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레지오 에밀리아, 봉사로 얻은 특별한 경험
ZOR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 워크캠프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된 계기는 학교프로그램을 통해서 입니다.
평소에 해외봉사 한번쯤은 다들 꿈꿔보실 겁니다. 학교 홈페이지에 글로벌봉사단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고 서류와 면접을 통해 선발이 되었습니다. 글로벌봉사단 프로그램이 워크캠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해외봉사라는 타이틀뿐인 줄 알았는데 워크캠프를 통해 다른 해외봉사와는 차원이 다르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워크캠프 팀이 봉사를 하게 된 곳은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레지오에밀리아주의
ZORA corporation 이라는 장애인 사회복지 시설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9시쯤 장애인들이 이 복지시설로 와서 5시쯤 돌아가는 일종의 학교 같은 시스템이었습니다. 장애인은 미술놀이, 음악놀이, 게임 등 여러 가지 활동들을 이 복지시설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팀은 저, 재훈이오빠, 터키인 나디데, 스페인인 실비아와 마카레나, 이탈리아 리더 마리아나 총 6명으로 구성되어 이 시설에서 함께 2주동안 함께 살며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처음 캠프에 도착했을 때, 많은 장애인들과 corporator 들이 저희를 반겨 주었습니다.
하나 둘씩 워크캠프 식구들이 모이고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식사당번을 정하고 서로 인사하는 데에 하루를 몽땅 쓴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주동안 과연 내가 영어만 사용하면서 다른나라 다른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렇게 영어만 듣고, 말해본 적이 한번도 없어서 온 신경을 말 알아듣는 데에 쏟다보니 피곤하기도 했습니다.
둘째 날부터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봉사활동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같이 노는구나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매일매일 캠프식구들은 2명씩 짝지어 어떤 팀은 장애인들과 함께 청소를 하고, 어떤 팀은 장애인들과 함께 요리를 하고, 어떤 팀은 미술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떤 날은 다함께 악기를 마구마구 두드리며 뮤지컬 쇼를 하기도 했고, 작은 운동회처럼 여러 가지 게임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애인은 치칠리아라는 친구인데 이 친구는 엄청 밝은 미소를 가진 친구였습니다. 항상 미소로 다가와 꼭안아주고 내가 피곤해 할 땐 자기어깨에 기대라며 잠시어깨도 빌려주는 정말 사랑스런 친구였습니다. 마지막 봉사활동 날 마지막으로 배웅해준 친구가 바로 치칠리아 인데, 마지막인걸 아는지 모르는지 밝게 웃으며 자동차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손을 흔드는 치칠리아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댄스와 영어를 유창하게 했던 알렉스, 매일 울먹거리면서 손짓했지만 왜그러는지 몰라 미안했던 알렉시아, 항상 내 코를 만지작거리고 등을 쓰다듬어 달랬던 티나, 내 팔을 꽉잡고 놓을줄 몰랐던 티티, 그리고 고메스다이(How are you) 고메스다이 ~~이탈리아어로 블라블라블라블라 하면서 우리 안부를 물었던 친구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how are you, fucking you, how are you, fucking you라고 말했던 것이여서 매우 놀랐던 기억도 있습니다.
- 레지오에밀리아 나들이
봉사활동은 보통 오후 5시가 되면 끝이났습니다. 그 후론 모두 우리들의 자유시간 !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하고, 거리공연도 마음껏 구경하고, 자전거를 타고 레지오에밀리아의 중심가를 밤늦도록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우리캠프가 시골에 위치해 자전거를 타고 한참이나 들어가야 했습니다.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 시골냄새에 젖어들기도 했습니다.
- ZORA에 남기는 선물
또 우리가 이 corporation에 무슨 선물을 남기고 갈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문 앞에 거는 장식품을 우리가 직접 꾸며 걸어두기, 벽 한쪽에 우리의 흔적 남기기. 두가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결국엔 장식을 완성하기도 전에 서로의 얼굴에 페인트를 묻히며 정신없이 놀긴 햇지만 결국엔 완!성!
- 피렌체,피사
주말엔 이탈리아 최고의 관광지 피렌체와 피사를 방문하여 1박2일간 이탈리아 건축물에 감탄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우리 이탈리아 리더 마리아나가 피렌체와 피사를 방문한 다른 친구 알렉산드로를 불러 관광지에 대한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피렌체에서 두오모 성당위에올라갔을 때엔 벽에 낙서하지말라는 문구에도 불구하고 낙서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물론 한국어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마카레나가 벽에 낙서를 하려하자 어떤 이탈리아인이 강력하게 마카레나를 제지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녀는 직원도 아니었고 그냥 관광객이었습니다. 모두가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을테지만 우리나라에선 누구하나 나서서 강력히 제지하는 모습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자기 나라의 문화재를 아끼고 보호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꼈고 본받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때까진 몰랐습니다. 관광을 마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숙소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어떤 사람이 기차티켓이 없어 기차를 세워버린 겁니다. 우리나라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 하나 때문에 몇 백명의 발이 한시간넘게 기차안에서 묶여있다는 게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그 시각은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우리일행들은 다른역에서 기차를 환승해야 했기 때문에 숙소로 돌아가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했습니다. 한시간넘게 정차후에 무사히 레지오에밀리아역에 도착했지만 우리가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4시쯤이었습니다. 혼자있었다면 무서웠겠지만 캠프식구들과 같이 있었어서 기차안에서 수다도 떨며 추억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 발바라의 초대
corporator 루카의 생일날 corporator 발바라는 우리 캠프식구들과 corporator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신기한 게 집이 산 꼭꼭꼭꼭대기에 있었습니다. 뭐 이런데 사람이 사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산을타고 올라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곳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같으면 주변에 편의시설도 없는 데 불편하게 어떻게 살까 생각하지만 그들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걸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각국의 음식을 조금씩 만들어 맛을 보였습니다. 한국음식으로는 불고기양념을 매운맛, 간장맛 두가지를 요리해 맛을 보였는데 간장맛은 맛있게 잘 먹는가 싶더니 매운맛을 먹을땐 다들 죽기일부직전의 표정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 축제,호수
마지막 주말, corporator 마누와 다니엘리, 발바라가 우리를 데리고 호수에 데려갔습니다. 산중턱에 있는 호수였는데 경관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이탈리아인들은 잔디에서 수영복을 입고 누워 햇빛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햇빛을 즐기는데엔 익숙치 않기에 그늘에 누워 숙면(?)을 취하고 맛있는 이태리 전통 요리도 먹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교에서 가져온 비치타올로 캠퍼스가 아름다운 계명대학교라고 우리학교를 소개하고 경영대학이 특히 유명하다고 약간의 과장된 말도 보탰습니다.^^ 마지막날엔 우리학교를 상징하는 팬던트도 친구들에게 나눠주니 매일 걸고 다니겠다며 아주 좋아했습니다.
특히 팬던트 중에 흰색바탕에 빈 아무무늬도 없는, 테두리에만 학교이름이 적혀있었던 팬던트는 스페인친구 실비아에게 주었는데 이 빈공간에 너의 꿈과 미래를 담을 수 있다고 공백의 의미를 설명해 주니 매우 의미있는 팬던트라면서 좋아했습니다.
저녁엔 축제엘 갔는데 축제엔 온갖 옷, 장신구, 장식품 잡동사니들을 살 수 있었고 무엇보다 거리공연들을 마음껏 볼 수 있었습니다.
- 아쉬웠던 이별
마지막날 밤엔 왜이리 마음이 뒤숭숭한지 이 친구들을 다시 볼 확률이 거의 희박하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아쉬웠습니다. 서로 편지와 선물을 나누며 지난2주를 되돌아보니 너무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아쉽다는 생각은 만장일치로 통했습니다.
완전하지 못한 영어로도 충분히 이 친구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었고 즐겁게 지낼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영어를 못알아듣는 부분이 있으면 예를들어 설명해주기도 하고 이해심이 깊은 친구들이었습니다.
처음에 걱정했던 부분들은 완전히 사라지고 온전히 아쉬움만 남아 그냥 평생 워크캠프에 눌러 앉아 살고싶은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보통 워크캠프는 인원이 한 캠프에 10명~15명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다른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26명이었던 캠프도 있었습니다. 처음에 저희 워크캠프인원은 원래 8명이었습니다. 그런데 2명이 캠프에 도착하지도 못한 채 행방불명이 되어 6명밖에 인원이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왜 우리 워크캠프 인원이 이렇게 적을까,, 나도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싶은데’라는 생각으로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원이 적기 때문에 서로간의 정이 더욱 더 끈끈해 지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페인친구 실비아는 이번 워크캠프가 3번째 워크캠프였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워크캠프때는 인원이 많았었는데 이번만큼 친밀감이 끈끈했던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너무너무 좋은 친구들을 만나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든 것 같습니다.
평소에 해외봉사 한번쯤은 다들 꿈꿔보실 겁니다. 학교 홈페이지에 글로벌봉사단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고 서류와 면접을 통해 선발이 되었습니다. 글로벌봉사단 프로그램이 워크캠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해외봉사라는 타이틀뿐인 줄 알았는데 워크캠프를 통해 다른 해외봉사와는 차원이 다르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워크캠프 팀이 봉사를 하게 된 곳은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레지오에밀리아주의
ZORA corporation 이라는 장애인 사회복지 시설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9시쯤 장애인들이 이 복지시설로 와서 5시쯤 돌아가는 일종의 학교 같은 시스템이었습니다. 장애인은 미술놀이, 음악놀이, 게임 등 여러 가지 활동들을 이 복지시설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팀은 저, 재훈이오빠, 터키인 나디데, 스페인인 실비아와 마카레나, 이탈리아 리더 마리아나 총 6명으로 구성되어 이 시설에서 함께 2주동안 함께 살며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처음 캠프에 도착했을 때, 많은 장애인들과 corporator 들이 저희를 반겨 주었습니다.
하나 둘씩 워크캠프 식구들이 모이고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식사당번을 정하고 서로 인사하는 데에 하루를 몽땅 쓴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주동안 과연 내가 영어만 사용하면서 다른나라 다른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렇게 영어만 듣고, 말해본 적이 한번도 없어서 온 신경을 말 알아듣는 데에 쏟다보니 피곤하기도 했습니다.
둘째 날부터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봉사활동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같이 노는구나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매일매일 캠프식구들은 2명씩 짝지어 어떤 팀은 장애인들과 함께 청소를 하고, 어떤 팀은 장애인들과 함께 요리를 하고, 어떤 팀은 미술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떤 날은 다함께 악기를 마구마구 두드리며 뮤지컬 쇼를 하기도 했고, 작은 운동회처럼 여러 가지 게임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애인은 치칠리아라는 친구인데 이 친구는 엄청 밝은 미소를 가진 친구였습니다. 항상 미소로 다가와 꼭안아주고 내가 피곤해 할 땐 자기어깨에 기대라며 잠시어깨도 빌려주는 정말 사랑스런 친구였습니다. 마지막 봉사활동 날 마지막으로 배웅해준 친구가 바로 치칠리아 인데, 마지막인걸 아는지 모르는지 밝게 웃으며 자동차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손을 흔드는 치칠리아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댄스와 영어를 유창하게 했던 알렉스, 매일 울먹거리면서 손짓했지만 왜그러는지 몰라 미안했던 알렉시아, 항상 내 코를 만지작거리고 등을 쓰다듬어 달랬던 티나, 내 팔을 꽉잡고 놓을줄 몰랐던 티티, 그리고 고메스다이(How are you) 고메스다이 ~~이탈리아어로 블라블라블라블라 하면서 우리 안부를 물었던 친구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how are you, fucking you, how are you, fucking you라고 말했던 것이여서 매우 놀랐던 기억도 있습니다.
- 레지오에밀리아 나들이
봉사활동은 보통 오후 5시가 되면 끝이났습니다. 그 후론 모두 우리들의 자유시간 !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하고, 거리공연도 마음껏 구경하고, 자전거를 타고 레지오에밀리아의 중심가를 밤늦도록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우리캠프가 시골에 위치해 자전거를 타고 한참이나 들어가야 했습니다.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 시골냄새에 젖어들기도 했습니다.
- ZORA에 남기는 선물
또 우리가 이 corporation에 무슨 선물을 남기고 갈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문 앞에 거는 장식품을 우리가 직접 꾸며 걸어두기, 벽 한쪽에 우리의 흔적 남기기. 두가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결국엔 장식을 완성하기도 전에 서로의 얼굴에 페인트를 묻히며 정신없이 놀긴 햇지만 결국엔 완!성!
- 피렌체,피사
주말엔 이탈리아 최고의 관광지 피렌체와 피사를 방문하여 1박2일간 이탈리아 건축물에 감탄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우리 이탈리아 리더 마리아나가 피렌체와 피사를 방문한 다른 친구 알렉산드로를 불러 관광지에 대한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피렌체에서 두오모 성당위에올라갔을 때엔 벽에 낙서하지말라는 문구에도 불구하고 낙서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물론 한국어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마카레나가 벽에 낙서를 하려하자 어떤 이탈리아인이 강력하게 마카레나를 제지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녀는 직원도 아니었고 그냥 관광객이었습니다. 모두가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을테지만 우리나라에선 누구하나 나서서 강력히 제지하는 모습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자기 나라의 문화재를 아끼고 보호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꼈고 본받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때까진 몰랐습니다. 관광을 마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숙소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어떤 사람이 기차티켓이 없어 기차를 세워버린 겁니다. 우리나라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 하나 때문에 몇 백명의 발이 한시간넘게 기차안에서 묶여있다는 게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그 시각은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우리일행들은 다른역에서 기차를 환승해야 했기 때문에 숙소로 돌아가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했습니다. 한시간넘게 정차후에 무사히 레지오에밀리아역에 도착했지만 우리가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4시쯤이었습니다. 혼자있었다면 무서웠겠지만 캠프식구들과 같이 있었어서 기차안에서 수다도 떨며 추억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 발바라의 초대
corporator 루카의 생일날 corporator 발바라는 우리 캠프식구들과 corporator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신기한 게 집이 산 꼭꼭꼭꼭대기에 있었습니다. 뭐 이런데 사람이 사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산을타고 올라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곳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같으면 주변에 편의시설도 없는 데 불편하게 어떻게 살까 생각하지만 그들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걸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각국의 음식을 조금씩 만들어 맛을 보였습니다. 한국음식으로는 불고기양념을 매운맛, 간장맛 두가지를 요리해 맛을 보였는데 간장맛은 맛있게 잘 먹는가 싶더니 매운맛을 먹을땐 다들 죽기일부직전의 표정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 축제,호수
마지막 주말, corporator 마누와 다니엘리, 발바라가 우리를 데리고 호수에 데려갔습니다. 산중턱에 있는 호수였는데 경관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이탈리아인들은 잔디에서 수영복을 입고 누워 햇빛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햇빛을 즐기는데엔 익숙치 않기에 그늘에 누워 숙면(?)을 취하고 맛있는 이태리 전통 요리도 먹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교에서 가져온 비치타올로 캠퍼스가 아름다운 계명대학교라고 우리학교를 소개하고 경영대학이 특히 유명하다고 약간의 과장된 말도 보탰습니다.^^ 마지막날엔 우리학교를 상징하는 팬던트도 친구들에게 나눠주니 매일 걸고 다니겠다며 아주 좋아했습니다.
특히 팬던트 중에 흰색바탕에 빈 아무무늬도 없는, 테두리에만 학교이름이 적혀있었던 팬던트는 스페인친구 실비아에게 주었는데 이 빈공간에 너의 꿈과 미래를 담을 수 있다고 공백의 의미를 설명해 주니 매우 의미있는 팬던트라면서 좋아했습니다.
저녁엔 축제엘 갔는데 축제엔 온갖 옷, 장신구, 장식품 잡동사니들을 살 수 있었고 무엇보다 거리공연들을 마음껏 볼 수 있었습니다.
- 아쉬웠던 이별
마지막날 밤엔 왜이리 마음이 뒤숭숭한지 이 친구들을 다시 볼 확률이 거의 희박하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아쉬웠습니다. 서로 편지와 선물을 나누며 지난2주를 되돌아보니 너무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아쉽다는 생각은 만장일치로 통했습니다.
완전하지 못한 영어로도 충분히 이 친구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었고 즐겁게 지낼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영어를 못알아듣는 부분이 있으면 예를들어 설명해주기도 하고 이해심이 깊은 친구들이었습니다.
처음에 걱정했던 부분들은 완전히 사라지고 온전히 아쉬움만 남아 그냥 평생 워크캠프에 눌러 앉아 살고싶은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보통 워크캠프는 인원이 한 캠프에 10명~15명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다른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26명이었던 캠프도 있었습니다. 처음에 저희 워크캠프인원은 원래 8명이었습니다. 그런데 2명이 캠프에 도착하지도 못한 채 행방불명이 되어 6명밖에 인원이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왜 우리 워크캠프 인원이 이렇게 적을까,, 나도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싶은데’라는 생각으로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원이 적기 때문에 서로간의 정이 더욱 더 끈끈해 지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페인친구 실비아는 이번 워크캠프가 3번째 워크캠프였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워크캠프때는 인원이 많았었는데 이번만큼 친밀감이 끈끈했던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너무너무 좋은 친구들을 만나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