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낯선 행성에서의 2주
Cultural Night in Reykjavik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에 참가하고 싶었다. 어느 나라를 갈까 하다가 아무런 정보도 없는, 그저 이름만으로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아이슬란드로 결정하였다. 그곳에 대한 무지했던 나는 그렇게 2주를 완전히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8월의 아이슬란드는 우리가 알고 있던 여름이 아니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과 빗방울, 흐린 날씨, 바람들. 그것이 삭막하다고 흔히들 느껴지지만 아이슬란드의 분위기와 어우러진 그곳의 날씨 또한 아이슬란드만의 매력이었다.
여행 전 아이슬란드 노래에 대해 검색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이게 뭐지? 할만큼 난해한 음악이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 가서 달리는 버스 안에서 풍경을 보며 듣는 아이슬란드의 음악은, 이런 나라에서 사는 음악가에게서는 이런 음악이 나올 수 밖에 없구나를 깨닫게 해주었다. 워크캠프 친구들과 떠난 여행. 그곳이 어딘지 지명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정말로 그곳만큼은 지구에서 가장 고요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8월의 혹시모를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이름모를 뒷 산에 올랐지만 결국 오로라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난 그곳에서 정말 '아무 것도 없음'을 느낄 수 있었고 그 경험은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작은 동산 위에 올라 모두가 누워버렸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누구도 좋다고 하지 않아도 서로가 최고의 시간과 최고의 경험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탁트인 정상에서 아래로 보이는 풍경들에는 어떠한 사람이나 사람의 흔적 또한 보이지 않았다. 그곳은 바람도 불지 않고 공기도 느껴지지 않는 정말 고요한 곳이었다. 눈만 감으면 정말 그 공간에 나 자신만 존재함을 느낄 수 있었으며 진공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약 15명의 친구들은 그렇게 산 정상에 누워 아무말도 하지 않고 서로와 함께 하고 있었다.
이렇게 고요했던 아이슬란드의 모습이 있다면, exciting한 모습도 그와 못지 않게 존재하였다. 아이슬란드의 자연경관이 만들어낸 엄청난 폭포. 사람의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로 폭포의 힘은 위대하였다.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만큼 강했던 폭포는, 무지개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을 뽐냈으며 아이슬란드가 가지는 다양한 모습에 우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낭여행을 자주 다녔지만 아이슬란드만큼 독특하고 아이슬란드만이 가지는 그런 모습을 가지는 나라는 없었다.
물론 워크캠프 중에 이렇게 여행만 다닌 것은 아니다. 나는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의 8월에 열리는 cultural night에 WF를 대표하여 참가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우리 팀은 2주 간 매일 회의하며 그날을 위해 준비하였다. 첫날에 설레는 마음으로 white house에 도착하였을 때는 정말 숨막힐정도로 어색했던 것 같다. 대부분이 워크캠프가 처음이었는지 누구도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리더를 만나고 자기소개를 하였지만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온 만큼 처음듣는 이름들로 정신이 너무 없었다.
첫날에는 먼저 묵을 숙소를 정하고 짐을 정리하고 시내를 약간 둘러보며 적응하는 날이었다. 원래 캠퍼들이 묵던 숙소에 문제가 생겼는지 우리팀이 묵을 숙소를 정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두 곳을 둘러본 결과 학교에서 제공하는 어떤 큰 방으로 선택하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커다란 한 방에서 거의 13명 정도가 지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정말 불편했던 숙소였지만 우리가 2주간 아무런 불평없이 재밌게 지냈던 것은 친구들끼리 한 방에서 매일 수련회에 온 것처럼 떠들고 얘기하고 게임하며 놀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그러한 불편함이 그리울 정도로 그 때 그 순간이 꿈만 같다. 그렇게 숙소를 정하였는데, 좋은 소식과 안좋은 소식이 있었다. 안좋은 소식은 10명이 넘는 숙소에 화장실에 1개밖에 없다는 사실이며 샤워시설도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숙소 바로 옆에 레이캬비크의 수영장이있어 그곳에서 샤워도 하고 수영도 매일 공짜로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수영복을 가져왔다는 사실에 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탁월한 숙소 선택에 모두가 즐거워했다.
첫날 어색했던 13명은 말없이 모두 수영장으로 향하는 상황이었다. 만나자마자 몇 마디 못나누었지만 어찌저찌 우물쭈물하게 수영장에 모두 향하였고 그렇게 조금씩 우리는 말을 트고 친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수영을 잘 하지 못했던지라 수영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구하고자 나의 친구들과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수영장에서 나와서도 수다를 떠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첫날 시내 구경을 마치고 저녁은 에스토니아에서 온 리더가 준비하였다. 한 자리에 모여 서로가 하는 말을 귀기울이며 점점 서로를 알아갔고 그렇게 어색했던 우리의 첫날은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매일 함께 자고 떠들고 술도 먹고 클럽도 가게 되었다. 물론 오전과 오후에는 cultural night을 위해 모두가 열심히 일하였다. 그날 하루를 위하여 여러 아이디어를 내었고 점점 윤곽이 잡히는 듯 하였다. 또한 그날 드럼performance를 위하여 틈틈히 드럼 레슨을 받게 되었다. 거의 모두가 처음 잡는 드럼 스틱에 우왕좌왕하는 듯 싶더니, 단지 즐기는 것과 서로의 소리를 조화하는 것만으로도 음악이 되는 것에 모두가 그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드럼은 평범한 드럼이 아닌, 재활용을 하여 만든 난타와 비슷한 것으로 리더의 드럼 연주에 맞추어 우리가 따라가는 연주였다. 나는 특히 젬베를 맡게 되어 맨 앞에서 색다른 연주를 펼칠 수 있어 특히나 더 기억에 남았었던 것 같다. 일상에서는 절대 생각치도 못하는 드럼 공연이라니. 연습할 때는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재밌었다.
매일 저녁은 나라 별로 돌아가며 그 나라의 음식을 해주는 식이었다. 나는 평소에 요리를 잘 하지 못했던 지라 점점 다가오는 korean dinner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나라의 전통 음식을 매일 맛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너무 신기했고 처음 보는 음식들에 한번 놀라고, 맛에 두번 놀랐다. 그렇게 korean dinner의 날은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팀에 한국에서 온 언니와 우리를 도와줄 프랑스친구 한명, 이렇게 3명이서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준비한 것은 불고기와 삼각김밥, 그리고 호떡이었다. 팀에 채식주의자가 있어 마침 삼각김밥이 있어 친구를 굶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였다. 먼저 장을 보고 밥을 짓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주 사용하던 압력밥솥이 아닌 냄비밥은 에상에 빗어나지 않고 실패하였다. 그렇게 밥을 짓는 것에 엄청난 고생을 하며 어찌저찌 불고기와 삼각김밥을 할 수 있었고, 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후식인 호떡을 하기 위해 우리는 또 한번 땀을 흘렸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모두가 맛있게 먹었으며, 특히 호떡은 모두의 찬사가 있었다. "it's heaven!"이라며 호떡 안에 들어간 꿀을 보며 놀라며, 어떻게 빵 안에 꿀을 넣었냐며 신기했다. 또한 그 꿀이 magical powder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자신의 나라로 magical powder을 보내달라며 또 없냐, 어떻게 만드냐 이런 저런 질문을 하였다. 정말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실패할까봐 전전긍긍하였지만 결국 미흡했지만 모두가 즐겼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 수영장에서 씻고, 모두 white house에서 아침을 먹고 cultural night위한 준비를 오후까지 한 다음, 저녁식사 전 까지에는 자유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아이슬란드의 수도에 있었기 때문에 항상 시내를 구경하고 돌 수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가고 싶거나 보고 싶은 곳, 혹은 사고 싶은 물건의 상점에 들리기도 하였다. 하루는 프랑스친구, 슬로바키아친구2명,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서 시내를 좀더 크게 구경하게 되었다. 먼 거리였지만 걸어서 그곳을 찾아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수다를 떨며 그렇게 점점 정이 들게 되었고, 레이캬비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올라가 아이슬란드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밤에는 가끔 시내에 위치한 클럽에 가서 술마시고, 어떤 날은 숙소인 학교 앞에 놀이터에 모두가 벌러덩 누워 술게임을 하기도 하였다. 한국과는 또 다른 술게임에 우리는 그렇게 매일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꼭 붙어다녔으며, 심지어 좁은 숙소 탓에 잘때도 서로의 얼굴을 코앞에서 바라보는 웃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첫날의 어색했던 우리는 그렇게 cultural night가 다가올 때 까지 정이 들었고, 막상 준비했던 cultural night이 왔을 때는 설렘도 있었지만, 그날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모두가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준비했던 cultural night를 모두 끝내고 한명씩 떠나갈 때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복잡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하나 둘씩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고, 그 떠난다는 사실이, 이제는 너무나도 먼 곳에 서로가 있어 자주 못볼 것이라는, 혹은 평생 이제 못볼것이라는 생각에 모두를 울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울지않으리라 생각하며 떠날 준비를 하고, 이제 떠나고자 모두와 인사하려고 할때 그동안 정말 친하게 지냈던, 사실 가장 친하게 진했던 친구가 울고 있었다. 그동안 20대가 되고 나서의 울음은 영화를 보고 우는 간접적인 슬픔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정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눈물은 그 어느것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것이었으며 그것만으로도 2주간의 워크캠프가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던 것인지 말해주었다.
8월의 아이슬란드는 우리가 알고 있던 여름이 아니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과 빗방울, 흐린 날씨, 바람들. 그것이 삭막하다고 흔히들 느껴지지만 아이슬란드의 분위기와 어우러진 그곳의 날씨 또한 아이슬란드만의 매력이었다.
여행 전 아이슬란드 노래에 대해 검색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이게 뭐지? 할만큼 난해한 음악이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 가서 달리는 버스 안에서 풍경을 보며 듣는 아이슬란드의 음악은, 이런 나라에서 사는 음악가에게서는 이런 음악이 나올 수 밖에 없구나를 깨닫게 해주었다. 워크캠프 친구들과 떠난 여행. 그곳이 어딘지 지명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정말로 그곳만큼은 지구에서 가장 고요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8월의 혹시모를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이름모를 뒷 산에 올랐지만 결국 오로라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난 그곳에서 정말 '아무 것도 없음'을 느낄 수 있었고 그 경험은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작은 동산 위에 올라 모두가 누워버렸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누구도 좋다고 하지 않아도 서로가 최고의 시간과 최고의 경험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탁트인 정상에서 아래로 보이는 풍경들에는 어떠한 사람이나 사람의 흔적 또한 보이지 않았다. 그곳은 바람도 불지 않고 공기도 느껴지지 않는 정말 고요한 곳이었다. 눈만 감으면 정말 그 공간에 나 자신만 존재함을 느낄 수 있었으며 진공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약 15명의 친구들은 그렇게 산 정상에 누워 아무말도 하지 않고 서로와 함께 하고 있었다.
이렇게 고요했던 아이슬란드의 모습이 있다면, exciting한 모습도 그와 못지 않게 존재하였다. 아이슬란드의 자연경관이 만들어낸 엄청난 폭포. 사람의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로 폭포의 힘은 위대하였다.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만큼 강했던 폭포는, 무지개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을 뽐냈으며 아이슬란드가 가지는 다양한 모습에 우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낭여행을 자주 다녔지만 아이슬란드만큼 독특하고 아이슬란드만이 가지는 그런 모습을 가지는 나라는 없었다.
물론 워크캠프 중에 이렇게 여행만 다닌 것은 아니다. 나는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의 8월에 열리는 cultural night에 WF를 대표하여 참가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우리 팀은 2주 간 매일 회의하며 그날을 위해 준비하였다. 첫날에 설레는 마음으로 white house에 도착하였을 때는 정말 숨막힐정도로 어색했던 것 같다. 대부분이 워크캠프가 처음이었는지 누구도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리더를 만나고 자기소개를 하였지만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온 만큼 처음듣는 이름들로 정신이 너무 없었다.
첫날에는 먼저 묵을 숙소를 정하고 짐을 정리하고 시내를 약간 둘러보며 적응하는 날이었다. 원래 캠퍼들이 묵던 숙소에 문제가 생겼는지 우리팀이 묵을 숙소를 정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두 곳을 둘러본 결과 학교에서 제공하는 어떤 큰 방으로 선택하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커다란 한 방에서 거의 13명 정도가 지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정말 불편했던 숙소였지만 우리가 2주간 아무런 불평없이 재밌게 지냈던 것은 친구들끼리 한 방에서 매일 수련회에 온 것처럼 떠들고 얘기하고 게임하며 놀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그러한 불편함이 그리울 정도로 그 때 그 순간이 꿈만 같다. 그렇게 숙소를 정하였는데, 좋은 소식과 안좋은 소식이 있었다. 안좋은 소식은 10명이 넘는 숙소에 화장실에 1개밖에 없다는 사실이며 샤워시설도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숙소 바로 옆에 레이캬비크의 수영장이있어 그곳에서 샤워도 하고 수영도 매일 공짜로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수영복을 가져왔다는 사실에 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탁월한 숙소 선택에 모두가 즐거워했다.
첫날 어색했던 13명은 말없이 모두 수영장으로 향하는 상황이었다. 만나자마자 몇 마디 못나누었지만 어찌저찌 우물쭈물하게 수영장에 모두 향하였고 그렇게 조금씩 우리는 말을 트고 친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수영을 잘 하지 못했던지라 수영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구하고자 나의 친구들과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수영장에서 나와서도 수다를 떠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첫날 시내 구경을 마치고 저녁은 에스토니아에서 온 리더가 준비하였다. 한 자리에 모여 서로가 하는 말을 귀기울이며 점점 서로를 알아갔고 그렇게 어색했던 우리의 첫날은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매일 함께 자고 떠들고 술도 먹고 클럽도 가게 되었다. 물론 오전과 오후에는 cultural night을 위해 모두가 열심히 일하였다. 그날 하루를 위하여 여러 아이디어를 내었고 점점 윤곽이 잡히는 듯 하였다. 또한 그날 드럼performance를 위하여 틈틈히 드럼 레슨을 받게 되었다. 거의 모두가 처음 잡는 드럼 스틱에 우왕좌왕하는 듯 싶더니, 단지 즐기는 것과 서로의 소리를 조화하는 것만으로도 음악이 되는 것에 모두가 그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드럼은 평범한 드럼이 아닌, 재활용을 하여 만든 난타와 비슷한 것으로 리더의 드럼 연주에 맞추어 우리가 따라가는 연주였다. 나는 특히 젬베를 맡게 되어 맨 앞에서 색다른 연주를 펼칠 수 있어 특히나 더 기억에 남았었던 것 같다. 일상에서는 절대 생각치도 못하는 드럼 공연이라니. 연습할 때는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재밌었다.
매일 저녁은 나라 별로 돌아가며 그 나라의 음식을 해주는 식이었다. 나는 평소에 요리를 잘 하지 못했던 지라 점점 다가오는 korean dinner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나라의 전통 음식을 매일 맛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너무 신기했고 처음 보는 음식들에 한번 놀라고, 맛에 두번 놀랐다. 그렇게 korean dinner의 날은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팀에 한국에서 온 언니와 우리를 도와줄 프랑스친구 한명, 이렇게 3명이서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준비한 것은 불고기와 삼각김밥, 그리고 호떡이었다. 팀에 채식주의자가 있어 마침 삼각김밥이 있어 친구를 굶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였다. 먼저 장을 보고 밥을 짓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주 사용하던 압력밥솥이 아닌 냄비밥은 에상에 빗어나지 않고 실패하였다. 그렇게 밥을 짓는 것에 엄청난 고생을 하며 어찌저찌 불고기와 삼각김밥을 할 수 있었고, 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후식인 호떡을 하기 위해 우리는 또 한번 땀을 흘렸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모두가 맛있게 먹었으며, 특히 호떡은 모두의 찬사가 있었다. "it's heaven!"이라며 호떡 안에 들어간 꿀을 보며 놀라며, 어떻게 빵 안에 꿀을 넣었냐며 신기했다. 또한 그 꿀이 magical powder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자신의 나라로 magical powder을 보내달라며 또 없냐, 어떻게 만드냐 이런 저런 질문을 하였다. 정말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실패할까봐 전전긍긍하였지만 결국 미흡했지만 모두가 즐겼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 수영장에서 씻고, 모두 white house에서 아침을 먹고 cultural night위한 준비를 오후까지 한 다음, 저녁식사 전 까지에는 자유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아이슬란드의 수도에 있었기 때문에 항상 시내를 구경하고 돌 수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가고 싶거나 보고 싶은 곳, 혹은 사고 싶은 물건의 상점에 들리기도 하였다. 하루는 프랑스친구, 슬로바키아친구2명,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서 시내를 좀더 크게 구경하게 되었다. 먼 거리였지만 걸어서 그곳을 찾아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수다를 떨며 그렇게 점점 정이 들게 되었고, 레이캬비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올라가 아이슬란드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밤에는 가끔 시내에 위치한 클럽에 가서 술마시고, 어떤 날은 숙소인 학교 앞에 놀이터에 모두가 벌러덩 누워 술게임을 하기도 하였다. 한국과는 또 다른 술게임에 우리는 그렇게 매일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꼭 붙어다녔으며, 심지어 좁은 숙소 탓에 잘때도 서로의 얼굴을 코앞에서 바라보는 웃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첫날의 어색했던 우리는 그렇게 cultural night가 다가올 때 까지 정이 들었고, 막상 준비했던 cultural night이 왔을 때는 설렘도 있었지만, 그날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모두가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준비했던 cultural night를 모두 끝내고 한명씩 떠나갈 때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복잡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하나 둘씩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고, 그 떠난다는 사실이, 이제는 너무나도 먼 곳에 서로가 있어 자주 못볼 것이라는, 혹은 평생 이제 못볼것이라는 생각에 모두를 울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울지않으리라 생각하며 떠날 준비를 하고, 이제 떠나고자 모두와 인사하려고 할때 그동안 정말 친하게 지냈던, 사실 가장 친하게 진했던 친구가 울고 있었다. 그동안 20대가 되고 나서의 울음은 영화를 보고 우는 간접적인 슬픔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정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눈물은 그 어느것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것이었으며 그것만으로도 2주간의 워크캠프가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던 것인지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