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편견을 깨러 간 첫 유럽
Château de Beyn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를 한 것은 단순히 유럽을 더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교환학생에 붙은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유럽으로 가서 온몸으로 체험하고 싶었다. 나는 확신했었다. 무슨일이 있던, 이 경험으로 인해 내가 성장해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선 유럽국가에서 가장 많은 퍼센트를 차지 하는 프랑스를 골랐다. 사실 프랑스에 대한 환상은 나에게 없었다. 그래도 고르고자 했던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같은 것을 깨고 싶었다. 강대국에 대한 편견들 말이다. 그런데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워크캠프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8월 말까지는 리투아니아로 돌아가야하는데, 거의 모든 봉사기간이 내가 참여하기에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항빠흐(rempart). 언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통할 수 있을 거야 라고 패기넘치게 생각했다.
한껏 기대에 부푼 첫 해외여행이었지만, 따가운 햇빛과 복잡한 길, 답답한 공기...그다지 좋진 않았다. 앞으로 함깨 하게 될 한국인 언니를 몽파르나스역에서 만나, 우리의 베이스가 될 벤느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패기에 넘쳐있었다. 언니가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았고 또 너는 좀 힘들것이라고 말했음에도 내 마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기차를 타고 바라본 벤느의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벤느역에 내려 음식담당이었던 일렌을 만났다. 첫인상, 이런 것은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 생각없이 차를 타고 우리가 앞으로 지내게 될 주민회관?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식사를 하고 우리가 잘 숙소는 더 멀리있다고 들었다. 숙소가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텐트에서 자지 않는 것이 어딘가. 하나 둘씩 멤버들이 도착하고 어색한 비즈로 인사를 하기도 했다. 비즈는 프랑스식 인사를 말한다. 얼마나 당황스럽던지...뭐 나중에 가서는 볼이 닿아가면서 인사하는 것이 더 좋았다. 아무튼 기술자인 야닉을 따라서 우리가 고칠 성을 보러갔다. 야닉은 우리가 앞으로 뭘 할것인지 간단히 설명하고 도구에 대한 것도 설명했다. 나는 물론 뭔말인지 몰랐지만, 언니가 설명을 해주었다. 그 이후의 기억은 거의 똑같은 것 같다. 물론 그때 쓴 일기장을 뒤져보면 뭐가 나오겠지만, 아마도 중요한 에피소드는 없었던 것 같다. 기억이 선명한 것은 여행, 휴식, 그리고 망치질한 것? 큰 에피소드라면 주민회관에 도둑이 든 것이었다. 누가 범인인지는 아직까지 모르지만,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앞에 내가 에피소드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고 한것은 내 기억 안에 좋았던 기억과 안좋았던 기억이 상쇄되어서 그런 것 같다.
그곳 생활은 내가 기대했던 것 만큼 환상적이진 않았다. 모든 친구들과 다 친하고 모든 것이 행복하고 그렇지 않았다. 언어가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언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바디랭귀지로 마음을 나누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패기넘쳤던 나의 생각은 사그라들었고, 앞으로 언어를 향한 나의 자세는 크게 바뀔 것 같다. 그럼에도 좋았던 기억은 그냥 같이 어울렸던 것이었다. 영어를 아예 모르는 아이들과는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게임은 같이 했다. 물론 말이 필요없는 게임으로... 또 영국에서 온 친구와는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주민회관에서 멀지 않은 호수 옆에 앉아, 혹은 누워서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나는 종종 외로움을 느낀다고, 언어가 나를 이렇게 외롭게 할줄 몰랐다고 말이다. 그 아이가 비록 고등학생이었지만, 워낙 속이 깊은 아이라 내가 하는 말을 진심으로 들어줬다. 그래서 아마 이 아이와의 대화가 나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줬던 것 같다. 너무 우울하게만 들리겠지만, 행복한 시간도 많았다. 앞서 말했듯이 힘들었던 만큼 행복했던 시간도 많았다.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여유로움과, 밤산책, 그리고 잔디에 눕기. 왜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나서 조용한 거리를 이유없이 걷거나, 잔디에 누워 여유를 즐기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워크캠프에서 했던 사소한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새로움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를 좀더 넓혀나간 기회가 되었다. 아쿠튼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다면 추천이다!
한껏 기대에 부푼 첫 해외여행이었지만, 따가운 햇빛과 복잡한 길, 답답한 공기...그다지 좋진 않았다. 앞으로 함깨 하게 될 한국인 언니를 몽파르나스역에서 만나, 우리의 베이스가 될 벤느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패기에 넘쳐있었다. 언니가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았고 또 너는 좀 힘들것이라고 말했음에도 내 마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기차를 타고 바라본 벤느의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벤느역에 내려 음식담당이었던 일렌을 만났다. 첫인상, 이런 것은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 생각없이 차를 타고 우리가 앞으로 지내게 될 주민회관?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식사를 하고 우리가 잘 숙소는 더 멀리있다고 들었다. 숙소가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텐트에서 자지 않는 것이 어딘가. 하나 둘씩 멤버들이 도착하고 어색한 비즈로 인사를 하기도 했다. 비즈는 프랑스식 인사를 말한다. 얼마나 당황스럽던지...뭐 나중에 가서는 볼이 닿아가면서 인사하는 것이 더 좋았다. 아무튼 기술자인 야닉을 따라서 우리가 고칠 성을 보러갔다. 야닉은 우리가 앞으로 뭘 할것인지 간단히 설명하고 도구에 대한 것도 설명했다. 나는 물론 뭔말인지 몰랐지만, 언니가 설명을 해주었다. 그 이후의 기억은 거의 똑같은 것 같다. 물론 그때 쓴 일기장을 뒤져보면 뭐가 나오겠지만, 아마도 중요한 에피소드는 없었던 것 같다. 기억이 선명한 것은 여행, 휴식, 그리고 망치질한 것? 큰 에피소드라면 주민회관에 도둑이 든 것이었다. 누가 범인인지는 아직까지 모르지만,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앞에 내가 에피소드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고 한것은 내 기억 안에 좋았던 기억과 안좋았던 기억이 상쇄되어서 그런 것 같다.
그곳 생활은 내가 기대했던 것 만큼 환상적이진 않았다. 모든 친구들과 다 친하고 모든 것이 행복하고 그렇지 않았다. 언어가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언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바디랭귀지로 마음을 나누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패기넘쳤던 나의 생각은 사그라들었고, 앞으로 언어를 향한 나의 자세는 크게 바뀔 것 같다. 그럼에도 좋았던 기억은 그냥 같이 어울렸던 것이었다. 영어를 아예 모르는 아이들과는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게임은 같이 했다. 물론 말이 필요없는 게임으로... 또 영국에서 온 친구와는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주민회관에서 멀지 않은 호수 옆에 앉아, 혹은 누워서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나는 종종 외로움을 느낀다고, 언어가 나를 이렇게 외롭게 할줄 몰랐다고 말이다. 그 아이가 비록 고등학생이었지만, 워낙 속이 깊은 아이라 내가 하는 말을 진심으로 들어줬다. 그래서 아마 이 아이와의 대화가 나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줬던 것 같다. 너무 우울하게만 들리겠지만, 행복한 시간도 많았다. 앞서 말했듯이 힘들었던 만큼 행복했던 시간도 많았다.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여유로움과, 밤산책, 그리고 잔디에 눕기. 왜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나서 조용한 거리를 이유없이 걷거나, 잔디에 누워 여유를 즐기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워크캠프에서 했던 사소한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새로움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를 좀더 넓혀나간 기회가 되었다. 아쿠튼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다면 추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