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새로운 나를 만난 Dinard 워크캠프
DINARD 3 (ILLE-ET-VILAIN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한번도 해외를 나가보지 못했던 나에게 과사무실 앞 게시판에 붙어있던 국제워크캠프, 해외에 나갈수 있다는 점과 해외에서 봉사활동이라는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은 똑같은 일상의 탈출구를 찾고 싶었던 나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마음먹고 신청을 해서 면접을 봤고, 학교에서 워캠을 위한 지원도 받으며 그렇게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했던 나의 워캠은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워캠은 8월 1일부터 시작이었지만, 워캠만 하고 돌아오기엔 뭔가 부족하다 싶어서 1주일 일찍 프랑스에 도착해 워캠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파리 구석구석을 여행했고, 7월 31일 워캠을 위해 파리에서 미팅포인트인 생말로로 향했다. TGV 시간을 잘못알고 출발해서 일주일간 머물던 숙소에서 Massy-TGV역까지 가는 시간이 엄청나게 촉박했고, 기차 출발 5분을 남기고 Massy-TGV역에 도착했을 때는 발권기가 도와주지 않아서 함께 워캠을 갔던 친구가 어디선가 말 안통하는 외국인을 데려와 도움을 받아 겨우 티켓을 출력하고 기차에 겨우겨우 탑승할 수 있었다. 물론 기차는 우리가 탑승하자 마자 출발했다. 우여곡절 끝에 하루일찍 생말로역에 도착한 우리는 숙소를 찾았지만, 프랑스 외곽에 위치한 곳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영어보단 모국어인 불어를 사용해서 숙소를 찾는데도 꽤 어려움을 겪었다. 안되는 영어와 스마트폰 어플을 사용하면서 힘들게 잡은 숙소에서 1주일간의 밀려오는 피로를 풀기위해 숙면을 취했고, 워캠 시작의 날이 밝아 우리는 다시 생말로역에서 다른 워캠 참가자들을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흘러 약속시간이 되었고, 짐들고 멍때리는 워캠 온 것 같은 동양인처럼 생겨서 그런지 우리 주변으로 한명씩 한명씩 모여들더니 어느덧 모든 참가자들이 다 모였고, 차를 타고 Dinard로 이동했는데, 차안에서의 그 삭막하고 어색한 모든걸 침묵으로 삼켜버릴 것 같았던 분위기는.. 숨이 턱턱 막혔다.
도착한 곳은 캠핑장옆에 설치된 캠프였고, 인포싯에 나온대로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중에 맘에드는 곳에 자리를 잡으라는 리더의 말에 모두들 텐트안에 자리를 잡고, 짐을 풀자마자 캠핑장옆에 붙어있던 바다에 놀러갔는데, 외국애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알수없는 언어(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로 떠들거나 그냥 바다를 쳐다보며 멍하게 있다가 어떤 현지 꼬맹이의 물수제비에 남자 참가자들은 너도나도 물수제비를 치기 시작했고 처음보다 살짝 가까워졌다고 느껴졌지만, 캠프로 돌아왔을때 그건 나의 착각이란걸 알았고.. (처음 캠프장옆에 있는 바다를 보았을때, '심심하면 바다에 놀러가겠구나..'라고 생각했었지만, 생각보다 바다에는 많이 놀러가지 않았다.) 저녁에는 서로 조금더 가까워지자는 의미에서 간단한 이름외우기 게임을 했는데, 다른 나라 참가자들이 한국 발음을 어려워해서 우리 이름을 부를때마다 틀려 그걸 계기로 함께 웃을 수 있었고 처음으로 다같이 함께 웃으며 우리들은 조금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튿날엔 워캠기간동안 사용하게될 이동수단인 자전거를 지급받았고,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곳을 한번 방문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짜면서 하루를 보냈고, 그 이튿날 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우리들의 작업은 묘지 벽 보수작업이었는데, 오래되서 부셔지고 금이간 벽돌 사이에 있는 시멘트를 부시고 다시 시멘트를 채워넣고 마지막으로 벽의 맨 윗단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습하진 않지만 햇볕이 강렬해서 더운 날씨와 흩날리는 시멘트 가루 종종 한번씩 퍼붓는 소나기를 맞으면서도 작업하는 동안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쉬는동안에도 항상 무언가를 같이하고 서로에게 장난도 치고 노래도 부르면서 우리들은 서로 더 가까워 질 수 있었고, 우리의 캠프장은 항상 떠들썩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워캠에서 처음으로 맞는 일요일에는 모두가 걸어서 캠프장 옆에 있는 해변이 아닌 좀 더 멀리 있는 해변으로 놀러갔었고, 유람선 비스무리한 보트를 타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생말로에 다녀왔는데 이날은 날씨가 무지하게 좋았다. 한번은 버스를 타고 생말로에가서 기차를 타고 몽쉘미쉘에도 다녀왔고, 우리와 다른 워캠 참가자들이 우리 캠프에 놀러와서 같이 바베큐 파티도 했었고, Dinard에서 가장 유명한 불꽃축제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돛으로 조종하는 보트도 탔다. 작업 외에 우리가 같이한 모든 일들이 특별한 에피소드라고 생각된다.
작업중에 있었던 일을 꼽자면, 작업 2번째 날에 우연히 이탈리아 참가자(윌)와 둘이 구석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되지도 않는 영어와 몸짓으로 어렵게 말을 걸었고, 윌이 나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주면서 윌과 나는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고, 그걸 계기로 다른 참가자들과도 어느정도 간단한 대화는 주고 받으면서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처음보다 더 어울릴 수 있게되었다.
워캠에서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워캠이 끝나고 모두 떠나고 난 뒤, 기차출발 까지 시간이 남아있던 나와 희재 프랑스 참가자 줄비타 이렇게 셋이서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때, 어떤 프랑스인과의 대화에서, 그 프랑스인이 나에게 워캠은 어땠고, 다시 하고 싶냐고 물었고, 난 워캠은 정말 좋은 경험이었지만, 당장은 내가 영어를 못해서 다시하고싶지 않다고, 나중에 영어를 좀 더 잘하게 되면 그때 다시 해보고 싶다고 대답을 했는데, 그 프랑스인은 언어는 중요하지 않다고, 어디에 있던지 무슨 일을 하던지 열정을 갖고 거기에 임하면 모든건 다된다고 말했고, 그말은 내게 어느정도 충격을 줬고, 그가 한말은 확실히 맞는 말인것 같다.
우리나라는 항상 뭐든지 빨리빨리해야하고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가지만, 프랑스는 어느 누구도 빨리빨리하라고 재촉하지 않았고, 우리나라처럼 치열한 경쟁이 있는것 같지도 않았다.(물론 보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걸보면서 내가 한국에서 부렸던 여유는 이곳에서는 그냥 집에서 잠자는 수준이라는걸 알았고, 진정한 여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아직 방학이라서(이틀뒤면 개강이지만) 한달동안 배워온 여유를 생활에 접하고 있긴 하지만, 역시 한국에서 프랑스식 여유를 갖기에는 아직 힘이 든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이번 경험은 나에게 영어와 열정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해줬고, 한국과 유럽(유럽의 다른 국가도 프랑스와 비슷할거라는 생각이 든다.)의 차이를 생각해보고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경험이 앞으로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분명 언젠가는 내가 변화하는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된다.
워캠이 끝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고,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볼때마다 그들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는것 같기도 하다.
그들을 다시 만날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워캠에서보다 더 향상된 영어실력을 갖고 그들과 그날을 추억하며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본격적인 워캠은 8월 1일부터 시작이었지만, 워캠만 하고 돌아오기엔 뭔가 부족하다 싶어서 1주일 일찍 프랑스에 도착해 워캠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파리 구석구석을 여행했고, 7월 31일 워캠을 위해 파리에서 미팅포인트인 생말로로 향했다. TGV 시간을 잘못알고 출발해서 일주일간 머물던 숙소에서 Massy-TGV역까지 가는 시간이 엄청나게 촉박했고, 기차 출발 5분을 남기고 Massy-TGV역에 도착했을 때는 발권기가 도와주지 않아서 함께 워캠을 갔던 친구가 어디선가 말 안통하는 외국인을 데려와 도움을 받아 겨우 티켓을 출력하고 기차에 겨우겨우 탑승할 수 있었다. 물론 기차는 우리가 탑승하자 마자 출발했다. 우여곡절 끝에 하루일찍 생말로역에 도착한 우리는 숙소를 찾았지만, 프랑스 외곽에 위치한 곳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영어보단 모국어인 불어를 사용해서 숙소를 찾는데도 꽤 어려움을 겪었다. 안되는 영어와 스마트폰 어플을 사용하면서 힘들게 잡은 숙소에서 1주일간의 밀려오는 피로를 풀기위해 숙면을 취했고, 워캠 시작의 날이 밝아 우리는 다시 생말로역에서 다른 워캠 참가자들을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흘러 약속시간이 되었고, 짐들고 멍때리는 워캠 온 것 같은 동양인처럼 생겨서 그런지 우리 주변으로 한명씩 한명씩 모여들더니 어느덧 모든 참가자들이 다 모였고, 차를 타고 Dinard로 이동했는데, 차안에서의 그 삭막하고 어색한 모든걸 침묵으로 삼켜버릴 것 같았던 분위기는.. 숨이 턱턱 막혔다.
도착한 곳은 캠핑장옆에 설치된 캠프였고, 인포싯에 나온대로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중에 맘에드는 곳에 자리를 잡으라는 리더의 말에 모두들 텐트안에 자리를 잡고, 짐을 풀자마자 캠핑장옆에 붙어있던 바다에 놀러갔는데, 외국애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알수없는 언어(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로 떠들거나 그냥 바다를 쳐다보며 멍하게 있다가 어떤 현지 꼬맹이의 물수제비에 남자 참가자들은 너도나도 물수제비를 치기 시작했고 처음보다 살짝 가까워졌다고 느껴졌지만, 캠프로 돌아왔을때 그건 나의 착각이란걸 알았고.. (처음 캠프장옆에 있는 바다를 보았을때, '심심하면 바다에 놀러가겠구나..'라고 생각했었지만, 생각보다 바다에는 많이 놀러가지 않았다.) 저녁에는 서로 조금더 가까워지자는 의미에서 간단한 이름외우기 게임을 했는데, 다른 나라 참가자들이 한국 발음을 어려워해서 우리 이름을 부를때마다 틀려 그걸 계기로 함께 웃을 수 있었고 처음으로 다같이 함께 웃으며 우리들은 조금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튿날엔 워캠기간동안 사용하게될 이동수단인 자전거를 지급받았고,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곳을 한번 방문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짜면서 하루를 보냈고, 그 이튿날 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우리들의 작업은 묘지 벽 보수작업이었는데, 오래되서 부셔지고 금이간 벽돌 사이에 있는 시멘트를 부시고 다시 시멘트를 채워넣고 마지막으로 벽의 맨 윗단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습하진 않지만 햇볕이 강렬해서 더운 날씨와 흩날리는 시멘트 가루 종종 한번씩 퍼붓는 소나기를 맞으면서도 작업하는 동안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쉬는동안에도 항상 무언가를 같이하고 서로에게 장난도 치고 노래도 부르면서 우리들은 서로 더 가까워 질 수 있었고, 우리의 캠프장은 항상 떠들썩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워캠에서 처음으로 맞는 일요일에는 모두가 걸어서 캠프장 옆에 있는 해변이 아닌 좀 더 멀리 있는 해변으로 놀러갔었고, 유람선 비스무리한 보트를 타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생말로에 다녀왔는데 이날은 날씨가 무지하게 좋았다. 한번은 버스를 타고 생말로에가서 기차를 타고 몽쉘미쉘에도 다녀왔고, 우리와 다른 워캠 참가자들이 우리 캠프에 놀러와서 같이 바베큐 파티도 했었고, Dinard에서 가장 유명한 불꽃축제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돛으로 조종하는 보트도 탔다. 작업 외에 우리가 같이한 모든 일들이 특별한 에피소드라고 생각된다.
작업중에 있었던 일을 꼽자면, 작업 2번째 날에 우연히 이탈리아 참가자(윌)와 둘이 구석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되지도 않는 영어와 몸짓으로 어렵게 말을 걸었고, 윌이 나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주면서 윌과 나는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고, 그걸 계기로 다른 참가자들과도 어느정도 간단한 대화는 주고 받으면서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처음보다 더 어울릴 수 있게되었다.
워캠에서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워캠이 끝나고 모두 떠나고 난 뒤, 기차출발 까지 시간이 남아있던 나와 희재 프랑스 참가자 줄비타 이렇게 셋이서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때, 어떤 프랑스인과의 대화에서, 그 프랑스인이 나에게 워캠은 어땠고, 다시 하고 싶냐고 물었고, 난 워캠은 정말 좋은 경험이었지만, 당장은 내가 영어를 못해서 다시하고싶지 않다고, 나중에 영어를 좀 더 잘하게 되면 그때 다시 해보고 싶다고 대답을 했는데, 그 프랑스인은 언어는 중요하지 않다고, 어디에 있던지 무슨 일을 하던지 열정을 갖고 거기에 임하면 모든건 다된다고 말했고, 그말은 내게 어느정도 충격을 줬고, 그가 한말은 확실히 맞는 말인것 같다.
우리나라는 항상 뭐든지 빨리빨리해야하고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가지만, 프랑스는 어느 누구도 빨리빨리하라고 재촉하지 않았고, 우리나라처럼 치열한 경쟁이 있는것 같지도 않았다.(물론 보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걸보면서 내가 한국에서 부렸던 여유는 이곳에서는 그냥 집에서 잠자는 수준이라는걸 알았고, 진정한 여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아직 방학이라서(이틀뒤면 개강이지만) 한달동안 배워온 여유를 생활에 접하고 있긴 하지만, 역시 한국에서 프랑스식 여유를 갖기에는 아직 힘이 든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이번 경험은 나에게 영어와 열정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해줬고, 한국과 유럽(유럽의 다른 국가도 프랑스와 비슷할거라는 생각이 든다.)의 차이를 생각해보고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경험이 앞으로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분명 언젠가는 내가 변화하는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된다.
워캠이 끝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고,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볼때마다 그들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는것 같기도 하다.
그들을 다시 만날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워캠에서보다 더 향상된 영어실력을 갖고 그들과 그날을 추억하며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