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위스, 텐트에서 맞이한 푸른 여름

작성자 김은솔
스위스 WS13KSL02 · KIDS/MANU 2013. 07 - 2013. 08 Wila, Switzerland

SCOUT CAMP 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어릴 때 보았던 스위스의 그 푸른 산이 좋아 스위스의 워크캠프를 지원했다. 지원할 때는 몰랐는데 인포싯을 받고 보니 준비물에 침낭이 있었다. 텐트에서 침낭을 깔고 2주일을 잔다니, 텐트 야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워크캠프 장소는 취리히에서 기차를 2번 갈아타야 갈 수 있는 작은 마을 Wila였다. 기차역에서 우리들의 인솔자였던 Wini와 다른 친구들을 만나 캠프사이트로 이동했다. 드넓은 언덕에 수십 개의 텐트와 목조 건축물들이 펼쳐진 광경은 생소하고도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고 자유로웠다. 마침 이전 워크캠퍼들이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어서 그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첫날에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모른 채 그저 즐거운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본격적으로 캠프와 우리가 할 일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우리의 캠프사이트는 500명 정도의 스위스 청소년들이 여름 스카우트 캠프를 하는 곳으로, 우리는 그곳에 필요한 일들을 보조해주는 역할이었다. 나와 같은 워크캠퍼들이 15명이었고, 자원봉사를 하는 스위스 사람들 20명 정도와 함께 일을 했다.
첫 주에는 설거지, 화장실 청소, 쓰레기 줍기 등의 일을 돌아가면서 했다. 일마다 다르긴 했지만 하루에 두세 차례, 1~2시간씩 일을 했다. 그 사이에는 텐트에서 쉬기도 하고, 가까운 강에 물놀이를 가기도 했다. 둘째 주에는 전체 캠프사이트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첫째 주와는 달리 노동 강도가 굉장히 높았다. 모두들 드릴, 망치 등을 들고 그곳에 있던 모든 건축물들을 부수어야 했다. 무거운 나무 기둥들을 옮기고 모든 텐트를 철거했다. 처음에는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들인데다, 무엇보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힘들었다. 스위스의 산 중턱이라 날씨가 시원할 거라고 생각했던 내 기대와는 달리, 캠프사이트는 정.말 더웠다. 햇볕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느꼈던 것보다도 훨씬 강렬했다. (한편 밤에는 굉장히 추웠다. 긴바지를 입고 긴팔 옷을 두세 개 껴입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단 한 사람도 꾀를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였고 나도 최선을 다했다. 덥고 일도 고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도 짜증내거나 불평한 적은 없었다. 내가 그곳에 있는 것을 후회하지도 않았다. 내가 이런 일을 어디에서 해보겠나 싶어서 재미있기도 했고, 또 친구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았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다들 서로를 격려하면서, 즐겁게, 무리하지 않고 일을 했다. 서양 사람들이 우리가 게으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모두가 책임감 있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 받았다. 며칠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서툴던 망치와 드릴도 손에 익었고 일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어 아주 보람이 있었다.
이처럼 일을 열심히 했지만 캠프 내내 여가 시간도 재미있게 보냈다. 낮에는 친구들과 주로 텐트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고 일이 없을 때에는 카드 게임 등을 했다. 점심 시간에는 햇볕이 너무 강렬해서 일을 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다같이 강에 가서 점심을 먹고 물놀이를 하고 낮잠을 자고 오기도 했다. 매일 저녁에는 다같이 모여서 카드게임과 보드게임을 하고, 술도 마시고 캠프 파이어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일 밤 유쾌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그 시간들이 정말 편안하고 행복했다.
텐트는 15명이 세 개의 텐트에서 잤는데, 나는 3명의 친구들과 한 텐트를 썼다. 밤에는 추워서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자야했고 거미를 비롯한 벌레들 때문에 놀란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텐트 생활은 생각보다 불편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음식은 캠프 측에서 제공해주었다. 아침에는 간단하게 빵과 우유를 먹고, 점심과 저녁에는 파스타, 볶음밥, 샐러드, 감자 요리 등을 먹었다. 입맛에 크게 안 맞는 것 아니었지만 늘 한국 음식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워크캠프 기간 동안 다른 곳으로 놀러 갈 수 있는 기회도 두 번이나 있었다. 한 번은 캠프 중간에 스카우트 아이들의 견학에 동행해서 멋진 폭포를 구경했다. 그리고 Wila에서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는 Zug로 이동해서 2박 3일 동안 관광을 했다. 스위스의 치즈 공장을 구경하고, Luzern에 가서는 시내도 구경하고 초콜릿, 시계 등을 사는 쇼핑도 했다. (이 캠프에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15일 동안 추가 경비가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음식이 제공되었고, 관광할 때 교통비조차 모두 지원해주었다.) 마지막 날 밤에는 다른 한국인 참가자 언니와 함께 불고기, 부침개, 김치볶음밥을 준비해서 20명 넘는 사람들에게 대접하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요리라서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모두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이 모든 것들을 합친 것보다 더욱 값지고 좋았던 것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나를 포함한 15명의 워크캠퍼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해주었던 20여 명의 사람들은 15일 동안 사소한 다툼 한 번 없이 사이좋게 생활했다. 워크캠프에 지원할 때부터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어 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우리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친해져 있었다. 스위스 사람들은 정말 모두가 유쾌했고, 사소한 부분들까지 챙겨주고, 작은 문제라도 있으면 언제나 도와주었다. 나는 다른 워크캠퍼들과 서로의 나라에 대해 묻고, 서로의 말을 배우고, 함께 웃고 떠들었다. 이 친구들 덕분에 정말 2주 내내 실컷 웃을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그저 행복했고, 감사했다. 2주 남짓한 그 짧은 기간 동안 그 모든 일이 가능했다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이다. 그래서 헤어지는 날에는 너무 아쉬웠다. 함께 사진을 찍고, 나는 워크캠퍼들 모두에게 엽서를 써주었다. 그래도 헤어짐은 슬펐다. 나는 캠프 종료 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한동안 허전하고 우울해했다.
몇 주가 지나서야 그 그리움을 극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친구들과 활발하게 교류를 하고 있다. 모든 친구와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고, 우리끼리 페이스북 그룹도 만들었다. 지금도 자주 채팅을 한다. 특히 프랑스, 우크라이나, 러시아, 터키 친구와 자주 연락을 주고 받는다. 나는 내년 여름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친구를 만나러 여행을 떠날 계획이고, 일본인 친구는 올 겨울에, 터키 친구는 내후년 여름에 한국에 올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각자 자기 나라에 있지만 결코 헤어진 것 같지 않다. 자주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늘 함께 있는 것 같고, 실제로도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스위스에서의 여름이 결코 끝나지 않은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보낸 지난 여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들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 시간은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고, 당분간은 계속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