에게 산들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했다. 물론... 프랑스어로...-_-;;;ㅎㅎㅎ
할아버지 같던 호베, 프랑스어 농담을 가르켜준 졍흐네, 나는 프랑스어로 말하고 있지 않다던 갸스통, 매일 샴페인을 가져오던 피호, 아들이 우리동네 산다던 쟝피에흐, 내 팔을 치료해준 마르고할머니등등 캠프구성원들도 모두 좋았지만, 마을 주민들과도 추억이 쌓이고 기억을 주고받았던 점이 참 신기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사실 이건 좀 창피하지만, 자전거에서 넘어졌다.
아... 이건 절대 흔한일이 아니다. 난 원래 (도시에서) 자전거를 자주 탄다.
다만 너무 지친상태에서 오랫만에 강한 햇볕을 받았고, 아무튼 넘어졌고, 다쳤다.
그래서 사실 첫주는 조금 끔찍했다. 일단 아프고, 낯설어서 잠도 잘 못자고... 그랬다.
다친 건 중요하지 않다. 사실 이걸 계기로 많은 사람들과 더 나은 관계로 다가설 기회가 많았지만, 정말 아팠는지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행동했다.. 이게 지금도 반성하는 점이다. 아직 덜 자랐나보다.
거기다 많이 친해졌던 일본인 친구가 갑작스런 사정으로 캠프를 떠났다. 이것도 힘들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상처가 나아감에 따라서 그 동안 못 돌봐온 주변이 보였고, 그간 구성원들을 너무 막대한 걸 반성했다. 특히 리더에겐 미안했다.
아픈동안 마을사람들의 관심사는 나의 '보보'(프랑스어로 상처). 매일 아침이 안부인사는 나의 보보가 안녕한지 였다. 호베할아버지가 알콜을 들이부어서 소독해주셨고, 나는 마음껏 징징거렸다. 상처가 전혀 안 낫고, 진물이 계속 흘러서 또 징징거리니까, 전직 간호사신 마르고 할머니가 치료해주셨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모두에게 미안하면서 감사했다. 캠프가 끝나고 나서 쓰는 페이퍼에 나의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croix du nivolet라고 마을에서 가장 높은산 정상에 있는 십자가를 보러간 일이라고 적었지만... 사실은 모두가 줬던 배려였다. 리더가 구박했던 것 처럼, 나이도 제일 많은게 제일 어린것처럼 군다는 애기는 사실이었던 것 같다.
중간에 프랑스의 워크캠프를 담당하는 jeunesse et construction 중간관리자쯤 되는 사람이 캠프에 방문했었다. 떠난 일본친구랑 내 상처에 대해 물었는데, 그러면서 이것저것 워크캠프에 대해 애기 할 기회가 되었다. 이 주제에 대해 관련 전공을 공부하는 리더와도 애기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 모두의 공통적생각은 공동체 안에 들어가서 문화를 발견하게 되는 좋은 방법이라는 점이었다. 우린 단순 노동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사실 노동력이라면 젊은 체력빼고는 보잘 것 없지 않을까? 캠프내내 우리는 우리가 프랑스, 특히 사부와지방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프랑스의 크리스마스 노래 속에서 사부와사람이란 단어를 찾고, 사부와 지역의 샹송을 가르쳐 주고 함께 부르고, 지역음식을 먹고, 지역을 돌아다니며 직접 느끼고...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프랑스 워크캠프에 올 정도면, 조금이라도 프랑스를 좋아해야 한다는 거다. 프랑스 문화든 음식이든 치즈든 와인이든... 좋아하는 것이 많을수록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많을거고, 교류할 수 있는 꺼리도 많을 것 같다.
9명으로 시작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고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열린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낯을 가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누군가 나에게 다가섰을때 너무 방어적이면 서로에게 상처밖에 남지 않는것 같다.
프랑스를 좋아하고, 열린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다르게 말해,
산타느라 숨이 넘어가는데, 옆에서 할아버지가 폭풍불어를 해도 웃으면서 귀기울일 자신이 있다면.
물인줄 알고 목에 부었는데 포도주야... 껄껄껄 거리면서 넘길 수 있다면.
프랑스를 강력추천합니다!!
아물론.. 파리말고요.
아... 이건 절대 흔한일이 아니다. 난 원래 (도시에서) 자전거를 자주 탄다.
다만 너무 지친상태에서 오랫만에 강한 햇볕을 받았고, 아무튼 넘어졌고, 다쳤다.
그래서 사실 첫주는 조금 끔찍했다. 일단 아프고, 낯설어서 잠도 잘 못자고... 그랬다.
다친 건 중요하지 않다. 사실 이걸 계기로 많은 사람들과 더 나은 관계로 다가설 기회가 많았지만, 정말 아팠는지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행동했다.. 이게 지금도 반성하는 점이다. 아직 덜 자랐나보다.
거기다 많이 친해졌던 일본인 친구가 갑작스런 사정으로 캠프를 떠났다. 이것도 힘들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상처가 나아감에 따라서 그 동안 못 돌봐온 주변이 보였고, 그간 구성원들을 너무 막대한 걸 반성했다. 특히 리더에겐 미안했다.
아픈동안 마을사람들의 관심사는 나의 '보보'(프랑스어로 상처). 매일 아침이 안부인사는 나의 보보가 안녕한지 였다. 호베할아버지가 알콜을 들이부어서 소독해주셨고, 나는 마음껏 징징거렸다. 상처가 전혀 안 낫고, 진물이 계속 흘러서 또 징징거리니까, 전직 간호사신 마르고 할머니가 치료해주셨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모두에게 미안하면서 감사했다. 캠프가 끝나고 나서 쓰는 페이퍼에 나의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croix du nivolet라고 마을에서 가장 높은산 정상에 있는 십자가를 보러간 일이라고 적었지만... 사실은 모두가 줬던 배려였다. 리더가 구박했던 것 처럼, 나이도 제일 많은게 제일 어린것처럼 군다는 애기는 사실이었던 것 같다.
중간에 프랑스의 워크캠프를 담당하는 jeunesse et construction 중간관리자쯤 되는 사람이 캠프에 방문했었다. 떠난 일본친구랑 내 상처에 대해 물었는데, 그러면서 이것저것 워크캠프에 대해 애기 할 기회가 되었다. 이 주제에 대해 관련 전공을 공부하는 리더와도 애기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 모두의 공통적생각은 공동체 안에 들어가서 문화를 발견하게 되는 좋은 방법이라는 점이었다. 우린 단순 노동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사실 노동력이라면 젊은 체력빼고는 보잘 것 없지 않을까? 캠프내내 우리는 우리가 프랑스, 특히 사부와지방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프랑스의 크리스마스 노래 속에서 사부와사람이란 단어를 찾고, 사부와 지역의 샹송을 가르쳐 주고 함께 부르고, 지역음식을 먹고, 지역을 돌아다니며 직접 느끼고...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프랑스 워크캠프에 올 정도면, 조금이라도 프랑스를 좋아해야 한다는 거다. 프랑스 문화든 음식이든 치즈든 와인이든... 좋아하는 것이 많을수록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많을거고, 교류할 수 있는 꺼리도 많을 것 같다.
9명으로 시작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고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열린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낯을 가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누군가 나에게 다가섰을때 너무 방어적이면 서로에게 상처밖에 남지 않는것 같다.
프랑스를 좋아하고, 열린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다르게 말해,
산타느라 숨이 넘어가는데, 옆에서 할아버지가 폭풍불어를 해도 웃으면서 귀기울일 자신이 있다면.
물인줄 알고 목에 부었는데 포도주야... 껄껄껄 거리면서 넘길 수 있다면.
프랑스를 강력추천합니다!!
아물론.. 파리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