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강남스타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인싸 체험
Parklife and walking rout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내가 국제워크캠프에 참가한 동기는 우연치 않게 학교 홈페이지를 보던중 국제워크캠프를
모집한다는 공지사항을 본 후 관심이 생겨 지원하였는데 합격을 하여 참가하게 되었다.
예전부터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아 해외봉사활동을 해보고 싶었는데 시기 적절하게
국제워크캠프라는것을 알게되어 정말 좋은 경험을 하고 온 것 같다.
2주간 우크라이나에서 워크캠프활동을 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 몇가지
특별한 에피소드를 꼽자면 먼저 전세계 유명세를 탄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 덕분에
내가 더 우크라이나에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는데. 내가 간 곳은 정말 우크라이나에서도
Chkalovo라는 시골 작은 마을로 갔었는데 그 곳 아이들이 심심찮게 핸드폰에 저장된
싸이의 강남스타일 곡을 틀어놓고 노는 것을 보고 그 노래를 내가 따라 불렀더니
아이들이 싸이와 같은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하였더니 그럼 노래와 춤을 보여달라해서 말춤과 함께 노래를 불러줬더니 마을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것 이 었다.
그 이후 워크캠프 종료때까지 난 적어도 20번의 말춤을 추고 워크캠프를 종료하였다.
특히 마을 디스코장에 가서 신나는 댄스파티를 하고 오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곳의 DJ들이 나의 얼굴을 보더니 딱 한국인인줄 알아본건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틀어주는 것이었다. 난 디스코장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의 이목집중을 받은 채 강남스타일을 마을주민들과 추었다. DJ도 신이났는디 적어도 10분에 한번씩 강남스타일을 틀어줘서 난 2시간동안 적어도 6번의 말춤을 추고 댄스파티를 마칠 수 있었다.
또한 워크캠프 동료들과 우크라이나 마을 주민들이 내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서
내 이름의 끝글자인 진만 말해보라했더니 너무나도 편하게 진~ 이러면서 이름을 불러줘서
내 이름은 2주간 진이 되었다.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는데 우크라이나 시골마을에
한국인 가족이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워크캠프 종료3일전 난 기회가 되어 한국인 가족 집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 집에 사시는 할머니께서 연세가 80세셨는데 매우 어릴적엔 우즈베키스탄으로 이민을 온 후 20대에 우크라이나로 건너와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계신다고 하셨다. 워크캠프 멤버중에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는 한국인이 정말 그리웠었는데 할머니를 만나뵈어 너무나 반가웠었다. 역시 한국인의 피는 속일 수 없듯 한국말을 그래도 아직까지는
잘하시는 편이셨다. 비록 거의 한평생을 우크라이나에서 사셨기 때문에 한국말을 많이
잊어먹으셔서 다소 원만한 의사소통은 힘든편이었지만 대부분의 할머니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그 집에 사는 한국인 가족이 대략 10명정도 되었는데
아쉽게도 할머님 빼고는 한국말을 제대로 할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소 아쉬웠지만 그래도 한국인을 만나 너무나 반가웠고 할머니께서 아주 맛있는 한식도 차려주셔서 난 거의 2주만에 정말 그리웠던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아직도 그 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또한 워크캠프 종료전날 다시 한번 할머님 집에 방문하여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단체사진도 찍고 왔다. 훗날 난 기회가 된다면 그 집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
2주간 내가 워크캠프를 하면서 주로 하였던 활동은 마을 아이들의 교육 및 놀이를 위하여
Green Class에 아이들의 벤치도 만들어주고 색바랜 미끄럼틀에 페인트칠도 해주고
또한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큰 공원에도 아이들을 위한 벤치를 만들어주고 덤불을 제거하는
활동등을 하였다. 마을의 환경보존을 위해 길거리에 버려져있는 쓰레기 수거활동도 하였다.
살면서 누군가를 위해 헌신적인 봉사를 해본적이 없었는데 우크라이나 마을 사람들을 위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적인 봉사를 하여서 내 자신이 뿌듯하였다.
다음으로 나의 워크캠프 동료들을 소개하자면 이탈리아에서 온 27살 남자 마르코, 이탈리아에서 온 25살 여자 조르쟈, 스페인에서 온 26살 여자 벨른, 스페인에서 온 20살 여자 미래이야, 폴란드에서 온 21살 남자 안드리아, 우크라이나 캠프리더 22살 여자 안나, 우크라이나 캠프리더 27살 여자 마리아나, 우크라이나 캠프원 26살 발라, 그리고 한국인 나까지 총 9명이었다. 다들 하나 같이 개성있고 정말 마음씨 착한 멤버들이었다.
더군다나 캠프리더였던 22살 안나가 너무나도 깜찍하고 이쁘게 생겨서 인기가 많았었는데
마음씨 또한 이쁘고 일도 잘하여서 나와 폴란드 동료 안드리아가 안나에게 호감을 가졌었지만 먼 이국에 산다는 한계로 인하여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진 못하고 좋은 친구사이로 남게 되었다. 좀만 가까운 나라에 살았어도 정말 나의 여자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했었다. 아쉽지만 인연이 된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고 난 믿고 있다.
그리고 멤버인 마르코와 조르쟈는 서로 연인 관계였다. 역시 개방적인 서구문화탓인지
스킨쉽과 사랑표현을 자주자주 하였고 남들의 시선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 둘이 난 너무도 아름답고 이쁘게 보였고 부러웠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온 20살 미래이야도 어린나이답게 톡톡 튀는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나를 정말 좋아해줘서 난 너무도 영광이었다. 나에게 스페인어인 puto(최고라는 뜻)과 내이름 진을 합쳐 포토진이라는 별칭을 붙여서 2주내내 포토진이라고 불러주었다. 가끔씩 나를 장난으로 때리고 귀찮게 할때도 있어서
힘든적도 있었지만 정말 귀엽고 마음씨 좋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동생이 되었다.
내가 영어회화를 잘하는편이 아니라 처음에 캠프 리더의 말과 동료들의 말을 잘 못알아들어서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그들은 짜증을 내지않고 오히려 나에게 더 큰 배려를 해주어
말을 천천히 해주고 적절한 바디랭귀지를 섞어 나의 이해를 정성껏 도와주었다.
나도 하루하루 갈 수록 다소 이해력이 늘게 되었고 회화실력도 증가하게 되었다. 정말
나를 많이 도와주었고 아껴준 그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워크캠프 종료날 헤어질때 마을 아이들은 울었다. 나 또한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아이들과 따뜻한 포옹을 한 후 헤어졌고 멤버들과도 뜨거운 포옹과 인사를 나눈후 헤어졌다. 난 정말 그 멤버들과 한번 더 워크캠프를 하고 싶고 정말로 워크캠프단체에 요청을 해 볼 생각이다. 너무나도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이기에 난 그들은 꼭 다시 만나고싶다.
간간히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할 때 마다 너무나도 반갑고 아직도 그들이 그립다.
워크캠프 가 끝난 후 나의 변화는 좀 더 마음에 여유가 생긴 듯 하고 사람을 좀 더 좋아하게 되었다. 각자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한 팀을 이뤄 한 뜻을 가지고 일을 했다는 것이 정말 뜻깊고 소중한 경험이었고 그 경험을 발판 삼아 내 주변인들을 좀 더 챙기고
아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즈음에는 좀 소홀했던 친구들과 주변인들에게 연락도 많이하여 친목 도모를 늘리고 있다. 그리고 봉사심이 좀 더 강해져서 앞으로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다. 그곳이 우리나라이든 해외든 간에 봉사하는 삶을 살 것 이라고 난 다짐하였다. 나의 워크캠프 친구들아 정말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안겨줘서 너무나도 고맙고 꼭 다시 만나서 우애를 다질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난 평생 내 워크캠프 친구들을 잊지 않을 것 이고 모두들 하는 일 잘되길 바라며 반드시 다시 만나자!!
사랑한다 나의 친구들!
모집한다는 공지사항을 본 후 관심이 생겨 지원하였는데 합격을 하여 참가하게 되었다.
예전부터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아 해외봉사활동을 해보고 싶었는데 시기 적절하게
국제워크캠프라는것을 알게되어 정말 좋은 경험을 하고 온 것 같다.
2주간 우크라이나에서 워크캠프활동을 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 몇가지
특별한 에피소드를 꼽자면 먼저 전세계 유명세를 탄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 덕분에
내가 더 우크라이나에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는데. 내가 간 곳은 정말 우크라이나에서도
Chkalovo라는 시골 작은 마을로 갔었는데 그 곳 아이들이 심심찮게 핸드폰에 저장된
싸이의 강남스타일 곡을 틀어놓고 노는 것을 보고 그 노래를 내가 따라 불렀더니
아이들이 싸이와 같은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하였더니 그럼 노래와 춤을 보여달라해서 말춤과 함께 노래를 불러줬더니 마을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것 이 었다.
그 이후 워크캠프 종료때까지 난 적어도 20번의 말춤을 추고 워크캠프를 종료하였다.
특히 마을 디스코장에 가서 신나는 댄스파티를 하고 오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곳의 DJ들이 나의 얼굴을 보더니 딱 한국인인줄 알아본건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틀어주는 것이었다. 난 디스코장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의 이목집중을 받은 채 강남스타일을 마을주민들과 추었다. DJ도 신이났는디 적어도 10분에 한번씩 강남스타일을 틀어줘서 난 2시간동안 적어도 6번의 말춤을 추고 댄스파티를 마칠 수 있었다.
또한 워크캠프 동료들과 우크라이나 마을 주민들이 내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서
내 이름의 끝글자인 진만 말해보라했더니 너무나도 편하게 진~ 이러면서 이름을 불러줘서
내 이름은 2주간 진이 되었다.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는데 우크라이나 시골마을에
한국인 가족이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워크캠프 종료3일전 난 기회가 되어 한국인 가족 집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 집에 사시는 할머니께서 연세가 80세셨는데 매우 어릴적엔 우즈베키스탄으로 이민을 온 후 20대에 우크라이나로 건너와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계신다고 하셨다. 워크캠프 멤버중에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는 한국인이 정말 그리웠었는데 할머니를 만나뵈어 너무나 반가웠었다. 역시 한국인의 피는 속일 수 없듯 한국말을 그래도 아직까지는
잘하시는 편이셨다. 비록 거의 한평생을 우크라이나에서 사셨기 때문에 한국말을 많이
잊어먹으셔서 다소 원만한 의사소통은 힘든편이었지만 대부분의 할머니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그 집에 사는 한국인 가족이 대략 10명정도 되었는데
아쉽게도 할머님 빼고는 한국말을 제대로 할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소 아쉬웠지만 그래도 한국인을 만나 너무나 반가웠고 할머니께서 아주 맛있는 한식도 차려주셔서 난 거의 2주만에 정말 그리웠던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아직도 그 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또한 워크캠프 종료전날 다시 한번 할머님 집에 방문하여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단체사진도 찍고 왔다. 훗날 난 기회가 된다면 그 집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
2주간 내가 워크캠프를 하면서 주로 하였던 활동은 마을 아이들의 교육 및 놀이를 위하여
Green Class에 아이들의 벤치도 만들어주고 색바랜 미끄럼틀에 페인트칠도 해주고
또한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큰 공원에도 아이들을 위한 벤치를 만들어주고 덤불을 제거하는
활동등을 하였다. 마을의 환경보존을 위해 길거리에 버려져있는 쓰레기 수거활동도 하였다.
살면서 누군가를 위해 헌신적인 봉사를 해본적이 없었는데 우크라이나 마을 사람들을 위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적인 봉사를 하여서 내 자신이 뿌듯하였다.
다음으로 나의 워크캠프 동료들을 소개하자면 이탈리아에서 온 27살 남자 마르코, 이탈리아에서 온 25살 여자 조르쟈, 스페인에서 온 26살 여자 벨른, 스페인에서 온 20살 여자 미래이야, 폴란드에서 온 21살 남자 안드리아, 우크라이나 캠프리더 22살 여자 안나, 우크라이나 캠프리더 27살 여자 마리아나, 우크라이나 캠프원 26살 발라, 그리고 한국인 나까지 총 9명이었다. 다들 하나 같이 개성있고 정말 마음씨 착한 멤버들이었다.
더군다나 캠프리더였던 22살 안나가 너무나도 깜찍하고 이쁘게 생겨서 인기가 많았었는데
마음씨 또한 이쁘고 일도 잘하여서 나와 폴란드 동료 안드리아가 안나에게 호감을 가졌었지만 먼 이국에 산다는 한계로 인하여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진 못하고 좋은 친구사이로 남게 되었다. 좀만 가까운 나라에 살았어도 정말 나의 여자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했었다. 아쉽지만 인연이 된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고 난 믿고 있다.
그리고 멤버인 마르코와 조르쟈는 서로 연인 관계였다. 역시 개방적인 서구문화탓인지
스킨쉽과 사랑표현을 자주자주 하였고 남들의 시선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 둘이 난 너무도 아름답고 이쁘게 보였고 부러웠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온 20살 미래이야도 어린나이답게 톡톡 튀는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나를 정말 좋아해줘서 난 너무도 영광이었다. 나에게 스페인어인 puto(최고라는 뜻)과 내이름 진을 합쳐 포토진이라는 별칭을 붙여서 2주내내 포토진이라고 불러주었다. 가끔씩 나를 장난으로 때리고 귀찮게 할때도 있어서
힘든적도 있었지만 정말 귀엽고 마음씨 좋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동생이 되었다.
내가 영어회화를 잘하는편이 아니라 처음에 캠프 리더의 말과 동료들의 말을 잘 못알아들어서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그들은 짜증을 내지않고 오히려 나에게 더 큰 배려를 해주어
말을 천천히 해주고 적절한 바디랭귀지를 섞어 나의 이해를 정성껏 도와주었다.
나도 하루하루 갈 수록 다소 이해력이 늘게 되었고 회화실력도 증가하게 되었다. 정말
나를 많이 도와주었고 아껴준 그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워크캠프 종료날 헤어질때 마을 아이들은 울었다. 나 또한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아이들과 따뜻한 포옹을 한 후 헤어졌고 멤버들과도 뜨거운 포옹과 인사를 나눈후 헤어졌다. 난 정말 그 멤버들과 한번 더 워크캠프를 하고 싶고 정말로 워크캠프단체에 요청을 해 볼 생각이다. 너무나도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이기에 난 그들은 꼭 다시 만나고싶다.
간간히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할 때 마다 너무나도 반갑고 아직도 그들이 그립다.
워크캠프 가 끝난 후 나의 변화는 좀 더 마음에 여유가 생긴 듯 하고 사람을 좀 더 좋아하게 되었다. 각자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한 팀을 이뤄 한 뜻을 가지고 일을 했다는 것이 정말 뜻깊고 소중한 경험이었고 그 경험을 발판 삼아 내 주변인들을 좀 더 챙기고
아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즈음에는 좀 소홀했던 친구들과 주변인들에게 연락도 많이하여 친목 도모를 늘리고 있다. 그리고 봉사심이 좀 더 강해져서 앞으로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다. 그곳이 우리나라이든 해외든 간에 봉사하는 삶을 살 것 이라고 난 다짐하였다. 나의 워크캠프 친구들아 정말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안겨줘서 너무나도 고맙고 꼭 다시 만나서 우애를 다질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난 평생 내 워크캠프 친구들을 잊지 않을 것 이고 모두들 하는 일 잘되길 바라며 반드시 다시 만나자!!
사랑한다 나의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