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Selcuk에서 살아남기
Selcuk-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뭔가에 홀리듯이 참여하게 된 워크캠프, 덜컥 워크캠프에 참여하라는 메일을 받고 나서야 제가 무슨 일을 저지른 지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시작된 워크캠프가 막상 날짜가 점점 다가올수록 두려움만 더해졌습니다. 처음으로 혼자 떠나게 된 해외, 비행기 표도 끊어야하고 같은 워크캠프에 참여하는 친구들로부터 오는 메일들을 확인하며 제가 과연 워크캠프에 가서 무엇으로 워크샵을 해야 할 지 한국은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지 등등 몇 일간은 머리가 터질 듯이 걱정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터키에 도착하기 전까지도 정말 모든 것을 다 포기해 버릴까도 수없이 생각했지만 막상 도착하니 생각은 달라졌습니다.
‘해보자! 설마 죽겠냐! 여기까지 왔는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라도 되겠지!’ 이 생각으로 도착한 워크캠프 사이트에는 이미 전날부터 도착해있던 워크캠프 참여자들이 저를 반겨 주었습니다. 자기소개도 하고 캠핑장 앞에 있는 바다에 가서 놀기도 하고 저녁에는 캠프파이어를 하며 노래를 부르며 첫날이 순조롭게 지나갔습니다. 둘째 날에는 첫째 날과 같이 바다에 가서 놀고 테라스에서 쉬며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에는 셀축 시내로 나가 이 전 워크캠프 참가자들의 워크샵을 지켜봤습니다. 점차 시간이 지날 수 록 의문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아이들을 상대로 워크샵을 열어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었으나 하루가 지날수록 아이들은 커녕 워크캠프 사이트에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참가자들과 리더들 그리고 캠핑장 관리자들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리더는 주최 측에서 라마단으로 인해 아이들을 받지 않아 참가자들이 할 일이 없다고 통보를 해왔고 그로인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참가자들에게 물어왔습니다. 이런 충격적인 통보로 패닉상태에 빠진 참가자들은 매일 밤과 낮으로 회의를 열어 무엇을 할지를 논의 하였으나 셀축측이나 주최측에서는 모든지 안됀다는 통보만 내려와 모두들 낙담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들만의 워크샵을 열어 기타, 우크렐레, 종이접기, 공기 놀이 등 자신들이 준비해온 워크샵을 주최했습니다. 처음 쳐보는 기타와 우크렐레, 어릴 때나 즐겨 했던 종이접기, 말로만 듣던 요가 등을 직접 접하며 내가 기대한 워크캠프는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내가 한국에 대해 알려주고 다른 문화들을 체험해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만족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첫 주 주말에는 셀축과 쉬린제 마을, 쿠샤다스 등을 관광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록 워크캠프에 대한 불만감을 커갔지만 참가자들간의 우정은 점점 돈독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둘째 주에는 각 나라별 요리 워크샵을 열어 프랑스, 스페인, 그리스, 한국, 일본 각 나라의 고유요리로 직접 점심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우리들의 워크캠프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다른 추최 측의 워크샵으로 인해 수 많은 터키 젊은 사람들이 캠핑장에 속속히 등장했습니다. 넓은 캠핑장에 20명 남짓한 사람들만 있던 곳이 하루만에 100명이상의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으나 나중에는 그 사람들이 여는 워크샵에 우리들이 참가하며 댄스, 연기, 발리볼 등 다양한 워크샵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캠프가 끝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끝난 캠프. 터키라는 아름다운 나라를 경험하고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지내보며 그 동안 내가 너무 우물 안에만 갇여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으며, 도전과 경험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리운 파무작의 캠핑장과 그 앞에 있는 아름다운 해변, 밤마다 수 많은 별들이 떠있던 곳. 지금도 다시가라면 다 버리고 달려가고 싶은 곳 터키 그리고 이주동안 이런 저런일도 함께 해쳐나갔던 그리운 참가자들. 이번 워크캠프의 아쉬움은 공지사항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제가 정말로 아무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다음에 참가를 하게 된다면 정말로 일을 할 수 있는 워크캠프에 참여해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해보자! 설마 죽겠냐! 여기까지 왔는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라도 되겠지!’ 이 생각으로 도착한 워크캠프 사이트에는 이미 전날부터 도착해있던 워크캠프 참여자들이 저를 반겨 주었습니다. 자기소개도 하고 캠핑장 앞에 있는 바다에 가서 놀기도 하고 저녁에는 캠프파이어를 하며 노래를 부르며 첫날이 순조롭게 지나갔습니다. 둘째 날에는 첫째 날과 같이 바다에 가서 놀고 테라스에서 쉬며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에는 셀축 시내로 나가 이 전 워크캠프 참가자들의 워크샵을 지켜봤습니다. 점차 시간이 지날 수 록 의문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아이들을 상대로 워크샵을 열어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었으나 하루가 지날수록 아이들은 커녕 워크캠프 사이트에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참가자들과 리더들 그리고 캠핑장 관리자들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리더는 주최 측에서 라마단으로 인해 아이들을 받지 않아 참가자들이 할 일이 없다고 통보를 해왔고 그로인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참가자들에게 물어왔습니다. 이런 충격적인 통보로 패닉상태에 빠진 참가자들은 매일 밤과 낮으로 회의를 열어 무엇을 할지를 논의 하였으나 셀축측이나 주최측에서는 모든지 안됀다는 통보만 내려와 모두들 낙담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들만의 워크샵을 열어 기타, 우크렐레, 종이접기, 공기 놀이 등 자신들이 준비해온 워크샵을 주최했습니다. 처음 쳐보는 기타와 우크렐레, 어릴 때나 즐겨 했던 종이접기, 말로만 듣던 요가 등을 직접 접하며 내가 기대한 워크캠프는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내가 한국에 대해 알려주고 다른 문화들을 체험해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만족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첫 주 주말에는 셀축과 쉬린제 마을, 쿠샤다스 등을 관광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록 워크캠프에 대한 불만감을 커갔지만 참가자들간의 우정은 점점 돈독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둘째 주에는 각 나라별 요리 워크샵을 열어 프랑스, 스페인, 그리스, 한국, 일본 각 나라의 고유요리로 직접 점심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우리들의 워크캠프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다른 추최 측의 워크샵으로 인해 수 많은 터키 젊은 사람들이 캠핑장에 속속히 등장했습니다. 넓은 캠핑장에 20명 남짓한 사람들만 있던 곳이 하루만에 100명이상의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으나 나중에는 그 사람들이 여는 워크샵에 우리들이 참가하며 댄스, 연기, 발리볼 등 다양한 워크샵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캠프가 끝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끝난 캠프. 터키라는 아름다운 나라를 경험하고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지내보며 그 동안 내가 너무 우물 안에만 갇여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으며, 도전과 경험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리운 파무작의 캠핑장과 그 앞에 있는 아름다운 해변, 밤마다 수 많은 별들이 떠있던 곳. 지금도 다시가라면 다 버리고 달려가고 싶은 곳 터키 그리고 이주동안 이런 저런일도 함께 해쳐나갔던 그리운 참가자들. 이번 워크캠프의 아쉬움은 공지사항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제가 정말로 아무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다음에 참가를 하게 된다면 정말로 일을 할 수 있는 워크캠프에 참여해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