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이탈리아, 용기와 성장을 얻다

작성자 김은지
이탈리아 Leg29 · ENVI 2013. 08 Monsummano

Monsummano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졸업반이 되고 마지막 방학을 앞둔 나는 이번 여름에 어떤 것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주변 친구들은 방학에 취업을 위해 공부를 하거나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던 중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국제워크캠프였다.
세계 각 국의 사람들이 모여 팀을 이루고 2~3주 동안 봉사활동을 하는 국제워크캠프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최적의 기회였다. 봉사활동 뿐만 아니라 문화교류도 할 수 있고 워크캠프 전후로 자유롭게 여행도 가능했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나 스스로 준비해야만 했다. 이 점이 가장 두렵고 겁나기도 했지만 또 내가 워크캠프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무엇이든 스스로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용기 없는 내가 이번 경험을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워크캠프 신청을 하고 얼마 뒤 내가 1지망으로 선택했던 이탈리아가 확정이 났다. 거가다가 이탈리아의 대표적 관광도시 피렌체와 불과 1시간 거리인 ‘Monsummano’라는 마을로 배정을 받아 기차를 타고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워크캠프 첫날 기차역에 도착한 나는 리더 루카가 “챠오~”라고 이탈리아 말로 반갑게 인사하는 것을 무시하고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그 이유는 이탈리아는 소매치기가 정말 많고 특히 동양여자에게 말을 걸어 접근해 물건을 훔쳐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겁이 나서 그 사람이 리더라고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루카는 계속 내 뒤를 쫓아왔고 나에게 너 워크캠프 하러 온 거 아니냐는 물음에 마음을 놓고 인사할 수 있었다. 숙소로 와서 나는 루카에게 또 다른 한국인이 있냐고 물었는데 한국인은 없고 대만 남자애 2명이 있다고 했다. 스페인, 이탈리아(각 3명), 프랑스, 대만, 세르비아, 러시아(각 2명), 한국, 체코, 독일(각 1명)이렇게 총 17명 멤버 중에 동양인은 나를 포함해 3명이었고 여자 중에선 동양인이 나 혼자였다. 동양인이 우리 3명뿐이라 워크캠프 기간 내내 대만 애들은 나와 가장 친하게 지냈다. 아무래도 문화가 비슷하고 영어 발음도 서로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어서 대화가 잘 통했다. 특히 리더가 말해주는 공지사항을 내가 이해하지 못할 때 알려주기도 하고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또 워크캠프가 끝난 뒤 나와 여행 일정이 맞아 같이 다니며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2주 동안 우리가 한 일은 매일 아침 차를 타고 마을에 있는 작은 산에 올라가 그 산을 정비하는 일이었다. 전혀 관리되어 있지 않은 산은 사방에 나뭇가지가 뻗어있고 바닥에는 나뭇잎이 가득해 걸어 다니기에도 불편했다. 우리는 그 나뭇잎을 치우고 나뭇가지들을 정리했다. 또 나무를 잘라 울타리와 벤치도 만들었다. 벽면에는 페인팅을 칠해 ‘WORK CAMP’라는 단어를 새겨 넣었고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도 만들어 주민들이 이 산을 산책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매일 일을 하다 11시쯤엔 그늘에서 코코멜론 타임(이탈리아에선 수박을 꼬꼬멜론 이라고 부른다)을 가졌는데 이때 먹었던 수박의 맛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다. 땀 흘리고 함께 고생한 친구들끼리 먹는 것이라 그런지 유난히도 더 달게 느껴졌다.
하루하루 우리의 땀과 노력을 통해 달라지는 산을 보며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우리가 한 일은 지역신문에도 나오고 기자들도 가끔씩 인터뷰를 와 우리를 취재해 가기도 해 굉장히 신기했다. 사실 ‘환경 보호’라는 것에 대해 큰 관심이 없던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자연을 보호하고 지키는 일은 우리의 의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일과는 오전8시에 시작해 12시에서 1시 정도면 끝이 났고 오후에는 근교도시나 마을의 중심가로 놀러가거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요일별로 나라를 정해 각 나라의 음식을 먹었는데 각양각색의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내 입맛에 맞지 않을까봐 걱정됐지만 굉장히 맛있었다.
영어도 못하는 내가 이들과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정말 걱정됐는데 하루 24시간을 같이 있다 보니 그 날의 에피소드에 대해서만 말해도 할 얘기는 무궁무진 했다. 그 중 가장 흔히 하는 대화는 “이건 너희 나라말로 뭐라고 해?”이런 질문들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친구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한글은 옛날에 우리나라 왕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려주자 신기해했고, 한글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사실 처음엔 나 혼자 한국인이라는 것이 너무 부담되고 걱정 됐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한국말을 해도 들어줄 이가 없기에 어떻게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스스로 이해해야 했고 내 뜻을 전하기 위해선 말도 안 되는 영어라도 내뱉어야 했다. 어쩔 땐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해 속상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내게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었다.
또 우리나라에선 내가 무슨 일을 하다 실수해도 나 혼자 그 책임을 짊어지면 되지만 그곳에선 내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한국인은 일을 잘 안한다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이 보는 한국이 나로 인해 나쁘게 인식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 임하려고 했다. 어쩌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한국인 친구가 있다면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많은 것을 배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2013년 8월, 내 인생에 가장 두렵고 설레던 그 경험이 이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나에겐 다시 해외로 여행을 간다하면 그 나라에 연락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고, 더 이상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도 갖지 않게 됐다. 무엇보다 나 혼자라고 해서 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함께 2주 동안 생활하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준 친구들에게 정말 고맙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꼭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