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리시케시, 나를 다시 쓰다 인도에서 발견한 진짜 나 계

작성자 김희경
인도 FSL-SPL- 212 · cult/kids 2013. 08 리시케시

Rishikesh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카페를 가도 음식점을 가도 제일 먼저 메뉴를 고르는 사람은 나였다. 친구들이 어디를 갈까 갈팡질팡하면 여기를 가자라고 정하는 사람도 나였다. 이걸 하자라고 마음 먹으면 해치워버리는 사람. 하지만 인도는 좀 달랐다. 인도에 가면 뭔가가 있을 것만 같고 인도에 가면 내가 뭔갈 발견할 것만 같아서 정말로 꼭 가야할 것 같은데 인터넷에서 올라오는 인도기사는 나로 하여금 한국에 계속 붙어있고만 싶게 만들었다.
가야할 것 같아서 지원은 했다. 자선단체에서 인턴을 하면서 주로 보고서를 번역, 혹은 번역 감수를 보는 일을 했는데 내가 문서를 통해 알게 된 일을 직접 보고 싶고 직접 하고 싶었다. 내가 학교를 세우고 우물을 건설하지는 못할지라도 아이들 옆에서 도와주고 놀아주고 같이 웃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지원했다. 하지만 나는 출발 4일전에야 느릿느릿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인도 비자도 급행으로 신청해서 추가금도 물었다. 말라리아 약을 처방 받으니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가기 일주일 전부터 먹어야하는 거라고 타박 받았다. 그리고 장티푸스 예방주사를 맞아서 인도 가는 날에야 처음으로 말라리아약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공항에서 울었다. 가이드북을 읽을 수록 너무나도 무서웠다. 함부로 웃어주지 말라, 무릎과 어깨를 드러내면 이상한 상상을 하며 너를 쳐다볼 것이다. 싫다. 나는 무섭다. 엄마는 엄마가 유럽여행비를 다 대줄테니 지금이라도 못 간다고 전화하라고 했다. 하지만 인도에 가긴 가야할 것 같아. 왠지도 모르면서 울면서 갔다.

싱가폴에서 인도까지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옆자리 아저씨가 캠프에 전화해줬다. 애가 곧 갈거니 기다려라. 버스 터미널에서 만난 남자애는 여자 전용 창구가 없으니까 여기 틈사구에 섞여 표를 사야하니 내가 너 것까지 사다줄게라고 말하며 리시케시로 가는 버스편까지 알아봐줬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남자애는 새벽 4시 반부터 릭샤 값이 내려가니까 나랑 같이 여기서 기다리자고 같이 기다려줬다. 인도는 멀쩡했다.

프랑스에서 온 친구들은 H 발음이 안되서 히키를 이키라고 불렀다. 같은 방을 쓰게 된 룸메이트 에밀리와는 자기 전 한 시간씩 있는 수다 없는 수다를 다 떨었다. 북한 얘기부터 프랑스 그래픽 노블 작가까지 우리는 밤마다 내일도 페인트칠을 해야하니 체력을 아껴야한다며 아쉬운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여자는 두 명씩 방 하나를 배정 받았지만 남자 여덟명에게는 방 두 개 만이 주어졌다. 세 명이 하나, 다섯 명이 하나. 다섯 명이 쓰는 방을 들어간 시우는 워크캠프에 오기 전 찾아본 참가경험담에서 읽은 멋진 말을 얘기해줬다. 지금도 눈을 감았다 뜨면 옆에 친구들이 자고 있을 것 같다라고 아이슬란드를 다녀온 사람이 썼다고 했다. 그래서 너는 나중에 눈 떴다 감으면 옆에 애들이 있을 것 같아? 라고 물어보니 몰라 애들이 밤에 안 씻고 아침에 씻어서 천장밖에 보고 잘 수가 없어라고 해서 웃다가 계단에서 떨어질 뻔 했다. 요가 선생님이 요가 어려운 동작을 보여주는 건 내가 너보다 우위에 있음이야라고 자랑하려는 것 같다고 그네 같던 의자에서 로저는 씨익 웃었다. 척추를 들어올리세요, 들어올려지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도 좋아요라는 요가 선생님 말에 정말로 가만히 있던 사람은 나 하나였다. 그래도 같은 아시아 대륙 사람인데 왜 머나먼 유럽 대륙 사람들보다 이렇게 요가를 못하지라고 슬퍼하자 캐롤은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웃으면서 어깨를 감싸줬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그렇게 잘하면 나는 주눅이 들어. 예전에 워크캠프에 참가했었는데 너무나 좋았다고 남동생 빅터까지 데리고 이번 캠프에 참가한 샬린은 빅터와 하나도 안 닮았다. 영국 록 음악이 최고라고 영국에 가서 살고 싶다던 니키는 다음 해에 영국 경제대학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는 라파엘을 무척 부러워했다. 나도 내년에 영국 갈지도 모르는데, 라고 했더니 페이스북 하냐고 우리 계속 연락해서 만나야겠다! 페이스북은 모두가 했다. 한국 프레젠테이션 시간에 북한 난민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던 휴고는 나중에 와서 평소에 프랑스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읽는데 거기서 궁금한 것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나는 휴고를 지성미남이라고 불렀다. 각 국 프레젠테이션 시간에 유럽 애들은 각자의 나라에 대해 어찌나 많이 아는지 쓸쓸히 입을 다물고 있어야하는게 너무나도 슬펐다. 돌아가면 유럽역사를 공부하고 유럽 언어를 하나 배워야지. 돌아가면 라파엘이랑 수다 떨었던 조지 오웰을 더 읽어봐야지. 돌아가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밝았다.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어봐서 하나하나 대답해주면 악수를 청했고 악수를 해주면 게임을 가르쳐주었다. 아홉살 열살 어린이들은 깔깔거리며 뛰어다녔고 좀 더 나이가 먹은 아이들은 눈을 데룩데룩 걸리며 쑥스러워 했다. 숙소에서 너무나도 공격적이던 원숭이들은 인도 환경파괴 문제 때문에 공격적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인도에서 신성히 여긴다는 소들도 거리에서 쓰레기를 뒤적거리며 살아갔다. 구걸을 하던 아이에게 끝끝내 돈 한 장 쥐어주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와 점심밥을 뒤적거리면서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이 옳은 걸까 생각했다. 페인트칠을 관심 있게 쳐다보던 아이에게 한 번 칠하게 해주자 뛸듯이 기뻐하고는 친구들에게 내달려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변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간다고 생각했다. 수시로 일어나는 정전에 멈춰버린 팬 아래서 부채질 하면서 짜증내다가 선선한 저녁에 강가강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그 날 하루를 반성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잘 대해줬는지, 잘 대해주는 것은 어떤 것인지. 단순히 학교 페인트를 다시 칠해주고 영어 단어 몇 마디를 가르쳐주는 것이 정말로 잘 해주는 것인지.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는지.

에밀리가 가르쳐준 불어로 서툴게 인사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야, 자기Ce la de byebye, mo cheri라고 하니 슬픈 와중에도 모두가 웃었다. 몇몇은 여행길을 같이 한다고 했다. 나도 여기서 만난 한국인 두 명과 여행을 같이하기로 결정했다. 페이스북 주소를 교환하고 다들 웃는 얼굴로 헤어졌다. 에밀리는 나에게 여기서 절대로 변하지 말라고, 있는 그대로의 너가 정말 좋다고 얘기해주었다. 나도 있는 그대로의 모두가 정말 좋았다. 있는 그대로의 인도가 정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