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슈투트가르트, 23살 여름의 전환점 독일 공항 노숙,

작성자 송준모
독일 IJGD 23308 · ENVI 2013. 07 - 2013. 08 독일, 슈투트가르트.

FOREST ENCOUNTER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언제부터였을까 문명의 이기들에 치여 감사한 걸 감사하게 여기지 못하고, 행복한 걸 행복하게 느끼지 못하던 23살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인생의 전환점을 찾기 위해 워크캠프를 지원하게 되었다. 나의 워크 캠프는 독일 시간으로 맞춰진 손목시계와 함께 시작하였다. 시계와 함께한 공항으로의 첫 걸음은 세계로 향한 두려움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천공항을 거쳐 독일의 프랑크프루트를 지나 슈투트가르트 공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프랑크프루트를 경유해서 도착한 슈투트가르트 공항은 오후 10시가 넘은 밤이었다. 독일은 처음 가보는 나라였고 또 초행길이었기 때문에 도착 첫 날은 공항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보고 간 노숙 경험담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슈투트가르트 공항에는 노숙을 했던 사람이 많았는데 모두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어리숙한 나 또한 그들 틈에 끼어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아침이 되어 미리 예약해 놓았던 숙소로 이동해 하룻밤을 더 지새울 수 있었고 다음날 기대하고 기대하던 워크캠프의 미팅포인트로 향했다. 미팅포인트로 가는 교통수단은 S반이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과 같은 이동수단인데 아무래도 동양인의 수가 적어서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나를 한 번씩은 쳐다보고 갔다.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길을 묻는 나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들의 모습 덕분에 금방 익숙해 질 수 있었다. 약속 장소가 있는 지하철역에 도착했지만 초행길인 나는 역시나 길을 조금 헤맸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안전하게 미팅포인트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미팅포인트에는 여러 명의 친구들이 도착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키가 매우 크고 20살이 넘어 보이는 친구들이었다. 처음 인사를 하고 나이를 들었을 때는 꽤 놀라웠다. 당시 미팅포인트에는 터키인 1명 이탈라아인 2명이 있었는데 모두 10대였고 나만 20대였기 때문이다. 3명의 친구들은 나보다 키가 훨씬 컸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움츠러드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준건 미팅 포인트에 있던 친구들이었다. 먼저 터키인 오구즈가 반갑다며 악수를 청했고 차례로 이탈리아인 피에트로와 올리비에로가 악수를 청해주었다. 이것이 캠프원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우리는 예정보다 일찍 미팅포인트에 도착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주제는 캠프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무슨 교통수단을 이용해 왔는지 등이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캠프 마스터로 보이는 사람이 차를 끌고 우리를 마중 나오셨고,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창 밖의 자연환경들을 보았다. 슈투트가르트의 자연환경은 우리나라랑은 다르게 매우 잘 보존되어 있었다. 우거진 숲은 울창했고 하늘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캠프지에 도착해 여러 캠프원들을 만났다. 독일인 캠프리더인 얀과, 파울라 그리고 모로코인 무함마드가 캠프지에서 우리를 반겼다. 곧 차례차례로 나머지 캠프원들이 도착했는데 스페인 출신 그리타와 바르셀로나 출신 에드워드 중국인 출신인 루와 첸양 그리고 네덜란드 출신 요스트, 마지막으로 가장 반가웠던 한국인 유이림양이었다. 이렇게 우리들의 워크캠프는 시작되었다.
워크캠프 첫 날에는 낯선 만남의 연속이었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까지 모든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첫 날에는 캠프 리더들과 함께 어떻게 캠프를 진행해 나갈지에 대해 논의하였다. 음식을 만드는 순서부터 청소하는 순서 그리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에 대한 공지사항도 전달받았다. 캠프 내에서의 모든 일들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해야 했다. 첫 날에 청소와 음식 당번은 독일인 캠프리더 두 명이 하기로 했다. 처음 캠프원들이 모두 모이고 나서 우리는 서로간의 어색함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여러 가지 게임을 했다. 그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서로의 이름을 외우고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는 게임이었다.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는 과정에서 친구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서로의 국적을 물어보고 나이를 알 수 있었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친구들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먼저 독일인 친구들인 얀과 파울라는 채식주의자였다. 채식주의자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함께 생활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에겐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실제로 함께 밥을 먹을 때에 그 친구들은 고기 요리가 있어도 고기를 먹지 않았다. 얀과 파울라에게 왜 육식을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었는데, 그 친구들은 인간이 육식을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가축들을 괴롭히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좋지 않은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평소에는 인간이 가축들에게 저지르는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해 나쁘다는 견해는 갖고 있었지만 육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채식을 하진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고 행동으로 옮기는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 또한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첫 날에는 모두들 긴 여정 때문이었는지 밤이 되자 일찍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일찍 숲 속으로 향했다. 우리를 안내해 준 사람은 캠프 마스터인 자이팟씨었다. 처음 우리가 시작한 일은 숲에 있는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자이팟씨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종 잡초를 제거하고 그 잡초들을 야생 사슴의 먹이로 주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일이라고 하셨다. 잡초를 제거하는 일 자체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잡초 주위에 있는 가시덤불들과 벌레들은 우리에게 큰 걸림돌이었다. 특히 벌레들 중에는 사람의 살 속으로 파고드는 벌레가 있었는데 그 벌레 때문에 우리 캠프원들이 많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사전에 캠프리더들이 그 벌레를 제거하는 도구를 준비해 왔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특히 모로코 출신의 무함마드와 이탈리아 출신의 피에트로는 일에 능숙했다. 서양인들이 체구가 커서 그런지 잡초 더미를 옮기는 일도 능숙하게 했다. 나는 체구가 작은 편이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에 비해 일하는 양이 적었는데 친구들이 이해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캠프에서는 내 나이나 인종 또는 체구에 상관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걸로 존중받을 수 있었다. 일을 하면서 피에트로에게 한국에서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서로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말했었는데 매우 놀라는 피에트로의 모습을 보며 한국의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도 했다. 모두 함께 시작한 일도 5시간이 지나자 끝이 보였고 마지막에 우리가 한 일은 우리가 뽑은 잡초들을 트럭으로 옮겨 야생 사슴들이 있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었는데, 일의 막바지 무렵에는 트럭에 잡초들이 가득 차 있었다. 첫 날의 일이었지만 모두 함께 일을 끝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함께 쉬는 시간을 가졌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함께 취미와 특기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스페인 출신의 에드워드는 기타를 쳤고 얀은 노래를 불렀다.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사이에 네덜란드 출신인 요스트가 친구들에게 장난을 쳤다. 서양인 친구들과 지내면서 느꼈던 것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자신의 의견을 내보이는 것이 너무나 당당했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공교육을 받은 나에게는 매우 낯선 상황이었다. 만약 한국에서 저렇게 행동했다면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유럽 친구들은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내비쳤고 타인과의 의견충돌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그렇게 의견충돌이 될 때마다 대화로 절충안이 마련되었고 결국 마지막에는 좋은 해결책이 나오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나는 타인과의 의견충돌을 최대한 피하며 흔히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이 흘러가려고 했었다. 어른들의 말씀에는 거스르지 않고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럽 친구들은 캠프 마스터나 다른 어른들의 말에도 궁금한 점이나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우리에게 있었던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는 과정을 보며 유럽인들의 이런 점은 낯설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오후를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도중에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들은 한국의 대중가요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었는데 이때를 기회삼아 준비해 온 아이돌 그룹의 춤을 췄다. 친구들이 많이 어색해 할까봐 걱정했었지만 반응이 좋아서 참 다행이었다. 친구들과 한국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놀랐던 점은 유럽 친구들이 한국에 대해서 많이 모른다는 것이었다. 북한과 남한이 서로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친구들도 있었고 심지어 가수 싸이가 일본인인줄 아는 친구들도 있었다. 친구들에게 잘못된 정보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고 한국에 대한 문화도 더 많이 알릴 수 있었다.
이렇게 처음으로 시작된 잡초 뽑기 봉사활동을 마치고 우린 더 다양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하게 된 일은 통나무를 잘라서 코끼리의 먹이로 줄 수 있도록 옮기는 것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큼지막한 통나무들을 실제로 자르고 옮기는 것은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었다. 보기에는 굉장히 가벼워 보이는 나무들도 실제로 들어보면 굉장히 무거웠다. 역시나 화면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해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알게 해 준 일이었다. 이 일을 할 때 독일인 2명이 전기톱을 갖고 도와주었는데 그 친구들은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어린 친구들인데도 전기톱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친구들은 고등학생인데 방학 때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친구들이라고 했다. 도시에서만 자란 나에게는 굉장히 생소한 상황이었다. 일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아이들이 어린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어른스럽게 일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나무를 자르는 기술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도 남달랐기 때문이다. 큰 나무를 자를 때 다른 사람에게 톱밥이 튀지 않도록 조심하는 모습이나 여자아이들이 옮기기에 너무 큰 나무들은 더 작게 잘라주는 모습들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에만 열중 했던 나의 고등학생 때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이 있다면 바로 휴식시간이다. 독일인들은 일을 할 때에 휴식시간을 칼같이 지킨다. 1시간을 일하면 10분정도는 휴식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우리들이 힘들어 할까봐 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독일인들이 휴식시간을 갖는 모습은 대체로 비슷했다. 아마도 휴식시간은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기 때문에, 휴식도 업무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꽤 오랫동안 진행되었고 4~5일정도 동일한 장소에서 일을 했다. 일이 끝나고 나서 우리가 먹이를 공급해 주던 코끼리들을 보러 동물원에 갔는데 우리는 코끼리에게 먹이를 줬기 때문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그 동물원에서 실제로 코끼리를 만져보기도 하고 코끼리에게 먹이도 먹여줘 보았는데 몸집은 크지만 순하게 행동해서 굉장히 귀여웠다. 먹이를 손에 들고 있으면 먹고 싶어서 코를 내미는 모습이 꼭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았다. 또 코끼리와 함께 노는 친구들의 모습도 재미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친구들과 만날 때 보통 커피숍이나 영화관을 가기 때문에 동물원에 갈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실제로 코끼리를 만져볼 수 있어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세 번째로 우리가 하게 된 일은 숲에 나있는 길들을 다니며 보행자들에게 방해가 되는 나뭇가지들과 잡초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숲의 길이 여러 곳으로 나있었기 때문에 이 일은 두 조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현지 분들이 나무를 자르고 잡초를 자르면 우리들이 그것들을 옮기는 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 작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실제로 조경사 분들이 하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이었다. 나무와 잡초를 제거하는 데에도 전문적인 지식과 방법들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를 자르는 것에도 방법에 차이가 있고 나무에 따라서 사용하는 도구도 조금씩 달랐다. 얼핏 보기에는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 있었겠지만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 이런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독일 현지인 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현장에서 하는 일 보다는 사무직을 더 값지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현장 일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 일을 실제로 해보면서 현장일도 충분히 값어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경사 분들이 하는 일들도 매우 전문적이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사무직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숲의 길을 청소하는 중에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독일 친구인 파울라에게 물어보았는데 독일인들은 일을 한 시간만큼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위 숲이나 공원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했다. 독일인들은 스포츠를 즐기는 것을 휴식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독일인들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한국 사람인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것이었지만 독일인들의 독특한 문화를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를 데리고 왔었는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그마한 강아지들과는 다르게 매우 몸집이 큰 개들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독일인들은 식료품점이나 전자기기 매장 또는 백화점에도 개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단, 개를 데리고 입장할 때에는 약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강아지나 애완동물에 대해 이렇게까지 배려를 해주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숲의 도로를 정리하는 일도 며칠 동안 진행되었다. 숲의 길거리를 정리하는 일은 힘들었지만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기분 좋은 인사와 격려 덕분이었는지 굉장히 보람차게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네 번째로 우리가 하게 된 일은 농사를 짓고 밭에 남아있는 풀 더미들을 치우는 일이었다. 밭에 남아 있는 풀 더미들은 밀 같이 생겼었는데 열매가 열려 있는 위쪽 부분은 이미 수확이 다 끝난 상태였고 우리가 정리해야 할 부분은 밑동 부분이었다. 우리가 해왔던 봉사활동들 중에 가장 수월한 일이었다. 포크같이 생긴 도구로 밀짚들을 동그랗게 모은 다음에 트랙터로 옮겼다. 우리들은 마치 밀레의 이삭줍기에 나오는 밭에서 일하는 일꾼 같았다. 일을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터키 출신은 오구즈가 벌에 쏘이는 바람에 큰 소동이 나기도 했었다. 다행히 응급처치를 잘 해서 큰 문제는 없었다. 이 일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봉사활동은 끝이 났다.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도 많았지만 그만큼 느낀 점도 많았다. 첫 번째는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느꼈던 것들도 모두 자연에게서 받은 축복이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연이 주는 것들을 축복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자연에게서 받는 것들과 그것들을 축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수고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린다면 더 이상 축복을 축복으로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우리가 갖고 있었던 편안함과 안락함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워크캠프 동안 했었던 활동들은 봉사활동 뿐만이 아니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문화재나 박물관에 가보기도 하고 도심 지역에 있는 건축물을 보기도 했다. 독일에 있는 건축물들은 판타지 영화에 나올 법 하게 굉장히 고풍스러웠다. 하지만 좀 아쉬웠던 점은 건물 안에 화장실이 없는 곳도 있었고 우리나라처럼 모든 편의시설들이 다 제공되지 않는 곳들도 종종 있어서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곳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유대인들이 살았던 마을이었다. 과거 나치즘 시절에 히틀러에 의해 학살당했던 유대인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는 곳이었는데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독일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독일인들이 타인을 대할 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해 주는 문화도 이러한 편견에 사로잡힌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데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를 다니면서 느꼈던 것 중 인상 깊었던 것은 물건의 가격들이었다. 독일에서는 공산품의 가격이 저렴한 편이었다. 또한 대형 마트에서 구매하는 식료품의 가격도 한국 물가수준과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라던가 햄버거 가게들에서 사먹는 음식들은 가격이 매우 비쌌다. 이 일에 대해서도 독일 친구들인 얀과 파울라와 이야기해 보았는데 아마도 독일의 비싼 임금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대형 마트에서는 빵이나 과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지만 사람의 일손이 필요한 음식점에서는 임금 때문에 가격이 훨씬 비싸진다는 것이었다. 임금이 저렴한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다. 이러한 문화의 차이들은 사람을 대하는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이 하는 일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해 주는 것 그리고 인간을 인종이나 국적, 성별에 관계없이 존중하는 독일인들의 훌륭한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우리 한국도 이러한 선진화된 사고방식을 가진 나라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슈투트가르트의 도심을 여행하며 불편한 점도 있었다. 독일의 지하철에는 화장실이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독일인 친구들에게 지하철에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냐고 물어봤었는데 이용할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유럽을 방문하는 것이 처음이었던 나에게 이 대답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분명 선진화된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던 독일 지하철에 화장실이 없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본 결과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는 지하철에 화장실이 없다고 한다. 내가 한국의 지하철에는 역마다 화장실이 있다고 이야기 했더니 유럽 친구들은 매우 놀란 눈치였다. 역시 나라마다 장단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캠프 기간 동안 밤이 되면 우리는 가까이 있는 캠프지에서 캠프파이어를 하곤 했다. 캠프파이어를 하는 동안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캠프파이어를 하는 동안 얀이나 에드워드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었는데 모닥불 앞에서 부르는 노래가 그렇게 매력적인 것이라고 느낀건 처음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악기를 다루거나 노래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말에 대해 큰 공감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캠프기간 동안 친구들이 노래를 하고 악기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돈과 물질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이탈리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취미로 운동을 많이 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한 펜싱종목의 올림픽 은메달 리스트는 본래의 직업은 경찰이지만 취미로 펜싱을 해서 올림픽에서 은메달까지 땄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업으로 운동을 해서 메달을 따는데 이러한 문화 차이도 나에게는 매우 신기하게 느껴졌다. 유럽인들에게는 운동과 악기가 모두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캠프파이어를 하는 동안 보았던 슈투트가르트의 하늘은 매우 아름다웠다. 어두운 지상과는 다르게 맑게 보이는 하늘이 있었고 하늘에는 쏟아질 듯한 별들이 은하수처럼 펼쳐져 있었다. 도시에서만 자란 나에게는 매우 신기한 하늘이었다. 이 하늘만 있다면 여러 나라의 친구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하나로 이어져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흔히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표현한다. 맑은 밤하늘의 쏟아질 듯한 별 한번 봐보지 못한 눈을 가진 내가 어떻게 세상을 맑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싶다. 아마도 내 삶의 시간 동안 그 때 보았던 하늘의 별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슈투트가르트의 맑은 하늘을 별처럼 반짝이는 내 눈망울에 담아왔기 때문이다.
캠프 기간 동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분명 힘든 일도 있었다. 우리의 주된 이동 수단은 자전거였는데 캠프원 중 한명이 자전거 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독일의 의료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3일정도 입원해 있다가 무사히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 그 친구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매우 놀랐었다. 그 자리에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큰 도움이 못되었던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그렇게 큰 사고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놀라웠던 것은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친구들이 상처가 나는 곳을 지혈을 했는데 갖고 있던 수건과 천들을 이용했다. 나는 학교에서 이런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우왕좌왕 하고 있었지만 유럽 친구들은 매우 능숙하게 지혈을 했다. 나중에 네덜란드 출신 요스트에게 물어봤더니 학교에서 응급처치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지만 동시에 힘들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에 대해서도 깨달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다행히 응급차가 도착했을 때에는 응급처치가 잘 되어있어서 어렵지 않게 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이후의 병원치료도 성공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었다. 다행히 사고를 당했던 친구는 여행자 보험을 들어놓았기 때문에 진료비 걱정도 없었고 캠프를 무사히 마치고 프랑스로 여행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캠프의 마지막 날에는 모두 함께 지하철역으로 나와 작별인사를 했다. 다른 캠프원들을 챙기느라 고생했던 독일인 얀과 파울라, 개구쟁이 같았던 네덜란드인 요스트, 농사일을 매우 잘하던 모로코의 무함마드, 기타를 잘 쳤던 바르세로나의 에드워드, 파스타를 잘 만들었던 이탈리아의 피에트로와 올리비에로, 독일어를 매우 잘했던 터키인 오구즈, 쌀밥을 매우 잘 했던 중국인 루와 첸양, 헤어질 때 너무 많이 울었던 눈물이 많은 스페인의 그리타, 마지막으로 한국음식과 문화를 많이 알렸던 이림이양과 나는 그렇게 모두 각자의 길로 떠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내곤 한다. 우리가 각자의 길로 떠나간 것처럼 우리 모두 자신만의 해답을 갖고 돌아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번 캠프에서 얻은 해답은 무엇일까? 아마도 너무나 편안한 도시에서의 삶에서 잊고 있었던 삶에 대한 고마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 해 준 캠프원들과의 삶,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보았던 밤하늘의 별들, 새로운 만남, 그리고 슬픈 이별들 모두가 한국으로 돌아온 나의 삶을 더 고맙고 감사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삶을 더 풍요롭고 윤택하게 만들어 줄 이 워크캠프에 참여하게 되어 다행이었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삶의 마지막까지 이 경험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