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고성에서 꿈을 조각하다
Château de Gombervaux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제 꿈은 박물관 학예연구사입니다. 평소 우리나라의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해외에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알려져 있는지, 반출된 우리 문화재가 어떻게 전시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일학년 때부터 워크캠프를 알고 있었고 참가하려고 했으나 해당 국가의 정치적인 상황이나 경제적인 문제로 참가에 두 번 정도 실패했었습니다.
사학과를 본격적으로 복수전공하여 공부하면서 문화재 복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학교에서 워크캠프 지원자를 받는 걸 보고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제 전공인 불어불문을 살려 프랑스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관심이 가는 분야인 문화재 복원 봉사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사학과를 본격적으로 복수전공하여 공부하면서 문화재 복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학교에서 워크캠프 지원자를 받는 걸 보고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제 전공인 불어불문을 살려 프랑스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관심이 가는 분야인 문화재 복원 봉사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제가 간 곳은 프랑스의 동북부 지방인 알자스 로렌 지방의 한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Vaucouleur라는 350명 남짓한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서 약 2주간 진행된 복원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성 중앙 홀의 벽난로와 굴뚝 사이의 장식돌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처음 만져보는 정과 끌, 망치가 손에 익숙하지 않아 고생했지만 하루 일곱시간씩 쪼개고 조각하고 난 뒤에 보는 완성품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프랑스, 러시아, 미국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14년 째 매해 여름 휴가를 봉사활동을 보내는 Patrick할아버지에게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어떤 게 더 가치있는 것인지, 나는 이다음에 어떤 시민이 되어야하는지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사실 유럽에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지 않습니다. 소녀시대와 같은 아이돌들이 유럽을 강타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이건 그 회사의 이미지 메이킹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럽인들에게 저는 맨 처음 중국인으로 보였고, 그 다음은 일본인으로 비춰졌습니다. 마지막은 베트남. 오랜 식민 역사와 먼저 서구화를 한 일본과 같은 나라들은 그들에게 익숙하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서양인들에게 너무나도 생소한 존재입니다. 저에게 일장기의 모양을 설명해주며 이게 너희나라 국기가 아니냐고 물어보는가 하면, 글씨를 세로로 읽지 않냐고 했습니다. 이런 현실에 큰 충격을 받으면서 제가 하고싶은 학예연구사의 꿈에 대해 더욱 확신이 생겼습니다. 아직도 우리 한국은 문화적으로 해야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는 걸, 그 일에 저도 참여해 한 부분을 맡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문화를 지키려는 프랑스가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