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세르비아, 잊지 못할 나의 시골집
ECO CAMP BORAC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너무너무 그립다.
세르비아, 타포니차의 시골학교가 나의 집이고 하루 빨리 돌아가 워크캠프의 일상을 다시 시작하고 싶을 정도이다. 비록 학교 바닥에서 자느라 아침마다 온몸이 쑤시긴 했지만 정말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아마 나에게 시간이 주어지면 세르비아와 동유럽여행을 갈 채비를 하는 나를 발견 할 것이다.
우리는 8월 10일에 만났다. 수도인 베오그라드에서 하루 묵고 아침 일찍 출발을 하였다. 첫날 밤에 공식적인 환영의 시간을 갖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인 일요일까지는 늦게오는 참가자들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불참자들을 제외하고는 스페인 2인방을 마지막으로 토요일까지는 모두 도착하였다. 워크캠프에는 나랑 룸메이트만이 아시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일본인여자가 한 명 오기로 하였었는데 오지 못하여서 아쉬웠었다.
어쨌거나 이렇게 시작한 우리의 캠프의 이름은 Eco fun camp 였다. 환경을 생각하며 재미있게 보내자는 뜻이다. 우리는 크라구예바츠에 부속한 동네의 시골학교와 이 학교의 분교를 청소하고 보수하는 작업을 맡았다. 주로 페인트칠을 벗겨내고 다시하는 일이 많았다. 분교에서 있을때는 세르비아 국영방송과 지역방송이 나와서 촬영을 하기도 하였는데 우리는 다음주에 우리의 모습을 TV를 통하여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졌었다. 아침을 먹고 일을 하다가 12시 뉴스에 길게 나오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일을 하는 도중 동네학교를 찾아온 학생들의 밝은 미소를 보며 일을 하는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한국에 빨리 가고 싶었다. 돈을 내도 느린 인터넷과 샤워 한 번 하기도 힘든 환경, 하지만 어느날인가 학교 앞마당에서 의자를 손질하는 작업을 하는데 주변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움을 느꼈었다. 아직도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나서는 마치 Toponica 의 시골학교는 집보다 더욱 포근함을 내게 선사해 주었고 동네 주민들 나아가 옆동네 사람들까지 친해질 수도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일에 할애하는 시간은 적었다. 하지만 단체로 숙식을 하기에 학교를 벗어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재미있는 일은 이런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동네 젊은이들이 자주 놀러왔었는데 그 중 동생이 한국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동생과 전화를 했었고 다음에는 저녁에 몇 번 찾아오기도 하였었다. 이렇게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있어 정말 보람차고 내가 또 해외로 나가도 어디를 가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 기분이 좋다. 지금도 여러 친구들과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워크캠프는 단순한 노동과 봉사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 같다. 처음 청년들끼리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교류의 장과 봉사의 정신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 같아 매우 흥분이 된다.
이제 유럽에서의 나날들을 일기에 옮겨봐야겠다. 아직도 흥미진진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하고 영원할 테니깐. 그리고 나의 인생을 보다 밝게 해주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한 여름 밤의 꿈을 넘어 인생의 값진 경험, 이어지는 경험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세르비아, 타포니차의 시골학교가 나의 집이고 하루 빨리 돌아가 워크캠프의 일상을 다시 시작하고 싶을 정도이다. 비록 학교 바닥에서 자느라 아침마다 온몸이 쑤시긴 했지만 정말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아마 나에게 시간이 주어지면 세르비아와 동유럽여행을 갈 채비를 하는 나를 발견 할 것이다.
우리는 8월 10일에 만났다. 수도인 베오그라드에서 하루 묵고 아침 일찍 출발을 하였다. 첫날 밤에 공식적인 환영의 시간을 갖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인 일요일까지는 늦게오는 참가자들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불참자들을 제외하고는 스페인 2인방을 마지막으로 토요일까지는 모두 도착하였다. 워크캠프에는 나랑 룸메이트만이 아시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일본인여자가 한 명 오기로 하였었는데 오지 못하여서 아쉬웠었다.
어쨌거나 이렇게 시작한 우리의 캠프의 이름은 Eco fun camp 였다. 환경을 생각하며 재미있게 보내자는 뜻이다. 우리는 크라구예바츠에 부속한 동네의 시골학교와 이 학교의 분교를 청소하고 보수하는 작업을 맡았다. 주로 페인트칠을 벗겨내고 다시하는 일이 많았다. 분교에서 있을때는 세르비아 국영방송과 지역방송이 나와서 촬영을 하기도 하였는데 우리는 다음주에 우리의 모습을 TV를 통하여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졌었다. 아침을 먹고 일을 하다가 12시 뉴스에 길게 나오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일을 하는 도중 동네학교를 찾아온 학생들의 밝은 미소를 보며 일을 하는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한국에 빨리 가고 싶었다. 돈을 내도 느린 인터넷과 샤워 한 번 하기도 힘든 환경, 하지만 어느날인가 학교 앞마당에서 의자를 손질하는 작업을 하는데 주변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움을 느꼈었다. 아직도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나서는 마치 Toponica 의 시골학교는 집보다 더욱 포근함을 내게 선사해 주었고 동네 주민들 나아가 옆동네 사람들까지 친해질 수도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일에 할애하는 시간은 적었다. 하지만 단체로 숙식을 하기에 학교를 벗어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재미있는 일은 이런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동네 젊은이들이 자주 놀러왔었는데 그 중 동생이 한국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동생과 전화를 했었고 다음에는 저녁에 몇 번 찾아오기도 하였었다. 이렇게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있어 정말 보람차고 내가 또 해외로 나가도 어디를 가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 기분이 좋다. 지금도 여러 친구들과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워크캠프는 단순한 노동과 봉사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 같다. 처음 청년들끼리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교류의 장과 봉사의 정신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 같아 매우 흥분이 된다.
이제 유럽에서의 나날들을 일기에 옮겨봐야겠다. 아직도 흥미진진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하고 영원할 테니깐. 그리고 나의 인생을 보다 밝게 해주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한 여름 밤의 꿈을 넘어 인생의 값진 경험, 이어지는 경험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