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브레스트, 청춘을 리프레시하다
Rue de Saint Malo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3살, 이 아름다운 청춘을 어떻게 멋지게 즐길 수 있을까? 내 일상을 새롭고 리프레시하게 만들어줄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내 시각과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열어줄 새로운 도전과 모험은 없을까?
언제나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던 와중에 내 앞에 찾아온 것이 바로 국제워크캠프였다. 사실 국제워크캠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었는데, 친구가 워크캠프를 신청한다기에 알아보니 여름방학때 외국에 나가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만나고 생활하며 봉사까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바로 신청을 했었다. 또 지금 나의 인생에서의 방향을 세워야 하는 시점에서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을 했었다.
프랑스, 브레스트라는 작은 도시로 나의 워크캠프가 결정되었다. 처음들어보는 도시였지만 검색을 해보니 해안가에 있는 아름다운 도시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일단 내가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는데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워크캠프 사전교육에 참가하여 경험담들을 들어보며 이것저것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외국친구들에게 소개해 줄 한국 전통놀이, 호떡믹스, 짜파게티 등등을 준비하다보니 어느덧 출국날짜가 다가왔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마음을 졸이다가 드디어 프랑스에서도 제일 끝자락에 있는 브레스트에 도착하였다. 아직도 내가 브레스트 기차역에서 처음 내렸던 그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4시간동안 기차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브레스트에 도착하여 짐을 끌고 나오는데 어떤 외국인 2명이 날 쳐다보며 "Yesol?" 하고 물어보았다. 난 처음에 내 이름을 말하는지 몰랐는데 곧 워크캠프 사람들임을 알고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소개하고 나에게 프랑스식 인사인 비쥬를 하였다. 워크캠프 리더들이 나를 마중나온 것이었는데,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만나게 되어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었다. 리더의 차를 타고 캠프로 가는 길에 공항에 들려 타이완 친구 2명을 함께 픽업하러 갔다. 캠프에는 벌써 어제 도착한 사람들이 네명이나 있다고 하였다. 차안에서 영어로 몇 마디를 나누는데 그 어색함은 지금도 아찔하다. 공항에서 타이완 친구들을 만났는데 마침 우리나라에 관심이 많고 굉장히 친화력이 강한 친구들이라 금새 편해질 수 있었다.
작은 도시여서 차를 타고 조금만 달리니 금방 캠프에 도착하였다. 나는 처음에 인포싯에서 텐트에서 생활을 한다고하여 '도대체 어디에서 3주동안 텐트를 치고 지내지?'하고 생각했었는데 우리가 텐트를 치고 캠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은 그곳 주민들에게 역사적인 장소였다. 아주 예전에는 빨래터로 사용되었었고 지금은 마을 축제를 하거나 일일 장터를 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텐트를 치고 짐을 푼 뒤, 내가 일을 하게 될 생말로 성벽에 가보았다. 먼저 그곳에 있는 잡초들과 나무를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어떨지 기대도 되었다. 어제 미리 도착한 사람들 중에는 한국인 언니도 있었다. 캠프기간동안 언니가 정말 의지도 많이 되고 한국에 대해 소개해 줄 때도 언니와 함께라서 더욱 든든하였다.
첫째주는 적응기간이었다. 여러 나라 사람들과 모여있으니 정말 내가 외국에 왔구나 하는 실감도 나고, 영어가 잘 안되어서 특히나 힘들었다. 게다가 모두 영어권 사람들이 아니어서 자기네 나라식의 영어발음을 구사하여 더욱 알아듣기 힘들고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영어로 나오지 않아서 의사소통이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소극적으로 되어가는 것 같았다. 이 때는 얼른 워크캠프가 끝나고 계획해 놓은 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시간도 너무너무 느렸던 것 같다. 하지만 첫째주가 지나면서 서서히 캠프생활도, 사람들과도 적응이 되었다. 나의 텐트메이트는 이탈리아 친구였는데 밤마다 수다를 떨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옆 텐트의 체코 친구가 너네는 맨날 밤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조잘조잘 하냐고 할 정도 였다. 문법이 맞거나 정석의 영어는 아니지만, 서로에게 적응하면서 어떻게든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참 신기했다. 또, 우리 캠프는 거의 매일 일이 끝나고 비치에 놀러가거나 공원에 놀러가고 주말에는 다른 마을에 놀러가서 좋았던 것 같다. 내가 따로 여행을 온다면 그렇게 못해보았을 것들을 유럽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또 작은 도시여서 마을 축제가 자주 열렸다. 우리는 축제에 참여하면서 축제분위기에 취해볼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함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추억이다.
둘째주부터는 시간이 정말 빨리갔다. 한국 언니와도 맨날 하던 소리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워크캠프를 하면서 또 좋았던 것은, 다양한 나라들의 음식을 먹어볼 수 있고 그 문화에 대해서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캠프에는 러시아, 체코, 이탈리아, 타이완, 터키, 프랑스 친구들이 구성원이었는데, 각 나라의 문화를 느껴볼 수 있어서 신선한 경험이었다. 또 브레스트에 사는 프랑스인 친구들이 자원해서 우리와 함께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 친구들과도 너무나 친해져서 집에도 초대받아 놀러가고, 함께 시내에 나가 쇼핑도하며 좋은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했던 새로운 사람들과의 캠프생활이 지금은 아름답고 굉장했던 순간들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이 참 쉽지많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특히 아쉬움들도 많이 남는것 같다. 헤어짐의 순간은 언제나 너무 슬프다. 만남이 있으면 왜 꼭 헤어짐이 있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헤어짐이 있기에 그 만남이 더욱 소중한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처음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캠프 안의 나무 화장실도, 멀고 먼 샤워실도, 러시아 친구가 만든 바나나 해먹도, 맨날 밥먹던 식탁도, 식탁에 앉으면 보이는 바깥 풍경도,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도, 캠프 안 잔디밭도, 생말로 성벽도, 힘들었던 보수작업도, 브레스트 이곳저곳의 그 길들도, 선선한 해질녘의 공기도, 와이파이가 무제한으로 터지던 미미 할머니의 예쁜 까페도, 밤에 수다떨던 텐트도, 모두의 웃음소리도, 맨 처음 캠프에서의 그 어색함까지도 모두모두 그립다.
3주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 변화된 내 마음 등등 모두 글로는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 마음속에는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언젠가 어디에서든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린다!
언제나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던 와중에 내 앞에 찾아온 것이 바로 국제워크캠프였다. 사실 국제워크캠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었는데, 친구가 워크캠프를 신청한다기에 알아보니 여름방학때 외국에 나가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만나고 생활하며 봉사까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바로 신청을 했었다. 또 지금 나의 인생에서의 방향을 세워야 하는 시점에서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을 했었다.
프랑스, 브레스트라는 작은 도시로 나의 워크캠프가 결정되었다. 처음들어보는 도시였지만 검색을 해보니 해안가에 있는 아름다운 도시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일단 내가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는데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워크캠프 사전교육에 참가하여 경험담들을 들어보며 이것저것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외국친구들에게 소개해 줄 한국 전통놀이, 호떡믹스, 짜파게티 등등을 준비하다보니 어느덧 출국날짜가 다가왔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마음을 졸이다가 드디어 프랑스에서도 제일 끝자락에 있는 브레스트에 도착하였다. 아직도 내가 브레스트 기차역에서 처음 내렸던 그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4시간동안 기차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브레스트에 도착하여 짐을 끌고 나오는데 어떤 외국인 2명이 날 쳐다보며 "Yesol?" 하고 물어보았다. 난 처음에 내 이름을 말하는지 몰랐는데 곧 워크캠프 사람들임을 알고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소개하고 나에게 프랑스식 인사인 비쥬를 하였다. 워크캠프 리더들이 나를 마중나온 것이었는데,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만나게 되어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었다. 리더의 차를 타고 캠프로 가는 길에 공항에 들려 타이완 친구 2명을 함께 픽업하러 갔다. 캠프에는 벌써 어제 도착한 사람들이 네명이나 있다고 하였다. 차안에서 영어로 몇 마디를 나누는데 그 어색함은 지금도 아찔하다. 공항에서 타이완 친구들을 만났는데 마침 우리나라에 관심이 많고 굉장히 친화력이 강한 친구들이라 금새 편해질 수 있었다.
작은 도시여서 차를 타고 조금만 달리니 금방 캠프에 도착하였다. 나는 처음에 인포싯에서 텐트에서 생활을 한다고하여 '도대체 어디에서 3주동안 텐트를 치고 지내지?'하고 생각했었는데 우리가 텐트를 치고 캠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은 그곳 주민들에게 역사적인 장소였다. 아주 예전에는 빨래터로 사용되었었고 지금은 마을 축제를 하거나 일일 장터를 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텐트를 치고 짐을 푼 뒤, 내가 일을 하게 될 생말로 성벽에 가보았다. 먼저 그곳에 있는 잡초들과 나무를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어떨지 기대도 되었다. 어제 미리 도착한 사람들 중에는 한국인 언니도 있었다. 캠프기간동안 언니가 정말 의지도 많이 되고 한국에 대해 소개해 줄 때도 언니와 함께라서 더욱 든든하였다.
첫째주는 적응기간이었다. 여러 나라 사람들과 모여있으니 정말 내가 외국에 왔구나 하는 실감도 나고, 영어가 잘 안되어서 특히나 힘들었다. 게다가 모두 영어권 사람들이 아니어서 자기네 나라식의 영어발음을 구사하여 더욱 알아듣기 힘들고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영어로 나오지 않아서 의사소통이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소극적으로 되어가는 것 같았다. 이 때는 얼른 워크캠프가 끝나고 계획해 놓은 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시간도 너무너무 느렸던 것 같다. 하지만 첫째주가 지나면서 서서히 캠프생활도, 사람들과도 적응이 되었다. 나의 텐트메이트는 이탈리아 친구였는데 밤마다 수다를 떨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옆 텐트의 체코 친구가 너네는 맨날 밤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조잘조잘 하냐고 할 정도 였다. 문법이 맞거나 정석의 영어는 아니지만, 서로에게 적응하면서 어떻게든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참 신기했다. 또, 우리 캠프는 거의 매일 일이 끝나고 비치에 놀러가거나 공원에 놀러가고 주말에는 다른 마을에 놀러가서 좋았던 것 같다. 내가 따로 여행을 온다면 그렇게 못해보았을 것들을 유럽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또 작은 도시여서 마을 축제가 자주 열렸다. 우리는 축제에 참여하면서 축제분위기에 취해볼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함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추억이다.
둘째주부터는 시간이 정말 빨리갔다. 한국 언니와도 맨날 하던 소리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워크캠프를 하면서 또 좋았던 것은, 다양한 나라들의 음식을 먹어볼 수 있고 그 문화에 대해서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캠프에는 러시아, 체코, 이탈리아, 타이완, 터키, 프랑스 친구들이 구성원이었는데, 각 나라의 문화를 느껴볼 수 있어서 신선한 경험이었다. 또 브레스트에 사는 프랑스인 친구들이 자원해서 우리와 함께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 친구들과도 너무나 친해져서 집에도 초대받아 놀러가고, 함께 시내에 나가 쇼핑도하며 좋은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했던 새로운 사람들과의 캠프생활이 지금은 아름답고 굉장했던 순간들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이 참 쉽지많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특히 아쉬움들도 많이 남는것 같다. 헤어짐의 순간은 언제나 너무 슬프다. 만남이 있으면 왜 꼭 헤어짐이 있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헤어짐이 있기에 그 만남이 더욱 소중한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처음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캠프 안의 나무 화장실도, 멀고 먼 샤워실도, 러시아 친구가 만든 바나나 해먹도, 맨날 밥먹던 식탁도, 식탁에 앉으면 보이는 바깥 풍경도,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도, 캠프 안 잔디밭도, 생말로 성벽도, 힘들었던 보수작업도, 브레스트 이곳저곳의 그 길들도, 선선한 해질녘의 공기도, 와이파이가 무제한으로 터지던 미미 할머니의 예쁜 까페도, 밤에 수다떨던 텐트도, 모두의 웃음소리도, 맨 처음 캠프에서의 그 어색함까지도 모두모두 그립다.
3주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 변화된 내 마음 등등 모두 글로는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 마음속에는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언젠가 어디에서든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