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작은 마을에서 찾은 특별한 3주
SAINT-JEAN-SUR-VEYL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프랑스 워크캠프를 참가하기전에 이미 독일에서 3주동안 캠프를 겪어봤었기에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독일 워크캠프가 나에겐 첫번째 워크캠프였고, 친구들과 헤어진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워크캠프를 가야한다니 달갑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리옹(Lyon) 근처 소도시 마콩(Macon)에서 20분정도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마을 Saint Jean Sur Veyle에서의 3주는 그 어떤 무엇보다도 특별했다.
한창 무더운 더위가 시작될 무렵인 7월 초, 3개월동안의 유럽생활을 위해 자그마치 30kg의 짐을 한국에서 꾸려왔던 내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함부르크에서의 워크캠프를 마치고 약 열흘간 무거운 짐을 끌고 독일을 떠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거쳐 프랑스에 오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프랑스 파리에 도착해 지하철을 보고 아연실색하여 역 안의 락커룸에 4일간 캐리어를 맡겨두고 배낭 하나 달랑매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지하철에서는 변태를 만나 식은땀도 흘려보고 워크캠프가 끝날 무렵에는 여권을 잃어버려 무려 경찰서에 들러 경위서도 받고, 대사관까지 갔었더랬다. 여러모로 프랑스에서의 한달은 사건사고도 많고 좋은 추억도 많은 파란만장한 날들이었다.
7월 10일. Macon역에서 Saint Jean Sur Veyle역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동양인 한명과 누가봐도 나와 같은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명백해보이는 커다란 캐리어를 갖고 온 남자 2명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모두 워크캠프 참가자였다. 대도시를 벗어난 작은 마을의 기차역은 우리나라의 간이역과 다르지 않았다. 오후 5시 무렵, 기차가 도착했다. 워크캠프 리더 3명이 푯말을 들고 우리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게머리를 한 J.R, 차분해 보이는 Audrey, 키가 큰 Nils. 이것이 내가 느낀 그들에 대한 첫인상이다. 모두 모이고 나니 러시아국적의 Tania, 스페인의 Ignacio와 Xavier, 대만의 Natacha, 프랑스의 J.R, Audrey, 체코의 Sona, 독일의 Nils 그리고 대한민국의 진이언니와 나까지 10명이었다. 도착하자마자 3주동안 온전한 쉼터와 집이 되어줄 텐트를 치고 짐을 풀고 나니 어느 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늦은 저녁을 먹으며 하나, 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면서 비록 10명이지만 모두 다르구나를 느낄 수 있었던 첫날이었다.
본격적인 일은 다음날 부터 시작되었다. 우리가 맡은 일은 오븐으로 쓰이던 오래된 건물의 지붕을 리모델링 하는 것이었는데, 지붕을 해체하여 지지대를 교체하고 지붕을 덮고 있던 기와를 닦아 다시 재배열 하는 것이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해가 가장 뜨거울 때를 피해 일을 할 수 있어 그리 고되지만은 않은 작업이었다. 저녁이 되자 마을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를 위해 환영파티를 열어주기 위함이었다. 사람들은 너무나 따뜻했다. 비록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귀기울여주고 이해해주려 하였고, 우리에게 따뜻한 미소를 끝없이 보내주었다. J.R은 벌써 수많은 워크캠프를 겪어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캠프 참가자로서 이렇게 환대받은 적이 없다면서 어느 때보다도 성공적으로 일을 마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맞았다. 우리는 마지막 날 지붕을 완벽히 수리했고, 모두가 만족해했다.
3주는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넓은 잔디밭 한 켠에 나란히 놓여있던 텐트들, 밤이 되면 하늘을 수놓던 아름다운 별들. 밤마다 맥주 한캔과 함께 나를 수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던 나만의 장소였던 강가의 벤치. 마을 사람들과의 바베큐 파티와 자전거 투어.
석양속에서 리옹을 한눈에 내려다 보았던 그 장면까지도 무엇하나 놓칠 것이 없었던 한달이었다. 7월 30일. 하루를 앞당겨 우리에게 프랑스의 '정'을 몸소 보여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작은 파티를 준비했다. 각 국의 요리를 대접하고, 며칠동안 준비했던 비디오를 보여주고 얼마나 그동안 고마웠는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3주동안 나 역시 이들 중 한사람이 된 것 같았다. 우리들의 마지막은 즐겁지 않았다. 모두가 아쉬워했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언젠가 꼭 다시 보자고 약속했지만 우리 10명이 고스란히 다시 모일 수 있을까 아마도 마음 속 깊이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에 헤어지는데 그렇게나 많은 눈물을 쏟았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이 3주를 잊을 수 있을까? 나는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참가했지만 내가 얻은 것은 수많은 친구들이며 절대로 잊지못할 소중한 기억들이었다.
한창 무더운 더위가 시작될 무렵인 7월 초, 3개월동안의 유럽생활을 위해 자그마치 30kg의 짐을 한국에서 꾸려왔던 내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함부르크에서의 워크캠프를 마치고 약 열흘간 무거운 짐을 끌고 독일을 떠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거쳐 프랑스에 오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프랑스 파리에 도착해 지하철을 보고 아연실색하여 역 안의 락커룸에 4일간 캐리어를 맡겨두고 배낭 하나 달랑매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지하철에서는 변태를 만나 식은땀도 흘려보고 워크캠프가 끝날 무렵에는 여권을 잃어버려 무려 경찰서에 들러 경위서도 받고, 대사관까지 갔었더랬다. 여러모로 프랑스에서의 한달은 사건사고도 많고 좋은 추억도 많은 파란만장한 날들이었다.
7월 10일. Macon역에서 Saint Jean Sur Veyle역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동양인 한명과 누가봐도 나와 같은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명백해보이는 커다란 캐리어를 갖고 온 남자 2명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모두 워크캠프 참가자였다. 대도시를 벗어난 작은 마을의 기차역은 우리나라의 간이역과 다르지 않았다. 오후 5시 무렵, 기차가 도착했다. 워크캠프 리더 3명이 푯말을 들고 우리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게머리를 한 J.R, 차분해 보이는 Audrey, 키가 큰 Nils. 이것이 내가 느낀 그들에 대한 첫인상이다. 모두 모이고 나니 러시아국적의 Tania, 스페인의 Ignacio와 Xavier, 대만의 Natacha, 프랑스의 J.R, Audrey, 체코의 Sona, 독일의 Nils 그리고 대한민국의 진이언니와 나까지 10명이었다. 도착하자마자 3주동안 온전한 쉼터와 집이 되어줄 텐트를 치고 짐을 풀고 나니 어느 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늦은 저녁을 먹으며 하나, 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면서 비록 10명이지만 모두 다르구나를 느낄 수 있었던 첫날이었다.
본격적인 일은 다음날 부터 시작되었다. 우리가 맡은 일은 오븐으로 쓰이던 오래된 건물의 지붕을 리모델링 하는 것이었는데, 지붕을 해체하여 지지대를 교체하고 지붕을 덮고 있던 기와를 닦아 다시 재배열 하는 것이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해가 가장 뜨거울 때를 피해 일을 할 수 있어 그리 고되지만은 않은 작업이었다. 저녁이 되자 마을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를 위해 환영파티를 열어주기 위함이었다. 사람들은 너무나 따뜻했다. 비록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귀기울여주고 이해해주려 하였고, 우리에게 따뜻한 미소를 끝없이 보내주었다. J.R은 벌써 수많은 워크캠프를 겪어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캠프 참가자로서 이렇게 환대받은 적이 없다면서 어느 때보다도 성공적으로 일을 마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맞았다. 우리는 마지막 날 지붕을 완벽히 수리했고, 모두가 만족해했다.
3주는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넓은 잔디밭 한 켠에 나란히 놓여있던 텐트들, 밤이 되면 하늘을 수놓던 아름다운 별들. 밤마다 맥주 한캔과 함께 나를 수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던 나만의 장소였던 강가의 벤치. 마을 사람들과의 바베큐 파티와 자전거 투어.
석양속에서 리옹을 한눈에 내려다 보았던 그 장면까지도 무엇하나 놓칠 것이 없었던 한달이었다. 7월 30일. 하루를 앞당겨 우리에게 프랑스의 '정'을 몸소 보여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작은 파티를 준비했다. 각 국의 요리를 대접하고, 며칠동안 준비했던 비디오를 보여주고 얼마나 그동안 고마웠는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3주동안 나 역시 이들 중 한사람이 된 것 같았다. 우리들의 마지막은 즐겁지 않았다. 모두가 아쉬워했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언젠가 꼭 다시 보자고 약속했지만 우리 10명이 고스란히 다시 모일 수 있을까 아마도 마음 속 깊이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에 헤어지는데 그렇게나 많은 눈물을 쏟았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이 3주를 잊을 수 있을까? 나는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참가했지만 내가 얻은 것은 수많은 친구들이며 절대로 잊지못할 소중한 기억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