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휴식 찾아 떠난 독일 워크캠프 3주
FOR THOSE NOT AFRAID OF MUD…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휴학을 하고 정신없이 보냈던 1년. 9월 복학을 앞두고 나 스스로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결정한 것이 '유럽으로 가자'였다. 기간은 우선 3개월로 정해놓았고 그다음으로 걱정되는 것이 경비였다.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니 대략 한달 일정으로 다녀오는데 보통 500만원에서 600만원. 나는 세 달동안 머무를 예정이니 적어도 1000만원 이상을 예상해야 했다. 학생인 신분에 무리하여 그렇게 큰 돈을 들이면서 여행할 가치가 있을까 망설이던 도중 현지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고 다양한 국적의 내 또래 아이들이 모여 봉사활동을 할 수있는 워크캠프를 발견하였다. 3주동안 45만원에 숙식제공이라니 나에게 아주 매력적이었다. 워크캠프에 가기 위해 신청서를 작성하고, 합격발표가 날 때까지 혹시나 떨어질까 안절부절하던 4월. 운이 좋았는지 독일, 프랑스 모두 1지망에 합격하고. 확답을 받은 다음 날 바로 독일 프랑크푸르트발의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내 손에 E-ticket을 쥐고 나서야 비로소 떠나는 구나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장장 3개월이었다.
6월 6일. 새벽 6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하노이를 경유하고 옆에 앉은 사람이 계속 왔다갔다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샌 후라 독일에서의 첫날 아침을 초췌한 얼굴과 함께 시작했다. 독일에 도착했다고 다가 아니었다. 또 30kg의 캐리어를 이끌고 북부의 함부르크까지 기차로 4시간을 이동해야 했으니 나의 유럽여행 1일차는 결코 편안한 하루가 아니었다.
나의 첫 워크캠프 장소는 함부르크의 지하철 S1의 종착역인 Wedel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을 더 들어가야 하는 Haseldorf였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이탈리아 친구 한명이 와있었다. 밀란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하루 일찍 도착해 미리 캠프리더들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고 하더라. 오후가 되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3명, 러시아 3명, 독일 2명, 아르헨티나 1명, 터키 1명, 대한민국 2명. 총 12명이 교회 옆의 멋진 정원이 딸린 집에서 3주를 함께 보냈다.
독일에서의 일은 굉장히 고되었다. 일할 장소까지 왕복 20km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다니느라 첫주는 적응하느라 꽤나 고생했다. 그 동안 책상에만 앉아있어 그런지 체력이 굉장히 많이 떨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전에 군사지역이었던 곳의 철조망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온 사방이 풀숲이라 장화를 신고, 더운 여름인데도 모기 때문에 긴팔을 항상 입고 있어야 했다. 게다가 장비들도 꽤나 무거운 것들이라 다루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매일 같은 작업을 하진 않았다. 대부분 철조망을 제거하고 늪을 메꾸는 일을 했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해변에 가서 쓰레기를 줍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하루에 5시간씩 일을 했지만 자전거를 탔던 시간까지 하면 하루에 6~7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독일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자전거를 타면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Moi!"하고 인사를 했던 것이었다. 이는 원래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인사법인데, 북부독일은 북유럽과 굉장히 가까워 전해진 듯 했다.
사실 처음엔 캠프참가자들이 대부분 16, 17살이었기에 너무 어린것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한 순간이었다. 누구보다도 다들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문화적으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는데, 한국인들과 굉장히 비슷한 이탈리아인들.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독일인. 자유로운 터키인.
생각의 차이, 문화의 차이로 때론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우리들의 3주는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던 날들, 누드해변에 가서 어쩔 줄 몰라했던 나, 점심도시락을 준비하느라 전쟁이었던 아침까지. 일은 고되었지만 그 이외의 것들이 모든 것을 덮을 정도로 너무나 뜻깊었던 날들이었다.
6월 6일. 새벽 6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하노이를 경유하고 옆에 앉은 사람이 계속 왔다갔다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샌 후라 독일에서의 첫날 아침을 초췌한 얼굴과 함께 시작했다. 독일에 도착했다고 다가 아니었다. 또 30kg의 캐리어를 이끌고 북부의 함부르크까지 기차로 4시간을 이동해야 했으니 나의 유럽여행 1일차는 결코 편안한 하루가 아니었다.
나의 첫 워크캠프 장소는 함부르크의 지하철 S1의 종착역인 Wedel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을 더 들어가야 하는 Haseldorf였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이탈리아 친구 한명이 와있었다. 밀란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하루 일찍 도착해 미리 캠프리더들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고 하더라. 오후가 되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3명, 러시아 3명, 독일 2명, 아르헨티나 1명, 터키 1명, 대한민국 2명. 총 12명이 교회 옆의 멋진 정원이 딸린 집에서 3주를 함께 보냈다.
독일에서의 일은 굉장히 고되었다. 일할 장소까지 왕복 20km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다니느라 첫주는 적응하느라 꽤나 고생했다. 그 동안 책상에만 앉아있어 그런지 체력이 굉장히 많이 떨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전에 군사지역이었던 곳의 철조망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온 사방이 풀숲이라 장화를 신고, 더운 여름인데도 모기 때문에 긴팔을 항상 입고 있어야 했다. 게다가 장비들도 꽤나 무거운 것들이라 다루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매일 같은 작업을 하진 않았다. 대부분 철조망을 제거하고 늪을 메꾸는 일을 했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해변에 가서 쓰레기를 줍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하루에 5시간씩 일을 했지만 자전거를 탔던 시간까지 하면 하루에 6~7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독일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자전거를 타면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Moi!"하고 인사를 했던 것이었다. 이는 원래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인사법인데, 북부독일은 북유럽과 굉장히 가까워 전해진 듯 했다.
사실 처음엔 캠프참가자들이 대부분 16, 17살이었기에 너무 어린것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한 순간이었다. 누구보다도 다들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문화적으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는데, 한국인들과 굉장히 비슷한 이탈리아인들.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독일인. 자유로운 터키인.
생각의 차이, 문화의 차이로 때론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우리들의 3주는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던 날들, 누드해변에 가서 어쩔 줄 몰라했던 나, 점심도시락을 준비하느라 전쟁이었던 아침까지. 일은 고되었지만 그 이외의 것들이 모든 것을 덮을 정도로 너무나 뜻깊었던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