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체코, 숲속 마을에서 찾은 터닝포인트

작성자 오세미
체코 SDA405 · ENVI/RENO 2013. 08 MUNA Mikulovice, near Jesenik

Nature and Natural Architecture in Jeseniky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국제워크캠프에 합격하다.

마지막 4학년 여름방학. 남들은 스펙준비며 취업준비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법한데, 나는 내 인생에서 '터닝포인트'가 필요한 시점이였다. 어쩌면 철이 없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나를 찾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때 미리 국제워크캠프를 다녀온 학교언니의 추천이 떠올랐다. 그래서 무작정 국제워크캠프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환경에 관한 워크캠프를 지원했다. 락앤락 그린메이트로 활동하면서 '자연보호'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클 시점이였기 때문에 환경에 관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다. 첫번째 지원한 워크캠프에 낙방하고 나는 또 다시 두번째 워크캠프를 지원했다. 사실 '될 때까지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지원했기에 망설임 또한 없었다. 다행히 1지망 체코가 붙었다는 소식을 5월달쯤에 듣고 준비에 들어갔다. 평소 프라하도 가고 싶었기에 캠프 일주전 미리 프라하 여행도 계획을 했다.

#웅장한 숲속 MUNA마을

프라하 중앙역 버거킹에서 모이기로 했기에 8월14일 나는 큰 배낭을 얼싸안고 버거킹 앞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처음 나를 보고 '안녕'이라고 인사를 해줬던 스페인 친구 Oli. 사실 프라하에서 모여서 가지고 한 사람이 나였기에 캠프친구들이 나를 잘 따라줬던것 같다. 'You are our manager'이라며 말하는 장난끼 다분한 Nuria.그렇게 우리는 MUNA Mikulovice, near Jesenik로 이동했다. 캠프장소에 도착하니 미리 온 유럽친구들이 많았다. 폴란드 남자애2명,이탈리아 남자1명 여자1명,체코 남자1명 여자1명, 스페인 여자2명,터키 남자1명,러시아 여자2명, 프랑스 여자2명 그리고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시골마을이라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인도 없는 동네였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을 키고 먹었던 맛없는 파스타, 처음 자보는 침낭과 재래식 화장실. 모든게 불편 그 자체였지만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 생활에 나도 점점 익숙해져갔다. 세밤을 자기 전까지는 정말 프라하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세밤을 자고나서는 캠프 환경에 적응해가며 즐기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2주동안 했던 일은 군사기지로 활용된 MUNA에서 교육시설로 활용될 건물을 짓고 자연보호를 위한 다리만들기 부터 잡초뽑기등 여러가지 일을 했다. 캠프리더 3명은 2주간의 정확하게 짠 시간표를 우리에게 보여줬고, 우리는 그 시간에 맞춰 움직였다. 캠프리더는 항상 우리들의 의견을 존중해주었으며, 독단적으로 행동하는건 전혀 없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라 처음엔 서툴었지만, 곧 나는 대못박기와 잡초뽑기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사실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유럽애들에 비해 내가 많이 약해 있었다. 하지만, 캠프친구들이 하나같이 너무 착했으며, 나를 배려해주는게 눈에 보였다. 힘들때마다 캠프친구들에게 많이 위로를 받았다. 내가 캠프활동중에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일 마치고 샤워를 하러 가는 길이였다. 샤워를 하러 가려면 자전거를 타고 10분정도 가야했다. MUNA는 정말 한국에서 보기 힘든 웅장한 숲속이기 때문에 여기서 자전거를 타면 정말 기분이 짜릿하다.
첫날 입맛에 안맞았다며 안먹던 음식들도 일하고나서는 모든게 다 맛있었다. 심지어는 풀풀 날리는 밥에 케찹이랑 머스타드 소스를 비벼먹던 내가 생각난다. 그만큼 배가 고파서 뭐든지 맛있게 잘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먹는 누뗄라가 듬뿍 발라진 딱딱한 빵 또한 너무 맛있었다. 캠프친구들은 첨엔 잘 안먹던 내가 잘먹자 "I am happy that you eat well."라며 더 기뻐해준 친구들. 유럽친구들이랑 지내면서 이들의 순수성을 보았다. 처음에 오기전 나혼자 아시아인이라 걱정부터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였다. 나 또한 오픈마인드로 임하려고 노력을 했으며,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며 다녔다. 저녁마다 하는 한여름밤의 캠프파이어. 소세지도 구워먹고 이탈리아 친구의 기타연주도 들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마무리 했다.

#체코에서 한국을 알리다.

첫 주말, 간단하게 지역주민들과 소소하게 파티를 열었다. 각 나라 음식을 준비하는 날이 였는데, 나는 호떡을 준비했다. 하지만, 주방시설이 열악해서 호떡만드는게 쉽지 않았다. 급하게 만드느라 모양도 이상하고 탄것도 있었지만 호떡을 선보이는 순간 호떡집에 불이 났다. 그만큼 사람들이 제일 먼저 호떡에 관심을 가져줬으며, 순식간에 호떡이 사라졌다. 캠프리더는 혹시 더 만들어 줄 수 있냐며 물었고, 나는 조금 남은 밀가루 반죽으로 다시 또 만들었다. 입맛 까다롭다던 프랑스,이탈리아 친구들도 레시피 좀 알려달라고 할 정도였다. 이 날 이후부터 친구들은 나만보면 '호↗떡↘"하며 장난치곤 하였다.

캠프 2주동안 나는 인터뷰를 두 번이나 했다. 한 번은 지역주민들과 함께한 파티에서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며 온 기자분. 그리고 일하는 중에 온 기자분. 그들 눈에는 한국여자애가 온게 신기해 보였나보다. 공통 질문이 한국에서 멀리까지 여기 온 이유였다. 나는 나의 마지막 여름방학 일부를 국제워크캠프로 보내고 싶었으며, 평소 자연보호에 관심있던 나였기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또한 체코 프라하에서 한국드라마가 찰영되어 프라하도 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후 캠프리더는 신문에 난 기사를 프린트해 주었고, 내이름(semi oh)가 적힌걸 보니 나름 뿌듯했다.

#캠프기간에 닥친 위기, 응급실에 가다.

사실 내가 체력이 그렇게 강한건 아니다. 나름 워크캠프 가기전에 운동도 하고 홍삼도 먹고 그랬는데도 새로운 환경에서 안하던 일을 하려니 몸에 이상신호가 안올리가 없었다. 워크캠프7일째, 내몸에 붉은 반점들이 얼굴이며 팔,다리까지 퍼져있었다. 처음엔 벌레에 물린거겠지 하며 무심코 지나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렵고 더 심해졌다. 나는 캠프리더에게 말을 했고, 결국 다음날 아침일찍 예세니크에 있는 응급실로 갔다. 의사도 이게 어떤 알레르기인지는 몰랐고, 그냥 normal한 주사를 두방을 나주었다. 타지에서 아프니까 무척이나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때였다. 이날 나는 돌아와서 하루종일 잠을 잤다. 그 다음날 푹쉬고 나니 컨디션도 괜찮아졌지만 알레르기 자국은 그대로라, 어쩔 수없이 나중에 한국와서 알레르기는 완치가 되었다. 아픈 나를 많이 걱정해준 캠프친구들, 한국에 와도 여전히 알레르기 괜찮냐며 안부를 물어봐주곤 한다.

#주말마다 떠난 잊지못할 Trip.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주말마다 우리는 trip을 떠났다. 첫 주말에 떠난 여행은 조금 힘들었다. 걸어서 폴란드 국경까지 찍고 왔다고 하면 말 다했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나를 위로해주었다. 마치 스위스에 온듯한 풍경, 넓게 펼쳐진 들판, 풀을 뜯고 있는 소들, 새파란 구름까지 카메라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다. 중간중간 벤치에 앉아서 먹던 샌드위치, 친구들과 함께 먹은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이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캠프장소에서 내다리는 풀독으로 인해 망신창이가 되었지만,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었기에 눈에도 안들어왔다.

마지막 주말에는 예세니크 도시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산속에 갇혀?있다가 오랜만에 도시로 나들이 가는게 왜이리도 설레였는지. 그날 밤 우리는 클럽파티에 갔었는데, 아무래도 도시라해도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디스코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도 클럽은 안가봐서 약간의 설레임을 가지고 들어갔다. 막상 춤추려니 쑥쓰러워 하는 나에게 먼저 같이 춤을 추자는 친구들 덕분에 나는 춤은 못추지만 음악에 맡겨 리듬을 탔다. 캠프리더들은 DJ에게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요청했고, 곧 디스코 안에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가 울려퍼졌다. 얼마만에 듣는 한국말인지 너무 반가웠다. 유럽에 이미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히트를 쳤기 때문에 모든 친구들이 다 알고 있었다. 3분39초동안 나는 그 디스코장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때는 내숭이고 뭐고 다 버리고 말춤을 췄더니 유럽친구들은 물론 다른 손님들까지도 하나가 되는 시간이였다. 그날 이후 캠프리더는 나에게 색다른 면을 봤다며 웃곤 하였다. 그래서 나는 술없이도 춤을 출수 있다며 웃어 받아치곤 했다.

#나를 발견한 국제워크캠프.

이번 국제워크캠프는 내 삶에 '터닝포인트'역할을 해주었다.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부분은 모든지 하기전에 걱정부터 하던 내가 이제는 두려울게 없다는 것이다. 즉,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해내고 싶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떠나기전,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무모한 도전"이라며 걱정부터 했다. 당연히 그럴만 하다. 생전 처음 가보는 체코라는 나라에서 인터넷에 쳐도 안나오는 숲속 동네에서 지낸다는게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내가 하고 싶어서 저지른 일이기 때문에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다. 그만큼 나는 떠나기전 준비를 정말 철저히 했다. 이건 나를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위한거 일지도 모른다.

두번째는 외국인 울렁증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영문과 학생이다. 영문과라고 하면 다들 "영어 잘하겠네"이말 부터 나온다. 사실 영문과 수업상 회화수업보단 말 그대로 '문학'을 배우기 때문에 말하기 보단 읽고 쓰기에 더 집중이 되어있다. 처음 캠프에 왔을때 머릿속에 미리 문법까지 따져가며 말했던 내가 나중에는 문법은 생각하지 않고 내가 말하고 싶은대로 말해도, 대화가 통했다. 오히려 문법을 따져가며 머릿속에 맴돌던 문장보다 더 수월하게 말했다. 유럽친구들이랑 2주동안 지내면서 그들만의 문화를 배우고 나도 그들에게 우리나라의 문화를 알려주었다. 이때 드는 생각이, 정말 살아온 환경,모습,언어가 다 다르지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프 마지막날 헤어질때 서로 부둥켜 안으며 눈물을 글썽이던 내 자신을 봤을때 나는 이미 그들과 하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2주간의 나의 꿈같은 여름방학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아직도 우리는 페이스북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다.