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몽골, 삽질하며 쌓은 우정

작성자 임지원
몽골 MCE/09 · AGRI/KIDS 2013. 07 - 2013. 08 Mongolia

Orphange's farm-4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작년 11월에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대학생이라면 모두가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유럽여행이지만, 패키지 여행이었기 때문에 나는 돈만 준비하고 다른 모든 것은 여행사가 준비해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유럽은 분명 아름답고 좋았지만 뭔가 유럽 사람들과 직접 부딪혀 본적도 없고, 기분이 허전하고 끌려다니기만 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 준비하고 유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몽골이었다. 처음에는 몽골에 여행만 가려고 알아보던 중, 한 워크캠퍼의 블로그를 통해 워크캠프를 알게 되었다. 포스팅 수가 엄청나게 많았지만 집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몽골어 기초표현까지 프린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휴학을 하고 난 뒤 해외봉사활동도 가고 싶고, 외국인 친구들과 외국어로 대화도 나누고 싶고, 혼자 여행을 가고 싶었던 나에게 워크캠프는 딱이었다. 그리고 가장 몽골워크캠프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사진 속에 있는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싶어서였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처음 캠프에 도착했을 때에는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캠프에서 내가 제일 영어를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프랑스 가족(아빠,엄마,딸2), 프랑스인1, 핀란드1, 홍콩3, 타이완9, 한국인3 이렇게 이루어졌는데 내 생각과는 달리 타이완과 홍콩 친구들이 영어를 너무 잘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기소개 시간 때 당당하게 "나는 영어를 못하니 다들 나를 도와줘야 한다. Okay?" 라고 말했다. 물론 한국어라면 좀 더 정중하게 부탁했겠지만 영어로 말하니 저렇게 밖에 안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침, 점심, 저녁을 준비하는 쿠킹팀, 캠프에 있는 나무와 꽃에 물을 주는 워터링팀, 설거지를 하는 클리닝팀으로 나누었고 그 팀에 속하지 않은 날은 무조건 워킹팀이었다. 또한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사진 속 아이들을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우리 캠프 아이들의 연령대는 거의 12세~17세이기 때문에 사진 속에 있던 아이들은 이미 캠프를 떠나고 다른 아이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이들이 처음 나를 보고 건넨 말은, Kid : Are you korean? 나 : Yes, I'm Korean. Kid: 죽고싶어? 이거였다. 너무 깜짝 놀라 어버버 거리고 있으니 아이들이 막 웃었다. 아이들에게 그건 나쁜 말이라고 가르쳐줬지만 듣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죽고싶어? 라고 하면 아니 안죽고싶은데? 라고 받아치고 몽골어로 욕을 주고받는 여유도 생겼다. 우리 다음 캠퍼의 말을 전해들어보니 이제 죽고싶어?가 죽고싶어? 안죽고싶어? 로 발전했다고 한다. 표현하는 것들이 과격해 보일 수도 있지만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진짜 멋진 아이들이었다. 장난을 치다가도 캠퍼들이 다칠 것 같으면 멈추고(몽골 아이들은 힘이 엄청 쎄기 때문에 놀 때도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친해지면 자기가 만든 팔찌를 모른척 다가와서는 팔에 슥 끼워주고 도망간다. 이럴 때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밭에 가서 일을 할 때에는 자신이 맡은 밭에서 같이 일을 하자며 서로 거의 호객행위 수준으로 우리를 꼬시고는 했다. 우리가 일을 잘 못하니, 밭일을 가르쳐 주기도하고 밭과 캠프 사이에는 물길이 있는데 직접 나무 판자를 가져와 대주기도 하고, 철조망을 밟고 들어올려주기도 했다. 또한 우리는 밭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농구장을 만들었는데, 만들던 도중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워크타임을 잠시 중지하고 캠퍼들은 다들 비를 피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화장실을 가려고 우산을 들고 나왔더니 아이들은 아직도 비를 맞으며 일을 하고 있었다. 다가가서 왜 안들어가냐고 우산을 씌워주니 괜찮다고 묵묵히 일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 모두 말은 거칠게 하지만 속은 엄청 따뜻하고 모든 일을 열심히 하고 우리를 생각해주는 매너남, 매너녀였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우리 캠퍼들을 가깝게 만들어 주었던 에피소드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첫 번째는 바로 삽질이다. 우리는 농구장을 만들기 위해 캠프 한켠에 있는 땅을 모두 파고 고르게 한뒤, 자갈을 깔았다. 오빠들은 군대에 다시 온것 같다고 했다. 계속해서 삽질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밭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삽질을 하려니 다음 날 근육통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캠퍼들 모두 열심히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친구들과 삽질을 하면서 로맨틱한 타이완 말을 배우고 한국어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힘든일을 같이 겪으며 캠퍼들과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함께 별을 본 것이다. 역시 몽골의 별은 진짜 확 쏟아질것만 같다. 나는 아예 땅바닥에 드러누워서 봤다. 친구들이 별을 예쁘게 사진에 담는 법도 가르쳐줬다. 세번 째는 주말에 낙타와 말을 타러 놀러갔던 것이다. 도착해서 아이락(말젖을 발효해서 만든 술)을 돌려마시며 각자의 표정을 보며 깔깔대며 웃었던 것, 마지막날에 비가와서 아쉽게도 캠프파이어는 못했지만 게르 한채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따뜻한 수프를 먹으며 떠들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참가 후 내게 일어난 변화는 소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하다. 가장 소소한 것은 개를 만져보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개를 진짜 무서워했는데 몽골 개들은 조용하고 착해서 만져보는 것에 도전해보았고, 성공했다. 그 다음은 한달 간 영어로 생활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떡하지,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데, 라고 생각했던 내가 일단 부딪혀보니 아주 심도있는 대화는 못해도 캠프가 끝나고 몽골 시내인 울란바토르에서 다른 외국인들을 가이드해줄 정도까지는 가능해졌다. 마지막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갈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외국인, 고아원 아이들은 어쩌면 말을 걸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내가 괜히 먼저 말을 걸었다가 망신 당하지는 않을까? 영어도 못하는데 못알아 들으면 어쩌지? 아이들이 나를 무시하고 비웃으면 어떡할까? 등등 캠프전에는 걱정이 많았지만 나는 영어를 못해도 외국인들은 영어를 잘하니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그들은 찰떡같이 알아들어주고, 내가 먼저 다가가면 아이들도 마음을 열어주었다. 내가 먼저 실천하고 내가 먼저 마음을 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큰 효과를 내는지 깨닫게 되었다.
훈련워크샵 때 내가 처음 워크캠프에 참가하고 싶게 만들어 주었던 블로그의 주인인 진영언니를 만났다. 연락처를 주고 받고 몽골로 떠나기 전까지 많은 정보를 주었다. 진영언니가 한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쨌든 오픈마인드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기억했고, 그대로 실천했으며 엄청나게 많은 것을 얻고 돌아왔다. 이제 캠프를 준비하는 다른 캠퍼들도 오픈마인드는 절대절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마음을 연 만큼 얻는 것도 많아진다. 내가 제목으로 쓴 '비 멍걸 헤스테'는 몽골어인데, 풀이하자면 'I Love Mongolia. 나는 몽골을 사랑해요'다. 워크캠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몽골을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