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새로운 설렘으로 가득했던 워크캠프

작성자 김조은
프랑스 CONC 005 · RENO 2013. 07 VANXAINS

VANXAINS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를 참가하게 된 배경

봉사활동에 대해 남들보다 남다른 생각을 가졌다기 보다 대학 졸업 전에 혼자 유럽배낭여행을 가고 싶다 라는 막연한 생각과, 관광경영을 전공했지만 진정한 관광을 느꼈던 적이 있는가 라는 회의감, 졸업 직전 남들과 다른 스펙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찰나 학교 홈페이지에서 국제 워크캠프 시행계획을 보게 되었다.
워크캠프란 나에게 새로운 단어였다. 그 때부터 워크캠프에 대해 알아보며 봉사활동을 하는 것뿐 아니라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각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나의 문화도 알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워크캠프를 선택한다는 건 나에게 아주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었지만 처음 느껴보는 설레임이 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새로운 장소에서 서로 모르는 청년들이 만나 특별한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만으로도 워크캠프에 지원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특별한 3주,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가 하는 일은 3주 동안 무너진 벽을 쌓아 올리는 일이었다. 아침 6시40분에 집합하여, 오전7시부터 오후1시까지 6시간 동안 일을 했는데, 크고 작은 돌덩이들을 모아 모래와 시멘트로 글루를 만들고, 처음 보는 농기구까지 동원해, 땡볕아래 자기자신과의 싸움으로 무장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일을 처음 시작하는 날 어찌나 괴로웠던지 참가자 중 스페인에서 온 쌍둥이들은 '엄마, 아빠, 왜 저희를 이곳에 보내셨나요' 라며 부모님을 원망하는 모습에 우리는 모두 긴장이 풀려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삽질을 하고, 무거운 돌덩이를 나르는 힘든 일이었지만 항상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했다. 또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ANGOULEME TV에서 취재를 나와 우리의 봉사활동에 관해 인터뷰를 부탁해 우리는 일을 제대로 하기 전 사기를 북돋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벽돌 쌓는 일뿐 아니라, 쿠킹팀, 디싱팀, 클린팀 등 다양한 팀을 만들어 매일 번갈아 가며 집안일도 해야 했다. 돌아가면서 음식을 만들었기 때문에 항상 맛있는 음식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한 후 먹는 음식이라 뭘 먹어도 꿀맛이었던 것 같다. 나는 쿠킹팀 준비를 하기 위해 한국에서 불고기소스와, 김, 호떡믹스를 가져갔는데 모두들 의심 없이 맛있게 먹어주어 우쭐하기도 했었다.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문화교류시간이라고 하지만 특별한 것 없이 자유시간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일한 우리들은 해먹 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하고, 거실에 모여 다같이 카드놀이를 하기도 했으며, 맥주 한 병씩 들고 모두가 수다쟁이로 변하기도 했다. 또, 휴일이나 일을 마친 오후에는 우리 숙소에서 차로 5분 정도에 있는 호수로 피크닉을 가기도 했는데, 처음 그 호수를 봤을 때는 마치 바다라고 느낄 만큼 바다처럼 크고 넓은 모래사장과, 해변을 가지고 있었다. 호수에서 수영뿐 아니라 비치발리볼, 배드민턴, 공놀이 등 셀 수 없는 놀이들을 했다. 이렇게 열심히 놀아 본 게 언제적 이었는지 생각해 볼 정신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놀았던 것 같다.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트럭 안에서도 핸드폰 불 빛에 의지하여 노랫소리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고, 수영하고 돌아와 비키니를 입은 채로 파티 투나잇이라며 모두가 신나 밤을 새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언제 다시 그렇게 놀아볼 수 있을까 싶다.
프랑스 내셔널데이 마을파티도 참가하고, 마을에 사는 음악가의 집에 초대받아 놀러 가기도 했으며, 마을 아주머니를 도와 밭일도 해보니 이게 진짜 프랑스라는 기분에 매일매일이 새롭고 그들이 가족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내가 평소에 어렵게 느꼈던 외국인이 아니라 동네 아줌마, 아저씨, 친구들처럼 마음으로 다가와 서로를 알아갔다. 관광객 일 때 와는 또 다른 느낌에 'Bonjour’ 인사 한마디 건낼때도 자신감이 붙어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참가 후 변화

처음 워크캠프에 참가하기까지 가장 두려웠던 점은 언어적인 문제였다. 내가 말을 못하면 어쩌지, 말을 알아듣지 못해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가서 어떻게 언어의 문제를 극복할 것인가 그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러나, 참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예상은 빗나갔고,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으면 상대방이 먼저 나를 배려해주며, 이해 할 때까지 쉬운 말들로, 또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했다.
물론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그는 또 그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우리와 소통하길 원했고, 먼저 다가와 캔디를 건네며 장난을 걸기도 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있을 때는 언어로 우리의 관계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캠프 참가 하기 전에는 서양인들 인성에 관하여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서양인들은 너무나도 개인주의 적일 것이다' 때문에, 나의 일 외에는 관심이 없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는 것을 워크캠프에 참가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워크캠프를 찾아가는 길에 기차역에서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고 또, ATM기에서 방황하는 나를 보고 먼저 다가와 선뜻 도와주고 싶다고 다가오는 프랑스인들이 적지않게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나는 누가 곤경에 처했을 때 선뜻 나선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프랑스 국민성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누군가를 먼저 도와주고 싶은 국민들의 마음이 프랑스를 선진국으로 만든 원동력이 된 건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본다. 또 함께 지냈던 캠퍼들도 나보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속마음을 숨기지 않는 것이 다를 뿐, 나보다도 훨씬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을 발견했다. 왜 이제껏 그런 고정관념이 생겼던 것인지 혼자 의아하기도 했다.
워크캠프가 끝나고 기차시간으로 인해 가장먼저 떠나야 했는데, 나를 떠나 보내기가 싫어 울음이 터진 스페인 친구가 있었다. 겨우 3주 함께한 것뿐인데 헤어지고 싶지 않다며 나를 위해 우는 그 친구가 고마웠고,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나도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겨우 3주 동안 왜 이렇게 우리들의 추억은 많아졌는지, 그렇게 짧은 시간에 왜 이렇게 감사한 일이 많은 건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의아하다. 함께하는 동안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도 너무 많아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하고, 우리나라 정치에 관해서 묻기도 하며, 우리는 원래 알던 친구처럼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워크캠프를 통해 '해외봉사활동 한번쯤 다녀 오는 게 좋겠어' 라고 말했던 내가 진정한 봉사를 했다기 보다 그 곳에서 그들이 준 사랑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고 돌아온 기분이 든다. 진정한 프랑스의 따뜻한 마음과, 새로운 친구들, 소중한 추억을 가지고 돌아와, 내가 베푼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받고, 깨닫게 해준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