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에서 만난 발가벗은 남자

작성자 백지영
프랑스 CONC 033 · RENO/TEEN 2013. 07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CLERMONT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를 소개해 준 곳은 국제교류기구였다. 나는 교류기구를 통해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두달 반의 긴 방학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중이었고, 교류기구에서 워크캠프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평소에도 가보고 싶었던 나라였다는 기대감에 워크캠프에 참여하게 되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드디어 캠프시작일인 10일. 이틀 동안 아무 것도 안하고 쉰 쌩쌩한 몸을 이끌고 미팅포인트인 클레르몽페랑 역으로 갔다. 길을 몰라 시간을 넉넉하게 두고 출발했더니 한시간 반이나 먼저 도착했다. 캠프 리더가 정확히 4시에 도착했고, 나를 포함해서 먼저 온 네명의 참가자를 데리고 캠프사이트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중 차 안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을 시도했지만, 프랑스 소녀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캠프사이트는 말 그대로 야영장이었다. 텐트를 칠수 있는 공간이 있고, 큰 텐트 안에는 취사도구와 냉장고가 있었고, 샤워실은 캠프 참가자 뿐 만 아니라 그 야영장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모두 같이 써야하는 공용 사워실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이런 환경에서 잘 수 있을까, 싶었다. 3일도 아니고 1주일도 아니고 2주나 되는 시간을 이 텐트 안에서 벌레들과 함께 지낼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텐트를 치고 짐을 정리하고 잠시 식탁이라기엔 뭐한 테이블에 앉아서 프랑스 여자애들과 얘기를 하고 있으니, 큰 봉고차가 왔다. 8명의 참가자가 더 왔고, 그렇게 총 12명의 참가자가 모두 모였다. 두명의 한국인, 다섯명의 프랑스인, 세명의 이탈리아인, 두명의 파키스탄인이 이 캠프를 이뤘다. 나머지 애들도 텐트를 다 친 후, 우리는 이름을 외우를 게임을 했다. 이름을 가지고 하는 게임을 몇 개 하다 보니 이름은 금방 외워졌다.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프랑스어를 조금도 구사할 수 없는 사람은 나와 이탈리아 여자애 하나 뿐이었다.)나에겐 다른 서양이름도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다른 애들이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른 적이 없다. 내 이름은 분명 ‘지영’인데 ‘셩’으로 부른다던지 ‘이셩’으로 불렀다. 대체 지영을 어떻게 들어야 이셩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게임이 끝나고 텐트 안을 정리하고 씻을 수 있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정말 따가운 프랑스의 햇볕 아래에서 게임을 했더니 땀이 옷을 적실 정도가 되었고, 난 샤워가 시급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프랑스 애들이 동양인을 처음 보는 건 아닐텐데 마구마구 질문을 해오기 시작했다. 남한에서 왔어, 북한에서 왔어? 부터 시작해서 한국어로 ‘Hello’는 뭐야? 등과 같이 한국인을 처음 만나면 하는 질문들이었다. 질문을 하는 애들이 영어를 잘 못해서 질문을 알아듣기도, 대답을 하기도 어려웠지만, 만난 지 두 시간 여 만에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가장 설레는 게 이 시점이다. 서로에 대해, 각자의 나라와 문화에 대해 알아가는 것.
아주 늦은 (거의 오후 9시에 먹었다) 첫 끼는 이탈리아 애들이 준비했다. 닭고기와 파스타였다. 서양 애들은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해버릇 해서 요리를 엄청 잘 할까봐 조금 긴장했는데, 요리사 급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중에 그 애들이 말하길 ‘사실대로 말해. 그때 그 파스타 엄청 맛없었지?’) 식사를 엄청 오래 한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밥을 먹는 도중에도 질문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한국은 밥을 몇시에 먹어? 언제 일어나? 이런 류의 질문이었다. 파스타와 닭고기 만으로 두 시간을 보낸 후, 아까 했던 이름으로 한 게임이 아닌 ‘마피아’ 같은 범세계적인 게임을 했다. 마피아가 이렇게 범세계적인 게임인 줄 몰랐는데, 세세한 명칭만 다를 뿐 게임 규칙은 똑같았다. 이 게임을 소개한 ‘루나’라는 프랑스 여자애는, 내가 룰을 안다고 하니 한국에도 이 게임이 있냐며 놀랐다. 나도 마피아가 프랑스에도 있는 줄 몰랐어, 루나야. 아무튼 10명이 넘는 인원이 마피아를 하니 꽤 재미있었다. 마피아가 끝나고 나니 자정이 넘어있었다. 한 것도 없는데 힘든 하루라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그 다음날부터 시작한 봉사활동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프랑스의 엄청난 햇빛을 견디는 것이 더 힘들었다. 틈틈이 선크림을 바르고, 수시로 물을 마시지 않으면 엄청난 후폭풍이 있을 것 같은 햇빛이었다. 그 땡볕 밑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의자와 책상 만들기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건, 공구와 나무 뿐이었고 설계부터 톱질, 못질, 고정까지 우리가 직접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 의자와 테이블은 클레르몽페랑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쉼터를 꾸미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공허한 터에는 세 개의 높은 건물이 있었는데, 클레르몽페랑 시에서 그 건물을 허물었고 그 공간에 커뮤니티센터를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 터는 아직
삼일인가 만에 완성된 첫 번째 공원용 테이블은 조금 컸다. 아이들이 앉기에는 조금 크다는 지역 봉사활동단체의 말에, 우리는 조금 더 작은 사이즈의 공원용 테이블을 설계해, 만들기 시작했다. 15살부터 17살 사이 학생들로 이루어진 캠프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힘을 잘 써서 그런지 금방금방 일이 이뤄졌다.
캠프가 5일쯤 되었을 때, 지역 봉사단체와 상의해서 우리는 축구 골대도 만들기로 했다. 골대는 테이블보다 설계와 만드는 것 둘다 간단했기 때문에 4명이 담당했고, 나머지 8명과 리더 두 명은 하던 대로 테이블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결국 마지막 이틀을 남기고 모든 구조물이 완성 되었고, 지역 주민과 봉사단체들과 협력해 만든 결과물을 보니 참 뿌듯했다. 캠프 참가자 중에도 미술을 하는 친구가 있었고, 지역 봉사단체중 하나는 예술학교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처음 설계했던 것들 보다 예쁘게 된 것 같았다.
보통 일이 끝나면 텐트로 돌아와서 자유 시간을 갖거나, 수영장에 갔다. 해가 정말 늦게 졌기 때문에, 보통 8~9시 까지 놀다가 밥을 먹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클레르몽페랑이 화산 지역이라 등산도 했었고, 또 다른 워크캠프의 참가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항상 든 생각은, 한국과 놀이문화가 참 다르구나 싶었다. 한국에선 노래방에 가거나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떠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 친구들이 하는 건 수많은 룰의 카드게임이나, 마술, 서커스, 베이킹, 또는 마피아나 공공칠빵 같은 게임이었다. 즐기는 인생을 산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입시 준비생인 친구도 있었는데,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해 보여서 부러웠다. 한국에선 감히 수험생이 가장 중요한 여름방학에 2주나 봉사활동을 가는 건 말이 안 되는데.
프랑스 특유의 그 빵 문화는 특히 정말 좋았다. 동네 슈퍼를 가도 마카롱이 있고, 동네 빵집에 온갖 종류의 타르트들이 가득했다. 프랑스 음식이니 그럴 수 밖에 없지만, 단걸 너무나 좋아하는 나에게 완전한 천국이었다.
며칠은 지역 축제에 참여한 적도 있었다. 7월 14일엔, 프랑스의 혁명 기념일이라 온 프랑스에서 축제가 열리는데 우리는 야영장 근처의 산에 올라가서 밴드공연과 불꽃놀이를 봤다. 정말 성대한 축제였다. 그 작은 도시가 이 정도면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에서는 얼마나 큰 축제가 벌어지고 있을까, 싶었다. 그와 동시에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된 프랑스혁명을 기념하는 걸 보니, 우리나라의 5.18 민주화 운동이 폭동이니 뭐니 하는 것과 참 비교가 되더라.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하루는 오후 쯤, 카약을 타러 간 적이 있었다. 내가 탄 배가 참 수난을 많이 겪었는데, 한시간쯤 잘 가다가 덩치 작은 아시아인들이 뒤집기 쉬워보였는지 장난끼 많아보이는 남자애들이 우리 배에 올라타더니 배를 뒤집고 자기들이 그 배를 타고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불어도 못하는 나는 당황하고 있는데 리더가 잘 말해줘서 다시 우리가 그 배에 탈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십분쯤 갔을까, 저 멀리 발가벗은 남자가 해변에 누워있는 것이다. 그 흔한 수영복 하나 걸치지 않은채. 심지어 수건도 두르지 않은 채!! 우리는 놀라서 빨리 노를 저으려 했지만... 이럴수가, 그 남자가 누워있던 곳에 불시착을 한 거다. 속으로 오마이갓을 수도없이 외치며 벗어나려고 하는데 그 남자가 갑자기, 가까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육성으로 "플리즈 돈 컴. 플리즈"를 외쳤지만, 그 남자는 영어를 못하는 건지, 순식간에 우리 배를 밀어주고 유유히 떠났다. 고마웠지만, 그만큼 많이 당황스러웠다.
캠프가 끝날 때 쯤 되니까, 친구들의 모습이 많이 변해있었다. 다들 모기를 물려 다리가 울긋불긋했고, 얼굴은 새카맣게 탔다. 그 사이 사랑이 싹튼 애들도 있었고, 그 사이 차인 애도 있었다. 다들 얻어간 것은 달랐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똑같았을 것이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참으로 기뻤다는 점.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고, 나중에 또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가게 된다면 재워주겠다는 친구도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덤으로 주민과 아이들이 테이블과 골대를 사용하는 걸 보니, 뿌듯했다. 사람과 교류하고, 문화를 알아가고, 사람을 알아가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바꿨던 이 캠프는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