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프랑스 워크캠프
Tourc'h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 워크캠프를 지원하게 된 동기는 같이 교환학생으로 왔던 언니가 나에게 추천을 해서였다. 그리고 나의 교환학생 기간이 끝난 후 남은 두달을 한국으로 돌아와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워크캠프에 지원하게 되었다. 사실 워크캠프 1지망은 다른 곳이었다. 그런데 나느 2지망이 되었고, 걱정이 많았다. 가기 1주일 전부터 마음속으론 이미 수백번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가기 하루 전날, 이거는 나에게 커다란 내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파리 몽파르나스 역으로 출발했다. 도착을 한 후, 마을을 처음보고 놀랐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한국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낯선 사람들 3명이 나에게 다가와서 불어를 했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내가 계속 못알아 들었지만 계속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그리고 우리의 마을로 차를 타고 더 들어왔다. 사실 텐트 생활은 처음이었다. 텐트 생활이라고 해도 가족이랑 야영장에 가서 시설이 다 갖춰져 있는 그런곳이었다. 친구들이 다 도착한 후 세상에서 가장 민망한 자기소개시간이 돌아왔다. 공용어는 영어였다. 머리속으로 내 자기소개를 준비하다가 친구들 이름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처음에 민망한 하루가 지나가고, 그 다음날부터 자원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일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숲 속에 있는 오래된 다리를 치우는 것과 길을 만드는 것 이였고, 다른 하나는 기념비 앞에 무너진 담을 쌓는 것 이였다. 난 첫날에 숲 속으로 갔다. 정말 그 동안 한국에서 경험했던 다른 자원봉사와 다르다는 느낌이 와 닿았다. 숲 속에서 일을 하는데 우리 멤버는 4명이었다. 3명은 남자였고 1명은 나였다. 내가 100m를 제거하고 있을 때, 남자애들은 한 명 이서 나의 4배의 일을 했다. 난 계속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들은 나에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좀 천천히 하라고 계속 말해주었다.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서 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담 쌓는 곳으로 갔다. 돌을 옮기는데, 정말 ‘아 ! 다르구나 !’를 느꼈다. 일을 하는 동안 다치기도 했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물론 일을 한 게 재미있진 않았지만 그 일을 하는 동안 짧은 쉬는 시간은 우리에게 달콤한 꿀이었다. 그리고 일이 끝난 후에는 우리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거의 같이 15명이서 바다를 가거나 근처에 큰 도시를 갔는데 정말 관광객이라면 겪을 수도, 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경험이었다. 처음에 느낀 3주는 정말 내 유학생활 1년과 같이 느껴졌다. 영어는 어떻게 하지 ? 불어는 어떻게 하지 ? 애들이랑은 내가 어떻게 친해졌지 ? 이 친구들이 날 싫어하면 어쩌지 ? 하는 고민들이 많았지만, 3주간 지난 마지막 날에는 정말 말 한마디 한미디 할 때마다 눈물이 고였었다.
내가 기타를 칠 수 있는 친구에게 배우는 동안, 친구들이 한국노래에 관심을 가지고 나에게 배웠다. 마지막 날에 나이가 가장 많았던 친구(직업 선생님 나이33 ? 36 ?)가 우리가 한국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찍었고 그 영상을 토대로 비디오를 만들어 페이스 북이라는 SNS에 올렸다.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떠나는 날에, 친구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서 새벽 6시부터 일어나서 역으로 따라나갔다. 내가 떠나는 시간이 그리 늦진 않았지만 애들이 가는 모습을 보니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떠날 시간이 다가왔고, 애들과 헤어지면서 3주가 왜이리 짧냐며 불평을 했다. 기차를 탓고 눈물이 계속 흘렀다. 꼭 다시 유럽으로 오기로 하고 그 때 꼭 보기로 했다. 그리고 기차가 출발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생각이 많이 난다. 너무 보고싶다.
내가 기타를 칠 수 있는 친구에게 배우는 동안, 친구들이 한국노래에 관심을 가지고 나에게 배웠다. 마지막 날에 나이가 가장 많았던 친구(직업 선생님 나이33 ? 36 ?)가 우리가 한국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찍었고 그 영상을 토대로 비디오를 만들어 페이스 북이라는 SNS에 올렸다.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떠나는 날에, 친구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서 새벽 6시부터 일어나서 역으로 따라나갔다. 내가 떠나는 시간이 그리 늦진 않았지만 애들이 가는 모습을 보니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떠날 시간이 다가왔고, 애들과 헤어지면서 3주가 왜이리 짧냐며 불평을 했다. 기차를 탓고 눈물이 계속 흘렀다. 꼭 다시 유럽으로 오기로 하고 그 때 꼭 보기로 했다. 그리고 기차가 출발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생각이 많이 난다. 너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