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 마지막 대학 생활의 특별한 시작

작성자 김준태
인도 FSL-SPL- 212 · cult/kids 2013. 08 인도 리시케쉬

Rishikesh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생활 마지막을 어떻게하면 보람차게 보낼까 하다가 친구들과 같이 가자고 했던 국제워크캠프 봉사활동. 친구들과는 지역이 다르지만 함께 각국의 봉사활동을 하기로 마음먹고 인도로 지원을 했었다. 확정이 된날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출발하기 전날까지만 해도 진짜로 가는 것인가 생각을 했었다.
인천공항에서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델리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진짜인가 싶었다.
델리공항에 내리고 짐을 찾고 공항 게스트 라운지에서 다음날 데라둔으로 향하는 인도국내선을 예약하고 노숙을 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도가 그렇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항은 깨끗하였고 경비들도 삼엄하여 안전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고 데라둔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기절을 하였다. 긴장감과 피곤함때문 이었는지 비행기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데라둔에서 인포싯에 표기된 리시케시 터미널까지 프리페이드 택시를 타고 이동하였다.
한국과는 달리 하늘이 유난히 맑았고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 야생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과 소들이 도로 가운데 막고 있는 신기한 광경
리시케시 버스터미널에 내려서 준비해간 가이드북을 펼쳐보니 릭샤꾼들이 몰려 들었다. 어디가느냐 라는 식의 릭샤꾼들. 하지만 인도 여행카페에서 많이 들었던 대로 일단 무시를 하며 나의 목적지를 찾고 있었다. 같이 동행한 후배 시우는 후에 이 모습을 보고 이 형은 진짜 나쁜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결국 릭샤를 타고 릭시만줄라까지가서 숙소를 찾았다. 나와 후배는 미팅시간 2일전에 먼저 도착하여 잠깐의 관광을 하였다.
그렇게 인도카페에서 한국인들과 만나 지역을 관광하고 5일 우리는 미팅포인트로 다시 이동하였다. 그런데... 미팅포인트에서 같은 캠퍼들을 만나고 팀 리더인 디네시가 다 모였다며 이동한 숙소는 우리가 처음 묶었던 숙소에서 불과 5분거리였다. 아까운 내돈....
아쉬람이라는 짜여진 기숙사 같은 곳에서 우리는 다른 캠퍼들과 첫 미팅을 하였다.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서로의 이름을 외우기위해 게임을 하였고 아쉬람에서 제공되는 인도식 커리와 밥을 먹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참.. 한국인은 나와 후배인 시우 둘인줄 알고 있었는데 희경이라는 여자아이도 있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이 아이는 후에 우리들의 통역사가 되었다.)
2일째 아침에 밥을 먹고 씻고 우리가 일하게될 학교로 갔다. 보통 6~12살까지 다닌다는 인도의 초등학교였다. 첫 만남은 약간의 충격이었다. 한국의 분교같은 곳에서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우리를 맞았고 환영 공연같은 것도 해주었다. 보통 학교에서 하는 일은 페인팅팀과 티칭팀 두가지로 나뉘어진다.
페인팅 팀은 학교의 낡은 벽들을 새로이 페인트로 칠하여 깨끗하게 만드는 것과 티칭팀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역활을 맡았다.
첫날 학교에서는 딱히 일이란것을 하지 않고 아이들과 안면을 틔고 학교의 내부 구조 그리고 대략적인 견적을 내는 정도로 끝났다.
아쉬람으로 복귀하고 점심을 먹으면 오후 3시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대부분 더운 날씨로 인하여 땀을 흘렸기 때문에 샤워를 먼저 하였다. 3시가되자 리더 디네쉬는 요가를 해야지 라며 우리를 요가 스쿨로 이끌었다. 왼쪽 무릎 연골이 손상된 나로서는 힘든 상황이지만 첫날은 해보기로 하였다. 디네쉬도 정말 많이 힘들면 하지 말라고 하기도 하였다. 3시부터 4시까지 요가를 하면 6시까지 다시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처음엔 담배를 피는 사람들이 눈치를 보기 때문에 잘 안폈지만 후에 피는 사람들은 밤 늦게까지 같이 놀았다.
6시부터 7시까지 명상이 시작되었다. 강사는 최선을 다해 설명을 해주었고 이해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지만 긴장을 했던 탓 이었는지 졸림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결국 잠이 들었다. 외국 친구들은 한국에서도 명상을 하냐며 내가 잠든것을 명상하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저녁을 먹은후 데일리 미팅 시간이 되었다. 자유시간에 잠시 외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웠었다. 나는 이번이 처음 해외봉사인 반면 많이 다닌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이 데일리 미팅은 되도록 짧게 하자며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동감을 하였고 나도 대세를 따랐다. 데일리 미팅 시간에 각자 오늘 있었던일 느낌등을 말하는 시간을 갖는데 나는 솔직하게 명상시간에 본 내 모습은 명상을 한게 아니라 잠이들었다고 말하여 친구들이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각국의 프레젠테이션은 다음날부터 시작하기로 합의를 하고 사람이 많은 국가부터 시작하였다. 우리 팀은 프랑스 8명 스페인3명 한국3명 오스트리아3명 이탈리아1명 폴란드1명 캐나다 퀘백1명 인도 2명이었다. 총 21명 대규모 캠프였다.
3일째 드디어 작업을 시작하였다. 아침을 먹고 학교로 가서 페인트를 칠하기전 금이 가있던 페인트들을 벗겨내기 시작하였다. 우기의 인도는 스콜같은 소나기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잠시뒤 갠것을 반복하였다. 티칭팀은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단어와 색깔같은 기본적인 영어를 가르쳤다. 리더의 말이 아이들은 이해하고 따라하는게 아니라 그저 따라하는 것 뿐이라 지속적으로 얘기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일과가 끝나면 근처의 템플등을 돌아보는 시간도 갖는다. 우리는 시바템플을 찾아 인도의 신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각국의 프레젠테이션은 약간 구성요소가 달랐다. 대부분이 유럽에서 왔기 때문에 문제 형식으로 한 반면 우리는 설명을 하는 구성으로 가게되었다. 또한 역시 한국하면 강남스타일.... 내나이 26살 총대를 메고 공연을 하였다.
외국 친구들은 카메라를 들고 나의 말도안되는 춤사위를 동영상으로 찍기 시작했다. 아... 창피해...
우리의 PT가 끝나자 외국 친구들은 정말 재밌었다. 한국에대해 좀더 알게되었다. 우리는 유럽에서 와서 유럽 및 서양국가들의 성격과 역사등을 대부분 배우지만 동양쪽은 많이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너희의 PT를 보고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한국의 워캠도 찾여해보고 싶다며 뒷풀이도 하였다. 특히 휴고(프랑스)와 로저(스페인) 친구는 북한과 남한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거웠다.
숙소는 각기 다른 나라들로 배포되었다. 나는 빅터(프랑스)와 샘(캐나다 퀘백) 과 함꼐 3명이서 같이 썼고 후배 시우는 라파엘(프랑스) 니키(오스트리아) 로저(스페인) 휴고(프랑스) 이렇게 5명이서 썼다 총 21명중 8명을 제외한 13명이 여자들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매일 일과를 마치고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고 인도의 모습을 구경하고 데일리 미팅을 하고 PT가 끝나면 리더의 방 앞만이 흡연을 허용하였기 때문에 꽤 많은 친구들이 모인다. 같이 카드게임을 하고 담배를 피진 않더라도 같이 놀려고 하는 친구들이 있어 항상 10명 이상은 밤 늦게까지 이야기하고 놀았다. 나는 항상 이시간이 가장 기다려졌다.
해외에 한번도 나가보지 못한 내가 외국인 친구들과 서로 이야기하며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공감을 하며 논다는것은 엄청난 경험이지 최고의 경험이었다.
어느새 16일 마지막 날 아침 일찍 떠나는 친구들이 몇명 있어 아쉬운 작별을 하고 우리가 일하는 초등학교 맞은편의 중 고등학교에서 우리를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해주었다.
기다리는 동안 인도 학생들이 배구를 하자며 찾아와 우리는 같이 하게 되었다. 역시 인도 아이들은 매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학교측에서 만들어준 이벤트에 감사하였다.
우리 역시 예약해둔 버스 시간이 되어 아쉽지만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였다.
후에 델리에서 10명정도는 다시 만난듯 하다.

갔다온후 이렇게 보고서를 쓰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피식하고 웃음이 난다. 처음 도착하였을때 적응하지 못하고 언제가지 언제가지 하던 내가 아 아쉽다 좀만 더 같이 있었으면하고 마음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고 인도라는 나라에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던 내가 다음에 다시 한번 인도를 찾아야지 하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총 2주일간 열린 인도 워크캠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친구들과는 페이스북이라는 SNS로 인하여 지금도 친구추가와 메세지 그리고 각자 찍은 사진들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앞으로 언제 다시 갈지 모르지만 다시 찾게 된다면 2주일간 내가 느꼈던 그 감정들이 나를 다시 반갑게 맞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인도 FSL 국제워크캠프는 내 인생에 있어 가장 값진 경험이었으리라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