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졸업 전, 특별한 추억 만들기 마지막 여름, 낯선 곳에
POLEYMIEUX AU MONT D'OR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는 졸업과 취업을 앞둔 4학년이다. 4학년이 되어 나의 삶을 되돌아 보았을 때 정말 재미없는 삶를 살았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욕구와 마지막 방학 생활을 누구보다 뜻깊고 기억남을 시간으로 보내고 싶은 찰나에 학교 계시판에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모여 같이 생활하고 봉사활동을 한다는 워크캠프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좋은 추억과 학생시절의 마지막 우정여행을 하기위해 지원하였다.
나는 이번 워크캠프가 첫여행이자 특별한 기회가 찾아왔기에 더욱 더 설레임을 가지고 떠났다. 항공권의 날짜가 늦어 워크캠프 장소에 하루 늦게 도착 하였는데 찾아가는 길은 어디가 어딘지 찾기 힘들어 손짓 발짓을 해가며 물어보았다. 기차안에서 만난 한 아저씨에게 도움을 많이 받아 나는 워크캠프에 도착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나의 워크캠프 경험담을 이야기하면 꼭 빼놓지 않고 말 할 정도로 좋은 분이셔서 다시 한번 보고싶다. 프랑스 지역중 Poleymieux는 마을에 도착하여 워크캠프장소에서 터키 여자아이와 체코 남자아이가 점심 준비에 한창이였다. 음식준비를 같이 도와주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프랑스 여자1명, 체코 여자1명,남자1명, 터키 여자1명,여자1명, 러시아 여자1명,그리고 나와 친구 이렇게 8명이라는 것이다. 갔다왔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20명 정도 인원이였다고 들었는데 그에 비해 엄청 적은 수 였고 잠은 2인용 텐트에서 2명이서 잠을 자야했다.
다른 친구들이 하나둘씩 일을 하고 돌아와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 영어실력이 원어민 수준이였지만 그들에 비해 나는 유창하게 하지는 못하여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영어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야 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다음날 일을 하러 가서 나는 깜짝 놀랐다.. 옛날에 한 우물이 있었는데 그우물안이 흙으로 뒤덮여 있고 돌이 무너져 있어 다시 우물을 파고 돌을 쌓아야했다.
처음 이런 일에 접한 나는 한숨 부터 났다..워크캠프 주제가 보수공사였지만 삽으로 흙을 파고 돌을 옮기고 시멘트를 칠해 다시 돌을 쌓아야 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곤 생각을 못하였지만 그것도 잠시 외국 친구들이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힘이들지만 점점 완성해 가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 하며 일을 하였다. 마을 한 할아버지께서 그 일을 맡아 항상 함께 일을 하는데 그 할아버지의 취미가 신기한 돌이나 땅속에서 깨진 도자기의 조각들을 찾는 것을 좋아셔서 마을사람들이 모두 알아 신기한 돌을 찾으면 그집앞에 두고 간다고 한다. 그래서 일을 하며 모양이 찍혀져 있는 돌,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찾으면 아저씨에게 드리며 일을 하였다.
학때 마다 종종 했던 요가강사 아르바이트의 경험이 있어 친구들과 저녁에 매트를 깔고 요가를 가르켜주어 친구들이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가르쳐주고 사소한 것에 너무도 좋아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나또한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하루하루 돌아가며 두명씩 짝을 지어 쿠킹팀을 만들어 그날의 요리당번을 정하였고 내가 당번이 된날 한국음식을 해주기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갈비소스와 고추장을 이용하여 갈비,볶음밥 또는 라면, 감자전을 해주었다. 그 중 제일 인기가 많았던 음식은 갈비와 감자전이였다. 갈비의 소스를 보고 친구들이 한국음식 정말 맛있다며 또 먹고싶을거 같다며 좋아하였고 감자전에 모두가 좋아하는 치즈가루를 덮어 피자처럼 만들어 퓨전요리를 해주었다.
때때로 마을 주민들께서 집으로 초대하여 프랑스 음식을 제대로 접해보기도 하였는데 항상 밥만 먹던 나는 매일 같이 먹는 바게뜨는 지겨웠고 프랑스 특유의 치즈는 정말 먹지 못하여서 치즈 냄새를 맡고 미간을 찌푸리던 나를 보고 모두가 박장대소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마을 기타를 잘 치시던 아저씨께서 샹젤리제 노래를 불러주셨을때 나와 친구는 그날 밤 그노래에 심취하여 모두가 우리를 위해 노래를 가르켜 주셔서 함께 그노래를 부르곤 했다. 참 신기 했던 것은 외국친구들은 모두 수영을 잘하였다.
나와 한국인 친구는 수영을 못해서 물을 무서워 하는 우리를 위해 외국 친구들이 수여을 가르켜 주어 함께 즐겁게 수영을 하였다. 친구들에게 한국으로 돌아가면 친구들과 부모님께 수영할 수 있다고 자랑할것이라 하며 그들 덕분에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항상 즐거운 날들만 있지는 않았다. 알고보니 터키2명, 체코2명 모두 커플이였는데 프랑스 여자아이와 터키아이들과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프랑스 여자아이가 리더이지만 기중심적인 행동을 할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유독 터키아이들과 부딪치는 일이 많이생겼다.
프랑스 여자아이의 생일이 되는 밤12시에 모두 잠을 자려는데 옆 텐트 프랑스친구가 서글프게 우는 소리가 들려 모두 그소리를 듣고 모여 깜짝 파티로 종이에 메시지를 적고 나무에 붙이며 선물로 초콜렛을 사고 꽃으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 그날 프랑스여자의 생일파티를 하며 다시 즐거운 날을 보내였다.그것도 잠시 워크캠프가 끝나갈쯤 결국 터키커플과 프랑스여자가 다툼이 나서 분위기가 좋지 않았지만 마지막엔 모두 다시 잘지내 별탈 없는 생활을 했다.마지막 모두 떠나는 날, 아침 차이던 우리는 새벽에 마중나온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는데 3주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들었는지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껴안았다..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나 좋은 경험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워크캠프를 끝내고 드디어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프랑스가 생각보다 더러웠지만 정말 건물들과 야경은 입이 쩍벌어질 만큼 화려하고 웅장하였다. 길도 많이 헤맸지만 그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았고, 두번째 이탈리아는 정말 깨끗하지만 화려하기 보단 빈티지한 느낌이였다. 나의 첫 여행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여행이라 생각한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워크캠프를 하며 처음 몇일은 적응을 하지 못해서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지만, 몇일이 지나 친구들과 친해지고 익숙해 지며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 이때까지 한국이라는 우리안에 갖혀있던 나에게 유럽이라는 먼 나라에서의 생활은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였다.
외모,문화,사고방식이 조금씩 다르지만 각기의 나라를 존중하며 함께 생활하며 그들에게 배우고 도움을 주며 하나가 되었던 즐거운 시간, 새로운 세상을 겪었던 누구보다 여름 방학에 값진 경험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 워크캠프가 첫여행이자 특별한 기회가 찾아왔기에 더욱 더 설레임을 가지고 떠났다. 항공권의 날짜가 늦어 워크캠프 장소에 하루 늦게 도착 하였는데 찾아가는 길은 어디가 어딘지 찾기 힘들어 손짓 발짓을 해가며 물어보았다. 기차안에서 만난 한 아저씨에게 도움을 많이 받아 나는 워크캠프에 도착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나의 워크캠프 경험담을 이야기하면 꼭 빼놓지 않고 말 할 정도로 좋은 분이셔서 다시 한번 보고싶다. 프랑스 지역중 Poleymieux는 마을에 도착하여 워크캠프장소에서 터키 여자아이와 체코 남자아이가 점심 준비에 한창이였다. 음식준비를 같이 도와주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프랑스 여자1명, 체코 여자1명,남자1명, 터키 여자1명,여자1명, 러시아 여자1명,그리고 나와 친구 이렇게 8명이라는 것이다. 갔다왔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20명 정도 인원이였다고 들었는데 그에 비해 엄청 적은 수 였고 잠은 2인용 텐트에서 2명이서 잠을 자야했다.
다른 친구들이 하나둘씩 일을 하고 돌아와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 영어실력이 원어민 수준이였지만 그들에 비해 나는 유창하게 하지는 못하여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영어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야 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다음날 일을 하러 가서 나는 깜짝 놀랐다.. 옛날에 한 우물이 있었는데 그우물안이 흙으로 뒤덮여 있고 돌이 무너져 있어 다시 우물을 파고 돌을 쌓아야했다.
처음 이런 일에 접한 나는 한숨 부터 났다..워크캠프 주제가 보수공사였지만 삽으로 흙을 파고 돌을 옮기고 시멘트를 칠해 다시 돌을 쌓아야 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곤 생각을 못하였지만 그것도 잠시 외국 친구들이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힘이들지만 점점 완성해 가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 하며 일을 하였다. 마을 한 할아버지께서 그 일을 맡아 항상 함께 일을 하는데 그 할아버지의 취미가 신기한 돌이나 땅속에서 깨진 도자기의 조각들을 찾는 것을 좋아셔서 마을사람들이 모두 알아 신기한 돌을 찾으면 그집앞에 두고 간다고 한다. 그래서 일을 하며 모양이 찍혀져 있는 돌,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찾으면 아저씨에게 드리며 일을 하였다.
학때 마다 종종 했던 요가강사 아르바이트의 경험이 있어 친구들과 저녁에 매트를 깔고 요가를 가르켜주어 친구들이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가르쳐주고 사소한 것에 너무도 좋아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나또한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하루하루 돌아가며 두명씩 짝을 지어 쿠킹팀을 만들어 그날의 요리당번을 정하였고 내가 당번이 된날 한국음식을 해주기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갈비소스와 고추장을 이용하여 갈비,볶음밥 또는 라면, 감자전을 해주었다. 그 중 제일 인기가 많았던 음식은 갈비와 감자전이였다. 갈비의 소스를 보고 친구들이 한국음식 정말 맛있다며 또 먹고싶을거 같다며 좋아하였고 감자전에 모두가 좋아하는 치즈가루를 덮어 피자처럼 만들어 퓨전요리를 해주었다.
때때로 마을 주민들께서 집으로 초대하여 프랑스 음식을 제대로 접해보기도 하였는데 항상 밥만 먹던 나는 매일 같이 먹는 바게뜨는 지겨웠고 프랑스 특유의 치즈는 정말 먹지 못하여서 치즈 냄새를 맡고 미간을 찌푸리던 나를 보고 모두가 박장대소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마을 기타를 잘 치시던 아저씨께서 샹젤리제 노래를 불러주셨을때 나와 친구는 그날 밤 그노래에 심취하여 모두가 우리를 위해 노래를 가르켜 주셔서 함께 그노래를 부르곤 했다. 참 신기 했던 것은 외국친구들은 모두 수영을 잘하였다.
나와 한국인 친구는 수영을 못해서 물을 무서워 하는 우리를 위해 외국 친구들이 수여을 가르켜 주어 함께 즐겁게 수영을 하였다. 친구들에게 한국으로 돌아가면 친구들과 부모님께 수영할 수 있다고 자랑할것이라 하며 그들 덕분에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항상 즐거운 날들만 있지는 않았다. 알고보니 터키2명, 체코2명 모두 커플이였는데 프랑스 여자아이와 터키아이들과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프랑스 여자아이가 리더이지만 기중심적인 행동을 할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유독 터키아이들과 부딪치는 일이 많이생겼다.
프랑스 여자아이의 생일이 되는 밤12시에 모두 잠을 자려는데 옆 텐트 프랑스친구가 서글프게 우는 소리가 들려 모두 그소리를 듣고 모여 깜짝 파티로 종이에 메시지를 적고 나무에 붙이며 선물로 초콜렛을 사고 꽃으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 그날 프랑스여자의 생일파티를 하며 다시 즐거운 날을 보내였다.그것도 잠시 워크캠프가 끝나갈쯤 결국 터키커플과 프랑스여자가 다툼이 나서 분위기가 좋지 않았지만 마지막엔 모두 다시 잘지내 별탈 없는 생활을 했다.마지막 모두 떠나는 날, 아침 차이던 우리는 새벽에 마중나온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는데 3주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들었는지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껴안았다..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나 좋은 경험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워크캠프를 끝내고 드디어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프랑스가 생각보다 더러웠지만 정말 건물들과 야경은 입이 쩍벌어질 만큼 화려하고 웅장하였다. 길도 많이 헤맸지만 그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았고, 두번째 이탈리아는 정말 깨끗하지만 화려하기 보단 빈티지한 느낌이였다. 나의 첫 여행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여행이라 생각한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워크캠프를 하며 처음 몇일은 적응을 하지 못해서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지만, 몇일이 지나 친구들과 친해지고 익숙해 지며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 이때까지 한국이라는 우리안에 갖혀있던 나에게 유럽이라는 먼 나라에서의 생활은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였다.
외모,문화,사고방식이 조금씩 다르지만 각기의 나라를 존중하며 함께 생활하며 그들에게 배우고 도움을 주며 하나가 되었던 즐거운 시간, 새로운 세상을 겪었던 누구보다 여름 방학에 값진 경험을 하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