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알레그르, 프랑스 작은 마을에서의 봉사 프랑스 알레그르
ALLEGR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사실 워크캠프 참가를 학교에서 지원해주었고, 학교에서 지원해주기 전에는 워크캠프란 기구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난 참가를 지원받고 프랑스로 해외봉사를 가게 되면서 워크캠프를 준비했다.
프랑스로 가는 워크캠프, 봉사활동이면서 나에게는 첫 유럽 여행이기에 무척이나 설렜다. 내가 봉사활동 하는 지역은 'Allegre'로 프랑스의 큰 도시들이 아닌 지방이었고 캠프에서 자며 봉사활동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들렸는데, 걱정도 되었지만 한편으로 사람들이 많이 여행하는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프랑스 주민들의 삶들을 체험할 수 있겠구나’라며 봉사활동이 기다려졌다. 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동안 봉사활동 리더에게서 인포싯이 도착해 있었다. 인포싯에는 내가 준비해야할 것을 알려주었다. 내가 꼭 가져가야할 것들과 이 지방에 오기 전의 날씨 등 조언들이 적혀있었다. 그 외에 'Allegre' 지방에 언제 도착할 것인지 작성해달라는 Confirmation Slip과 나의 건강상태를 알려줄 Medical Fact를 작성하라고 했는데 영어와 프랑스어로 된 메일을 처음 받고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져 작성하는데 조금은 골치를 먹었다. 워크캠프를 다녀온 후 생각해보면 인포싯에 적혀있는데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며 꼭 챙겨야할 물건들 그리고 시작하는 날과 끝나는 날에 추천하는 기차와 시간 알고 있으면 좋은 정보들이기 때문이다.
한 학기 학교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8월 1일! 종일 비행기만 갈아타고 리옹에 도착했다. 리옹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기차를 타긴 타야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 간다. 표지판을 따라서 기차가 있는 곳까지 왔고, 지방으로 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여쭤보았다. 프랑스인과의 첫 대화, 내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내 발음이 문제가 있는지 싶었는데 프랑스 억양이 독특해서 그렇다고 했다. Darsac으로 가야한다며 글씨를 써준 다음에야 알려주셨고, 무척 친절하게도 기차표까지 끊어주시고 기차 방향까지 알려주셨다. 너무나 고마웠다.
Darsac까지 가는 길, 친구와 나는 ‘한 고비를 넘겼다.’ 싶었다. Darsac에 오토버스를 타고 도착! 내려보니 아무것도 없다. 어쩐지 버스 안에 친구와 나 밖에 없다 싶었다. 정류장도 아니고 버스를 예약할 수도 없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몰랐다. 오토버스 아저씨께서 여기서 만나기로 한 것이 맞는지 물어보았고, 아저씨께서 다행히도 워크캠프 멤버를 알고 있어서 오토버스를 다시 운전하셨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아저씨께서는 우리가 봉사활동할 장소인 'Allegre' 마을로 가시는 것 같앗다. 가는 길에 산에 있는 마을이 있었는데 무척이나 멋있었고, 맨 위에 있는 망루, 성벽과도 같은 중세시대 풍의 건축물은 나와 친구로 하여금 ‘우와....!’ 감탄사가 나오게 했다. 도착해보니 바로 그 마을이 내가 봉사할 장소였다. 종일 비행기와 버스 교통편으로 몸은 지쳤지만 마음만은 얼른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고 워크캠프를 시작하고 싶었다. 몇 분후 차가 도착했고 그 안에서 외국인들이 나왔다. 밝은 웃음으로 우리를 맡아주는데 내 웃음은 어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 지 너무나도 어색했다. 키가 크며 곱슬머리에 눈동자는 진지하고 훤칠하게 생긴 활동 리더 ‘메튜(Matt)'와 조각같이 평면에다가 말할 때 차분히 말해주는 Concordia에서 온 '무니카(Monika)' 모두 우리를 반겨주었고 봉사활동 내내 주방으로 쓸 작은 건물의 학교로 갔다. 그 곳에는 또 다른 멤버들이 있었는데 40대처럼 안보이고 눈이 푸른색에다가 금발의 테크닉 리더인 ‘실뱅(Sivain)’와 워크캠프 멤버는 아닌데 메튜의 여자친구인 에밀릭이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에게 간식을 주었고, 멤버들은 주방의 안내판을 만들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는 새로운 멤버들이 왔다. 내 친구는 주방에서 요리를 도와주었고, 나는 새 멤버들을 반기러 Darsac에 있는 기차로 갔다. 오토버스를 타고 온 곳과는 다른 기차역이 있었는데 기차에서 새 멤버들을 맞이했다. 한국인 여자 2명과 프랑스인 남자 3명 여자 1명으로 한국인은 우리학교 학생이라 너무나 반가웠고, 프랑스인도 새 멤버로 인사를 하고 짐을 들어주었다. 내일은 독일인 1명이 온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프랑스인이 7명 한국인이 4명 독일인이 1명으로 예정대로였던 프랑스인 4명 독일인 4명 한국인 4명이 아니었다. 많이 아쉬웠다. 프랑스에서 워크캠프를 하면서 다국적으로 알아보고 싶었는데 왠지 프랑스인들만 많아서 프랑스어를 많이 쓰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멤버들과 함께 주방으로 갔고, 거기서 저녁을 함께 했다. 어색어색한 저녁식사였지만, 모두 봉사활동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았다. 밤이 되어 우리는 캠프장으로 갔고 먼저 왔던 나와 재만이가 캠프를 정리해두었기 때문에 오래 짐정리할 필요 없이 텐트를 사용할 수 있었다.
-중략-
우리 워크캠프 일과는 이러했다. 아침 8시에 출발해 일터로 가서 11시 반까지 일했고 '쉐라포즈' 휴식시간을 가졌다. 그 후에는 다시 일터로 향했고 그 날 점심 저녁 당번인 사람들은 쉐라포즈 후 점심을 준비했다. 날마다 3명씩 당번을 정했는데 매번 정할때마다 곂치는 일이 많지 않도록 했고, 당번을 정하는 날에는 요리메뉴를 적고 레시피를 적어서 마트로 향했다. 돈을 지원받기 때문에 적당한 가격 선에서 레시피를 정했고, 한국에 있는 간장이나 채소를 구할 수 없어 매번 레시피를 생각해 내기가 어려웠는데 요리 하는 것도 워크캠프 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프랑스 요리도 배웠고 없는 재료들로 새로운 요리들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꽃을 꺾어서 화병에 놓고 냅킨으로 데코레이션을 한 뒤 일이 끝난 멤버들을 기다리는 것도 즐거웠고, 멤버들의 기쁜 표정을 보는 것도 좋았다. 1주가 지나도 적응되지 않던 프랑스 음식은 2주가 되어서는 줄곧 잘 먹을 수 있었고, 한국에 온 지금은 치즈와 버터를 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주중 2시까지는 일을 하면서 2시 이후에는 호수를 가거나 마을 축제를 가는 경험들을 했다. 양이 유명한 이 동네에서는 양치기가 양을 몰고 가는 것과 란마 낙타를 볼 수 있었고 마을 축제에서 춤도 같이 춰볼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인심이 후해서 봉사활동하는 우리를 보면 밝게 인사도 해주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한 번은 시장님이 있는 곳으로 가서 시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뷔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우리를 귀중한 손님으로 여겨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주말에는 뮤직페스티벌을 갈 때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다른 워크캠프 멤버들을 도와주면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왜 워크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는지, 무슨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한국인을 만나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왕 유럽여행 하는데 더 의미있는 경험을 하고 싶었고, 뮤직페스티벌을 준비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했다. 뮤직 페스티벌을 가서 '와 정말 창의적이다'라고 감탄할 정도로 페스티벌에 재미있는 문구나 포스터들이 있었는데 모두 이 분과 멤버들이 만들었던 것이었다.
뮤직페스티벌 밤에는 같이 야외 콘서트장에서 콘서트를 즐겼다. 멤버들과 함께 콘서트를 듣고 한국에 와서 다시 찾아볼만큼 좋아하게 된 밴드도 생겼다.
이 외에도 21일간의 워크캠프 기간 중 재미있었던 일이 많다. 동네 축구팀과 축구를 붙기도 하고 마지막 날에는 바베큐파티와 롤링페이퍼를 쓰는 시간도 있었다. 일들은 언제나 목표를 두고 진전해나갔고 동네 사람들은 지금까지 봐왔던 계단 중에 가장 이쁘다고 하셨다. 너무 뿌듯했다.
특히 마지막 날에 있었던 외국인 친구들과의 롤링페이퍼 시간은 너무나 아쉬웠다. 외국인 친구들과 많이 친해졌고, 21일간 고생도 같이 했기 때문에 마지막 말을 적는데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페이스북도 공유하고 메일도 공유해서 지금와서는 같이 연락도 한다. 이 워크캠프 기간 중 깨달았던 것은 나라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을 봐야지 어떤 나라는 이렇다 어떤 나라는 이렇다 편견을 두고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프랑스인이 대다수였지만 모두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앞으로도 인생을 지내면서 외국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을텐데 나는 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만을 볼 것이지 나라는 염두해 두지 않을 것이다.
다시 기회가 있으면 'Allegre'로 가서 친해졌던 마을 사람들도 보고 내가 만든 계단도 보고 싶다.
프랑스로 가는 워크캠프, 봉사활동이면서 나에게는 첫 유럽 여행이기에 무척이나 설렜다. 내가 봉사활동 하는 지역은 'Allegre'로 프랑스의 큰 도시들이 아닌 지방이었고 캠프에서 자며 봉사활동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들렸는데, 걱정도 되었지만 한편으로 사람들이 많이 여행하는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프랑스 주민들의 삶들을 체험할 수 있겠구나’라며 봉사활동이 기다려졌다. 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동안 봉사활동 리더에게서 인포싯이 도착해 있었다. 인포싯에는 내가 준비해야할 것을 알려주었다. 내가 꼭 가져가야할 것들과 이 지방에 오기 전의 날씨 등 조언들이 적혀있었다. 그 외에 'Allegre' 지방에 언제 도착할 것인지 작성해달라는 Confirmation Slip과 나의 건강상태를 알려줄 Medical Fact를 작성하라고 했는데 영어와 프랑스어로 된 메일을 처음 받고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져 작성하는데 조금은 골치를 먹었다. 워크캠프를 다녀온 후 생각해보면 인포싯에 적혀있는데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며 꼭 챙겨야할 물건들 그리고 시작하는 날과 끝나는 날에 추천하는 기차와 시간 알고 있으면 좋은 정보들이기 때문이다.
한 학기 학교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8월 1일! 종일 비행기만 갈아타고 리옹에 도착했다. 리옹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기차를 타긴 타야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 간다. 표지판을 따라서 기차가 있는 곳까지 왔고, 지방으로 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여쭤보았다. 프랑스인과의 첫 대화, 내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내 발음이 문제가 있는지 싶었는데 프랑스 억양이 독특해서 그렇다고 했다. Darsac으로 가야한다며 글씨를 써준 다음에야 알려주셨고, 무척 친절하게도 기차표까지 끊어주시고 기차 방향까지 알려주셨다. 너무나 고마웠다.
Darsac까지 가는 길, 친구와 나는 ‘한 고비를 넘겼다.’ 싶었다. Darsac에 오토버스를 타고 도착! 내려보니 아무것도 없다. 어쩐지 버스 안에 친구와 나 밖에 없다 싶었다. 정류장도 아니고 버스를 예약할 수도 없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몰랐다. 오토버스 아저씨께서 여기서 만나기로 한 것이 맞는지 물어보았고, 아저씨께서 다행히도 워크캠프 멤버를 알고 있어서 오토버스를 다시 운전하셨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아저씨께서는 우리가 봉사활동할 장소인 'Allegre' 마을로 가시는 것 같앗다. 가는 길에 산에 있는 마을이 있었는데 무척이나 멋있었고, 맨 위에 있는 망루, 성벽과도 같은 중세시대 풍의 건축물은 나와 친구로 하여금 ‘우와....!’ 감탄사가 나오게 했다. 도착해보니 바로 그 마을이 내가 봉사할 장소였다. 종일 비행기와 버스 교통편으로 몸은 지쳤지만 마음만은 얼른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고 워크캠프를 시작하고 싶었다. 몇 분후 차가 도착했고 그 안에서 외국인들이 나왔다. 밝은 웃음으로 우리를 맡아주는데 내 웃음은 어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 지 너무나도 어색했다. 키가 크며 곱슬머리에 눈동자는 진지하고 훤칠하게 생긴 활동 리더 ‘메튜(Matt)'와 조각같이 평면에다가 말할 때 차분히 말해주는 Concordia에서 온 '무니카(Monika)' 모두 우리를 반겨주었고 봉사활동 내내 주방으로 쓸 작은 건물의 학교로 갔다. 그 곳에는 또 다른 멤버들이 있었는데 40대처럼 안보이고 눈이 푸른색에다가 금발의 테크닉 리더인 ‘실뱅(Sivain)’와 워크캠프 멤버는 아닌데 메튜의 여자친구인 에밀릭이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에게 간식을 주었고, 멤버들은 주방의 안내판을 만들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는 새로운 멤버들이 왔다. 내 친구는 주방에서 요리를 도와주었고, 나는 새 멤버들을 반기러 Darsac에 있는 기차로 갔다. 오토버스를 타고 온 곳과는 다른 기차역이 있었는데 기차에서 새 멤버들을 맞이했다. 한국인 여자 2명과 프랑스인 남자 3명 여자 1명으로 한국인은 우리학교 학생이라 너무나 반가웠고, 프랑스인도 새 멤버로 인사를 하고 짐을 들어주었다. 내일은 독일인 1명이 온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프랑스인이 7명 한국인이 4명 독일인이 1명으로 예정대로였던 프랑스인 4명 독일인 4명 한국인 4명이 아니었다. 많이 아쉬웠다. 프랑스에서 워크캠프를 하면서 다국적으로 알아보고 싶었는데 왠지 프랑스인들만 많아서 프랑스어를 많이 쓰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멤버들과 함께 주방으로 갔고, 거기서 저녁을 함께 했다. 어색어색한 저녁식사였지만, 모두 봉사활동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았다. 밤이 되어 우리는 캠프장으로 갔고 먼저 왔던 나와 재만이가 캠프를 정리해두었기 때문에 오래 짐정리할 필요 없이 텐트를 사용할 수 있었다.
-중략-
우리 워크캠프 일과는 이러했다. 아침 8시에 출발해 일터로 가서 11시 반까지 일했고 '쉐라포즈' 휴식시간을 가졌다. 그 후에는 다시 일터로 향했고 그 날 점심 저녁 당번인 사람들은 쉐라포즈 후 점심을 준비했다. 날마다 3명씩 당번을 정했는데 매번 정할때마다 곂치는 일이 많지 않도록 했고, 당번을 정하는 날에는 요리메뉴를 적고 레시피를 적어서 마트로 향했다. 돈을 지원받기 때문에 적당한 가격 선에서 레시피를 정했고, 한국에 있는 간장이나 채소를 구할 수 없어 매번 레시피를 생각해 내기가 어려웠는데 요리 하는 것도 워크캠프 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프랑스 요리도 배웠고 없는 재료들로 새로운 요리들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꽃을 꺾어서 화병에 놓고 냅킨으로 데코레이션을 한 뒤 일이 끝난 멤버들을 기다리는 것도 즐거웠고, 멤버들의 기쁜 표정을 보는 것도 좋았다. 1주가 지나도 적응되지 않던 프랑스 음식은 2주가 되어서는 줄곧 잘 먹을 수 있었고, 한국에 온 지금은 치즈와 버터를 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주중 2시까지는 일을 하면서 2시 이후에는 호수를 가거나 마을 축제를 가는 경험들을 했다. 양이 유명한 이 동네에서는 양치기가 양을 몰고 가는 것과 란마 낙타를 볼 수 있었고 마을 축제에서 춤도 같이 춰볼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인심이 후해서 봉사활동하는 우리를 보면 밝게 인사도 해주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한 번은 시장님이 있는 곳으로 가서 시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뷔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우리를 귀중한 손님으로 여겨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주말에는 뮤직페스티벌을 갈 때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다른 워크캠프 멤버들을 도와주면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왜 워크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는지, 무슨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한국인을 만나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왕 유럽여행 하는데 더 의미있는 경험을 하고 싶었고, 뮤직페스티벌을 준비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했다. 뮤직 페스티벌을 가서 '와 정말 창의적이다'라고 감탄할 정도로 페스티벌에 재미있는 문구나 포스터들이 있었는데 모두 이 분과 멤버들이 만들었던 것이었다.
뮤직페스티벌 밤에는 같이 야외 콘서트장에서 콘서트를 즐겼다. 멤버들과 함께 콘서트를 듣고 한국에 와서 다시 찾아볼만큼 좋아하게 된 밴드도 생겼다.
이 외에도 21일간의 워크캠프 기간 중 재미있었던 일이 많다. 동네 축구팀과 축구를 붙기도 하고 마지막 날에는 바베큐파티와 롤링페이퍼를 쓰는 시간도 있었다. 일들은 언제나 목표를 두고 진전해나갔고 동네 사람들은 지금까지 봐왔던 계단 중에 가장 이쁘다고 하셨다. 너무 뿌듯했다.
특히 마지막 날에 있었던 외국인 친구들과의 롤링페이퍼 시간은 너무나 아쉬웠다. 외국인 친구들과 많이 친해졌고, 21일간 고생도 같이 했기 때문에 마지막 말을 적는데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페이스북도 공유하고 메일도 공유해서 지금와서는 같이 연락도 한다. 이 워크캠프 기간 중 깨달았던 것은 나라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을 봐야지 어떤 나라는 이렇다 어떤 나라는 이렇다 편견을 두고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프랑스인이 대다수였지만 모두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앞으로도 인생을 지내면서 외국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을텐데 나는 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만을 볼 것이지 나라는 염두해 두지 않을 것이다.
다시 기회가 있으면 'Allegre'로 가서 친해졌던 마을 사람들도 보고 내가 만든 계단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