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작은 마을, 14개국 청춘들과 함께
Tourc'h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저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 Tourc'h로 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선진국인 프랑스에 무슨 봉사활동을 하러가느냐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 세계 최고 경제 강국인 미국에도 할렘가가 있고, 빈민가가 있듯이 세계 어느곳에 가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무너진 담을 다시 쌓고, 세계 2차대전 이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작은 다리와 숲길을 재정비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봉사자 인원은 총 14명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폴란드, 프랑스, 불가리아, 스페인, 대만, 터키 그리고 한국 등 다양한 국적의 봉사자들이 모였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부터 제 모험은 시작되었습니다.티켓팅하는 곳을 못찾아 1~3층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심지어 캐리어 바퀴까지 고장이나서 이동이 불편했습니다. 저렴하게 가기 위해서 직항이 아닌 중국 광저우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예매했었습니다. 경유하는 사람은 어느쪽에서 입국심사를 받아야 하는지 되지도 않는 영어를 해가며 찾아가고, 파리에 도착해선 화장실에 핸드폰을 두고 나왔다가 어느 나이 지긋하신 프랑스 할아버지께서 핸드폰도 찾아주시고.. 공항철도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고 TGV로 갈아타고 어렵고 어렵게 미팅포인트로 갔습니다. 순수 이동시간만 20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처음 이틀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과 생활하는데 필요한 규칙 그리고 각종 계획을 세우고 수정했습니다. 작업 시간은 어떻게 할지, 주말에는 어떤 활동을 할지, 요리팀과 청소팀도 정했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 오전 9시에 일을 시작해서 점심시간 없이 3시까지 쭉 일을하고, 3시에 점심식사를 하고, 7~8시에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가끔은 작업이 끝난뒤 가까운 근교나 바닷가에 놀러가 휴식을 취하고, 샌드위치로 저녁을 먹기도 했습니다. 주말에는 지역행사나 축제, 근교방문, 바닷가 등 여행을 다녔습니다. 인원이 14명이나 되었지만 저희 팀엔 벤이 2대가 있어서 어디든 쉽고 무료로 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추가비용이 들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사먹거나 기념품을 살 경우에만 지출을 했습니다.
작업은 사실 좀 힘들었습니다. 저는 무너진 담을 복원하는 작업을 주로 했는데 벽돌이 아닌 커다란 돌덩어리를 옮겨 쌓고 콘크리트로 마무리를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또한 단순히 쌓는 것이 아니라 앞뒤옆 수평과 높이가 맞아야하고, 크기가 맞는 돌덩어리를 찾거나 깎아야 했습니다. 조금은 전문성이 있어야 했기때문에 팀원중엔 단순히 봉사자가 아닌 이런 분야 전문가 한명 있었습니다. 그 분의 지도아래 3주동안 열심히 돌을 쌓았습니다.
작업이 끝나고 여가나 레저 시간을 가질 때는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가까운 바닷가에가서 물에 몸도 담그고 썬텐도 즐기기도 했습니다. 매번 다른 바닷가를 갔고 3주동안 10번 가까이 바닷가에 갔던 것 같습니다. 마을 각종 행사에 참석도 하고, 다른 도시에 가서 자유여행도하고, 국제음악축제에 참석에 다같이 노래에 맞춰 춤도 추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근처 바에가서 맥주를 마시기도 했고, 다같이 밤늦게까지 영화를 보기도 했습니다. 작업장 근처에 소농장에 가서 소 구경도 하고 방금 짜낸 우유를 시음해보기도 했습니다. 큰 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아이스크림이나 피자를 먹으러 다니기도 했고 정말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프랑스 유명한 여행지를 다닌 것과는 다르게 프랑스 속에 스며들어 정말 프랑스사람처럼 보고 느끼고 먹고 했습니다.
프랑스 날씨는 매우 습한 한국과는 조금 달라서 고온건조한 기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도가 높다고해서 꼭 더운 것이 아니라 바람만 살짝 불거나 그늘에 있으면 쾌적하고 시원했습니다. 아침과 저녁엔 쌀쌀해서 한국의 늦가을 수준이었습니다. 특히나 저희 숙소는 건물이 아닌 텐트에서 생활했기때문에 새벽엔 반얼어서 잠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해가 매우 늦게 져서 9시가 넘어서도 날이 밝았습니다. 덕분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봉사자들과는 정말 순식간에 친해졌습니다. 생각보다 잘 맞는 구석이 많고, 서로의 행동이나 문화에 매우 신기해하고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희는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했는데, 나라별로 영어 발음이 많이 상이했습니다. 서로의 발음을 따라하기도 하고, 서로 발음을 고쳐주기도 하고 매 순간이 새롭고 재미있었습니다. 다른 봉사자들 중에서도 저는 특히 이탈리아 친구랑 매우 친했는데, 서로 자신의 나라와 문화가 더 잘났고, 상대 나라는 매우 좋지 않다는 둥 말장난도 많이 치고, 탁구나 다른 운동도 자주 했습니다. 저는 다른 나라 친구들에게 한국을 알리기 위해 공기놀이세트와 반크로부터 받은 홍보물을 가지고 갔습니다. 다같이 둘러 앉아 공기 놀이도 하고, 홍보물을 보여주면서 설명도 해주고 했습니다. 제가 식사팀이 되면 항상 한식요리를 해주었고, 항상 고추장이 들어간 음식을 해줬습니다. 그래서 항상 친구들이 코리안 스파이시를 외쳤고, 한국의 물, 하늘, 공기 전부 빨간색일 거라면서 농담도 주고 받았습니다.
제가 있던 곳이 매우 작은 마을이고 외진 곳이었지만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저희 캠프에서는 안됐고, 2분정도 걸어가면 우체국이 있었는데 우체국 밖에서 나름 신호가 강한 와이파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전화와 문자는 가격이 조금 부담이 됐었기 때문에 일과가 끝난시간엔 우체국으로가서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곤 했습니다.
지역주민들과도 매우 친했습니다. 지역행사가 있으면 항상 초대해주시고, 맛있는 식사와 간식을 대접해주기도 했으며, 프랑스 인터넷 신문에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동네 꼬맹이들과도 매우 친해져서 사진도 많이 찍고 장난도 많이 쳤던 기억이 납니다. 현재 전부 페이스북 친구가 되어있고 가끔 메시지도 오곤 합니다. 헤어지는 날엔 가지말라고 울던 아이도 있었고, 다음달에 다시 올 수 있냐고 묻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짧은 3주였지만 많은 정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3주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의 따뜻한 정도 느낄 수 있었고,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함께 일하고 먹고 자면서 배려와 협력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서로의 말과 생각은 달랐지만 하나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처음 3주동안 이곳에서 어떻게 생활을 할까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어느 순간 3주가 다되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만날 장난치던 이탈리아 친구도 마지막 순간에는 진지해지는 모습을 보고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녀석과 가까웠구나라는.. 헤어지는 날 서로 껴안고 울기도하고, 먼저 기차를 타고 떠나는 친구를 따라 플랫폼을 뛰기도 했고 절대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가득했습니다. 저게 이런 값진 추억을 선사해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부터 제 모험은 시작되었습니다.티켓팅하는 곳을 못찾아 1~3층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심지어 캐리어 바퀴까지 고장이나서 이동이 불편했습니다. 저렴하게 가기 위해서 직항이 아닌 중국 광저우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예매했었습니다. 경유하는 사람은 어느쪽에서 입국심사를 받아야 하는지 되지도 않는 영어를 해가며 찾아가고, 파리에 도착해선 화장실에 핸드폰을 두고 나왔다가 어느 나이 지긋하신 프랑스 할아버지께서 핸드폰도 찾아주시고.. 공항철도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고 TGV로 갈아타고 어렵고 어렵게 미팅포인트로 갔습니다. 순수 이동시간만 20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처음 이틀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과 생활하는데 필요한 규칙 그리고 각종 계획을 세우고 수정했습니다. 작업 시간은 어떻게 할지, 주말에는 어떤 활동을 할지, 요리팀과 청소팀도 정했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 오전 9시에 일을 시작해서 점심시간 없이 3시까지 쭉 일을하고, 3시에 점심식사를 하고, 7~8시에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가끔은 작업이 끝난뒤 가까운 근교나 바닷가에 놀러가 휴식을 취하고, 샌드위치로 저녁을 먹기도 했습니다. 주말에는 지역행사나 축제, 근교방문, 바닷가 등 여행을 다녔습니다. 인원이 14명이나 되었지만 저희 팀엔 벤이 2대가 있어서 어디든 쉽고 무료로 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추가비용이 들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사먹거나 기념품을 살 경우에만 지출을 했습니다.
작업은 사실 좀 힘들었습니다. 저는 무너진 담을 복원하는 작업을 주로 했는데 벽돌이 아닌 커다란 돌덩어리를 옮겨 쌓고 콘크리트로 마무리를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또한 단순히 쌓는 것이 아니라 앞뒤옆 수평과 높이가 맞아야하고, 크기가 맞는 돌덩어리를 찾거나 깎아야 했습니다. 조금은 전문성이 있어야 했기때문에 팀원중엔 단순히 봉사자가 아닌 이런 분야 전문가 한명 있었습니다. 그 분의 지도아래 3주동안 열심히 돌을 쌓았습니다.
작업이 끝나고 여가나 레저 시간을 가질 때는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가까운 바닷가에가서 물에 몸도 담그고 썬텐도 즐기기도 했습니다. 매번 다른 바닷가를 갔고 3주동안 10번 가까이 바닷가에 갔던 것 같습니다. 마을 각종 행사에 참석도 하고, 다른 도시에 가서 자유여행도하고, 국제음악축제에 참석에 다같이 노래에 맞춰 춤도 추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근처 바에가서 맥주를 마시기도 했고, 다같이 밤늦게까지 영화를 보기도 했습니다. 작업장 근처에 소농장에 가서 소 구경도 하고 방금 짜낸 우유를 시음해보기도 했습니다. 큰 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아이스크림이나 피자를 먹으러 다니기도 했고 정말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프랑스 유명한 여행지를 다닌 것과는 다르게 프랑스 속에 스며들어 정말 프랑스사람처럼 보고 느끼고 먹고 했습니다.
프랑스 날씨는 매우 습한 한국과는 조금 달라서 고온건조한 기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도가 높다고해서 꼭 더운 것이 아니라 바람만 살짝 불거나 그늘에 있으면 쾌적하고 시원했습니다. 아침과 저녁엔 쌀쌀해서 한국의 늦가을 수준이었습니다. 특히나 저희 숙소는 건물이 아닌 텐트에서 생활했기때문에 새벽엔 반얼어서 잠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해가 매우 늦게 져서 9시가 넘어서도 날이 밝았습니다. 덕분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봉사자들과는 정말 순식간에 친해졌습니다. 생각보다 잘 맞는 구석이 많고, 서로의 행동이나 문화에 매우 신기해하고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희는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했는데, 나라별로 영어 발음이 많이 상이했습니다. 서로의 발음을 따라하기도 하고, 서로 발음을 고쳐주기도 하고 매 순간이 새롭고 재미있었습니다. 다른 봉사자들 중에서도 저는 특히 이탈리아 친구랑 매우 친했는데, 서로 자신의 나라와 문화가 더 잘났고, 상대 나라는 매우 좋지 않다는 둥 말장난도 많이 치고, 탁구나 다른 운동도 자주 했습니다. 저는 다른 나라 친구들에게 한국을 알리기 위해 공기놀이세트와 반크로부터 받은 홍보물을 가지고 갔습니다. 다같이 둘러 앉아 공기 놀이도 하고, 홍보물을 보여주면서 설명도 해주고 했습니다. 제가 식사팀이 되면 항상 한식요리를 해주었고, 항상 고추장이 들어간 음식을 해줬습니다. 그래서 항상 친구들이 코리안 스파이시를 외쳤고, 한국의 물, 하늘, 공기 전부 빨간색일 거라면서 농담도 주고 받았습니다.
제가 있던 곳이 매우 작은 마을이고 외진 곳이었지만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저희 캠프에서는 안됐고, 2분정도 걸어가면 우체국이 있었는데 우체국 밖에서 나름 신호가 강한 와이파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전화와 문자는 가격이 조금 부담이 됐었기 때문에 일과가 끝난시간엔 우체국으로가서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곤 했습니다.
지역주민들과도 매우 친했습니다. 지역행사가 있으면 항상 초대해주시고, 맛있는 식사와 간식을 대접해주기도 했으며, 프랑스 인터넷 신문에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동네 꼬맹이들과도 매우 친해져서 사진도 많이 찍고 장난도 많이 쳤던 기억이 납니다. 현재 전부 페이스북 친구가 되어있고 가끔 메시지도 오곤 합니다. 헤어지는 날엔 가지말라고 울던 아이도 있었고, 다음달에 다시 올 수 있냐고 묻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짧은 3주였지만 많은 정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3주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의 따뜻한 정도 느낄 수 있었고,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함께 일하고 먹고 자면서 배려와 협력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서로의 말과 생각은 달랐지만 하나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처음 3주동안 이곳에서 어떻게 생활을 할까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어느 순간 3주가 다되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만날 장난치던 이탈리아 친구도 마지막 순간에는 진지해지는 모습을 보고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녀석과 가까웠구나라는.. 헤어지는 날 서로 껴안고 울기도하고, 먼저 기차를 타고 떠나는 친구를 따라 플랫폼을 뛰기도 했고 절대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가득했습니다. 저게 이런 값진 추억을 선사해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