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낯선 프랑스, 홀로 떠난 여름날의 용기

작성자 하명희
프랑스 JR13/225 · RENO 2013. 07 - 2013. 08 La Voulte sur Rhône

LA VOULTE-SUR-RHON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3년 7월, 장장 열 두 시간을 거쳐 샤르드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도 한낮이었는데 그곳 역시 해가 쨍쨍했다. 프랑스의 여름은 한국의 그것보다 산뜻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공항에서 나온 후 맞이한 첫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온통 불어와 외국인으로 가득했던 거리. 으리으리한 건물들과 생경한 언어들이 부지런히 오가던 바쁜 풍경이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외국에 왔다는 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사실 가족이나 친구와 떨어져서 온전히 홀로 타지에 온건 처음이었다. 평소 봉사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해외봉사는 늘 꿈꾸던 것이었기에 워크캠프 합격 소식을 접하고 뛸 듯이 기뻐했었다. 그러나 막 공항에서 나왔을 때의 기분은 그때와 확연히 달랐다. 마치 거대한 환상이 묵직한 돌덩이가 되어 발등 앞으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미팅 포인트 장소에 가기 위해서는 파리 동역에서 무려 4시간가량 기차를 탄 후 버스로 환승해야했다. 한국에서조차 심히 길치로 손꼽히던 내가, 더군다나 타지에서, 제시간에 잘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냥 걱정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짧은 영어이지만 어쩌랴. 나는 주위 행인들을 붙잡고 무조건 물어보기 시작했다.
미팅 포인트까지 찾아가는 길은 의외로 쉬웠다. 나는 캠프 시작일보다 이틀 먼저 도착했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었다. 찾아가는 방법을 무수히 검토하고 차 시간을 달달 외우듯이 했다. 드디어 워크캠프 시작일인 14일 아침이 밝았고,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미팅 포인트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리더와 다른 조원들을 만나 캠프 장소에 도착했다. 너른 들판에 텐트 3개와 건너편 작은 건물 하나가 보였다. 텐트는 우리가 잠 잘 곳이었고, 건물에는 부엌과 샤워실, 화장실이 있었다. 사실 숙소를 보자마자 걱정부터 앞섰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3주 동안 아이들과 부대껴서 텐트 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괜한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우린 첫날 모여 자기소개를 간단히 한 뒤, 게임을 했다. 조원은 남자 다섯 명, 여자 다섯 명 총 10명이었다.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었다. 나이도 엇비슷해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우린 대부분 대화를 통해 친해졌다. 학교생활이나 연애 상담 등 서로 이야기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곤 했다. 더군다나 동양인은 나 혼자였기 때문에 며칠 동안은 친구들의 질문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캠프 일정은 오전 중 성 보수 봉사를 하고 점심을 먹은 뒤, 주마다 일정을 짜서 움직이곤 했다. 샌드위치를 싸들고 강가로 수영하러 가기도 했고 지역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면 빠짐없이 참가했다. 그 외에도 리옹지역 투어, 암벽등반, 연극 관람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비뇽 축제와 마지막 날 동네 주민들과 함께했던 파티, 그리고 프랑스 아저씨 ‘리문도’에게 아코디언을 배운 것이었다.
아비뇽 축제는 세계3대연극축제 중 하나다. 마침 우리가 머물던 지역이 아비뇽까지 약 한 시간 거리였으므로, 우리는 다 같이 버스를 타고 아비뇽에 갔다. 축제는 가히 화려했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각종 공연들과 덕지덕지 붙은 포스터들, 그리고 호객하는 사람들까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책에서만 보던 아비뇽 유수 흔적들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세계 축제인 만큼, 한국에서 온 공연팀을 만나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이라 그런지 아주 반가웠었다.
‘리문도’는 파티 때 만난 분어었다. 동네 주민들과 함께한 파티였는데, 아코디언을 들고 와 연주를 해주시는 게 아닌가! 음악과 악기에 관심이 많던 나는 그 연주에 흠뻑 빠져버렸고, 무작정 아코디언을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리문도는 두 눈을 껌뻑거리며 “Are you serious(진심이니)?” 라고 몇 번이고 물었고 나는 그때마다 “yes!” 하고 외치곤 했다. 그는 흔쾌히 나를 그의 집으로 초대해주었다. 그는 그의 집을 구경시켜주고, 저녁 식사를 한 뒤 거실에 앉아 아코디언을 가르쳐주었다. 어릴 적 피아노를 배워서 아코디언도 쉬울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예상 외로 정말 어려운 악기였다. 그러나 리문도의 꼼꼼한 설명과 친절함 때문에 쉽고 재밌게 배울 수 있었다. 프랑스 가정집에서 악기를 배우며 소통한다는 게 얼마나 귀한 경험이었는지. 아직도 아득하기만 하다.
마지막 날에는 동네 주민들을 초대하여 큰 파티를 열었다. 각자 각 나라의 음식을 준비하여 뷔페 형식으로 차린 뒤 함께 사진을 찍고,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날이라 다들 우울했지만 그만큼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필립의 독일 요리가 기억에 남는다. 돈가스와 비슷한 음식이었는데 튀김옷이 특이했던, 아주 맛있는 음식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또 먹고 싶다.

워크캠프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처음 캠프를 시작했을 땐 ‘내가 여기서 혼자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잘하고 있는 건가?’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다. 사실 캠프 초반,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워크캠프에 참가했던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정말이지 짧지만 길었던 나날이었다. 짧은 영어로 나누던 깊은 대화들, 함께 웃고 울며 고생하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워크캠프가 끝난 지 약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마냥 꿈처럼 느껴진다. 헤어지던 날 ‘꼭 다시 만나자’며 손가락을 걸었던 그 다짐을 이룰 수 있기를 고대한다.
마지막으로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준 국제워크캠프기구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