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기차역에서 시작된 프랑스 워크캠프

작성자 김가은
프랑스 U 12 · CULT/ENVI 2013. 07 프랑스

Festival Reve de Foi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프랑스에서의 유학 생활을 어학 공부와 여행으로만 마치고 싶지 않아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 워크캠프였다. 한국에서는 얼마든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지만 해외에 나오기는 쉽지 않은지라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엔, 주위에서 하는 얘기만 듣고 호기심에 신청한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워크캠프 날짜가 다가오면서 만나게 될 사람들과 내가 머물게 될 텐트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혔다. 어쩌면 정말 간단하고 여느 참가자들과도 비슷할 참가 동기이지만 나에겐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준 워크캠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한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내가 살던 지역과 한시간 거리에 열리는 워크캠프를 선택했기 때문에 아무 걱정없이 떠났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기차를 잘못타는 실수를 했던 것이다. 얼른 다음 역에 내려서 양해를 구하고 다시 제대로 된 기차를 타서 무사히 미팅포인트로 갈 수 있었지만 문제는 약속시간! 한시간이나 늦어버린 것이다. 워크캠프를 가기 직전에 핸드폰이 고장나서 연락도 할 수 없고, 정말 가까운 곳이라 연락처도 제대로 적어오지 않았었다. 역에 도착해보니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어떤 아주머니가 보이길래 인터넷 좀 쓸 수 있냐고 대화를 나눠보는데 이분은 우리 워크캠프에 참가하는 유일한 50대 독일 아주머니였던 것이었다! 차를 가지고 오셨는데 차가 많이 막혀서 늦게 도착했다고 하는 것이였다. 이 아주머니 덕분에 연락이 닿아 무사히 도착했고, 이렇게 처음부터 정신없는 워크캠프가 시작이 되었다.
내가 선택한 캠프는 festival이었다. 이곳에 참가한 워크캠프 멤버들은 독일 친구들 2명, 체코 친구 1명, 스페인 친구들 2명, 프랑스 친구 1명에 나까지 총 7명이었다. 하지만 총 담당하는 팀과 축제기간에 축제 담당자들과 연기자들까지 같이 있었기 때문에 몇 십 명이서 함께 지냈다. 처음 며칠은 집 다락방에서 지내다가 축제가 시작하면 텐트로 옮겨가는 시스템이었다.
처음엔 정말 막연하게 축제니까 너무 어렵지 않고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게 큰 잘못이었다. 작은 시골의 축제이다 보니 공간과 무대 그리고 안내표지판 같은 사소한 것들 까지도 모두 우리가 준비해야 했다. 첫날 아침부터 들판에 나가 염소똥을 치웠다. 무거운 삽을 들고 퍼내는데 그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축제 전날 까지 무거운 나무 판지들을 나르고 땅을 파고 무대 수평을 맞추고 의자랑 탁자 나르기, 무대에 필요한 배경에 페인트 칠 하는 것 등 정말 수많은 일을 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12일의 워크캠프 기간 동안 딱 하루의 휴일이 있었고 축제기간 4일을 제외한 나머지 날들은 하루에 10시간씩 일을 하는 것이었다.
워크캠프를 가기 직전에 주위에서 걱정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리더가 너무 리더쉽이 없어서 힘들었다거나 캠프에 참가한 멤버들 중에 자기멋대로 하려해서서 힘들었다는 얘기들이었다. 하지만 우리 캠프에서는 이 축제를 담당하는 팀들이 정말 잘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식사 준비나 일 배정들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워크캠프에 참가한 친구들이 일을 할 때는 모두 다 배려심있게 행동했고 우리끼리 있을 때 얘기할때도 굉장히 즐거웠다!
축제가 시작하고 텐트로 옮겨 갈 때는 정말 걱정되었다. 아니나다를까! 텐트의 낮은 정말 더웠고 밤은 시리도록 추웠다. 그리고 제일 큰 문제점 화장실과 샤워실! 우리가 머물 던 집에 있던 것을 써야했기 때문에 밤에 아무것도 안 보일 때는 화장실조차 쉽게 갈 수 없었다. 모두들 자다가 화장실 가는 것은 정말 싫기 때문에 자기 직전에 음료나 물을 안마시겠다고 하면서 정말 웃었다. 하지만 텐트 1개당 3명씩 3개의 텐트를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넓었고, 안에 매트리스를 다 깔 수 있어서 편안하게 잘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캠프 기간에 제일 좋았던 것은 식사시간이었다! 전식, 본식, 후식을 언제나 챙겨 먹는 프랑스 인들이라 음식은 정말 잘 나왔고 단 한번도 같은 메뉴를 본 적이 없었다. 티라미수 같은 것도 만들어 후식으로 먹고, 본식도 다양하게 정말 잘 먹었다.
축제 기간에는 일이 훨씬 수월했다. 자기가 맡을 일에 이름을 적어 맡은 일을 했는데 공연 매표소, 매점에서 일을 하거나 집에 남아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 나머지 시간은 자유였으며 우리가 보고 싶은 공연들을 다 볼 수 있었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것은 매점에서의 일이었다. 축제 마지막 날 밤 7시부터 새벽2시까지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밤이되자 주점으로 바뀌면서 노래 틀어놓고 춤추면서 즐기는데 일하는 나도 덩달아 즐거웠다. 그리고 일을 하는동안 목이 마르면 매점에서 파는 모든 마실 것들을 공짜로 마실 수도 있었다. 일을 다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무수히 많은 별들을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시골 마을이라 밤에는 가로등 불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태어나서 별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행복했던 축제기간이 끝나고 떠나기 전 날, 이미 축제 마지막 날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났고 워크캠프 봉사자들과, 몇몇 마지막 정리를 도와줄 사람들만 남았다. 몇일동안 준비했던 것을 거의 하루만에 끝내려고 하는지라 굉장히 힘들었다. 아침 일찍부터 나르고, 옮기다보니 모두들 지치고 힘들어했다. 몇몇은 어지러워했고 한명은 심지어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날 저녁에는 남은 사람들끼리 동그랗게 모여앉아서 밤 늦게까지 먹으며 수다떨었다. 서로 메일이랑 페이스북 주소도 교환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날, 헤어지기 직전은 정말 슬펐다. 다같이 사진찍고 인사하는데 눈물이 났다. 아마 앞으론 쉽게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꼭 다 함께 다시 만나고싶다. 다들 힘들었지만 배려해주고 누구하나 뒤쳐지지 않고 일해준 봉사자들이 정말 고마웠다. 다음 해에 축제는 참가하기 어렵지만 그 때 모일 봉사자들이 더 멋진 축제를 만들 것이라 기대해본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매점에서 일을 할 때 프랑스 사람들이 주문하는 것을 알아들어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 처음에 도착해서 일을 시작했을 땐 많은 종류의 음료의 위치와 무엇을 섞어야 하는지 외우느라 정신없는 참이었다. 어느 손님이 오셔서 나에게 une verre를 달라고 하셨다. 이것은 프랑스어로 '한 잔' 이었기 때문에 난 물 한 잔을 달라고 하시는 줄 알고 물을 가득 한 컵 떠 드렸는데 옆에 매점을 담당하시던 담당자가 손님은 매점에서 절대 물을 주문하지 않는다면서 이 분은 맥주 한 잔을 달라고 한 것이었다고 하는데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주문하셨던 손님은 괜찮다고 처음인데 그럴 수도 있다고 하시고 잘 넘어갔지만 그 때의 기억은 정말 다시 생각해도 웃기다.
이번 워크캠프를 참가하고 나서 난 또 다시 캠프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에서 다시 한 번 공부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번에는 프랑스가 아닌 다른 프랑스어권 나라인 벨기에에서도 해 보고 싶다. 워크캠프는 내가 알던 일상과 내가 만나던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람들과 2주 또는 3주동안 함께 지내는 것이 처음에는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지나고보면 오래남을 소중한 추억을 남겨준 사람들이고 내가 오래도록 연락하고 지낼 수 있는 친구가 또 하나 늘어나는 것이다. 물론 만남과 헤어짐은 너무나도 슬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잊혀지고 무뎌져서 약속했던 것과 결심했던 것은 다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쉽게 돌아가버린다. 하지만 남겨진 사진과, 잊혀지지 못할 특별한 순간, 아직까지도 연락하는 친구들이 남아있다면 그 순간을 그리워할 수 있고 또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다른 현재를 살고 있지만 하나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기억하며 응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모두들 각자의 일상에서 언제나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