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킬리만자로, 우리를 가족으로 만들다
Education and Cultur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생이 되어서 같은 시간을 조금은 더 뜻있게 사용해보자 하고 신청했던 학교 해외자원봉사 프로그램을 통해서 워크캠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설명회를 통해서 알게 된 워크캠프의 역사에 흥미를 가졌고, 그 비젼에 공감이 갔다. 세계의 청년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는 것. 실제로 나는 다양하고 많은 문화를 경험하고 싶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점은 세계각국에서 온 다른 청년들과 함께 생활하고 일하면서, 문화를 교류하고 다름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봉사 기간 동안 온전히 영어만 쓸 수 있다는 점 또한 중요한 이유였다.
처음 아프리카 워크캠프를 신청한 이유는 단순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에 대한 호기심과 때묻지 않은 자연을 체험하고 싶은 마음, 또 마음만으로는 쉽게 가볼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 더 높은 것만을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배우고 넓은 시야를 가지고 싶었다.
처음 아프리카 워크캠프를 신청한 이유는 단순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에 대한 호기심과 때묻지 않은 자연을 체험하고 싶은 마음, 또 마음만으로는 쉽게 가볼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 더 높은 것만을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배우고 넓은 시야를 가지고 싶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워크캠프는 Korean, Turkish, Germany, French, Spanish, American, 그리고 Tanzanian 모두를 가족으로 만들었다. 킬리만자로 산 Mwika 지역의 숲 속 집에서 오전에는 10분 정도 산을 올라가면 있는 초등학교에서 페인트칠과 마을의 소나무 종묘심기를 했다. 오후에는 다양한 activity가 있었는데 모든 일정과 규칙은 우리 스스로가 회의하고, 계획했다. 탄자니아 제 1의 언어인 스와힐리어 익히기, 학교아이들과 놀아주기, home staying, 지역주민과의 스포츠, chagga 부족에 대한 이해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 커피농가 견학, open market 방문과 함께 밀린 빨래를 하며, 팀원들과 친목의 시간을 가졌다. 주말에는 National Park로 사파리를 가서 동물의 왕국에서만 보던 야생 초원의 동물들을 보았고, 킬리만자로 산 하이킹, 마랑구 폭포와 모시타운, 마사이 마을 견학을 했고, 모든 일정을 마친 마지막 날에는 탄자니아-케냐국경의 호수를 방문해서 물놀이 시간도 가졌다. 요리사 Mama들이 준비해준 따뜻한 세끼 밥과 특제 짜파티는 아프리카에서 마저 나를 살찌게했다. 차를 타고 이동할때도, 산을 오르내릴때도, 일하러 갈때도, 너무 배고플때도, 추울때도 어떤 상황이던지 우리는 늘 노래하며 걸었고, 일했다. 밤에는 culture night시간과 함께 하루를 반성하고 스스로 평가하는 시간을 통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봤다. 워크캠프 모든 순간 동안 우리 사이에는 국적도 없었고 모두 한 가족이었다. 일할땐 일하고, 쉴땐 쉬고, 더 나은방법을 위해 서로 고민하고.
Mwika의 기후는 아프리카의 기후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꿀 정도로… 추웠다. 탄자니아는 우리나라보다 10배나 큰 국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기후가 다른데, 같은 겨울이라도 Mwika는 킬리만자로 산의 낮은 기압과 차가운 날씨로 인해 짧은 옷만 많이 챙겼던 나를 힘들게했다.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모기가 없고 벌레가 적다는 것! 우리는 킬리만자로 산의 얼음이 녹아져 내려오는 물에 샤워하고 빨래를 했다. 가끔은 물이 나오지 않아 basket crisis를 맞이하기도 했고, 하이킹을 한다고 나섰다가 등산이 되어버린 황당한 상황에서도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작은 길을 만났을 뿐인데, civilization을 외치며 감사했다. 비포장 적토로 인해서 집 앞을 잠시 나서기만 해도 코, 귀 머리에서는 붉은 흙 물이 떨어졌고 신발도 망가지기 일쑤였지만 서로의 모습을 보고는 결국 웃음이 터졌다. 일하면서 쉬는 도중에는 각자 국가의 정치와 경제에 대해 비평을 하기도 했고 개인의 경험과 삶에 대해서도 나누었다. 분명히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확실히 자기 주장을 하고 관념이 확실하지만 모든 것에 배려하고 친절한 프랑스 친구를 보면서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4개 국어를 하는 독일친구를 보며 자극을 받았으며 나보다 더 아시아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스페인친구를 통해 세계사책을 모두 다시 보는 열정을 얻었다. 같이 봉사하러 온 팀원이지만 낯선 환경과 일에 생소한 우리를 위해 더 많이, 먼저 솔선수범하고 작은 것에도 에스코트하고 배려해준 탄자니아친구들을 통해 따뜻함과 감사함을 느꼈고, 늘 밝게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터키친구들을 통해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Mwika의 기후는 아프리카의 기후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꿀 정도로… 추웠다. 탄자니아는 우리나라보다 10배나 큰 국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기후가 다른데, 같은 겨울이라도 Mwika는 킬리만자로 산의 낮은 기압과 차가운 날씨로 인해 짧은 옷만 많이 챙겼던 나를 힘들게했다.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모기가 없고 벌레가 적다는 것! 우리는 킬리만자로 산의 얼음이 녹아져 내려오는 물에 샤워하고 빨래를 했다. 가끔은 물이 나오지 않아 basket crisis를 맞이하기도 했고, 하이킹을 한다고 나섰다가 등산이 되어버린 황당한 상황에서도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작은 길을 만났을 뿐인데, civilization을 외치며 감사했다. 비포장 적토로 인해서 집 앞을 잠시 나서기만 해도 코, 귀 머리에서는 붉은 흙 물이 떨어졌고 신발도 망가지기 일쑤였지만 서로의 모습을 보고는 결국 웃음이 터졌다. 일하면서 쉬는 도중에는 각자 국가의 정치와 경제에 대해 비평을 하기도 했고 개인의 경험과 삶에 대해서도 나누었다. 분명히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확실히 자기 주장을 하고 관념이 확실하지만 모든 것에 배려하고 친절한 프랑스 친구를 보면서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4개 국어를 하는 독일친구를 보며 자극을 받았으며 나보다 더 아시아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스페인친구를 통해 세계사책을 모두 다시 보는 열정을 얻었다. 같이 봉사하러 온 팀원이지만 낯선 환경과 일에 생소한 우리를 위해 더 많이, 먼저 솔선수범하고 작은 것에도 에스코트하고 배려해준 탄자니아친구들을 통해 따뜻함과 감사함을 느꼈고, 늘 밝게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터키친구들을 통해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Episode 1.
처음 학교로 봉사를 하러 간 날이었다. 어린이들이 우리가 신기한지 달려들어서는 이곳 저곳 만지고 머리를 잡아당기고 손을 놓지 않고, 아이폰, 시계, 모자, 악세서리 등 우리에게 있는 모든것들을 잡고 놓지 않아 결국 통제불능상태에 이르렀다. 다들 이 사건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했는데, 그 내용이 나와는 달랐다. 나는 단지 내가 놀랐던 것 뿐이었는데, 다른 외국인 친구들은 외국인 봉사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심어질까봐 우려했다.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 아, 이러한 시각으로도 현상을 볼 수 있구나 하고 크게 한 방 맞은 순간이었다.
Episode 2.
짝을 지어 마을 가정으로 홈스테잉을 하러 갔다. 에이즈에 걸린 과부와 세남매 가정이었는데, 일손을 돕고 함께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에이즈 환자였는데 그 때문에 부인은 에이즈에 걸렸고, 막내를 낳을 때 까지 모르고 있다가 남편의 사망으로 알게 되었지만, 무료치료를 받으러 시내까지 갈 차비가 없어서 약조차 먹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그 부인과 인사하는 것도 꺼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묵묵히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부인을 보면서, 자신의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또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잠시 왔다가 휙 가버리는 것이 꺼려지지는 않은가 하고 질문을 했었는데 그 답변이 나를 감동시켰다.
그녀의 답변은, 외부에서 온 우리를 보고 자기들도 어떤 희망을 보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 문득 내가 그러한 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어깨가 무거워 졌고 이것이 워크캠프의 지역사회를 위한 일 이라는 것에 뿌듯해졌다.
Episode 3.
외국인 여자친구들과 한국 친구들에게도 할 수 없었던 고민이야기를 서로 나눴다. 다들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서투른 영어로도 이렇게 서로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친구들과 이야길 할때면, 내가 한국친구들과 있는지, 이곳이 아프리카가 맞는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Episode 4.
탄자니아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2개 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이 참 부럽기도 하고 신기했다. 물론 아픈 역사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어쨌든 언어는 최고의 자산이다. 워크캠프도중 있었던 스와힐리어 시간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주민들도 스와힐리어 쓰는 것을 좋아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배우는 것 또한 그 문화를 이해하는 걸음의 하나라고 생각했고. 탄자니안 들에게는 할 수 있는 말은 스와힐리어로 하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도. (하하)
기본 인사인부터, 물건 깍는 법까지 배웠다. 숫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일하러 가기싫어! 라는 스와힐리어를 배워서 모두가 외치고 다녔다. sitakikupakarangi! revolution! 역시 부딪히며 배우는 언어가 제일 빨리 실력이 향상됨을 느낀다. 탄자니아 친구들에게 마지막에 편지를 쓸때는 스와힐리어로 썼다 (물론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제 2,3외국어로 스와힐리어를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에게 워크캠프는 배움과 감사의 연속이었다. 좋은 환경들을 경험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나쁜 환경들을 통해 성장하게 하심에 감사했다. 또 사람을 통해 배우고, 자연을 통해 배우고, 상황을 통해 지혜와 바른 가치들을 배웠다. 내 마음의 가족들은 세계 곳곳에서 또 놀라운 일들을 해내고 있을것이고, 나 또한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또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워크캠프 동안 축적했던 삶의 가치들을 실현할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또 누군가로부터 희망을 얻고, 세계의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고 함께 화합하고 또 함께 였던 기억을 그리워 할 수 있다는 것은 값지고 아름다운 재산인 것 같다. 세계시민. 이제는 그에 맞는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면서 내게 주어졌던 이 귀한 기회를 돌려주어야 겠다.
마지막 날 아침, farewell을 하면서 다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불렀던 노래가 기억에 남는다.
‘ we are one, we are one we come from different places but we are one.’
처음 학교로 봉사를 하러 간 날이었다. 어린이들이 우리가 신기한지 달려들어서는 이곳 저곳 만지고 머리를 잡아당기고 손을 놓지 않고, 아이폰, 시계, 모자, 악세서리 등 우리에게 있는 모든것들을 잡고 놓지 않아 결국 통제불능상태에 이르렀다. 다들 이 사건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했는데, 그 내용이 나와는 달랐다. 나는 단지 내가 놀랐던 것 뿐이었는데, 다른 외국인 친구들은 외국인 봉사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심어질까봐 우려했다.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 아, 이러한 시각으로도 현상을 볼 수 있구나 하고 크게 한 방 맞은 순간이었다.
Episode 2.
짝을 지어 마을 가정으로 홈스테잉을 하러 갔다. 에이즈에 걸린 과부와 세남매 가정이었는데, 일손을 돕고 함께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에이즈 환자였는데 그 때문에 부인은 에이즈에 걸렸고, 막내를 낳을 때 까지 모르고 있다가 남편의 사망으로 알게 되었지만, 무료치료를 받으러 시내까지 갈 차비가 없어서 약조차 먹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그 부인과 인사하는 것도 꺼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묵묵히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부인을 보면서, 자신의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또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잠시 왔다가 휙 가버리는 것이 꺼려지지는 않은가 하고 질문을 했었는데 그 답변이 나를 감동시켰다.
그녀의 답변은, 외부에서 온 우리를 보고 자기들도 어떤 희망을 보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 문득 내가 그러한 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어깨가 무거워 졌고 이것이 워크캠프의 지역사회를 위한 일 이라는 것에 뿌듯해졌다.
Episode 3.
외국인 여자친구들과 한국 친구들에게도 할 수 없었던 고민이야기를 서로 나눴다. 다들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서투른 영어로도 이렇게 서로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친구들과 이야길 할때면, 내가 한국친구들과 있는지, 이곳이 아프리카가 맞는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Episode 4.
탄자니아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2개 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이 참 부럽기도 하고 신기했다. 물론 아픈 역사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어쨌든 언어는 최고의 자산이다. 워크캠프도중 있었던 스와힐리어 시간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주민들도 스와힐리어 쓰는 것을 좋아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배우는 것 또한 그 문화를 이해하는 걸음의 하나라고 생각했고. 탄자니안 들에게는 할 수 있는 말은 스와힐리어로 하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도. (하하)
기본 인사인부터, 물건 깍는 법까지 배웠다. 숫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일하러 가기싫어! 라는 스와힐리어를 배워서 모두가 외치고 다녔다. sitakikupakarangi! revolution! 역시 부딪히며 배우는 언어가 제일 빨리 실력이 향상됨을 느낀다. 탄자니아 친구들에게 마지막에 편지를 쓸때는 스와힐리어로 썼다 (물론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제 2,3외국어로 스와힐리어를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에게 워크캠프는 배움과 감사의 연속이었다. 좋은 환경들을 경험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나쁜 환경들을 통해 성장하게 하심에 감사했다. 또 사람을 통해 배우고, 자연을 통해 배우고, 상황을 통해 지혜와 바른 가치들을 배웠다. 내 마음의 가족들은 세계 곳곳에서 또 놀라운 일들을 해내고 있을것이고, 나 또한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또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워크캠프 동안 축적했던 삶의 가치들을 실현할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또 누군가로부터 희망을 얻고, 세계의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고 함께 화합하고 또 함께 였던 기억을 그리워 할 수 있다는 것은 값지고 아름다운 재산인 것 같다. 세계시민. 이제는 그에 맞는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면서 내게 주어졌던 이 귀한 기회를 돌려주어야 겠다.
마지막 날 아침, farewell을 하면서 다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불렀던 노래가 기억에 남는다.
‘ we are one, we are one we come from different places but we are 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