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우크라이나, 아이들과 함께 웃다
Step forward: 6 life lesson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1년동안 영국에서 교환학생을 했습니다. 영국은 한국보다 학기가 짧아서 방학동안 여가시간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영국에 떠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워크캠프'가 생각이 났습니다. 수많은 프로그램 중 우크라이나의 Alt-05를 캠프를 택하게 된 것은 평소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과, 우크라이나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였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2주간의 봉사활동에 짜여진 하루 스케쥴은 대충 이러했습니다. 첫날 각자 소개와 친목을 다진 후 다음날 학생들을 만나 같이 진행할 프로그램 회의하기. 둘째날부터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2~1시까지 아이들과 만나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직접 해 먹고 저녁 먹기전까지 보통 자유시간을 가지고 저녁을 다시 같이 해 먹고 다음 날 프로그램에 관한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캠퍼들이 직접 6가지 중요한 테마를 중심으로 준비했습니다.
'multiculturalism', 'leadership', 'environment', 'harmony', 'dream', 'activity'
아이들이 세상을 살 때 도움이 될 만한 이 6가지 주제를 캠퍼들이 직접 선정하고, 이 주제에 관련된 게임들을 꾸며서 활동시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즐긴 후, 마지막에 아이들에게 오늘 활동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캠프 생활의 조건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주최 측이 처음으로 이 캠프를 주관하는 입장이라 처리방식이 조금은 미숙하였습니다. 일단 캠퍼들이 저까지 3명밖에 안됐기 때문에, 주최 측에서 숙소를 그 지역에 있던 미국 Peace Corp. 봉사자의 개인 집으로 배정했습니다. 집은 도배도 하지 않았고, 보수공사를 위한 철물들이 집 안에 혼재했고, 물은 오전/오후 6시-10시밖에 나오지 않고, 배수구가 고장나서 물이 빠지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집이였습니다. 침실은 한 방에 캠퍼 3명과 리더 1명, 총 4명이서 붙어 잤는데, 청소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집 안에서 침낭을 깔고 잤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 처럼, 나중에는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음식을 해 먹는 데에 불편함이 있었는데, 이 캠프가 처음 배정된 캠프가 아니라 캠프 시작 전 사전 변경을 통해 급작스럽게 정해진 캠프라서 한국음식을 준비해갈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마트에서 우크라이나의 재료를 가지고서는 한국 음식을 해 줄 수 없어 캠퍼들에게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해주지 못한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열악한 조건보다도 캠프에서 힘들었던 것은 리더들과 함께한 캠퍼들과의 갈등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캠프를 주관하는 주최 측이 미흡했던지라, 캠프기간인 2주에 캠프 리더가 1번 바뀌었습니다. 리더가 바뀐 것은 상관이 없으나, 그 둘 리더 사이에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리더를 따르는 캠퍼들이 고생이 많았고, 두 리더 모두 제가 전부터 만나오던 리더들과는 굉장히 다른 성격이었습니다. 국제워크캠프를 진행했던 리더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보수적이고 다른 문화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독단적이었습니다. 회의 시간에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 부탁도 해 보았지만, 그런 태도는 조금 누그러뜨러지는 듯 했으나 그 이후에 개인적인 교류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캠퍼들은 저를 포함하여 3명이었으나, 다른 2명은 스페인에서 온 자매였습니다. 영어가 부족하다는 것은 이해를 하나, 필요할 때를 빼고 매번 둘은 스페인어를 사용하여 친밀해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캠퍼들이 직접 6가지 중요한 테마를 중심으로 준비했습니다.
'multiculturalism', 'leadership', 'environment', 'harmony', 'dream', 'activity'
아이들이 세상을 살 때 도움이 될 만한 이 6가지 주제를 캠퍼들이 직접 선정하고, 이 주제에 관련된 게임들을 꾸며서 활동시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즐긴 후, 마지막에 아이들에게 오늘 활동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캠프 생활의 조건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주최 측이 처음으로 이 캠프를 주관하는 입장이라 처리방식이 조금은 미숙하였습니다. 일단 캠퍼들이 저까지 3명밖에 안됐기 때문에, 주최 측에서 숙소를 그 지역에 있던 미국 Peace Corp. 봉사자의 개인 집으로 배정했습니다. 집은 도배도 하지 않았고, 보수공사를 위한 철물들이 집 안에 혼재했고, 물은 오전/오후 6시-10시밖에 나오지 않고, 배수구가 고장나서 물이 빠지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집이였습니다. 침실은 한 방에 캠퍼 3명과 리더 1명, 총 4명이서 붙어 잤는데, 청소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집 안에서 침낭을 깔고 잤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 처럼, 나중에는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음식을 해 먹는 데에 불편함이 있었는데, 이 캠프가 처음 배정된 캠프가 아니라 캠프 시작 전 사전 변경을 통해 급작스럽게 정해진 캠프라서 한국음식을 준비해갈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마트에서 우크라이나의 재료를 가지고서는 한국 음식을 해 줄 수 없어 캠퍼들에게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해주지 못한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열악한 조건보다도 캠프에서 힘들었던 것은 리더들과 함께한 캠퍼들과의 갈등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캠프를 주관하는 주최 측이 미흡했던지라, 캠프기간인 2주에 캠프 리더가 1번 바뀌었습니다. 리더가 바뀐 것은 상관이 없으나, 그 둘 리더 사이에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리더를 따르는 캠퍼들이 고생이 많았고, 두 리더 모두 제가 전부터 만나오던 리더들과는 굉장히 다른 성격이었습니다. 국제워크캠프를 진행했던 리더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보수적이고 다른 문화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독단적이었습니다. 회의 시간에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 부탁도 해 보았지만, 그런 태도는 조금 누그러뜨러지는 듯 했으나 그 이후에 개인적인 교류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캠퍼들은 저를 포함하여 3명이었으나, 다른 2명은 스페인에서 온 자매였습니다. 영어가 부족하다는 것은 이해를 하나, 필요할 때를 빼고 매번 둘은 스페인어를 사용하여 친밀해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정말 운이 좋게도 캠프일정 중간에 그 지역에서 가장 큰 행사인 Youth Event를 진행하였습니다. 1부에는 그 지역에서 재능 있는 친구들이 나와 노래나 춤을 췄습니다. 운 좋게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통 춤을 직접 보는 진귀한 경험도 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장기자랑을 하는 동안 뒤 쪽에서는 부스를 설치해 액세서리나 그림을 팔기도 하고, 우크라이나 전통 놀이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우리 캠퍼들은 회의 끝에 한국의 놀이인 '공기'를 보여주고 가르쳐주기로 했고, 학생들에게 시범을 보여주니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과 관심을 보여주어 뿌듯했습니다. 지금도 공기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고 연락이 오는 친구들이 있기도 합니다.
2부에는 무대에서 디제이가 디제잉을 하며 노래를 크게 들어줬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 모여 꽤 오랜시간동안 같이 춤을 추며 즐겼습니다.
이 외에도, 캠프 중 첫 리더가 저녁시간 후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주변 공원으로 데리고 가서 그 지역 우리나이 또래들과 친목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친구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전통음식도 같이 해 먹고, 우크라이나 관련 비디오와 책을 보며 설명해주었으며, 우크라이나의 가정분위기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준 것이었습니다.
처음 가기 전에는 워크캠프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데에 우여곡절을 겪고 심신이 지쳐있는 상태여서, 우크라이나에 들어가는 것 조차 너무 무섭고 두려워 피하고 싶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무런 경험이 없고 '스킨헤드'의 악명으로 친구들이 만류하던 나라에 홀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도 외롭고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도착해 혼자 여행을 다닐 때에도, 캠프활동을 하며 아이들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낼 때에도 무섭기는 커녕 항상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제일 놀랐던 것은 처음에는 정말 생소한 우크라이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나라와의 공통점이 많이 보였다는 것이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정말 아름다운 우크라이나의 자연이 아직도 머릿 속에 훤합니다.
자기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 함부로 평가를 내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 것인지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제워크캠프를 통해 이러한 기회를 한 번 쯤은 가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경험을 항상 마음에 안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2부에는 무대에서 디제이가 디제잉을 하며 노래를 크게 들어줬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 모여 꽤 오랜시간동안 같이 춤을 추며 즐겼습니다.
이 외에도, 캠프 중 첫 리더가 저녁시간 후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주변 공원으로 데리고 가서 그 지역 우리나이 또래들과 친목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친구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전통음식도 같이 해 먹고, 우크라이나 관련 비디오와 책을 보며 설명해주었으며, 우크라이나의 가정분위기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준 것이었습니다.
처음 가기 전에는 워크캠프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데에 우여곡절을 겪고 심신이 지쳐있는 상태여서, 우크라이나에 들어가는 것 조차 너무 무섭고 두려워 피하고 싶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무런 경험이 없고 '스킨헤드'의 악명으로 친구들이 만류하던 나라에 홀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도 외롭고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도착해 혼자 여행을 다닐 때에도, 캠프활동을 하며 아이들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낼 때에도 무섭기는 커녕 항상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제일 놀랐던 것은 처음에는 정말 생소한 우크라이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나라와의 공통점이 많이 보였다는 것이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정말 아름다운 우크라이나의 자연이 아직도 머릿 속에 훤합니다.
자기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 함부로 평가를 내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 것인지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제워크캠프를 통해 이러한 기회를 한 번 쯤은 가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경험을 항상 마음에 안고 행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