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잊고 지낸 꿈을 찾아서

작성자 최상아
프랑스 JR13/302 · RENO 2013. 08 Puy-L'eveque

PUY L'EVEQU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로 불어를 선택한 이후로, 나에게는 프랑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생겼다. 불어를 배우는 1년동안 간단한 인사나 숫자, 알파벳 정도를 익힌 것이 고작이었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프랑스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따뜻한 에스프레소로 하루를 시작하고, 거리에는 샹숑이 흐르고,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 하지만 대학교에 진학하고 여러가지 일에 치여 프랑스를 잊고 지냈는데, 우연히 학교 공고란에 뜬 워크캠프 참가자 선발 공고문을 보게 되었다. 평소 봉사활동을 좋아하여 교내 봉사동아리에 몸담고 있는 터라 다른 건 다 부족해도 봉사시간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봉사시간 실적으로만 선발한다고 하니 나에게 이보다 적합한 선발기준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인부담비용이 생각보다 커서 부모님께 손벌리기 죄송하여 고민하고 있던 차에, 작년에 휴학하고 일하며 모아둔, 목적지 없는 500만원이 생각났다. 또한 4학년 1학기라 마음의 부담도 있던 차에 잠시나마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일거라 생각했다. 말하자면 프랑스에 대한 동경+내가 원래 좋아하는 봉사활동+선발기준+금전적 부담 해결+유럽여행은 덤인 나를 위한 워크캠프였던 것이다!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이건 운명이다! 어떤 일을 해도 좋으니 프랑스에만 꼭 떨겨달라고 애원하는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바깥온도가 40도를 육박하는, 불같았던 8일간의 이탈리아 여행과 그 불을 식혀주었던 5일간의 니스 여행, 워크캠프 지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툴루즈에서의 하루를 거쳐 나의 워크캠프 지역인 'Puy-L'eveque(이하 퓌 레베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퓌 레베크는 니스에서 툴루즈로 가는 저가항공을 탄 후 툴루즈에서 열차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꺄오흐라는 도시를 거쳐 그곳에서 또 1시간 가량 버스를 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인정하는 대단한 길치인 나는 길을 잃을것을 대비하여 모든 이동시간을 앞뒤로 2시간 정도 넉넉하게 잡고 이동했다. 이동 경로는 유럽여행 인터넷카페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치만 미팅포인트는 퓌 레베크 버스정류장이었고 리더였던 오리언이 5시 버스를 타면 내릴 때 버스정류장에 있겠다고 했기 때문에 미팅포인트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꺄오흐에 미리 도착하여 퓌 레베크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차역에서 3시간 정도 기다리는 동안, 내 옆에는 주황색 백팩을 메고 빨간 캐리어를 끌고다니는 한 여학생이 앉았다. 그 여학생은 키위를 몇 개 파먹더니 이내 어디로 사라졌는데, 조금 뒤에 버스를 타기 위해 나가보니 그 여학생이 버스 정류장쪽에 앉아있었다. 역시나 같은 버스를 탔고, 그 키위소녀는 타자마자 나에게 혹시 워크캠프에 참가하냐며 말을 걸어왔다. 그 키위소녀는 얼굴도 예쁘고 이름마저 백합을 닮은 독일소녀 릴리. 그녀는 나의 룸메이트이자 나의 베스트프렌드가 되었다.


도착하니 프랑스 소녀 오리언과 캐나다에서 왔지만 퀘백 지역에 살아서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애나벨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들은 리더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탔던 버스에는 나와 릴리를 포함하여 러시아에서 온 큰 태호, 작은 태호, 폴란드에서 온 얀이 타고 있었다. 그렇게 만난 우리는 총 7명. 그 날 퓌 레베크로 도착하는 막차가 한대 더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방을 정하고 짐을 풀며 기다렸고, 릴리와 나는 2층침대가 2개 있는 4인실에서 1층 침대 하나씩을 각각 맡았다. 막차 도착시간이 되자 터키에서 온 오스게와 셀린, 한국에서 온 태경이가 왔다. 태경이는 내가 버스 타기 전부터 역에서 봤는데 버스를 안 타길래 '워크캠프 참가자는 아닌가보다' 하고 지나쳤었다. 알고보니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몰라 역에서 무작정 기다렸다고 했다. 아는 척이라도 해 줄걸.. 무진장 후회를 했다. 태경이는 내 침대 2층에 짐을 풀었다. 참가자 리스트에는 일본 여학생과 스페니쉬 걸 2명이 더 있었는데, 일본 여학생은 끝내 오지 않았고 스페니쉬 걸들은 이틀 뒤인 화요일에 도착한다고 했다. 일단 우리는 먼저 오리언과 애나벨이 차려주는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고 청소당번과 식사당번을 정하는 게임을 했다. 식사당번과 청소당번은 월~금 아침 7시 반부터 12시 반까지 하는 봉사활동은 안하는 대신 숙소 내 청소와 그 날 먹을 음식을 모두 만들었다. 하루에 2명씩 짝지어서 모두가 일을 간 사이에 청소하고, 12인분의 음식을 준비하면 되는 것이었다. 화요일이 되어서 스페인 소녀들, 노에미와 클라우디아가 도착했다. 워크캠프 시작 3일차, 우리 열두명이 모두 만났다.

일요일 저녁에 도착해서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우리는 무너진 담벼락을 새로 짓는 일을 하게 되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식사 당번들이 해주는 아침을 먹고 7시 반부터 12시 반까지 일을 했다. 71살 이봉 할아버지 지휘에 따라 먼저 담벼락 뒤쪽에 벽돌을 쌓고 그 앞에 예쁜 돌을 쌓는 식으로 진행했다. 인포싯에 강인한 체력을 요구한다고는 써있었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다. 무거운 돌도 번쩍번쩍 들어야 하고 날라야 하고..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라서 처음 며칠은 너무 힘들었다. 시간이 안 가는 것 같고 몸이 부서지는 것 같고.. 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니 역시 나는 적응의 여왕! 건설업에 종사하시는 아버지의 딸! 조금 느리고 어설프지만 척척 해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영어를 진짜 못한다. 듣기는 조금 되는데 말하기가 더 문제였다. 이런 나를 내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자신감 또한 없었다. 그래서 상당히 걱정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 참가자 중에는 영어권 지역에 사는 친구가 없었다. 나는 첫 자기소개를 할 때 내가 영어를 매우 못하니 너희들의 관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을까? 영어가 다들 세컨 랭귀지일텐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잘했다.. 그치만 다들 내가 말하려는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단어만 말해도 내 마음을 척척 알아주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속된 말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었다. 특히 내 룸메 중 한명인 독일소녀 릴리가 그랬는데, 릴리는 다 알아들어 주고 기다려 주고 해서 특히 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릴리는 이번이 2번째 워크캠프였는데, 전에 보았던 한국 아이들은 영어를 못해서 거의 혼자 조용히 지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못해!" 이러면서 슬퍼하자 그래도 너는 try하지 않냐고 그렇게 좋게 말해주었다. 솔직히 나도 영어에 너무 자신없어서 '그냥 혼자 3주동안 조용히 지내가 올까..' 잠시나마 이렇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또다른 룸메였던 태경이는 영어를 잘하고 서로 요리 당번일때마다 같이 도와주면서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다들 친해졌지만 아무래도 영어가 부족하다 보니 의지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이 한국친구였던 것 같다. 러시아에서 온 큰 태호와 작은 태호! 둘다 술 담배를 엄청 좋아하던 게 기억에 남는다. 아무래도 우리가 했던 일이 체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보니 두 청년의 활약이 대단했다. 내가 무거운 돌이라도 들라치면 어디서 달려왔는지 "상아, 노!" 하면서 내 돌을 뺏어가고 심지어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까지 했다. 어느 날은 큰 태호와 무거운 돌을 들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해야 했다. 반면에 또다른 폴란드 청년 얀은 비건이라서 그런지 빼빼 마른 친구였다. 말수도 적고 맨날 방에서 책만 읽는 친구여서 '저 친구는 어떤 친구일까?' 궁금했는데 속은 무지 따뜻한 친구였다. 평소엔 가만히 있다가 평소에 안경쓰던 태경이가 놀러가서 안경을 벗었는데 안경 어디갔냐고, 잃어버렸냐고 챙겨주고 야외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서는 자기가 키가 커서 뒷사람들이 스크린을 못볼수도 있다며 바깥쪽 자리를 자청하던 마음따뜻한 청년.. 터키소녀들 오스게와 셀린은 앙카라 대학교에 의대를 다니는 엘리트 소녀들이었다.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못하는게 없는 친구들! 친구들이 감기에 걸리면 꿀을 넣고 따뜻하게 끓인 우유를 준비해주었다. 그리고 종교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아 항상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얀도 그렇고 터키 소녀들도 그렇고 이렇게 식습관이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난 것은 처음이라 낯설었지만 금방 적응해서 고기가 들어가는 식사가 있을 땐 얀 것을 따로 준비해주었고, 함께 지내는 동안 돼지고기는 삼갔다. 리더가 두 명이었지만 대부분의 리더 역할은 오리언이 혼자 다 했다. 오리언은 똑부러지고 이성적인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워크캠프가 끝나고 파리 여행 계획이 있었는데, 그걸 알고는 파리 안내를 자청했다. 그래서 워크캠프가 끝나고 바로 다음날 오리언과 파리 곳곳을 돌아다니고 오리언이 마카롱도 사주었다! 그리고 내가 졸라서 오리언이 다닌다는 대학을 갔는데.. 그곳은 바로 프랑스 최고의 대학인 소르본 대학! 너 진짜 똑똑하구나! 무한 칭찬을 하니까 도도하게 "Thank you!" 대답하던 오리언의 모습이 예뻐보였다. 리더 역할을 하기보다는 우리랑 더 자연스럽게 어울렸던 캐나다 소녀 애나벨은 일도 잘하고 애교도 많고 표현도 많은 예쁜 친구였다. 7년 사귄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는데 그럴 만큼 사랑스러운 친구였다. 가장 늦게 도착한 스페니쉬 걸들은 참 흥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고 노래를 틀어놓고 흥겹게 지냈다. 특히 클라우디아는 너무 귀여웠다. 아침에 일가기 싫다고 하니까 우리 화장실에 숨어있으면 안갈 수 있다며 귀여운 작전을 함께 짜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귀여워!' 라는 발음을 정말 열심히 가르쳤다. 진짜 정말 귀여웠으니..


오전중에 일을 하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다 우리들 것이였다. 보통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잔 후 오후에는 이곳 주민인 데니스를 따라 동네 산책을 하거나 기숙사 마당에서 공놀이도 하고, 동네 주민들과 파티를 하기도 했고 첫째주 주말에는 또다른 네이티브인 페비앙네 집에 가서 그의 친구들과 파티를 했다. 그밖에도 강가에 놀러가기도 하고 많은 여가시간을 보냈다. 마침 퓌 레베크가 축제 기간이라서 우리들에겐 큰 축복이었다. 와인 축제에 가서 와인 시음도 하고 셀린과 릴리가 와인증정이벤트에 당첨되서 각각 5병씩 무려 우리들에게 10병의 와인이 생겼다! 그 와인은 야금야금 심심할때 한병씩 맛보게 되었고 워크캠프가 끝나기 전날 이봉네 집에 초대받았을 때 선물로 들고가기도 했다. 우리가 살던 기숙사 마당에서 연극이 펼쳐져 연극 구경도 했고, 시청 앞에서 상영해주는 영화도 보고, 동네 pub도 갔었고 콘서트 하는 날에는 열두명 모두 어깨동무하고 들고 뛰며 놀았고, 데니스네 집에 놀러가서 그 근처에서 바베큐 파티도 열었다. 축제 기간이라 불꽃 축제도 했는데 그걸 보려면 8유로라는 거금을 낸다고 해서 슬퍼하던 중, 우리가 낮에 일을 도와주면 밤에 무료로 축제를 볼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낮에 열심히 일하고 너무너무 예쁜 불꽃도 볼 수 있었다. 또 축제기간에 열린 자전거 대회에서 시상식때 우승자에게 꽃을 전해주는 영광도 누렸다. 이렇게 글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게 안타까울 만큼 너무 꿈같고 재밌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같이 일가고 쉬고 놀고 다같이 모여서 laptop으로 영화도 보고.. 퓌 레베크에 있는 동안 가끔은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한 적도 있을 만큼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워크캠프 끝나기 전부터 중간중간 계속 눈물을 보였다. 창피하지만.. 그만큼 좋았다. 원체 애교가 많고 챙겨주길 좋아하는 성격이라 친구들은 항상 나에게 sweet하다는 말을 붙여주었다. 헤어지기 전날 서로에게 써주었던 롤링페이퍼에는 온 지구에서 가장 스윗하고 행복해보이는, 항상 웃는 얼굴인 상아라는 이야기가 가득했다. 마지막날 밤 우리는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술도 못먹고, 그렇다고 잠들지도 못하는.. 찰나같은 밤을 보내야만 했다.


프랑스는 내가 상상했던것처럼 그렇게 환상적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몸소 느낀 프랑스에 대한 기억이 더 마음에 든다. 길가에 샹숑이 흐르진 않지만 눈만 마주쳐도 "봉쥬르!" 인사해주는 따뜻한 인사말이 흐른다. 얼굴 한번 본적도 없는 쪼끄만 동양여자애가 한가득 짐을 들고 낑낑대고 돌아다니면 기꺼이 도와주고, 추운날 아침이면 우리 봉사자들을 위해 따뜻한 커피 한잔을 대접해주시는 따뜻한 곳이다. 그리고 솔직히, 동양인에 대한 유럽사람들의 인식이 어떨지 걱정했었다. 무시하진 않을까.. 친구들 사이에서 혹시나 나에게만 거리두지는 않을까 했던 걱정들이 며칠만에 눈녹듯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도 다 내 한국 친구들과 똑같은 친구들이었다. 가끔은 이들이 한국애들인지, 외국사람인지 헷갈려 한국말이 튀어나온 적도 있다. 그리고 부모님 곁을 한번도 이렇게 몇주동안 떠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벌써 24살이지만 이제서야 조금 독립심을 가지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오래된 침대에 누워 불편한 것도 감수하면서, 힘든 일도 해보면서, 다른 나라 친구들과 같이 부대끼며 살 기회가 나에게 또 언제 있을까.. 너무 소중하고 귀중한 경험이다. 나에게 이번 워크캠프는, 이제 취업전쟁에 뛰어들 나에게 살면서 힘든 순간이 오면 꺼내보고 싶은, 책상 한 구석에 소중하게 모셔둔 보물일기다. 친구들이 나에게 준 따뜻한 마음들과 나를 정말 좋아해주시고 내년에 또 올꺼냐며 아쉬워해주신 그 마음들, 그리고 모두가 함께 만든 소중한 추억들을 꺼내볼 수 있는 그런 보물일기.. 워크캠프가 끝난지 오늘로 일주일째,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절대로 잊지 못할 내 소중한 추억들을 안고 왔기 때문에 너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