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워크캠프, 나를 바꾸는 경험
ANTICHAN DE FRONTIGN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참가동기
참가하게 된 계기는 좀 더 대학생활에 있어서 특별한 경험을 만들고 싶고 또 외국 쪽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차라 영어 실력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를 좀 더 알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체험해 보고 싶어서 참가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를 지원했던 이유는 바로 환경과 재건설에 대한 봉사가 많았기 때문인데 항상 손에 힘이 없어 도움을 받기만 하던 나 자신이 좀 더 강해지고 의지만 하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변하길 바라는 바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 환경이 어려우면 서로 더 협력도 잘하고 좋은 추억이 만들어 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도 지원을 할 결심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이 워크캠프에 참여한 이유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며 문화를 교류하고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다시없을 기회일 것이었기 때문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활동이야기
사실 처음 시설에 도착하여 실망을 많이 했다. 텐트 안에서 자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조그맣고 정말 텐트 밖에 없을 줄은 몰랐다. 위생시설도 조금 멀리 걸어야 하고 해서 불편해 보여 정말 이게 야영이구나 싶었다. 낮에는 정말 햇빛이 내리쬐면서 더웠고 밤에는 가을 날씨와 같이 추웠고 습했다. 가방은 아무데나 던져놓아 진흙덩이에 더러워졌고 밤새 비가 내린 적이 많았는데 비가 내려 축축해진 테이블에서(테이블이 야외에 있었다) 그냥아침을 먹곤 했다. 식사는 매번 옆 야영지에서 받아오곤 했는데 항상 피자나 빵, 기름에 튀긴 듯한 그런 음식들이 나와서 먹기 힘들거나 하진 않았지만, 엄청나게 살이 찔만한 것들이었다. 그래도 모두 군말 없이 생활에 충실했다. 그렇게 한 주를 함께 생활하다보니 나의 부족했던 영어실력에도 점점 애들과 의사소통도 자연스러워지고 영어가 주가 아닌 프랑스어가 주여서 마을사람들과는 교류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좋은 주민들의 배려 때문에 생활에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첫 주에는 주로 수풀이 많은 길에 나뭇가지 등을 잘라 길을 내고 짐을 들고 연례행사를 위해 산에 올라가거나 산에서 길을 내고,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 작업이 끝난 후엔 축제를 돕는 일을 했는데 탁구대를 설치하거나 볼링장설치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그리고 콘서트장 설치 연회장 설치 등 테이블과 의자를 나열하고 닦고 청소하고 대형텐트를 설치하는 등의 작업을 했다. 여가시간엔 주로 책을 읽거나 같이 카드 게임을 하거나 그 나라에서 유행하는 게임 등을 했다. 축제기간엔 그 마을 전체사람들(80명 정도 밖에 안 된다.)임 모여 음악을 크게 틀고 춤을 추는 날이 많았는데 아이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다 똑같은 안무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굉장히 즐거웠다. 또, 그 작은 마을에서도 싸이의 ‘강남스타일’음악이 나오니 전부 환호를 했다. 전부 나를 쳐다보며 어떻게 추는지 유심히 보길래 좀 부담스러웠지만 즐겁게 추니 전부 따라하면서 잘 추었다. 또, 내가 가져간 불고기소스, 고추장은 그렇게 인기가 좋을 수 없었다. ‘international meal’ 이라고 따로 마을사람들에게 선보이는 날이 있었는데 내 불고기 소스와 고추장은 일주일도 안 되어 친구들이 다먹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라면과 볶음밥을 만들어 international meal을 개시하는 날에 선보였더니 의외로 인기가 좋아 엄청 뿌듯했다. 그 외에도, 마을사람들이 도와주어 마을 멀리 있는 오래된 성당도 가보았고, 국경근처지만 스페인에도 가보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대도시인 툴루즈에도 가보았으며 평생할 일 없다 생각했던 암벽타기를 해서 코스를 끝까지 완주했다. 그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비록 우린 2nd language로 소통하였지만 나의 룸메이트였던 Anna와는 정말 속 깊은 얘기까지 할 수 있는 깊은 사이가 되었고, 한국에서는 눈치만 보는 나였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예의를 지키는 상에서 내 할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도 얻게 되었다. 봉사를 하고 또 마을사람과 교류하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보냈던 3주는 내게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특별한 에피소드
제일 첫날, 친구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학교가 그려진 타월에 대하여 묻길래 내가 한국에서 다니고 있는 학교이고 학교에서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친구들이 부러워하였고 아주 아름다운 캠퍼스를 가진 학교라며 칭찬하여 매우 기분이 좋았다. 또, 한번은 친구들에게 딸기게임을 가르쳐주었는데 ‘딸기’라는 발음이 어려워서 ‘키위’로 하려 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딸기’라는 발음이 더 좋다고 해서 딸기로 하기로 하고 게임을 시작하였는데 한명이 엄청 못해서 정말 웃었던 기억이 있다. 또 한국어로 일기를 쓰는걸 보고 모양이 너무 아름답다며 자기이름을 한국어로 써달라고 하고 나중에 내가 준 엽서에 한국어로, 그다음엔 영어로 번역해서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어떤 친구는 원래 한국어에 관심이 많았는데 내가 공부를 가르쳐주어서 결국 공한국어를 조금이나마 읽게 되었다. 또, 텐트에서 자다가 위에 있는 민달팽이 그림자를 보고 새벽에 놀라 소리를 질러 모두가 깬 기억도 있고, 캠프장주인이 여자 샤워실을 모두 문 잠궈 버려 모두 남자 샤워실에서 씻고 했던 기억도 있다. 그때 당시엔 힘들었던 기억도 많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다 좋은 추억들이라고 생각한다.
참가 후 변화
참가 후에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아시아 여자애라고는 나 한명밖에 없는 마을에서 가끔씩 의사소통이 안 될 때 또는 자기네 나라말로 자기네들끼리만 얘기할 때, 통화불가능지역에 있어 가족들과도 연락이 안 될 때 정말 외롭고 쓸쓸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과 모두 다 친해졌고 정말 ‘나의 외국인친구’가 아닌 정말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헤어질 때 눈물이 날 뻔했다. 프랑스라는 먼 지역에 와서 혼자 기차타고 지하철타고 시간에 맞춰 미팅포인트에 왔고 또 이 모든 봉사를 함께 힘 합쳐 다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것은 정말 다른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는 큰 경험이었고, 내 생에 있어서 그렇게 높은 산을 올랐다는 것도 나 자신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다. 친구들도 나에게 머나먼 지역까지 와서 이렇게 봉사한다는 것에 대해서 무척 감동을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참가 후에, 예전의 내가 좀 더 열등감에 차있고, 나 자신을 너무 낮추어보고 했다면, 지금은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어느 정도 생겼고, 앞으로 고되고 힘든 일에 대하여 피하지 않고 열심히 대처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 또 영어회화능력에 대하여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다기보다는 자신감과 좀더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이 가능해 진 것 같아 기쁘다. 이 워크캠프를 통해 내가 앞으로 외국어능력이든, 봉사든, 어떤 고된 일이든 좀 더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큰 발판이 된 것 같다. 이러한 값진 기회를 주신 워크캠프 관련 단체분들과 나의 모교 계명대학교 관계자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린다.
참가하게 된 계기는 좀 더 대학생활에 있어서 특별한 경험을 만들고 싶고 또 외국 쪽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차라 영어 실력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를 좀 더 알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체험해 보고 싶어서 참가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를 지원했던 이유는 바로 환경과 재건설에 대한 봉사가 많았기 때문인데 항상 손에 힘이 없어 도움을 받기만 하던 나 자신이 좀 더 강해지고 의지만 하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변하길 바라는 바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 환경이 어려우면 서로 더 협력도 잘하고 좋은 추억이 만들어 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도 지원을 할 결심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이 워크캠프에 참여한 이유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며 문화를 교류하고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다시없을 기회일 것이었기 때문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활동이야기
사실 처음 시설에 도착하여 실망을 많이 했다. 텐트 안에서 자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조그맣고 정말 텐트 밖에 없을 줄은 몰랐다. 위생시설도 조금 멀리 걸어야 하고 해서 불편해 보여 정말 이게 야영이구나 싶었다. 낮에는 정말 햇빛이 내리쬐면서 더웠고 밤에는 가을 날씨와 같이 추웠고 습했다. 가방은 아무데나 던져놓아 진흙덩이에 더러워졌고 밤새 비가 내린 적이 많았는데 비가 내려 축축해진 테이블에서(테이블이 야외에 있었다) 그냥아침을 먹곤 했다. 식사는 매번 옆 야영지에서 받아오곤 했는데 항상 피자나 빵, 기름에 튀긴 듯한 그런 음식들이 나와서 먹기 힘들거나 하진 않았지만, 엄청나게 살이 찔만한 것들이었다. 그래도 모두 군말 없이 생활에 충실했다. 그렇게 한 주를 함께 생활하다보니 나의 부족했던 영어실력에도 점점 애들과 의사소통도 자연스러워지고 영어가 주가 아닌 프랑스어가 주여서 마을사람들과는 교류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좋은 주민들의 배려 때문에 생활에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첫 주에는 주로 수풀이 많은 길에 나뭇가지 등을 잘라 길을 내고 짐을 들고 연례행사를 위해 산에 올라가거나 산에서 길을 내고,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 작업이 끝난 후엔 축제를 돕는 일을 했는데 탁구대를 설치하거나 볼링장설치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그리고 콘서트장 설치 연회장 설치 등 테이블과 의자를 나열하고 닦고 청소하고 대형텐트를 설치하는 등의 작업을 했다. 여가시간엔 주로 책을 읽거나 같이 카드 게임을 하거나 그 나라에서 유행하는 게임 등을 했다. 축제기간엔 그 마을 전체사람들(80명 정도 밖에 안 된다.)임 모여 음악을 크게 틀고 춤을 추는 날이 많았는데 아이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다 똑같은 안무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굉장히 즐거웠다. 또, 그 작은 마을에서도 싸이의 ‘강남스타일’음악이 나오니 전부 환호를 했다. 전부 나를 쳐다보며 어떻게 추는지 유심히 보길래 좀 부담스러웠지만 즐겁게 추니 전부 따라하면서 잘 추었다. 또, 내가 가져간 불고기소스, 고추장은 그렇게 인기가 좋을 수 없었다. ‘international meal’ 이라고 따로 마을사람들에게 선보이는 날이 있었는데 내 불고기 소스와 고추장은 일주일도 안 되어 친구들이 다먹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라면과 볶음밥을 만들어 international meal을 개시하는 날에 선보였더니 의외로 인기가 좋아 엄청 뿌듯했다. 그 외에도, 마을사람들이 도와주어 마을 멀리 있는 오래된 성당도 가보았고, 국경근처지만 스페인에도 가보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대도시인 툴루즈에도 가보았으며 평생할 일 없다 생각했던 암벽타기를 해서 코스를 끝까지 완주했다. 그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비록 우린 2nd language로 소통하였지만 나의 룸메이트였던 Anna와는 정말 속 깊은 얘기까지 할 수 있는 깊은 사이가 되었고, 한국에서는 눈치만 보는 나였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예의를 지키는 상에서 내 할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도 얻게 되었다. 봉사를 하고 또 마을사람과 교류하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보냈던 3주는 내게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특별한 에피소드
제일 첫날, 친구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학교가 그려진 타월에 대하여 묻길래 내가 한국에서 다니고 있는 학교이고 학교에서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친구들이 부러워하였고 아주 아름다운 캠퍼스를 가진 학교라며 칭찬하여 매우 기분이 좋았다. 또, 한번은 친구들에게 딸기게임을 가르쳐주었는데 ‘딸기’라는 발음이 어려워서 ‘키위’로 하려 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딸기’라는 발음이 더 좋다고 해서 딸기로 하기로 하고 게임을 시작하였는데 한명이 엄청 못해서 정말 웃었던 기억이 있다. 또 한국어로 일기를 쓰는걸 보고 모양이 너무 아름답다며 자기이름을 한국어로 써달라고 하고 나중에 내가 준 엽서에 한국어로, 그다음엔 영어로 번역해서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어떤 친구는 원래 한국어에 관심이 많았는데 내가 공부를 가르쳐주어서 결국 공한국어를 조금이나마 읽게 되었다. 또, 텐트에서 자다가 위에 있는 민달팽이 그림자를 보고 새벽에 놀라 소리를 질러 모두가 깬 기억도 있고, 캠프장주인이 여자 샤워실을 모두 문 잠궈 버려 모두 남자 샤워실에서 씻고 했던 기억도 있다. 그때 당시엔 힘들었던 기억도 많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다 좋은 추억들이라고 생각한다.
참가 후 변화
참가 후에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아시아 여자애라고는 나 한명밖에 없는 마을에서 가끔씩 의사소통이 안 될 때 또는 자기네 나라말로 자기네들끼리만 얘기할 때, 통화불가능지역에 있어 가족들과도 연락이 안 될 때 정말 외롭고 쓸쓸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과 모두 다 친해졌고 정말 ‘나의 외국인친구’가 아닌 정말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헤어질 때 눈물이 날 뻔했다. 프랑스라는 먼 지역에 와서 혼자 기차타고 지하철타고 시간에 맞춰 미팅포인트에 왔고 또 이 모든 봉사를 함께 힘 합쳐 다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것은 정말 다른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는 큰 경험이었고, 내 생에 있어서 그렇게 높은 산을 올랐다는 것도 나 자신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다. 친구들도 나에게 머나먼 지역까지 와서 이렇게 봉사한다는 것에 대해서 무척 감동을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참가 후에, 예전의 내가 좀 더 열등감에 차있고, 나 자신을 너무 낮추어보고 했다면, 지금은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어느 정도 생겼고, 앞으로 고되고 힘든 일에 대하여 피하지 않고 열심히 대처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 또 영어회화능력에 대하여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다기보다는 자신감과 좀더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이 가능해 진 것 같아 기쁘다. 이 워크캠프를 통해 내가 앞으로 외국어능력이든, 봉사든, 어떤 고된 일이든 좀 더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큰 발판이 된 것 같다. 이러한 값진 기회를 주신 워크캠프 관련 단체분들과 나의 모교 계명대학교 관계자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